‘나의 해운업 종사기’
봄기운이 완연한 3월 5일 콤파스가 열렸다. 이날 콤파스는 해운홍보의 성토장이 되었다.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휴전선이 막힌 반도국 우리나라는 섬나라와 같아 해운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제시대에 일본 육사를 나온 사람은 좀 있으나 해사를 나온 사람은 전무할 정도로 자국민 아니면 안되는 순수 혈통이 해군에 적용된다.

 

 일본과 영국의 왕족들도 육군보다 해군에 입대할 정도로 해군·해운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일본의 초등학교에는 풀장이 없는 곳이 없으나 우리나라에는 있는 학교가 드물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바다로 가면’이라는 노래가 처음 나올 정도로 바다를 중시한다. 일본은 7월 21일 바다의 날을 공휴국경일로 정해 행사에 일본의 황족이 꼭 나올 정도로 온 국민이 축제를 벌이고 있으나 우리는 ‘바다의 날’이 있는지 조차 잘 모른다. 해운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대국민 해운홍보가 절실하다.


이어 SK해운의 김승정 고문이 나와 ‘나의 해운업 종사기’를 발표하였다. 김 고문은 해운현업을 떠나 있어 현장감이 떨어져 처음엔 망설였으나 해운업계에 종사하던 시절을 회고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콤파스에 대한 애정이 참 많다고 말했다. 콤파스를 통해 해운계 인사들을 만나 동료의식을 느낄 수 있어 모임에 나올 때마다 기대가 되고 기분이 좋단다.


전문용어지만 같은 용어를 쓴다는 동질성이 느껴져 콤파스에 나올 때마다 고향에 오는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자신은 36세의 백면서생으로 해운업계에 입문하였다며, 자신 같은 비해운인이 어떻게 해운에 입문하였는지를  털어놓았다. 그는 해운공사에 입사함으로써 해운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해운업은 국제산업(international & global business)이므로 국가간의 규약과 규칙이 많아 제대로 모르고 넘어가면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긴장하였다. 대학에서 경제학 행정학 조직학을 전공하였고 ROTC 소대장 출신으로 전경련에서는 산업경제와 국민경제 업무를 맡았고 한국개발연구원에서는 주임연구원 생활을 하였다. 전경련 국제경제과장 재직시 마산경제자유지역 선정 검토 중 박정희 대통령이 거제도로 하라는 지시가 있었으나 용수 교통 등의 문제를 제기하여 마산으로 확정하였다. 이때 서울상대 18회 박수환 사무관과 실무협의를 하며 가깝게 지냈다. KDI에서 경제전망과 환율 담당을 맡아 거시경제를 다루어 숲은 보았으나 나무는 제대로 못 보았다. 1976년 2월말 대한해운공사 인천지점 부장으로 발령을 받고 해운업에 종사하였다. 선박의 제원과 기능 선원조직 역할 등 실무의 기본적인 것부터 하나씩 배워 나갔다.


그 당시에는 선박 입출항 업무를 제대로 아는 직원이 거의 없어 애로사항이 많았다. 선적업무와 도선업무 등을 발로 뛰며 배웠다. 그때 현장실습과 함께 해운 펀더멘털을 익힌 셈이다. 아울러 영국판과 한글판 해운실무 책으로 독학하여 해운용어와 의미를 하나씩 터득해 나갔다. 나중에 본사 기조실 차장으로 발령날 때까지 40여일간 실습을 잘했다. 인천지점에 근무할 때 40일 중 30일을 술을 마셨는데, 나중에 종합상사 사장 시절에도 술을 마실 경우가 많았으나 그때 단련이 되어 잘 견딜 수 있었다. 1976년 기조실 차장때 컨테이너선 도입업무를 담당하며, OOCL의 CY퉁 회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런 기회가 쉽지않을 것 같아 퉁회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해운에 대해 한수 가르쳐 달라고 하니 의외로 1시간이나 가르쳐 주었다.


“OOCL의 보유선박이 짧은 기간에 600만톤, 1,000만톤 하다가 다시 600만톤으로 바뀌는 연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좋은 질문(Good question)”이라며 해운시황은 기복이 심하므로 그에 따라 선복보유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답변하였다. 해운을 해서 돈 버는 방법은 “배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이라며 선박 보유량 조절이 중요하므로 유능한 경영인은 살 때와 팔 때를 잘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운업에서 선박매매(sale & purchase)가 매우 중요한 경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이렇게 하려면 세계 해운정보와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유공해운 기조실에다 세계 해운시장과 선박매매 현황을 도표로 그려놓고 이를 활용하였다.


선경이 유공을 인수하고 유공해운을 만들 때 걸프(Gulf)사의 운항권을 인수하였는데, 그룹에서 5억원을 받아 198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고 선경으로부터 여직원 2명과 관리직 2명을 지원받고 해사부문은 삼고초려 끝에 백온기 선장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선원업무는 동지상선의 서병기 회장의 지원을 받아 나름대로 잘 출범하였다. 당시에는 탱커시황이 안 좋아 계선중인 유조선을 사우디의 라스타누라에서 인수하여 울산항에 어렵사리 입항시키는 감격을 맛보았다.


또한 최종현 회장에게 선경의 10개년 발전계획을 보고할 때 CY퉁 회장의 얘기를 해주었다. 이병철 삼성회장이 해마다 연말이면 일본을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삼성은 일본 보다 10년이 늦으니 이를 만회하려면 10년을 앞당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선경은 삼성보다 10년 늦으므로 10년을 앞당길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보고하였다. 그후 시장의 고객들을 만나 면담하여 그 결과를 가지고 10개년계획을 수립하는데 활용하였다.


유공이 VLCC 3척을 신조하기 위해 건조경험이 있는 미쓰비시중공업과 척당 3,680만달러의 의향서(LI)를 받았는데, 이때 경제부처에서 일한 경험을 잘 살렸다. 그러자 현대중공업의 사장이 급히 달려와 간청하는 바람에 기술이 부족하고 선가도 3,820만달러로 비싸지만 수용하기로 하고 LI를 작성하려는데, 정주영 회장이 최종현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다른 조건은 그대로 두고 선가만 4,000만달러로 높여 확정하였다. 다만 2척의 옵션이 문제가 되었는데, 선가가 7,800만달러로 치솟자 재협상에 들어가 3차 선박을 400만달러 올려 주는 것으로 재계약한 경험이 있다. 그때 너무 싸게 계약했다고 조선소 근로자들이 일을 안할 정도였는데, 인도시 선가가 무려 8,800만달러까지 올라갔다. 해운업은 경기에 민감하여 통계를 잘 분석하고 정책을 주시하고 직감을 포함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업에는 사람 특히 신입직원이 중요하다. 선경에서는 인재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3년차 직원을 해외유학 보내 전문지식을 쌓도록 하였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서 1년 단기과정과 외국회사 근무를 통해 교육과 실습을 겸할 수 있게 하였다.


직원들은 보통 20% 정도가 중도에 퇴사하는데, 신입직원이 금방 중견인 부장급으로 승진하므로 직원교육이 매우 긴요하다. 법제실 직원들을 외국 로스쿨에 보내주니 전문지식 습득은 물론 동문의식과 프라이드가 생기고 언어면에서 장점이 많았다. 1년 반 정도 한국케미칼해운에도 근무하였는데, 가족 같은 동료의식이 생겨 소통이 잘 돼 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얼마전 정유근 사장이 컨설턴트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동감이다. 자기 기준과 판단에만 의존하지 말고 이들의 조언을 들어야 큰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 호황기에 우리해운이 너무 오만했다는 지적에도 동감한다. 제조업은 경기변동이 완만하나 해운업은 급변한다. 꼭대기에서 한순간에 벼랑으로 떨어지는 게 해운경기이다.


이어 자유토론이 있었다. CY퉁은 야간학교를 조금 다녔고 창고지기(store keeper)를 하다가 시험을 치러 1등항해사 생활도 하였다. 그가 세계적인 기업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실무형 경영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빌딩 위에 사무실 겸 거처를 마련하고 일일이 지시하는 현장통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일본 NYK는 동경대 출신이 아니면 안되는 엘리트 의식이 강하나 그리스의 대선주들도 CY퉁 같이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많다. CY퉁은 배를 건조할 때도 직접 간여하여 운항 관리하기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냈다. 대만 에버그린의 장영발 회장도 해기사 출신이기에 선사를 효율적으로 경영하고 있는데, 해상과 육상 교차근무와 우수한 선원이 도선사가 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해운경기는 보통 4배, 작년 같은 경우에는 10배나 변동했기 때문에 일본은 이에 대한 안전판(safety valve)을 제도적으로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저금리 개발금융을 이용한 계획조선, 자율상각제, 대종화물 COA의 외국선 입찰제한 같은 안전판에 의해 일본해운은 불황이 와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일본은 화주와 선주가 부러울 정도로 협력이 잘 되고 있으나 우리나라 대량화주들은 외국선사에게 거리낌 없이 장기수송권을 주고 있어 대조가 된다. 일본과 네덜란드 덴마크 같은 나라가 어떻게 해운강국이 될 수 있었는지 잘 살피고 배우는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패전 일본이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나라와 경쟁하기 위해 임항공업단지를 개발하고 부두를 축조하고 운임을 낮추기 위해 기술혁신으로 대형선박을 건조하여 조선공업을 발전시키자 철강산업이 발전하였고, 원료를 수송하기 위해 광탄선을 만들게 되어 경제개발의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이를 위한 계획조선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선화주협력기금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국토가 좁고 인구는 많고 부존자원은 없어 원자재를 수입 가공하여 부가가치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경제구조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진데, 해운을 보는 양국의 시각차는 현격하다. 공항에 배웅나온 일본 운수차관이 개발금융을 10%쯤 늘렸으면 한다고 말하자, 후쿠다 수상이 화를 내며 2~3배 대폭 늘리라고 지시한 사례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도 운임이 10% 이상 비싸지 않으면 무조건 우리나라 선박을 이용하라고 박태준 포철 사장에게 지시했다. 선박의 감가상각을 보면 일본은 12년 단기이나 우리나라는 25년으로 되어 있어 폐선시점에 달한 우리선박이 일본선박과 도저히 경쟁할 수 없다. 일본은 LNG선 컨테이너선들을 이자율이 거의 없는 일본금리 보다 더 낮은 금리의 개발금융자금으로 계획조선을 하여 하이어베이스(H/B)가 낮은 일본선박들이 자율상각제도의 이점까지 갖추고 국제시장에 진출하므로 우리선사와 공평한 경쟁이 될 수가 없다. 이런 구조 속에 대량화주들은 원가절감을 내세워 외국선사와 장기수송계약을 체결하거나 해운업 진입을 기도하려는 안타까운 현실에 우리나라 선사들이 직면해 있다. 지난해 이런 사실을 국회 공청회에 나가 호소하여 국회의원 51명의 발의로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입 억제와 국책화물을 계속 우리선사들이 실을 수 있도록 법제화 하였으나 아직도 걱정스러운 점이 많다.

 

일기일회와 법정스님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여 중생들에게 큰 가르침을 준 법정스님이 3월 11일 입적했다. 승려의 죽음을 뜻하는 입적(入寂)은 고계를 떠나 고요와 진리의 세계인 열반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수의도 입히지 말고 작은 대나무 침상에서 입은 옷 그대로 화장하고 사리를 찾으려 재를 뒤적이지 말며, 말빚을 갚으려 하니 자신의 저서를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죽음을 통해 또 다시 가르침을 주었다. 저서 ‘무소유’ ‘오두막 편지’ ‘산방한담’을 통해 물질보다는 정신이 소중함을 일깨워 준 그는 저서처럼 속세의 연을 훌훌 털고 ‘버리고 떠나기’를 행하였다. 시민운동단체 ‘맑고향기롭게’를 만들어 오염된 세상을 정토로 바꾸려던 그의 과업은 이제 남겨진 우리의 몫이 되었다. 요정 대원각을 시주받아 중생을 구제할 포교처 길상사로 바꾼 법정스님은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삶의 바른 길을 제시하였다.


그의 법심을 읽고 싶은 마음에 책방을 더듬어 범문집 ‘일기일회(一期一會)’를 구했다.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번의 인연”을 뜻하는 일기일회. 이렇듯 소중한 시간에 또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연이라면 촌음인들 스쳐가는 사람인들 어찌 가벼이 보낼 수 있으랴! 자연을 사랑하고 주변의 세세한 것까지 마음을 준 그의 마음이 가슴에 남는다.


새벽마다 신문을 배달한 소년을 한번 만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는 얘기도 들린다. 불교는 인연을 중시하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집착과 탐욕을 버리면 번뇌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안을 누린다지만 이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게 인간의 한계이다. 법정스님은 탐욕은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소유하려는 것이라고 설하였다. “세상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근심이 없어 편안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라는 행복론과 “저 강물 위에 맑은 바람과 산중의 밝은 달이여, 귀로 들으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니 빛이 되는구나. 가지고자 해도 말릴 사람이 없고 쓰고자 해도 다할 날이 없으니, 이것이 천지자연의 무진장이로다” 소동파의 적벽부를 인용하며 무심과 무소유를 가르친 그는 ‘자신과 진리에 의지해 꽃을 피우라’ ‘생명 자체가 하나의 기적’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림이다’ ‘용서는 가장 큰 수행’ ‘행복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마음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언젠가 세상에 없을 그대에게’와 같은 주옥 같고 차꽃 같은 마음을 우리에게 심어 주었다. 틱낫한 스님은 “그대가 시인이라면 종이 안에 떠다니는 구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비가 되고 비가 나무를 자라게 하고 나무가 종이를 만든다. 그러므로 구름은 종이에게 소중한 것이다”라며 자연의 무엇 하나 그냥 있는 것이 없고 관계와 인연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불교의 본질은 자비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이 친절이라던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사랑과 친절의 세상을 그려본다.

 

해사문제연구소 39주년, 그리고 100년후
한국해사문제연구소가 4월 1일로 창립 39주년을 맞았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밀리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국어책에 나오는 용비어천가가 생각난다. 해를 더할수록 뿌리가 깊어지고 샘이 깊어져 큰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긴 가뭄에도 마르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리라 다짐해 본다. 좋은 열매와 시원한 물로 독자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정진하여 내실을 다질 것이다. 마라톤 선수가 긴 호흡으로 완주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달려 나가는 것처럼. 100년 후의 해사문제연구소의 모습을 그리면서......


21세기의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리는 조지 프리드먼의 ‘100년후’. ‘21세기를 지배하는 태양의 제국시대가 온다’는 부제를 보며 순간 만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1차와 2차 세계대전의 전사 부문이 매우 인상깊고 실감나서 계속 읽어나갔다. 정치, 경제, 외교부문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스트랫퍼의 CEO답게 그는 향후 100년의 세계사를 써 나갔다. 미국을 대체할 슈퍼파워인 중국은 2020년 내재적인 문제로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러시아도 초강국으로 재등장하지만 이내 몰락하고 일본과 터키 폴란드 같은 나라가 신흥강국으로 등장한다.


한국은 2030년에 통일을 하지만 일본의 팽창으로 인해 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랍권을 통일하고 유럽으로 진출하려는 터키는 아시아의 맹주가 되려는 일본과 동맹을 맺고 동구와 러시아 일부를 차지한 폴란드와 이를 돕는 미국을 상대로 2050년 11월 24일 추수감사절 휴가때 일본이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한다. 이른바 3차 세계대전이다. 이때에 주로 배틀스타라는 우주전쟁이 벌어지는데, 동맹국은 우주와 해로를 장악한 미국의 군사정보력을 감당하지 못해 미국의 승리로 끝나고 2060년 팍스아메리카나가 다시 시작된다. 그후 2080년 미국은 이웃나라 멕시코의 도전을 받게 되고 멕시코가 미국을 이어 받을 나라로 부상하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이 책은 작가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한껏 동원한 지어낸 얘기에 불과하겠지만, 과거사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예측이 매우 구체적이고 전략적이어서 실제상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로마시대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얘기를 끝낸다. “우리가 출생하기 전, 즉 우리 앞의 영원한 시간인 과거의 시대가 어째서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인지 생각해보라. 과거야말로 우리가 죽고 난 다음 자연이 미래에 속하는 우리를 지켜보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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