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종 관연구위원/연구부장해양물류연구부한국해양수산개발원
임 종 관연구위원/연구부장해양물류연구부한국해양수산개발원
1993년 세계 컨테이너물동량은 1억 1,321만 TEU이었다. 이 중 미국항만에서 처리된 컨테이너화물은 1,739만 TEU로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중국 항만에서 처리된 물동량은 278만 TEU에 불과하였다. 미국 물동량의 비중이 15.4%인데 반해 중국 항만물동량의 비중은 2.5%로 매우 낮았다. 그 이후 2007년에는 세계 총 물동량은 4억 8,094만 TEU로 15년 전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이 가운데 미국항만의 물동량은 4,162만 TEU로 늘어난 반면에 중국의 경우엔 항만처리량이 1억 2,855만 TEU로 15년 전에 비해 45배나 증가하였다. 미국의 비중은 1993년의 15.4%에서 8.7%로 낮아졌고, 중국의 비중은 2.5%에서 26.7%로 높아졌다. 미국의 점유비가 1/2 수준으로 추락한 반면 중국의 점유비는 10배 이상으로 비상한 것이다.


사실 항만의 컨테이너화물 처리량에서 미국의 위상과 중국의 위상은 1998년부터 뒤바뀌기 시작하였다. 중국의 점유비가 14.1%로 미국 점유비 13.8%를 추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통계만으로 보면 이미 10년 전부터 세계 컨테이너화물 수송시장이 중국 중심의 시장으로 전환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보면 미국의 위상은 중국 위상의 1/3수준에 불과하다. 통계상의 위상이 이 정도로 뒤바뀌었으면 세계 해운질서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 상식적으로 체감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미국이 국제질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통계적 위상이 정치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통계의 내용에 아직도 미국의 영향력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출액 중 절반은 중국기업이 아닌 외자기업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이다. 그리고 이 외자기업의 대부분은 미국시장에 많은 양을 판매하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많은 해운회사들이 중국 수출 컨테이너화물의 영업을 중국이 아닌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이 외자기업들은 중국에 있는 생산공장을 다른 나라로 옮겨갈 수는 있어도 미국이라는 판매시장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한 미국의 지구촌 리더쉽은 중국에 의해 대체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현재의 세계경제 침체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중국의 소비력에 희망를 걸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의 입김이 갈수록 거세질 것은 분명하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해운업계에서는 이 관계에 대해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정치학계나 경제학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한 지 오래되었다. 세계 정치·경제가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따라 좌우된다는 인식이 오래 전부터 상식화되었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나타내는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가 일반화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3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즉, 양국이 상호 협력하는 관계, 상호 갈등하는 관계, 일방이 상대방을 대체해가는 관계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경제학계에서는 지난 5년 동안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상호 협력하는 좋은 관계였다고 평가하고, 세계경제가 호황을 구가한 것도 차이메리카의 밀월관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은 밀월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우선 미국이 더 이상 중국산 물건의 소비자 노릇만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산 상품을 수입하라는 압력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은 중국 내수시장 개방과 함께 위엔화 절상을 강력히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통상압력은 양국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견해인 것 같다.


차이메리카의 변화로 인해 중국의 문호개방이 확대되고 수입화물이 증가한다면 태평양컨테이너항로의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엔화 절상으로 중국상품의 대미 수출은 다소 주춤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차이메리카 변화를 주시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태평양항로의 서향(west bound) 물동량 증가보다는 약달러의 리스크에 있다. 세계경제의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에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세계경제는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화보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와 대체적인 가치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는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약달러 리스크를 높여가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즉 차이메리카! 우리는 이것이 세계경제의 기본 축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현실을 주시해야 한다. 이 축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고, 새로운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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