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이 최초로 컨테이너화물을 싣고 항해한 것은 1956년 4월 어느 날이었다. 미국 동안의 Newark항을 출발한 유조선이 갑판 위에 적재된 2개의 컨테이너박스를 걸프만의 Houston항까지 수송하였다. 이러한 시험운항이 실시된 후 1년 반 동안의 노력 끝에 역사상 최초의 컨테이너선박이 탄생하게 되었다. 6척의 선대 중 제1호로 건조된  Gateway City호가 1957년 10월 4일 Newark항에서 출발하여 Miami항과 Tampa항을 거쳐 Houston항까지 항해를 하였다. 화물운송의 혁명이라 불리는 컨테이너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컨테이너선박이 역사적 처녀출항을 실시한 이후 어느덧 52년이 흐르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컨테이너선박은 진화를 거듭하여 1만 3,000TEU급으로 대형화되었고, 컨테이너물류시스템은 온 지구를 거미줄처럼 얽어맬 정도로 발전해왔다. 컨테이너물류를 위해 선박, 항만, 내륙물류기지, 창고, 트럭, 철도, 장비 및 기기, 정보통신 등 수많은 분야의 엄청난 자본이 투자되었다. 나아가 수송의 컨테이너화가 제조업과 무역 그리고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은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이 놀라운 물류혁신은 Pan Atlantic Steamship Company의 CEO인 Malcolm McLean의 지혜와 용기로 시작되었다. McLean은 원래 트럭킹회사의 경영자였다. 1934년 한대의 트럭으로 시작한 그는 20년 후 미국 2위의 트럭킹 회사 사장으로 도약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미국 트럭킹시장은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14년에는 미국 전 지역에 등록된 트럭이 10만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1955년에는 등록 트럭이 1,000만대나 되었다. 이처럼 트럭킹시장 내부의 경쟁이 과열되었을 뿐만 아니라 트럭과 철도간의 경쟁도 치열하였다. 반면에 2차 대전 후 국제무역이 활성화되어 항만에서 선박과 트럭간의 환적수요가 크게 증가하였다. 그런데 선박과 트럭간의 환적에 여러 가지 경제적 또는 비경제적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환적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항만적체가 심화되었고, 선박내 하역인력들의 작업안전에도 문제가 많았으며, 임금이 너무 올라 직접 인건비가 총 비용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수익성도 취약하였다.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점은 화물절도가 너무 많아 좀도둑들에 의한 화물손실율이 32%에 달한다는 점이다. 


회사를 미국 2위의 트럭킹업체로 성장시켰던 McLean사장은 트럭킹시장 내부의 과열된 경쟁과 치열해지고 있는 철도와의 경쟁을 모두 극복하기 위해 항만에서 누적되고 있는 하역시스템의 비효율성을 해법의 실마리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즉 항만에서 선박, 트럭, 철도간 연계운송시스템을 일신함으로써 인력과 화물의 안전성, 경제성, 도난방지, 내부경쟁과 외부경쟁 등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찾고자 고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으로 나타난 첫 시도가 트럭을 선박에 적재하는 Ro-Ro 운송체제의 도입이었다. McLean사장은 1954년 자기회사의 트럭을 선박에 적재하여 바다를 항해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천명하였고, 대서양에서 해운업을 영위하던 Love-Land Corporation사를 인수하였다. 다음 해에는 Waterman Steamship Corporation사와 그 자회사인 Pan Atlantic Steamship Company를 인수하였다. 연이은 해운회사 인수합병을 통해 McLean사장은 37척에 달하는 건화물선을 확보하여 미국 최대의 선대를 운항하게 되었다. 선박운송과 트럭운송을 보다 안전하게, 보다 신속하게 결합하면서 도난까지 방지할 수 있는 Ro-Ro시스템을 과감하게 시도한 것이다. 


McLean사장은 Ro-Ro시스템 도입에 만족하지 않았다. 연계운송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보다 더 높이기 위해 화물운송의 컨테이너화를 추진한 것이다. 1955년 봄 컨테이너박스 제작에 성공하자 곧바로 선적 및 하역시스템과 운송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컨테이너박스를 개발했던 엔지니어 Keith Tantlinger를 Pan Atlantic Steamship Company의 부사장으로 영입하였으며, 기술팀과 조사팀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1년 만에 컨테이너화물의 해상운송 시험에 성공하였고, 2년 6개월만에 컨테이너선박을 운항시킨 것이다.


이상과 같은 McLean사장의 위기극복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 요즈음 역사적 불황을 겪고 있는 우리 해운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우선 McLean사장은 불황의 위기에 신규사업투자라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대응하였으며, 40년간 누적된 트럭킹시장의 어려움을 업종 밖의 외부기회와 결합시켜 해결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트럭운송시장, 철도운송시장, 해상운송시장의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꿰뚫는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McLean사장의 진가는 이러한 통찰력에만 그치지 않는다. 당시로서는 어느 법규정에도 없는 그래서 관행상 누구도 지지할 수 없는 즉, 법률측면, 상업측면, 인프라측면, 인력측면 등 모든 여건이 불비한 상황에서 과감하게 혁신을 추구하는 그 용기야말로 McLean사장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의 40여 년 동안 미국 트럭킹시장에 누적되었던 어려움이 컨테이너화라는 물류혁신을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20세기 후반의 50여 년 동안 세계 해운시장에 누적되어온 성장통 역시 또 다른 물류혁신을 잉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해운업계에도 반세기 전 McLean사장처럼 경영자들의 혁신용기와 지혜가 절실히 기대되고 있다.

 

임  종  관 연구위원/연구부장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물류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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