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박공장시대’가 온다 -

 

모두가 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치는 세계적 식품으로 발전하고 있다.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어느 나라에서나 김치를 맛볼 수 있다. 만약 김치가 지구촌 식생활의 기본메뉴로 발전하게 되면 김치를 만들어 유통시키는 김치물류는 상당한 규모의 비즈니스로 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구촌 김치물류에서 선박은 어떻게 대응하게 될까? 해운회사들은 김치물류시대에 어떤 선박을 운항하게 될까? 해운회사 사장이나 회장이 이 질문을 받는다면 의아해할 것이다. “이미 수출입되는 김치를 컨테이너선박으로 수송하고 있는데 그 무슨 질문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나올 이러한 반문은 우리 모두가 수송수단으로써 선박의 기능에 대해  의심하거나 무너뜨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사이래 선박의 수송기능은 별다른 의심 없이 이용되어 왔다. 그리고 바다위에서 이동하는 선박의 안전성과 신속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왔다. 아울러 선박의 대형화로 인해 수송능력 역시 놀라울 정도로 확충되었다. 50만 톤이 넘는 유조선이나, 40만 톤이 넘는 광석선, 1만 3,000TEU가 넘는 컨테이너선이 상식화되고 있다.


이렇게 활용되어 온 선박의 수송기능을 무너뜨려본다면 김치물류시대에 선박의 개념은 2단계의 혁신을 거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단계로는 김치냉장고 선박을 상상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인천, 광양, 부산 등지에서 김치를 선적하여 대만, 홍콩, 동남아를 거쳐 중동과 유럽으로 이동하는 1만 TEU급 컨테이너선박은 출항이후 컨테이너안에 있는 김치를 숙성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첫 번째 기항지인 기륭에서 하역되는 김치는 대만사람들의 식성에 맞게 숙성되어 있을 것이다. 홍콩에서도 홍콩인들의 식성에 맞게 숙성된 김치가 하역된다. 싱가포르, 방콕, 두바이, 제노아, 엔뜨워프, 로테르담, 함부르크, 런던 등에서도 각각의 현지인들 입맛을 충족시키는 김치가 하역된다. 같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입맛이 다르기 때문에 숙성의 정도가 다른 김치들이 하역된다.


이렇게 되면 ‘화물을 선적된 그대로 변하지 않게 이동시킨다’는 선박의 ‘수송기능’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한다. 선적된 김치를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라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른 입맛에 맞게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송수단이었던 선박’이 ‘물류수단인 선박’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즉, ‘해상운송시대’가 ‘해상물류시대’로 바뀌고, 선박은 물류센타로 변하게 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김치냉장고선박이 김치공장선박으로 변신할 수 있다. 배추, 무, 고추, 마늘 등 김치제조에 필요한 모든 식재료를 선박에 선적하여, 운항하는 선박 안에서 김치를 제조하는 것이다. 선박안에서 나라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게 선호되는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제조하여 다양한 정도로 숙성시켜 판매하게 된다. 선박은 수송수단에서 물류수단을 거쳐 제조수단으로 변하는 혁신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해상운송시대는 해상물류시대를 거쳐 해상공장시대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제 원유를 수송하는 유조선은 정유공장으로, 자동차수송선박은 자동차조립공장으로 바뀔 수도 있다.


현재의 해운회사 경영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운회사들간의 경쟁상황이 한계상황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볼 때 경쟁력의 혁신이 추구될 동기는 충분하다. 아울러 수송수단으로써의 선박에는 비효율이 너무 크기 때문에 혁신의 경제성도 충분하다. 예를 들어 신조선가가 1억 5,000만 달러인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이 철광석을 싣고 브라질에서 극동으로 이동하는 경우, 약 40여일 동안 2,000억원의 자본과 15명 정도의 고급인력에 낭비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막대한 가격의 철광석이 가공되지 않은 채 40여일을 놀게 된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상품가공 측면에서 볼 때 수송기간 40여일은 정지된 시간이나 다름없다.


수송수단으로써 선박이 인류역사 발전에 미친 영향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지구상의 대도시 대부분이 내륙이 아닌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 대표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모든 구석이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선박의 수송기능은 너무나 진부한 것이다. 이제 선박의 개념에 혁신이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 이 혁신에 막대한 부가가치가 내재될 것이다.

 

 

 

 

 

 

 

 

 

 

 

                                                                              임  종  관 연구위원/연구부장
해양물류연구부 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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