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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금융기관의 다원화만이 해운의 살길이다
[591호] 2022년 12월 01일 (목) 15:30:30 한종길 komares@chol.com
   
한종길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
연합회 회장

한진해운 파탄으로 나락을 경험했던 우리해운은 예상치 못한 해운호황으로 인하여 과거 20년간의 설움과 오명을 한꺼번에 씻어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해운업은 1년에서 2년에 걸친 짧은 호황과 10년 이상의 긴 불황으로 대표되는 사이클 산업이다.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HMM에만 주목하는 일부 정치권이나 매스컴과는 달리 이미 해운경기는 급속하게 냉각되고 한국해운이 얻은 성과에 비하여 비교가 안될 정도의 고수익을 달성한 경쟁자들은 불황기를 대비하여 새로운 투자와 경쟁자 축출에 여념이 없다.


시계를 2010년으로 되돌려 보자. 2010년 초반 일시적인 해운 경기회복을 호황으로 착각한 금융당국의 정책적 오판으로 우리 금융당국과 해운업계는 글로벌 해운계와 화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끼쳤다. 당시 금융당국은 신조선을 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부채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해운산업계의 특성을 무시하고 부채비율 200%라는 규정을 강제적용하면서, 해운업계가 불황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발판이 될 캐시카우(Cash Cow) 사업부문인 LNG수송이나 발전원료 장기수송계약을 투기성 펀드에 넘기게 만들었다. 또 선사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의 거점 역할을 하는 항만 터미널,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륙관문항인 LA항만의 터미널조차도 외국 경쟁사에 매각하게 만들었다.

조선업 살리기에 집중한 정책당국은 해당정책의 실현 결과가 연관산업인 해운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좁게는 국내 해운업계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에 대해 검토도 한번 해보지 않고 글로벌 해운사에 막대한 신용공여를 해가면서 글로벌 선사의 대형화를 지원하였다. 그 결과가 우리나라 글로벌 선사의 파탄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해운기업이 파탄지경에 이르자 금융당국의 지도를 받는 국내 금융기관들은 일제히 해운업계 때리기에 집중하였고 그 결과가 한진해운 파탄이다. 한진해운 파탄 당시 금융경색에 처한 해운사는 금융기관의 투자 확대가 절실하였지만 민간금융기관은 해운산업을 위험관리업종으로 구분하여 일제히 신용제공을 거부하였다. 이때 큰 역할을 수행한 기관이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 해운구조조정기금이다. 캠코는 해운산업 위기시에 160척, 약 2.3조원 규모 유동성 공급을 공급하여 해운 위기극복에 기여하였다.

그때 우리가 얻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해운계에 적절한 신용을 공급해줄 국책금융기관이 복수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바구니에 계란을 모두 담지 말라’는 격언과 같이 특정 기관이 단독으로 하기 어려운 해운계에 대한 신용공급을 공동으로 하게 되면 그만큼 위기에 신속한 대처도 가능해지고 글로벌 신용도도 높아진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그리고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와 캠코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기관설립목적에 따라 상호보완적으로 해운업에서 필요로 하는 정책금융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수출입은행은 선박수출이라는 기능에 집중하여 국내 해운기업에 대한 금융지원과는 거리가 있고, 산업은행도 해진공이 설립된 이후로 HMM 매각을 비롯한 탈해운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해진공과 캠코이다. 전자가 시장기능을 담당하며 해운업 전반 유동성 공급을, 후자인 캠코가 시장실패 보완 기능을 담당하여 경영정상화를 도모하는 해운사에 집중지원을 수행하여 글로벌 해운시장 내 국내 해운사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향후 제2의 해운위기 발생 시 신속하고 적기에 정책자금 집행을 위해 해진공과 함께 캠코를 비롯한 정책금융기관의 해운업 지원기능을 유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최근 일각에서 선박금융과관련된 정책금융을 특정기관으로 단일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우려할 수밖에 없다. 단일금융기관이 시장 기능 및 시장실패 보완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경우, 위기발생 시 정부의 신속한 대응력이 저하되면서 이른바 회생을 위한 골든타임이 소멸될 우려가 있다. 현재의 금리상승 기조 하에 글로벌 해운호황이 끝나면서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 해운사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경로 확보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따라서 경기 변동성이 큰 해운업 특성을 고려하여 정책금융기관 간 기능 분담을 통해 리스크의 분산 및 지속적·안정적 자금공급을 유지하는 것이 절실하다.


 해운업의 화려한 여름 축제는 이제 막을 내리고 힘든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이야말로 해운과 관련된 정책금융 채널을 단일화하기보다는 다양화하는 것이 우선과제이다. 해운정책금융기관을 단일화해버리면, 사업간 연관성이 커서 해운시장 불황시 연속적인 손실 전이의 가능성이 높고, 해운업에 대한 금융지원의 마중물 역할로 민간 금융시장 활성화를 견인한다는 차원에서도 해진공과 캠코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책금융기관과 함께 민간금융기관이 해운업에 관여하도록 해운정책기관의 세심한 정책수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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