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콤파스를 열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낸다. 아쉬움 속에 새해를 기약하며, 반가운 만남을 내년으로 미룬다.
경제위기 ‘R의 공포가 온다’는 김효신이 쓴 책이다. R은 Recession 즉, 경기침체다. 여기서 R을 공포의 대상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과연 저자는 어떤 해법이 있을까? 김효신은 민간연구소장을 하다가 공무원이 되어 재경부, 한국은행을 거쳐 현재 금융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금융전문가다. 그는 우리나라에 발생했던 8번의 경제위기와 7번의 금융위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고, 향후 경제위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리고 “경제위기와 침체는 경기순환주기에 따른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므로, 이를 교훈 삼아 불합리한 제도와 비효율적인 부분을 개선하고 위기관리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답했다.


경기후퇴 리세션은 경제위기로 전이되기 직전에 나타나는 침체 현상이다. 이러한 경기둔화는 경기후퇴에서 하강 국면으로 들어서는 단계에 나타나는데, 경기후퇴가 불황보다 완만하고 골짜기가 옅은 현상이라면, 리세션은 경제활동의 축소과정이 진행되어 광범위한 불황을 예고하는 전조현상이다. 주기상 경기후퇴가 반복될 때 경제위기 징후를 보이는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따라서 회색지대가 나타나기 전에 경제위기를 관리하여 발생 가능한 리스크를 찾아 분석 평가하고 상응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경제위기 가능성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경제위기 상황이 전이되어 가계부채 폭발, 부동산 폭락과 함께 주변국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IMF 환란 수준의 위기를 맞이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유가 및 원자재 상승 등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서 경제침체를 맞는 경우다. 그리고 셋째는 긴축과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안정되며 경기가 서서히 회복하는 경우를 말한다.

 

경제위기란 무엇인가
경제위기는 기업이나 은행의 파산이 이어지고, 물가와 금리, 환율 등 경제지표가 급변하여 경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생산감소와 실업이 증가하여 경제가 급격히 악화하는 상황을 말한다. 경제위기는 경제주체의 어려움과 고통을 수반해 부정적이지만, 한 나라 경제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기회가 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실제로 경제위기는 시스템상의 문제를 확인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 경제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경제위기는 경기후퇴 전조현상을 신호로 점차 위기상황으로 진입하는데, 이를 촉발하는 원인은 전쟁, 지진, 전염병, 타국가 전이 등 외부요인과 거품형성, 수익률 저하, 재무구조 취약, 유동성 부족, 정책오류 등이다. 경제위기는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변동 과정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거나 실물과 금융부문의 불균형으로 화폐이자율과 실물금리의 차이가 심할 때도 생기지만, 경제주체의 판단착오 내지 부정확한 예측과 함께 이윤저하로도 경제위기가 나타난다. 화폐이자보다 실물금리가 높으면 돈이 잘 돌지 않아 신용경색이 일어나고, 예금을 현금으로 지급해주는 은행에 대한 신뢰가 깨져도 경제위기로 전이된다. 그렇게 되면 예금인출 사태(bank run)가 터지고 해당 금융회사만이 아닌 다른 금융기관까지 급속히 확산하여 금융시장 전체가 신용경색에 직면하게 된다. 인간의 집단적 속성은 경제위기의 파장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시장분위기에 의해 집단행동을 하면 경제위기가 유발될 수 있다. 또한 경제주체 간의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역선택이나 행위은폐로 생기는 도덕적 해이도 구조적 비효율이 생겨 경제위기의 원인이 된다.


사업규모가 손익분기점 이상이 되면 지렛대 효과로 인해 자기자본율이 높아지므로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차입자는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차입을 확대한다. 극단적 경우에는 차입금으로 부채의 원금이나 이자를 갚는 폰지 게임 형태도 띤다. 이렇게 되면 자산가격의 거품이 커져 개인과 기업은 결국 붕괴하게 된다. 또한 개인과 기업, 금융회사의 자산과 부채의 유동성 구조가 일치하지 않을 때도 경제위기로 전이되곤 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이 외국의 단기자금을 빌려와 국내 기업에 장기대출하여 많은 이익을 남겼다. 그러나 그 후 외국자본이 일시 상환을 요구하자 기간불일치 문제가 발생하여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재정적자도 경제 전반에 비효율이 발생하여 경제위기로 전이된다. 환율은 한 나라의 경제 기초체질을 반영하는데, 실제 수준과 차이가 있을 때 투기세력의 공격목표가 되기 쉽다. 적정 균일 환율과 실제 환율 간의 괴리가 있는 상태에선 단기간의 환율변동으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 공격의 빌미가 되어 결국 먹잇감이 된다. 금융자유화, 외환자유화 등도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기 쉽다. 제도적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 즉, 경직된 경제 상황에서 바로 자유화로 전환하면 급격한 외환자유화로 외국자본이 쉽게 국내에 들어오고 나갈 수 있어 경제위기를 불러온다. 경제위기는 거품의 형성과 붕괴 과정에서 일어나는데, 거품붕괴 과정은 금리인하와 유동성 축소를 거쳐 1~2년쯤 뒤에 온다. 그리고 경기위축의 신호는 주식시장-주택시장-내구재, 공장주문, 기업실적-실업률 순으로 나타난다.

 

경제위기의 역사와 교훈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1997년 IMF 환란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포함하여 8번의 경제위기를 경험했다. 전쟁으로 일어난 1950년 경제위기, 정치적 격변에 의한 1959년 경제위기, 1972년 미국의 경제지배력 약화와 닉슨 쇼크로 발생한 경제위기, 석유파동과 관련된 1980년, 민주화로 급격한 욕구 분출 및 경기위축에 따른 1989년, 급격한 외환자유화와 정책실기로 인한 1997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이된 2008년 위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위기와 현재 진행 중인 경제위기다. 지금까지 경험한 경제위기 상황은 향후 발생할 우리나라 경제위기의 성격을 이해하여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내일의 위기를 대비하는 지혜를 준다. 우리의 경제위기 대책이 적절했는지 살펴본다. 1972년 경제위기 대책으로 실시한 8.3조치는 경기를 살리고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했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는 인정된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이 조치를 통한 대책은 상당한 문제점이 있으며 정책효과도 별로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의 경제위기 성격은 기업재무구조 악화에 따른 기업위기가 원인이므로 위기의 해법을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과 금융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그런데도 기업구조개선 방법으로 부채경감을 사용한 것은 경쟁력이나 생산성 향상과 같은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정부가 기업을 그냥 도와주는 방법이었다. 재무구조 악화의 원인은 기업의 무리한 성장전략과 차입경영이었다. 따라서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면 내실을 다져 생산성 향상 같은 경영개선 성장전략과 이익확보를 통한 투자확대로 차입경영을 억제하는 것이 합당한 조치였다. 당시의 8.3조치는 사채금융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기 위해 사채양성화 차원의 새로운 금융회사 설립이 목적이었다. 1973년부터 기업의 단기자금 공급원 역할을 하는 7개 투자금융회사가 설립됐고, 1970년 후반에는 외국 주주들이 50% 지분을 참여한 6개 종합금융회사가 등장했다. 아울러 생산설비를 장기간 임대해 쓸 수 있는 리스사와 서민 금융회사인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도 설립됐다. 이는 사채 양성화로 제2금융권을 육성하고 금융제도를 확충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의도한 사채거래 금지 효과는 크지 않았다. 그리고 역차별적으로 제2금융권의 금융회사를 육성한 결과 기존 은행들은 수익성 저하와 시장 잠식으로 부실화하여 향후 1997년 IMF 경제위기를 불러오는 계기가 됐다. 경제위기대책도 통화나 조세 및 정부지출 조절을 통한 재정정책으로 성장, 고용, 국제수지 관리를 꾀하는 전통적인 거시 경제정책보다 직접적인 통제에 의존했다. 이러한 국내여신 직접규제 방식은 결국 과잉통화를 막지 못하고 금융회사의 자율경영만 저해했다. 이렇듯 거시경제정책이 확장적으로 운영되자, 중화학공업 분야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이루어졌고, 이는 경기과열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당시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와 경험 부족으로 상호견제와 균형을 통해 자율적으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합리적인 거시경제정책을 운용할 수 없었다. 정부 주도의 압축성장에만 목적이 있었지 실제 압축성장으로 야기되는 문제점을 돌아보고 해결할 만한 여유는 없었던 상황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
1993년 김영삼 정부의 등장과 본격적으로 제시된 세계화정책 추진은 1997년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이 됐다. 1995년 정부는 선진국클럽인 국제협력기구 OECD 가입을 공식 발표했다. 이와 함께 한국정부가 제출한 금융자유화 일정을 미국의 요청으로 앞당기기로 합의했다. 물론 금융자유화는 미국의 주도만이 아닌 국내 경제관료와 경제학자가 주장한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민영화, 시장자유화와 맥을 같이한다. 문제는 세계시장 확대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조달이었다. 특히 부채 상환에 몰려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조달을 해야 했던 재벌들은 금융자유화를 호기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금융자유화 조치가 단행되자 당시 해외에 넘쳐나던 단기자금 석유달러와 월가의 투기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그러자 국내시장은 이내 경기과열과 과잉투자가 빚어졌다. 기업들이 다른 업종에 마구 진출했고, 유망산업이나 연구에 기초한 신산업이 아닌 다른 기업이 선점하여 이익을 내는 분야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비효율과 과잉재고가 축적되어 경제에 큰 짐이 되었다. 그러다가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와 맞물려 외국자본이 급속히 빠져나가자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환율은 급등했다. 게다가 대기업들의 단기부채가 68%에 이르고 이를 방어하는데 사용할 외환보유고는 고갈되자, 일본계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외국 금융회사들이 국내차입 만기상환 연장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침내 정부는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했다. 미 정부가 IMF를 통해 제시한 프로그램은 긴축재정, 고금리 정책 유지, 사회 인프라에 대한 공공지출 삭감, 외환시장 개방, 시장자율금리, 변동환율제, 무역자유화, 외국인 직접투자 자유화, 탈규제, 국가 기간산업의 민영화, 재산권 보호였다. 한국정부는 이를 단순수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강력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제 추가도입 등 추가적인 프로그램을 IMF에 선제적으로 제시했다. IMF 관리체제 아래 추진된 기업, 금융, 공공, 노동부문의 4대 개혁은 국내 경제제도와 구조 전반의 급속한 전환을 강제한 것으로 추후 양극화 문제와 저성장의 단초가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시장 간섭을 최소화하여 정부 규제를 줄이고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 자체에 무한경쟁, 시장원리 준수, 공기업의 민영화, 작은 정부, 이윤추구의 특징을 지녔고, 중앙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지방정부에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여 자유시장경제 중심의 세계화를 지향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양극화 확대, 국가권위의 약화, 비경쟁부문의 쇠퇴 같은 후유증을 낳는다. 그럼에도 당시에 IMF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 중에 현재 선진국 대열에 오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IMF 처방이 비록 월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치였으나 회계기준의 투명화, 기업의 생산성 향상, 노사관계 개선 등의 긍정적 효과로 이어져 우리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는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1933년 대공황시절에 만들어진 글래스 스티걸법은 경제공황의 배경이 된 상업은행의 방만한 경영을 규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예금보험제도 창설, 연방준비제도 강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 분리가 그 골자다. 특히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역할을 엄격히 분리했는데 그 후 새로운 풍조인 신자유주의경제에 의한 규제완화가 시행되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구분 없이 같은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스톡옵션이 유행처럼 번져 직원들이 스톡옵션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투기적으로 운영하는 통에 은행이 부실화하여 천문학적 손실을 기록했다. 더구나 2000년대 인터넷 버블 붕괴와 2001년 9.11테러로 시작된 경제침체는 기존의 확산 분위기를 꺾어놓았다. 경기둔화와 냉각을 극복할 군불이 필요해진 미국이 저금리정책과 주택경기 부양정책을 펼치자, 돈이 마구 풀려 금리가 낮아지고 신용대출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주택모기지 대출이 급증하면서 주택의 투기 열풍이 불었다. 이러한 초저금리정책으로 인한 투자자금은 부동산이나 저당권을 담보로 자산을 유동화하는 자산유동화 상품에 몰렸다. 대표적인 주택저당증권 MBS는 금융회사들이 주택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대가로 이자를 받고 주택에 근저당이 설정된 대출채권을 보유하는 상품이었다. 그리고 MBS와 자산저당증권 ABS를 다시 위험과 수익률을 연계한 각종 파생상품으로 바꾸어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부채담보증권 CDO를 개발하여 수익을 올렸다. 심지어 기존 CDO를 담보로 2차 CDO를 만들어 팔거나 다른 채권이나 파생상품과 섞은 뒤 쪼개 파는 구조화 증권 상품을 내놓기까지 했다.

 

은행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처럼 수익률이 높으나 위험도 높은 상품에 대해 금융당국의 규제를 회피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것이 바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모기지를 증권화하여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유통하고, 이 과정에서 모기지회사들은 대출 재원을 마련하는 식이었다. 사실상, 사상 초유의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은 금융부문의 규제완화와 금리완화 정책이었다. 이로 인해 리먼브라더스 파산을 신호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제위기 대책은 적절했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원인이 다른 나라에 있었기도 하거니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우선 부실자산의 규모가 1997년보다 훨씬 작았고, 둘째 외환보유고 및 대외거래 흑자도 상당히 개선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경험을 살려 외환보유고를 계속 늘려왔고, 미국, 일본, 중국과의 통화스와프도 외환시장 안정에 기여했다. 셋째, 초기 위기대응이 크게 달랐다. 1997년엔 IMF의 조언에 따라 통화와 재정을 매우 긴축적으로 운영했지만, 2008년에는 경기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확장정책을 추진했다. 미국도 과감한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으로 경제활력을 회복하여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2008년 경제위기에는 선진국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우리도 이를 벤치마킹하여 국제공조 아래 추진한 것도 경제회복에 많은 도움이 됐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인플레이션 심화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들어 우리나라 경제는 급속히 위축되었다. 2020년 2분기 국내총생산 GDP 성장률은 전년 분기 대비 감소했으며,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2020년 GDP 성장률은 1998년 이후 최저인 –1.0%를 기록했고, 경제성장률뿐 아니라 고용과 생산, 물가 등 모든 부분에서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나쁜 상황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에 의한 인적, 물적 자본 손실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보다 전염병 확산에 대한 불안 및 경제심리 위축이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경제에 미친 영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민간소비와 기업의 생산 및 투자가 감소하며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행히 2021년 들어 한국경제는 견고한 수출과 소비개선에 힘입어 연 4% 가까이 성장했고, 연간 수출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양적완화에 의해 선진국 위주로 경제가 회복되면서 국내 수출이 회복되었고 이와 맞물려 수입도 중간재와 자본재 위주로 늘어났다. 경기가 코로나 침체에서 서서히 벗어나 회복되면서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급격히 올라 고성장 고물가 흐름이 나타났다. 팬데믹에 따른 저금리, 유동성 공급확대 환경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경제 전반에 자산 버블현상이 나타났다. 국제유가 상승과 공급병목 현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시중에 풀린 유동성과 손실보상금이 생산과 투자보다 부동산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갔다. 또한, 팬데믹 상황이 안정되며 선진국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재개되어 수요가 빠르게 회복되는 가운데 생산과 물류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 병목현상이 나타나면서 각국의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IMF는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약화하고 기저효과도 사라져 경제성장률이 2.5%대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 변이 확산, 공급망 차질, 미중 무역갈등 심화, 정치 불확실성이 커지며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성장이 둔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몰라, 세계 4대 곡물수출국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천연가스 대부분을 공급하는 러시아로 인해 세계경제가 한파를 맞고 있다. 각국의 수요확대 정책은 팬데믹이 유발한 공급장애와 결합하여 이제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했고, 이런 상황은 오래 계속될 조짐이다. 지난 경제위기에는 향후 디플레이션이 걱정됐지만, 지금은 반대로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2022년 세계 중앙은행은 역대급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기 위해 양적축소와 금리인상을 예견한 바 있다. 한편, 긴축이 지나칠 경우, 버블붕괴와 불황으로 전이되지 않을까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유동성 축소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 은행의 재무건전성이 나빠지고 개인부채 문제도 대두되므로 은행은 가계대출을 억제하고 재무건전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시장에 넘쳐나는 유동성은 이익을 좇아가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사례-카드대란, 론스타 사태
금융위기는 금융에서 비롯된 금융 관련 위기상황이다. 우리나라에는 금융위기에 해당하는 위기상황이 일곱 번 있었는데, 그중 네 가지만 소개한다. 첫 번째는 2002년의 카드대란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신자유주의에 기조한 금융규제 완화정책을 시행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신용카드 제도였다. 그런데 카드사들이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카드를 남발하고 과당경쟁을 벌이자, 신용카드 이용액이 급격히 증가했다. 정부도 현금서비스 한도 70만원을 폐지했고, 신용카드 확대를 위해 신용카드 세액공제와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제도를 도입하였다. 심지어 카드사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신용평가 없이 불법적으로 회원을 모집했다. 정부도 내수경기 진작을 통한 경기 회복과 세수확보, 세수 투명화를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카드대란의 주요 원인이 됐다. 특히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가 대란의 불씨를 지폈다. 큰 혼란을 겪은 후 소비를 주도하던 카드 버블이 순식간에 꺼지자 2003년 내내 경제가 어려워졌다. 카드대란은 규제개혁과 정책당국의 오판, 준비 부족, 정부의 관리감독 부재가 만들어낸 종합적 금융위기 상황이었다.


두 번째는 2003년의 론스타 사태였다. 론스타는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미국계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는 수익 극대를 위해 주로 경제적 가치 평가가 쉽지 않은 부동산, 기업 등의 대체자산에 투자한다. 사모펀드는 사모투자펀드, 부동산투자펀드, 헤지펀드로 구분하며, 헤지펀드는 자국뿐만 아니라 홰외기업의 인수 및 기업사냥에도 적극 참여한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이들에게 좋은 시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IMF 구제금융 아래 있었고, 론스타엔 IMF, 세계은행, 월가 자본이 포함되어 있어 그들은 우리나라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훤히 들여다보며 주도하는 상황이었다.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따른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때 외환은행은 부실화하여 합병위기를 맞았으나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긴급지원으로 구조조정에 성공한 상태였으나, 시급했던 외국자본의 투자유치 필요에 따라 2003년 사모펀드 론스타펀드에 매각됐다. 외환은행의 경영정상화 이후 론스타는 외환은행 원매자를 적극 찾았고, 금융그룹 HSBC가 인수 협상에 뛰어들었다.


당시 감사원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면 우리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감독 당국은 불법매각과 관련한 법원판결 전에는 인수를 승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2008년 HSBC는 급격한 국제 금융환경 변화에 따라 그동안 론스타와 진행해온 매각협상을 중단하고 인수협상을 파기했다.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하려던 론스타는 새로운 투자자를 찾기 시작했고, 우리 금융당국의 인수승인 거부 때문에 매각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2010년 론스타는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지분 인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으며, 금융위원회는 이를 승인했다. 론스타는 우리 정부가 외환은행 인수승인을 제때 하지 않아 고가로 매각할 기회를 놓쳤다며, 차액 5조에 대한 배상청구를 국제투자분쟁해결제도(ISDS)에 제기하여 현재 국제소송이 진행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론스타는 배당이익과 지분매각 차익 4조 6,635억원이라는 엄청난 이익을 챙겨 떠났다. 만시지탄이지만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추후 ISDS에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서조항을 넣었다면 이렇게 끌려다니지 않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엔 금산분리 원칙 즉,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과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투자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는 산업자본이 공공성이 짙은 금융을 사익에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인데,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사모펀드로서 산업자본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은행법 제15조1항에 “동일인은 금융회사의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10을 초과하여 금융회사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론스타가 지분을 10% 이상 초과 소유하려면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합법적인 지분 인수가 될 수 있었다. 론스타 사태는 IMF 외환위기 전후의 국제상황 및 월가자본에 대한 인식부족, 신자유주의에 대한 잘못된 환상, 정책당국자의 판단오류 및 책임전가 등이 맞물려 만든 사건이었다.


 
환헤지 키코 사태, 저축은행 사태

셋째는 키코 사태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급격한 환율변동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것이 환헤지 방식 키코인데, 여기에 가입한 많은 중소 수출기업이 큰 손실을 보았다. 당시는 9.11테러와 리먼 사태로 인해 달러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던 시기여서 수출기업들은 환율변동에 따라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07년부터 환율이 급격히 하락하자 중소기업들은 너도나도 키코에 가입했다. 키코(KIKO)는 상한선 knock-in과 하한선 knock-out의 약자로 상한선 옵션과 하한선 옵션 여러 개를 조합하여 한 번에 거래하는 파생상품이다. 키코상품은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미리 정한 환율에 안정적으로 달러를 팔 수 있지만, 환율이 한 번이라도 상한선 위로 올라가면 기업은 계약금액 두 배 이상의 달러를 약정환율에 팔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로 갑자기 환율이 상한선 이상으로 오르자 키코 가입자들은 오른 달러를 약정환율에 매입하여 은행에 팔아야 해서 큰 손실이 발생했다. 즉, 급격히 오른 환율로 계약금액의 2배가 넘는 외화를 마련하여 약정환율로 은행에 팔아 엄청난 손실이 발생했는데, 최종 피해는 723개 기업의 3조 3,000억원에 달했다. 그 후 피해기업들의 기나긴 소송 끝에 기업들은 일부 인용판결을 받았으나, 2013년 대법원은 “키코는 환헤지 목적의 정상상품이며, 은행이 상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경우 피해 책임은 원칙적으로 가입자가 져야 하며, 키코는 불공정거래 행위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키코 사태가 발생한 지 11년 만에 금융감독원은 판매은행에 대해 불완전판매를 인정하고 손해액의 15~41%를 배상하도록 권고했다. 당시 은행들이 수출액을 초과하는 과도한 규모의 환헤지를 권유하면서 향후 예상되는 위험성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아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통화옵션은 미래의 특정 시점에 특정 통화를 미리 약정한 가격으로 매입 또는 매도할 수 있는 권리로, 매입권리인 콜옵션과 매도할 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이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선 파생상품을 원본을 초과하는 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융투자상품이라 정의하는데, 선물거래 또는 선도거래, 옵션거래, 스와프의 3가지 유형이 있다. 이처럼 장외 파생상품은 은행조차 난해한 상품인데, 과연 수출업자에게 키코상품을 제대로 설명했겠느냐는 의문도 든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의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로만 끝나, 은행은 빠지고 키코 거래를 한 수출 중소기업만 모든 책임을 졌다.


넷째, 수많은 예금자를 애태우게 한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우리 금융시장에 긴 파장을 남겼다. 저축은행의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국내에 자본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계나 일수 같은 사금융이 유행했다. 사금융은 지하금융이라는 허점을 이용하여 탈세, 고이자 등 많은 폐단을 낳았는데, 정부는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상호신용금고라는 제2금융권을 만들어 이들을 제도권으로 흡수하였다. 그런데 상호저축은행은 개인 소유의 금융회사로 소유주가 사금고처럼 편법대출을 자행하는 등 부실화가 가속됐다. 이에 정부는 2006년 88클럽 저축은행제도를 도입하여 자기자본 BIS 8% 이하, 여신비율 8% 이하의 저축은행에 개인의 여신한도를 3억원에서 5억원으로 증액하고, 법인의 여신한도 80억원도 면제했다. 나아가 규제완화와 상호저축은행 발전을 명분으로 이름을 저축은행으로 바꾸도록 허용하자, 88클럽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저축은행들은 시중은행과 경쟁하듯 고위험 투자인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PF에 대거 참여했다. 과도한 PF 대출은 저축은행의 부실화를 불러와 2011년 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사태로 귀결되었다. 저축은행 사태는 과도한 PF 대출, 부동산경기 침체로 인한 재무건전성 악화와 금융당국의 감독 부실, 고위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등 복합적 요소들이 결합하여 발생했다. 이와 유사한 저축은행 사태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여 미국도 1980년대 후반에 저축대부조합 부실로 어려움을 겪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규제 완화로 저축대부조합을 은행화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개인착복, 편법대출, 정치자금 제공으로 부실화하여 747개 저축대부조합이 도산하고 미국 GDP의 6%에 달하는 3,234억달러가 날아갔다. 저축은행 사태를 살펴보면, 금융회사 임직원들은 고객의 이익이나 사회적 책임보다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어쩔 수 없겠으나, 규제완화로 인해 이것이 더욱 심해졌다. 따라서 감독당국의 노력이 더욱 요청되고, 시장 참여자들도 위법과 부당한 영업행위를 상호 감시하여 시장규율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위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최근의 경제위기 대응전략은 사후 대책에서 사전대책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위기 요인을 미리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인 예방적 리스크 관리이기 때문이다. 경제주체가 사전에 리스크를 관리하면 경제위기 발생 가능성이 작아지고, 실제 위기상황에 처해도 쉽게 극복할 수 있거니와 경제회복기에 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정부의 경제위기 사후 대책으로는 시간벌기, 지급연기, 지급유예 선언, 시장폐쇄, 지급준비제도, 가격변동 폭 제한, 예금보험, 유동성 공급 등이 있다. 이와 함께 경기확장시 과다지출로 거품이 형성되지 않도록 유동성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적으로 시행했던 유동성 확대가 경제회복에 유효했던 것은 사실이나, 지나친 유동성 공급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여 글로벌 경제에 큰 짐이 되고 있다. 요즘 세계 각국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유동성 축소와 기준금리 인상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과 유동성 축소가 과도하면 경제주체가 투매하는 군집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일시에 몰리는 뱅크런 같은 예금인출과 상환요구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기간불일치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통화스와프 확대로 외환부족에 대비하고, 중앙은행간 통화환매거래인 미 연준 레포창구를 통해 국채담보 달러를 확보하며, IMF 특별인출권 SDR 국가 가입도 서둘러야 한다. 아울러 정책당국의 경제위기관리 점검, 회계의 투명성 및 공개성 강화, 경제체질도 필요하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근본적인 체질 강화를 위해 교육투자, R&D 투자, 신성장산업 발굴 및 지원, 양극화 해소 등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온 국민을 비탄에 빠트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절규와 탄식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다사다난했던 2022년이 저물어간다. 지켜주지 못한 후회와 자책, 번민, 악몽 같은 기억은 잊고, 내일의 태양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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