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IMO)는 5월 11일 홍콩외교회의에서 ‘안전하고 환경친화적 선박재활용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afe and Environmentally Sound Recycling of Ships ; 이하 ‘선박재활용협약’)을 채택할 예정이다. 채택 후 2-4년 안에 발효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협약은 선박의 건조단계에서부터 해체될 때까지 일생동안 선체 또는 선내공간에 축적되는 유해물질을 완벽하게 통제·관리하기 위해 제정되고 있다.

 

  이 협약 초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조선소는 선박을 건조할 때 석면, 폴리염화비닐, 오존파괴물질(염화불화탄소, 할론 등), 유기주석화합물질(트리뷰틸주석류 등) 등과 같은 환경 및 인체 유해물질의 목록(유해물질의 종류, 질량, 분포도면 등)을 작성하여 해운회사에 선박과 함께 인도하여야 한다.

 

해운회사는 넘겨받은 이 목록을 잘 유지·관리해야 하고, 선박수리 또는 개조시 변경되는 내용을 반영하여 새로운 유해물질목록을 작성하여 국제증명서를 취득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승무원들의 선상생활을 통해 축적되는 유해물질목록도 작성하여 관리해야 한다. 아울러 선박재활용사업자(선박해체사업자)는 이 목록의 유해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한 후 해체작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해체작업과정에서 해양을 오염시키거나 인명이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설과 인력에 대한 인증을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선박해체작업 계획서를 선주와 함께 작성하여 감독기관의 승인을 받고, 해체작업이 완료되면 완료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선박재활용협약은 해운분야의 새로운 환경패러다임을 조성할 것이다. 이 협약의 유해물질목록 작성 및 관리에 만전을 기하지 않는 선사는 3-4년 후 해운시장에서 뜻하지 않는 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해물질목록의 국제증명서를 소지하지 않은 선박은 항만 입출항시 집중적인 감시와 조사를 받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운항스케줄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다. 설혹 유해물질목록증명서를 소지하더라도 승무원이 유해물질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면 항만의 전문적인 검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그 결과 약속된 시간에 화물을 화주에게 인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유해물질증명서가 없는 선박은 화주들로부터 기피대상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선박은 중고선 매매시장이나 용대선시장에서도 기피당할 수 있다. 그리고 선령이 오래된 노후선박을 선주가 해체업자에게 매각하려해도 해체업자가 선박인수를 거부할 것이다. 결국 유해물질목록국제증명서가 없는 선박은 해운시장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선박재활용협약이 발효된 후 건조되는 신조선은 모두 유해물질목록과 함께 해운회사에 인도되어야 한다. 조선소는 기자재 및 부품업체들로부터 유해물질목록을 제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유해물질목록관련 스트레스가 적을 수 있다. 그러나 해운회사들은 이 유해물질목록의 작성 및 관리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해운회사는 협약발효 이전에 완공되어 운항 중인 기존선박의 유해물질목록을 협약발효 5년 이내에 작성해야 하는데 이 오래된 선박의 기자재 또는 부품업체들로부터 유해물질목록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해운회사가 직접 기존 선박의 유해물질목록을 작성하게 될 것인데 이 작성과정에서 전문검사원들의 확인을 받는데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전문검사인력이 충분히 양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여건을 감안할 때 전 세계적으로 6만 여척에 달하는 선박의 유해물질목록을 5년 내에 작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와 같이 유해물질목록증명서가 없는 선박은 화물운송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5년이라는 준비기간이 끝나기 전부터 선박매매시장이나 용대선시장에서는 유해물질목록증명서를 소지한 선박만 찾게 될 것이다. 따라서 기존선박의 유해물질목록을 작성해야 하는 해운회사의 과업은 협약발효 5년 후의 일이 아니라 협약이 채택되는 순간부터 눈앞의 현안이 될 것이다. 현재 이 순간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있는 선박도 협약발효 후엔 기존선박이 된다. 따라서 훗날 어렵게 유해물질목록을 작성하기 보다는 지금 건조과정에서 유해물질목록이 작성될 수 있도록 조선소에 요청해야 한다. 단순히 훗날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화주나 용대선시장 또는 매매시장에서 선호되는 선박을 만들기 위해서도 유해물질목록작성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IMO가 제정할 선박재활용협약은 선박관련분야에서 새로운 환경패러다임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해운회사는 그 파급효과를 무시해서는 안되며, 대비책이 늦어지거나 소홀해서도 안된다. 장기대선으로 나갔던 선박이 어느 날 갑자기 되돌아올 수 있고, 이러한 선박이 많은 회사는 특별한 사고나 잘못도 없이 화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선박재활용협약은 선박관리부서의 기술적 검토사항이 아니라 경영진의 전략적 대응대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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