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조선사 옥석 더 가려서 전폭 지원해야”

선박금융 축 이동, 단번에 이룰 수 있는 문제 아니다 
조선사-금융권 상생 필수조건=‘양보의 미덕’

 

“조선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명백한 판단과 그에 대한 정보를 주채권은행에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 금융사 역시 시황이 조금 어려워졌다고 해서 조선사를 도매급으로 넘겨서는 안된다.”


한국기업을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한국기업평가의 정상훈 기업본부 평가3실 팀장은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고 한국조선산업이 롱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조선사-금융사간 ‘양보의 미덕’을 꼽았다. 이는 조선사는 조선사대로, 금융사는 금융사대로 지원과 유보를 두고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지금, 각각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서로 맞지 않는 이치를 내세우는 곳은 없다. 하지만 그 갭을 좁히지 않으면 공멸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한국기업평가는 전문적인 분석기법을 통해 한국기업의 신용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곳. 그 중에서도 조선과 운송부문의 기업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정상훈 팀장에게서 이번 위기 속 조선사들의 조정된 위상과 객관적 평가에서 접근한 ‘위기 타개법’을 들어 보았다.

 

■ 최근의 시장상황이 조선업계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은?
“신용등급을 판단하는 기준은 회사의 채무상환 능력을 보는 것이다. 여기서 채무상환 능력이라 함은 채무에 대응되는 것, 자산이든 영업이익이든 이를 기준으로 채무를 얼마만큼 상환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 주된 미션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지금의 시장상황은 조선사의 신용등급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첫 번째 요인으로 신규수주가 전무한 상태를 들 수 있다. 사실상 대형사는 작년 하반기부터, 중소형사는 이보다 이른 작년 초부터 신규수주가 없는 상황이다. 내년 말 혹은 내후년 초의 조업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조선사의 매출액은 떨어지는 반면, 고정비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신규수주분 제로, 매출액↓고정비부담↑결과 초래
막힌 선수금과 매출채권 상승으로 운전자금 부담도

 

수주에서 인도까지 2~3년 정도의 타임 갭이 존재하는 조선시장의 특성상, 2년 뒤 예측되는 상황이 이렇다지만 그 사이 우려되는 부분은 또 있다. 바로 운영자금에 대한 부담인데, 이 양상은 이미 발생하고 있다. 발주당시 선주사들이나 발주사들이 은행권들로부터 조달받기로 한 자금이, 금융권 자체가 유동성 위기에 휘말리면서 유입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조선사에게 원활한 공정을 위해 제때에 들어와야 할 공정선수금이 막히는 것과 완성된 배의 인도지연을 요구하는 상황이 빚어지면서 매출채권이 늘어나는, 두가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자금이 제대로 유입되지 않음으로써 조선사는 이를 메우기 위해 기존에 벌어 놓은 자금을 축내든지 외부차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 그나마도 후발조선사들의 외부차입은 신용등급에 발이 묶여 일반시장에서 조달하는 것은 힘들고 오로지 주거래은행에 의지해 운전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규수주가뭄 속 외부차입금 상승, 부메랑될 수도
올내년-현금흐름 압박, 후년 이후-실질지표 악화 우려 전망

 

결론적으로 대형사든 중소형사든 지금의 시장상황은 각사의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친다. 모든 조선사들이 올해와 내년에는 기수주분 건조를 통한 어느 정도의 매출액과 손익활동은 기대할 수 있겠지만 현금흐름에는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이슈이다. 그 이후에는 수주잔고의 소진으로 인해 재무제표의 실질지표가 악화될 것이다. 특히 당장 신규수주가 발생하지 않는 가운데 진행되는 현금흐름 압박은 악순환 구조 요인으로 작용해 외부차입금이 오르면 오를수록 조선사의 재무구조 즉 재무안정성에 악영향을 주고, 이는 결국 상승하는 채무에 반한 손익활동의 악화로 다시 현금흐름을 어렵게 할 것이다.”

 

■ 중소조선사들의 경우 시설투자가 아직 진행형인 곳이 많다. 이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또한 자본집약적 산업에 속하는 만큼 對중소조선사 투자은행 자체에 대한 유동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제기되고 있는데.  
“재무제표만으로 운영상황을 평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다만 자기 도크 이상의 배를 받아 놓은 조선사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맞다. 나빠진 시황은 선수금의 유입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은행으로부터의 대출도 순조롭지 못하게 하고 있다. 지속적인 시설투자가 전제되어야 수주선박 전량을 건조할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한 상황은 결국 조선사 결점에 의한 계약 불이행으로 패널티를 물게 되고 이런 흐름은 조선사의 존립자체를 결정해야하는 요건이 되고 있다. 반대로 금융사 입장에서는 조선시장에 대한 시황이 나빠진 만큼, 조선사에 대한 투자접근을 보수적인 성향으로 틀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은행들이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된다’ 싶은 조선사는 적극적으로 밀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사의 어정쩡한 자세는 오히려 금융사와 조선사 모두를 이도 저도 아닌 꼴로 몰고 갈 수 있다. 때문에 옥석을 가리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 일전에 내놓은 ‘조선산업 Credit Issue' 보고서에서 해외 현지법인도 중요한 체크포인트라고 주장한 것이 주목된다. 이에 대해 설명한다면.
“신규위주의 현지법인을 가지고 있는 조선사들이 그 대상이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국내 조선사는 3사로 대우조선해양(루마니아 소재 망갈리아 조선소)과 한진중공업(필리핀 소재 수빅조선소), STX조선(대련조선해양 Complex) 등. 이들 현지법인의 영업흑자 전환여부와 건조일정 준수 여부, 향후 투자부담 여부 등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망갈리아 조선소의 신규선박 건조를 2005년 개시해 올해까지 5년여를 이끌고 있는데 아직까지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STX조선의 경우는 조선소뿐만 아니라 연관산업을 아우르는 복합단지를 중국에 조성 중인데 이의 유기적 순환을 도모해야 하는 절대적 이슈를 안고 있다. 특히 STX의 콤플렉스 단지는 아직 조성중이라는 점에서 유기적 순환을 위한 투자를 좀 더 해야 한다면 그만큼의 투자비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인 만큼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각 사의 상황이 조금씩 다르지만 어찌됐든 3사의 현지법인 모두 탑 플레이어로 성장하지 못한 현 상황에서 이번 위기를 맞은 것은 본사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신규발주 시장이 살아나지 않고 이대로 1년 정도 유지된다면.
“무차별적으로 힘들어 질 것이다. 단 대형사들은 그룹을 끼고 있기 때문에 상호 완충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우선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현대계열 조선 3사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조선시장 내의 헤게모니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위축되지는 않을 것 같다. 삼성중공업은 삼성그룹이라는 뒷심이 있고 대우조선해양은 주인없는 회사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펜다멘탈을 가지고 있어 비교적 안정권이라 말할 수 있다. 조선과 건설의 사업비중을 50대 50으로 전개하고 있는 한진중공업은 건설부문에서 특히 토목건설에 경쟁력을 지니고 있어 SOC투자에 대해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방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TX팬오션과 함께 있는 STX조선은 해운과 조선이 한 사이클 안에 있기 때문에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지가 관건이라 할 수 있겠다.”

 

■ 이번 위기 속 국내 조선업계를 조망해 본다면.
“대형사와 중소형사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우선 대형사들은 선종이 다변화되어 있다. 이의 의미는 각 선종마다 시황은 전부 다르다. 다시 말해 건조할 수 있는 선종이 많다는 것은 포트폴리오상 위험을 완화시킬 수 있는 요인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조선사는 전세계 100대 조선사 중에 3~4개, 즉 국내 상위 조선사들에 국한되기 때문에 일부 선종의 시황이 살아난다면, 이는 국내 대형사들에 집중될 것이다. 반면 중소 조선사들의 건조능력은 한정되어 있고, 그 선종에 대한 시장회복 기미는 커녕 선복과잉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쟁사들도 많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 신조발주 시장의 활성화는 선박금융시장의 확대에서 비롯된 만큼, 선박금융 축소일색으로 돌변해 버린 유럽계 금융들의 동향에 그 축을 아시아권으로 옮겨오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과 가능성에 대해.
“우선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금값의 폭등은 금을 사는 수요를 확대시킨다. 집에 대한 매매가 많이 이루어지면 이에 연동해서 주택담보금융도 커진다. 즉 금융권에서 선박금융을 확대했기 때문에 발주시장이 활발했던 것이 아니고, 선주사들에 의한 선박발주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선박금융 시장이 커졌던 것이다. 금융사 입장에서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유동성이 풍부했던 상황과 선가의 고공행진 등에 기인한 투자대상 혹은 투기대상으로서 선박금융이 확대됐던 것이다. 하지만 금이나 자동차, 주택과는 달리 워낙 척당 선박가가 큰 만큼 많은 금융사들이 비교적 굵직하게 선박금융에 연루되어 있다 보니 선가가 꼬꾸라지고 있는 변화된 시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선박에 대한 투자를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인위적으로라도 비중을 축소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선가 지불조건 달러베이스 체제에서 선박금융 축 이동은 힘들다.
아시아권 통화통일로 지역내 선박금융 환율리스크 없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선박금융의 축을 아시아권으로 옮겨 오는 것에 대해서 본인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은 선박건조시장의 현 체제하에서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신조계약이 달러베이스로 이루어지는 현 시장체제가 변화하지 않는 한 힘들다. 선박발주국의 주류는 유럽, 중동, 미국 등으로 그들은 선박대금 결제방식을 달러로 하고 있다. 결국 아시아 금융권들이 선박금융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사와야 한다는 결론이다. 여기에는 달러 조달에 드는 이자부담과 예측불가능한 환율변화에 대한 리스크를 아시아 금융사들이 안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달러 조달에 경쟁우위에 있는 유럽권 금융사와의 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결국 선주들에게 유럽권 은행들보다 고금리의 선박금융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유럽권 금융사들과 아시아권 금융사들의 달러베이스 선박금융은 기본적으로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가능하게 할 방안을 제시한다면,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권내에서의 통화통일을 이루어내고 이의 통화를 지역 내에서만이라도 결제수단으로 활용한다면, 일부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은 선결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만큼, 선박금융의 축 이동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결론이다.”

 

■ 이번 위기를 현명하게 타개해야만 세계 조선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조선업계 자체의 노력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사료된다. 국가차원의 바람직한 타개법을 제시한다면.
“조선업계와 금융업계간의 상생을 위한 윈윈전략이 필수적이다. 우선 조선사는 건설적인 사고를 통해 현실적으로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솔직하게 금융권에 드러낼 필요가 있다. 반면 금융권은 이번 위기가 금융부실에서 초래된 만큼 자기 몸 추스르기도 힘든데다가 선박건조시황도 나빠지고 있다는 빌미를 들어 조선사들을 무조건 도매급으로 넘겨서는 안된다. 금융권의 넉넉한 지원을 요구하는 조선사와 보수적 성향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금융사 모두는 각자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평행선만 유지된다면 양 산업은 공멸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상생이라는 하나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양보의 미덕이 필요하다. 국가차원에서도 이번 위기극복을 통한 한국 조선산업의 세계적 위상을 지켜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사의 옥석가리기는 좀 더 진행되어야 하고, 옥으로 분류된 회사의 회생을 위한 지원은 아주 적극적인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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