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with Corona)’하는 마음으로 9월부터 콤파스의 문을 열기로 하였으나 아쉽게 이번에도 좌절됐다. 현재 확진자가 18만명이나 되고 더구나 추석 연휴가 끝나면 무려 3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와 회원들, 특히 연로하신 분들의 안전을 생각하여 부득이 연기했다. 아무쪼록 코로나 감염병이 잠잠해지고, 회원들도 건강하여 밝은 모습으로 속히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린다.
“인류의 역사는 돈의 역사이고, 돈의 역사는 인플레이션의 역사다” 독일의 경제학자 하노 벡이 쓴 ‘인플레이션’이라는 책의 골자다. 인플레이션의 실체와 함께 2000년 인류 역사에 감춰진 인플레이션의 비밀을 흥미롭게 밝혔다.


“지폐의 탄생과 함께 인플레이션의 역사가 시작됐다” 물건의 가치와 돈의 가치는 반비례한다. 세계는 지금 양적 완화의 후폭풍인 인플레이션이 거세게 불고 있다. 경제적 폭풍 인플레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인플라레(inflare)로 크게 ‘부풀어 오르다’라는 뜻이다. 인플레이션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면,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사람들은 지폐를 땔감이나 아이들 장난감으로 사용했다. 바이마르 화폐를 붕괴시킨 건 바로 인플레이션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1920년대에 바이마르공화국의 패망을 촉진하고, 1930~1940년대 독일 전역과 세계를 전체주의 광기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과연 인간의 삶을 이토록 피폐하게 하는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할 것인가?

 

전쟁보다 무서운 인플레이션
최초의 인플레이션이 언제 발생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독일의 경제사가 귄터 슈묄더스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에 인플레이션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대 이집트의 화폐 샤트는 처음에 금 함유량이 15그램으로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금 함유량이 절반으로 줄었고 나중엔 은화로 바뀌더니 그마저도 자취를 감췄다. 그 후 금과 은이 아닌 값싼 재료로 만든 돈이 유통되며 인류 역사에서 인플레이션이 초래됐을 가능성이 크다. 공식 기록에 의하면, 역사상 최초의 화폐가치 하락은 2세기 로마제국에서 발생했다. 군인 황제를 비롯한 통치자들은 시중에 유통되는 금속 동전의 가치를 단계적으로 하락시켰다. 귀금속 함량을 줄이고 구리를 섞어 동전을 주조하여 화폐유통량을 증가시킴으로써 화폐의 구매력이 감소했다. 더욱이 전쟁을 치르거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정치인들이 화폐를 마구 찍어내자 되돌이킬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만연됐다. 이로 인해 3세기 로마제국의 정치와 경제는 대혼란에 빠졌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다른 나라들이 더는 로마 화폐를 받지 않겠다고 나설 정도였다.

 

로마의 도시와 농촌 모두 빈곤화가 시작되었고, 인구도 크게 줄었다. 당시의 로마엔 정변이 계속되어 50년 동안 26명의 황제가 바뀌었고, 그중에 단 한 명만이 처참한 죽음을 모면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파탄난 로마 경제를 회복시키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모든 재화에 최고가를 적용하고 최고가 규정을 위반하거나 물건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에겐 사형에 처한다는 명문을 대형 돌판에 새겨, 물가상승을 법으로 억제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오늘날도 세계 각국이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와 유사한 조치를 하고 있으나 인플레이션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을 돌리는 것뿐이다.


15세기 합스부르크 왕가는 왕위계승과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알력 다툼이 심했다. 과연 그들은 왕가의 집안싸움에 필요한 큰돈을 어디서 조달했을까? 동전 진열장을 뜻하는 뮌츠레갈로 간단히 해결했다. 뮌츠레갈이란 통치자가 독점적으로 동전을 유통하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착복할 수 있는 권한으로, 사실상 금광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동전주조권을 소유한 자들은 이를 악용하여 동전의 은 함량을 줄이고 구리와 납 함량을 늘렸다. 이렇게 은 함량이 줄어든 화폐가 시중에 대량으로 유통되었고 사람들은 이 화폐를 쉰더링에라고 불렀다. 점차 쉰더링에가 사람들의 삶을 갉아먹자, 마침내 의회는 “전쟁, 약탈, 방화보다 쉰더링에가 백성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며 황제에게 쉰더링에 유통량을 제한할 것을 청원하였다. 쉰더링에 시대는 유럽 최초의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시기였다. 16세기 프랑스의 정치가 장 보댕은 양팔 저울로 인플레이션 개념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저울의 한쪽 접시에 돈을, 다른 한쪽에는 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을 올려놓고, 돈이 있는 저울에 돈을 더 올려놓으면 다른 한쪽 접시는 위로 올라간다. 즉, 물가가 상승한다”는 것으로, 이 아이디어는 수백년 후 화폐수량설로 탄생하였다.

 

악마의 화폐체계
국가가 관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화폐 역할을 했던 동전이나 상품화폐와 달리, 지폐는 권위나 명성을 가진 사람이 지폐에 명시된 금액을 내줄 것이라는 신뢰 관계가 형성될 때만 가치가 있다. 이를 명목화폐라고 한다. 지폐를 받은 사람이 지폐의 가치를 신뢰해야 비로소 돈이 되는 것이지, 신뢰를 잃는다면 한낱 종이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1700년대 프랑스에는 종이화폐 발행을 주도한 장본인이자 인플레이션을 불러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돈이 한 푼도 없이 떼돈을 버는 법을 발견한 영국의 재정가 존 로였다. 그는 화폐론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집필했는데, 그중에 지폐의 메커니즘을 밝혀낸 ‘악마의 화폐체계’가 유명하다. 존 로는 결과적으로 나라를 망쳐놓은 장본인이었지만, 그의 실패는 지폐의 명목가치와 실질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잘못된 화폐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가 발행한 은행권은 액면가치와 실질가치가 일치하지 않았고, 담보가치는 헛된 약속, 믿음, 평판, 희망뿐인 위험화폐였다. 이러한 화폐는 보장가치가 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바로 내재가치만 남는다. 전쟁과 혁명만큼 화폐를 무너뜨리기에 좋은 장치도 없다. 유럽 역사상 가장 의미 있고 큰 규모로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이들이 사용했던 화폐도 몰락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프랑스는 힘없는 왕, 가난에 찌든 하류계층, 텅 빈 국고로 민중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라는 거의 통제불능 상태였다. 집권한 국민회의는 재정이 바닥났음에도 성난 민중으로부터 더는 세금을 거둬들일 수 없게 되자, 지폐 발행량을 늘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다만 화폐발행량 증가로 인해 화폐가 휴지가 될까 두려워 대비책을 마련했다. 교회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시킨 재산을 재정확보를 위해 발행한 혁명화폐 아시냐의 담보로 삼았다. ‘미끄러운 경사면’이라는 말이 있다. 경사면에서 한번 미끄러지면 중간에 멈추기 어렵고 점점 미끄러지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는 뜻이다.

 

처음에 아시냐의 수요가 늘어나자 화폐발행량을 늘리기 시작했고 나중엔 멈출 수가 없었다. 혁명세력들은 정신없이 조폐기를 돌렸다. 통화량이 삽시간에 20배나 증가했음에도 교회와 귀족의 재산몰수는 한계가 있어 화폐의 명목가치가 크게 떨어졌고, 시민들은 아시냐로 거래하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집권세력은 아시냐 발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1790년부터 물가가 매년 157%씩 폭등했다. 유럽 역사상 최초의 초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대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다음 순서가 이어진다. 우선, 정부는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가격동결 조치를 시행한다. 다음에는 원치 않는 화폐인수 강요, 해외 귀금속 제조 금지, 금화 및 은화 거래 금지, 금은 및 재산몰수 등의 조치를 한다. 만성적 재정 악화에 시달리는 국가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5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국가는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폐를 발행한다. 2단계 화폐발행량이 늘어나 시중에 악화의 유통량이 증가한다. 3단계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4단계 인플레이션을 막고자 가격동결을 선포하고 화폐 사용을 강요하며 금은 거래를 금지하고 재산을 몰수한다. 5단계는 경제가 붕괴하여 통화가 무너지며 화폐개혁을 단행한다. 인플레이션 역사를 살펴보면 지난 2000년 동안 유사한 일이 자주, 많이, 빠르게 반복되어왔다.

 

초인플레이션 시대
19세기까지는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다가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멈췄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인플레이션율 상승은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이 매달 50% 이상 상승하는 경우를 초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한계치 50%를 넘지 않으면 초인플레이션은 1년 이상 지속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재정 악화 정확히 말해 국가의 재정난이다. 일반적으로 혁명이나 전쟁을 겪은 후 경제는 불안정해진다. 이러한 경제적 재앙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국가의 과잉 부채와 무분별한 지폐발행이었다. 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에 엄청난 전쟁배상금이 부과되었는데, 이것이 치명적인 초인플레이션의 원인이었다. 매일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가격표에 붙어 있는 0의 개수가 하루가 멀다고 늘어나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1910년부터 1923년까지 독일의 연 인플레이션율은 1174%였다.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국민 복지는 커녕 생존마저 위협을 받았다.

 

오스트리아의 역사학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1920년대 패전국 독일의 경제 사정을 보면, 독일인이 히틀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초인플레이션은 정치적 격변기에 발생했다. 전쟁 도중 또는 후에 기존의 체제가 붕괴하는 시기, 이를테면 계획경제체제가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과도기나 변혁기에 발생했다는 시기적 공통점이 있다. 또 하나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마다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국민이 정부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4년 브라질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했다. “우리는 정부가 어떤 발표를 하면 그 반대가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독일 화폐개혁은 종종 ‘렌텐마르크의 기적’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새로운 화폐 렌텐마르크가 도입되자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이 멈췄기 때문이다.


독일 국민은 1조 마르크당 렌텐마르크 1장을 받았다.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독일인들이 렌텐마르크를 받아들였다는 자체가 기적이다. 사람들은 렌텐마르크가 독일의 땅을 담보로 한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다. 도이체 렌텐방크는 렌텐마르크를 발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었다. 렌텐마르크는 법정 지불수단이 아니었으나 공공은행에서 인정하는 화폐였다. 은행 설립에 필요한 자본은 농업, 공업, 상업 중소기업 종사자들을 통해 조달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들은 부동산의 토지채무 상태를 강제로 등기하고 국가에 양도해야 했다. 국가가 이러한 부동산에 대해 강제로 접근할 권한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부동산이 새로 발행하는 화폐인 렌텐마르크의 담보였던 셈이다. 화폐로써의 가치를 상실한 마르크화에 대한 렌텐마르크의 환율은 1 대 1조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렌텐마르크를 도입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천문학적인 인플레이션이 잠잠해지고 독일 경제가 안정을 되찾은 것이다. 마침내 렌텐마르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독일 국민이 렌텐마르크 즉, 이를 발행한 정부를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렇듯 신뢰가 있어야 힘을 얻는다. 경제정책 방향을 바꾸려는 정부의 노력과 의지가 강할수록 국민의 신뢰는 커진다. 국민의 신뢰가 클수록 새로운 통화는 제 기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이 신뢰가 다시 국민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방향을 틀어 선순환이 이루지는 것이다.

 

세기의 경제 사상가들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케인스만큼 명쾌한 이론을 제시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케인스가 등장하기 전에는 고전경제학이 경제이론을 지배하고 있었다. 고전경제학에선 경제위기가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고전경제학파가 이에 대한 근거로 제시한 것이 ‘세(Say)의 법칙’이다. 세의 법칙은 “공급은 수요를 스스로 창출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경제위기가 오래 계속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학자가 존 케인스다. 그는 1929년 세계 대공황을 겪으면서 경제위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세의 법칙에 오류를 발견하고 고전경제학을 맹렬히 비난했다. 케인스의 견해가 옳다면, 인위적인 경제정책으로 금융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민간 수요가 감소하여 경기가 침체하면 국가가 개입하여 빚으로 지출을 늘려 부족한 수요를 채워주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이다.


1970년대를 총결산해보면 선진국들은 고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1890년대에 접어들며 인플레이션이 잠시 진정되는 듯하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 또다시 인플레이션의 유령이 떠돌기 시작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불경기, 실업이라는 위험한 조합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밀턴 프리드먼은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케인스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케인스주의자들이 국가의 지출 정책과 경기 부양책을 강조하였으나, 신자유주의자 프리드먼은 더 작은 국가, 더 많은 자유, 민간주도를 주창했다. 그는 필립스곡선의 핵심이론을 강력히 반박했는데, 케인스주의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립스곡선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고용이 증가한다’고 되어 있다. 물가가 오르면 기업의 이윤이 늘어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임금인상 요구로 인건비가 상승하면 기업의 인력고용 의향이 감소하여 필립스곡선에서 제기했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용효과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1995년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가 등장하면서 필립스곡선에 대한 비판이 한층 높아졌다. 루카스는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면 실업률도 상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프리드먼 이론을 논리적으로 완성했다. 즉, 인플레이션 상승을 예상한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여 임금과 실업률만 증가하고 고용은 감소하는 경기침체를 불러온다는 것이 루카스의 주장이다. 마침내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각국은 경기개입 정책을 단행하지만, 실패로 돌아가 빚더미에 올라가고 만다. 이 시기엔 중앙은행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인플레이션율 고삐를 당겨 쥐고 경제 안정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임무다. 물가 즉,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중앙은행은 엄격한 원칙을 지키며 신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대증요법인 ‘스톱 앤 고(stop and go)’ 정책을 지양하고 “하녀 한 명이 두 명의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틴버겐의 법칙을 준용해야 한다.

 

무엇이 자본주의 판도를 움직이나
2016년 6월 14일 독일연방공화국 사상 최초로 국채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독일 일간지엔 ‘독일 자본시장의 새 시대가 열리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자들은 이를 워털루전투, 신대륙 발견, 전쟁 종식에 버금가는 사건이라고 대서특필했다. 경제적 안정기는 얼핏 평온한 시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광풍처럼 휘몰아 닥칠 위기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최근에 겪은 금융위기는 시장에 화폐가 과잉공급된 탓이다. 경제에 화폐가 과잉 공급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에 대한 답은 ‘피셔의 방정식’에 있다. 화폐량에 비해 재화량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물가는 당연히 상승한다. 마찬가지로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상승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통화량이 증가한다고 해서 물가가 반드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생산과 고용이 증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화가 담긴 양팔저울이 생산량 증대로 한쪽이 무거워지면 통화량이 증가해도 균형이 유지된다. 화폐를 많이 발행하여 물가가 상승한 것이 아니라 생산, 고용, 복지가 증대됐다는 의미다. 이때가 경제적으로 최적의 상황이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만 상승시킨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화폐수량설의 어느 부분에 오류가 있었을까?


2008년 9월에 164년 전통의 리먼 브라더스 투자은행이 파산하며 전 세계가 술렁였다. 미국의 부동산 위기가 바이러스처럼 번지며 세계 금융시장을 감염시켜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리스는 과도한 채무로 인해 파산 직전이라고 공식 선언했고, 유럽연합의 핵심 프로젝트인 그리스 구제 금융정책은 혼란에 빠졌다. 화폐수량설 지지자들은 세 차례의 금융위기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아냈다. 바로 마법의 주문인 자산 인플레이션이다. 피셔의 교환방정식을 보면, 인플레이션율을 계산할 때 주식, 채권, 금, 수집품, 파생상품 또는 기타 투자상품의 가격은 반영하지 않고 재화와 용역의 가치만 반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화와 용역 대신 금융자산에 투자하면 금융자산 가격은 상승하나 재화의 가격에는 변동이 없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만, 재화가 아닌 금융자산이 증가하는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이것이 자본재 가격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통화량이 증가했으나 재화 가격이 상승하지 않을 수 있고, 호황기가 아니라도 자본시장 경기가 활성화하여 주가가 상승할 수 있다. 이렇게 자산 인플레이션 개념이 대두되며 교환방정식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통화가 과도하게 투입되면 자본시장이 과열되어 결국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의 마인강 주변에는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금융기관 유럽중앙은행이 있다. 유럽중앙은행이 없었다면 유로는 탄생하지 못했고 유로존의 일부 회원국과 은행이 파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는 미국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있고, 일본에 일본은행, 영국에는 잉글랜드은행이 있다. 이제 주요 중앙은행들은 세계 금융시장의 막강한 승부사가 되었다. 경제를 망쳐놓은 정치인들은 경제 회생의 의지는 보이지 않고 중앙은행에 떠넘겨왔다. 중앙은행은 공식발표시 양적완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사실상 국가의 부채를 은행권과 교환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다. 한마디로 중앙은행이 국가의 부채를 사들이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디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보다 위험하다고 평가한다. 인플레이션은 돈줄을 죄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여긴다. 즉, 중앙은행이 통화를 추가로 공급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서 화폐수량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반면에 디플레이션은 금융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앙은행의 경기안정화 정책은 단순하다.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은 화폐수량설을 바탕으로 수립한다. 요즘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중앙은행들이 화폐를 과잉공급하여 자본시장 시세와 금융자산 가치를 상승시키면서 인플레이션 유령이 떠돌고 있다. 2000년대는 모순과 수수께끼로 가득한 시대였다.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면서 인플레이션도 우려했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동시에 걱정하는 상황 자체가 모순이다.

 

금융위기 시대의 투자
인플레이션의 희생자는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다. 한 나라의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하면 빈곤율도 상승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을 국채 해결사로 보는 이유가 있다. 국가는 자국민에게 돈을 빌려 내국채를 발행하는 동시에 세금을 인상하여 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 세금을 인상하여 부채를 갚는 셈이다. 은행들의 사업모델은 ‘3:6:3’의 원칙을 따른다. 은행은 고객에게 3%의 이자로 돈을 빌리고, 6% 이자로 다른 고객에게 돈을 빌려준 다음, 여기서 생긴 차액 3%로 수익을 올린다.
그러나 금리가 내려가면 사업모델이 흔들린다. 3%로 빌려서 6%로 빌려주는 것이 1%로 빌려 2%로 빌려주는 것보다 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리가 인상돼도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금리가 인상되면 채권의 시세가 하락한다. 저금리 때는 채권에 투자하겠지만, 금리가 높으면 굳이 일정 기간 후에 찾는 채권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 둘째 ‘3:6:3’의 원칙이 흔들린다. 고객에게 높은 금리로 예금을 받아 고금리로 대출할 고객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수십년 동안 인플레이션은 경제 분야의 핵심 주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더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는 인플레이션 시대에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절이 되었다. 즉, 금융시스템 피해를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인플레이션과 금융 압박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둘러싼 4가지 시나리오를 설정해야 한다. 첫 번째 인플레이션에 대비하여 도피한다. 이를테면 자산가격이 상승하기 전 또는 상승하는 동안 유가물을 매수한다. 두 번째 자산가격이 오르기 전에 유가물을 매수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자산가격이 붕괴하기 전에 매도한다. 세 번째 소비재 투자수익은 유가물 투자수익보다 인플레이션이 높을수록 수익손실이 크다는 사실을 유념한다. 네 번째 투기 거품이 생기기 전까지 금융자산에 투자하고, 거품이 터지기 전에 금융자산을 처분한다. 역사적으로 금융위기 또는 경제위기가 광풍처럼 불어올 때마다 국가는 파산하고, 은행은 붕괴하고, 통화가치가 급락하거나 전쟁이 터졌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금융위기는 정상적인 현상이며 자본주의의 일부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창조적 파괴’라고 한다. 경제위기와 금융위기는 가치, 사업모델, 꿈을 파괴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마련해준다. 인플레이션 격랑을 헤쳐나가려면 마법의 삼각형을 알아야 한다. 다양한 투자 형태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기준은 수익성, 안정성, 유동성으로 이뤄진 ‘마법의 삼각형’이다. 첫째 안정성은 일정한 한계치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을 목표로 큰 위험을 피해야 한다. 둘째 수익성은 투입된 자본에 대한 이익금이다. 안정성의 걸림돌은 수익성과 갈등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셋째 유동성은 투자자본의 가용성 즉, 투자상품을 얼마나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미국 오라클사 CEO 래리 앨리슨, 아마존 닷컴 창업자 제프 베조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의류복합기업 인디텍스 설립자 아마시오 오르테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세계 5대 갑부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회사를 창업하여 막대한 부를 얻었다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이 부자를 만든다.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기업이 낸 수익의 혜택을 누릴 수는 있다. 주식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다. 모든 주주는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면에서 공동 소유주인 셈이다. 주식은 물가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지만, 자산 인플레이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주식투자의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해부하면, 첫째 주식은 부동산이나 채권보다 시세 변동 리스크가 현저히 크다.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의 위기는 3~8년 주기로 발생한다. 따라서 리스크를 줄이고 싶다면 장기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투자기간을 10년으로 잡으면 리스크는 80% 감소하고 20년으로 잡으면 90%로 감소한다. 투자기간이 길수록 리스크가 적은 셈이다. 주식투자의 리스크는 투자시 점검해야 할 수익률과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다.


투자의 세 번째 기준인 유동성은 투자하는 주식 종목에 따라 좌우된다. 유동성을 판단할 때는 대기업 주가인 표준종목 주가와 중소기업의 주가인 참고종목 주가를 구분해서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표준종목 주가와 참고종목 주가는 핵심자산군과 위성자산군으로 나눠 투자전략을 짜볼 수 있다. 핵심자산군에는 리스크가 낮은 표준종목을 넣어 큰 그림을 그리고, 위성자산군에는 참고종목을 넣어 유동성이 낮고 리스크가 큰 대신에 추가수익을 낼 수 있는 장점을 살린다.

 
인플레이션 시대의 포트폴리오 구성
지금은 경제위기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토록 불안한 상황에선 어떤 투자전략을 세워야 할까? 투자 성공사례를 조사한 결과 90% 이상이 포트폴리오 구성이 성공의 열쇠였다. 투자의 성공 여부는 개별적인 수치가 아니라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투자종목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좌우된다. 이를 자산 배분이라고 하며, 축구로 치면 팀 구성에 해당한다. 투자전략에서는 리스크가 적은 투자상품으로 구성하는 것이 수비다. 리스크가 적은 채권, 단기투자, 금융상품, 부동산에 투자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수비를 잘하면 수익이 적지만 안정성은 보장된다. 미들필더는 후방에선 수비하고, 전방에선 공격해야 한다. 시장에서 좋은 위치를 점유하여 기회를 엿보고, 수익률이 높은 편이면서도 안정적이어야 한다. 말하자면, 사업모델이 단조롭고 반짝 수익은 없더라도 건전한 시세 변동을 보이는 비즈니스다. 공격수의 목적은 골이다. 공격적으로 움직여 멋진 골을 터뜨려야 한다.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더 많은 수익을 올려야 한다.

 

중소기업의 중저가 주식은 유동성이 떨어지고 리스크가 크지만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신흥공업국 주식은 선진국 주식보다 리스크가 크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성장 잠재력이 있다. 아울러 대기업의 성장 가치를 눈여겨 봐야 한다. 첨단기술이나 생명공학, 우주산업, 환경산업 분야는 어차피 인류가 가야 할 방향이다. 고수익 채권 또는 정크 본드는 실패 위험이 크기 때문에 고금리를 보장하나 수익 변동폭이 커서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혼합형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세기가 바뀌는 전환기의 주식 시세는 끊임없이 요동친다. 모든 시기에 수익을 낼 수 있는 보편적 투자 유형은 없다. 따라서 투자에서는 주식시장의 환경 즉 시세 등락을 결정하는 계절적, 금전적, 심리적, 기술적 요인이 모두 경쟁자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경기에 나와야 한다. 포트폴리오 분산화 원칙은 간단하다. 상관관계가 전혀 없거나 음의 상관관계가 있는 두 종목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또한 니치 종목과 핵심 종목을 혼합 투자하면 포트폴리오를 분산시킴으로써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간은 실수한다. 하지만 실수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실수에서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설의 투자자 앙드레 코스틀라니는 “주식시장은 10%만 팩트의 영향을 받고, 나머지 90%는 심리가 지배한다”고 말했다. 투자시 실수하기 쉬운 여섯 가지 심리는 따라하기, 우연, 쓸데없는 집착, 처분 효과, 객관성을 잃어버린 희망, 과도한 낙관주의다. 시대와 장소에 상관없이 적용되는 투자원칙이 있다. 즉, “카드 한 장에 모든 것을 걸지 마라”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면 리스크와 유동성을 포기해야 한다” “투자에 신경 쓸 시간이 적은 사람은 유동성이 높고 리스크가 적은 종목에 투자해야 한다” “과거를 안다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최악의 투자 상담가는 두려움, 탐욕, 시기, 성급함, 이웃이다”

 

화폐의 미래
우리는 미래에 어떤 통화로 지불하게 될까? 각기 다른 통화로 사용할까? 구글, 애플, 이베이, 아마존 등 사이버 머니에도 환율이 생기지 않을까? 스마트용 사이버 머니 환율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사이버 머니가 다양한데 과연 사용자들이 이 화폐를 신뢰할까? 얼핏 화폐들의 경쟁은 매력적으로 보인다. 국민이 대안화폐를 기피하는 상황이 오면 국가는 자국 화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대적인 화폐 시스템 개혁을 추진할지는 미지수다. 복합적인 문제들이 산재하고 소비자 보호 같은 법적 문제도 얽혀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단일 화폐가 지배하던 시대가 끝나면 화폐는 가치를 잃을 것이다. 언젠가 화폐의 종말이 올지도 모르지만, 화폐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강력한 힘을 가진 무기다. 인류가 탄생하고 국가가 성립되자 그 존재를 깨닫기도 전에 화폐가 탄생했고, 화폐의 형태는 꾸준히 진화해왔다. 순간순간 지위가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위기, 혼란,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과 디플레이션의 공포 가운데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주식시장은 흔들릴 수 있지만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교훈은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화폐 전체에 해당할 것이다. 화폐의 형태, 모습, 발행자가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화폐는 우리 인류가 발견한 가장 천재적인 아이디어다. 화폐는 지금도 흔들이고 있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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