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해운업은 ‘대박’이 났다. 탱커는 구조적인 문제로 아직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컨테이너는 사상 초유의 호황을 맞고 있고 건화물선 운임도 좋은 상황에 놓여있다. 수십년의 역사를 가진 해운기업이 창립이래 지금까지 번 돈을 모두 합친 것보다 작년에 번 돈이 더 많다고 할 정도이니 더 할 말이 없다.
대박은 쪽박에 대응되는 말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라고 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한편 쪽박은 작은 바가지라는 뜻으로 오래 전부터 다양하게 사용되어 온 단어이다. ‘쪽박을 찼다’라는 말은 망해서 거지가 되었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대박이 난 것과 쪽박을 찬 것이 이렇게 양 극단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지만 위험관리(risk management)의 관점에서 보면 두 상황은 동일한 원인의 다른 결과이다.


옥스포드 사전에 의하면 위험(risk)은 ‘미래에 무언가 나쁜 일이 발생할 가능성’으로 정의되어 있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위험도 이렇게 나쁜 결과 즉, 손실이나 손상이 생길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재무적인 관점에서 보면 위험은 (투자의) 실제 결과 또는 이득이 기대치와 ‘다를’ 가능성을 말한다.1)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점은 방향성이 없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다른 것이든 부정적으로 다른 것이든 차이가 크면 위험이 큰 것이다. 따라서 대박과 쪽박은 모두 큰 위험을 부담한 결과이다.


기업경영에 수반되는 위험은 신용위험, 정치적 위험, 시장위험, 환위험, 운영위험 등 매우 다양하다. 런던대학의 Nomikos교수는 해운기업이 직면한 위험을 간단하게 가격위험(price risk), 신용위험(credit risk), 순수위험(pure risk)의 세 가지로 분류했다. 가격위험은 투입과 산출물의 가격변동이 기업의 현금흐름에 초래하는 불확실성을 의미하고, 신용위험은 거래상대방이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불확실성이다. 순수위험은 기업의 자산에 대한 물리적인 손상이나 사고, 손실로 인한 가치하락의 위험을 말한다. 시장위험(market risk)의 원인이 가격변동이고 해운업의 성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가격변동 요인이 운임(freight rate)이기 때문에 시장위험, 가격위험, 그리고 운임위험을 해운분야에서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는 시장위험으로 통일해서 사용한다.


해운에서 시장위험의 크기를 가늠할 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시황의 변동성과 노출(exposure)이다. 운임시황의변동성은 해운의 분야별로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해운은 변동성이 크기로 유명하다. 벌크선의 운임변동성을 주 단위 로그수익률의 표준편차로 측정했을 경우 이자율(LIBOR)의 7.4배, 연료유가의 5,8배를 기록했다.2) 2008년 6월 ‘China Boom’의 정점에서 USD233,988로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케이프선의 일당수익이 불과 6개월만에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USD2,316로 추락한 것은 극심한 변동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아래 그림은 1999년부터 2017년까지의3) 볼틱해운거래소 케이프벌크선 4대 항로 정기용선료(Baltic Cape 4-T/C) 평균을 나타낸 것이다. 기준선형인 172,000DWT급 케이프 벌크선의 일당 원가를 USD20,000 정도라고 하면 시황의 변동성이 기업의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클지 가늠할 수 있다.


시황의 변동성은 외생적이어서 개별 기업의 통제가 불가능한 반면 ‘확보(매입 또는 용선)한 선복량과 처분(화물계약 또는 대선)한 선복량의 차이’로 정의되는 순노출(net exposure)은 기업의 전략에 따라 조절될 수 있어 시장위험관리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컨테이너 해운과 벌크선 해운을 비교해 볼 때 시황의 변동성은 벌크선이 컨테이너 보다 더 크지만 노출의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선대운영규모의 조정이 매우 어려운 컨테이너가 더 취약함을 알 수 있다.


위험의 관리는 일반적으로 위험을 수용, 회피, 전가 및 조정하는 4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위험을 받아들이는(take) 것은 위험의 크기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어서 위험을 인식하고도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며, 회피(avoid)하는 것은 위험의 크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거나 마땅한 관리방법이 없어서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것이다. 전가(transfer)하는 것은 자동차보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로 보험의 형태로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남에게 전가하는 것인데 사업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분 즉, 일정 수준의 시장위험을 부담하고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향유하는 것 자체를 전가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결론적으로 시장위험의 관리는 ‘조정’의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조정(adjust)이란 변동성에 대한 노출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축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운업에 있어 노출은 실물시장(physical market)과 파생상품시장(derivatives market)을 통해서 조정할 수 있다. 실물시장을 통한 조절은 확보된 선복(수송능력)에 대해서는 대선이나 수송계약을 통해, 반대로 체결된 화물계약은 선복을 확보하여 상쇄함으로써 노출을 축소하는 것이다. 파생상품시장을 활용할 때에는 물리적인 선복이나 화물계약은 시황변동에 그대로 노출시킨 상태에서 운임선도계약(FFA, Forward Freig
ht Agreement), 옵션 등을 통하여 반대의 현금흐름을 만들어 성과의 변동성을 줄이는 것이다. 아래 표는 실물시장과 파생상품시장에서의 거래형태와 노출을 나타낸 것이다.


수송능력을 확보한 경우 즉, 정(+)의 노출상태인 경우 시황과 기업의 손익은 정비례하는 관계를 가지는 반면 부(-)의 노출 상태인 경우에는 반대로 시황의 상승이 손실의 증가로 나타나는 역(negative)의 관계를 보이게 된다. 시장위험을 조정한다는 것은 수송능력의 확보 또는 처분행위로 기업의 시장위험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경우 위 표의 반대편에 있는 거래를 늘림으로써 시장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축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운기업이 시장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석탄, 곡물과 같은 교역물(commod
ity)이나 금융상품과 달리 해운은 노출의 측정단위를 정하는 것부터 도전적이다. 석탄 1톤은 1톤인데 해운 1단위는 무엇일까? 단위가 결정되어도 다양한 선형과 계약을 표준화하는 문제가 남아있어 위험관리의 출발점인 계약관리 자체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다음 단계에서는 운임의 변동성이 예측되어야 하는데 해운 운임의 경우 사이클의 주기와 진폭이 불규칙한 데다가 기간에 따라 가격이 다른 기간의존성(term-dependency)이 있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방법면에서 볼 때 위험을 관리하는 데 있어 다른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VaR(Value at Risk)도 해운에 적용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어 첩첩산중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체계적인 시장위험 관리체계를 잘 갖춘 해운기업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시장위험관리는 해운의 문제만은 아니다. 해운기업이 시장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해운기업에 여신을 제공하는 금융기관이 신용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해운기업이 시장위험 관리에 실패해서 도산한다면 그 결과가 금융기관의 신용위험(credit risk)으로 바로 이전된다. 우리는 시장위험관리의 실패가 해운기업의 반복되는 도산을 낳고 그 결과가 민간 선박금융기관의 위축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 해운과 선박금융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실마리는 시장위험관리의 체계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소선사를 비롯한 많은 선사에게 각자의 시장위험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공용플랫폼을 개발해서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된다.


일례로 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협력해서 보편적인 시장위험관리체계를 정립하고 이를 개별선사에 공급해서 활용하도록 하면 우리나라 해운기업의 시장위험 관리수준을 높이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이에 더하여 정부의 정책 측면에서 개별기업의 범위를 넘어 해운산업 전체의 시장위험을 파악하고 관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의 민감한 영업정보를 포함하지 않고 업계 전체의 시장위험을 파악하는 것은 도전적인 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시장위험관리가 해운과 금융 모두가 대박과 쪽박 사이를 왕복하는 것을 막을 효과적인 방법이라면 어떻게 하든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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