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섬, 사량도

구랍 1일 한국해운조합(KSA) 본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7회 섬여행 후기 공모전’ 시상식에서 대상 1편, 최우수상 1편, 우수상 2편, 바다로 특별상 1편 및 장려상 10편 등 총 15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상을 수상한 이리나(필명)씨는 ‘길은 걷는 자의 것이고, 섬은 건너는 자의 몫이다’는 글을 통해 섬 여행의 긴장과 느닷없는 인연의 행복, 섬 여행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낯선 즐거움을 유려한 문체로 펼쳤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추억에 얽힌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 신민영씨의 ‘어린 날의 섬, 사량도’가 최우수상에 선정됐으며, 우수상은 나호선씨의 ‘내 거울이 비추는 곳, 덕적도’와 최옥숙씨의 ‘청산도는 ‘쉼’이다’ 2편이 각각 선정됐다. 바다로 특별상에는 김아람씨의 ‘섬이랑 썸탔섬’이 선정됐다. 해운조합의 협조로 대상 수상작(2월호)에 이어 최우수상, 우수상 수상작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익숙지 않은 장소를 구경하는 게 여행의 참맛이라지만, 긴 시간 지나 이미 누볐던 터를 다시 들르는 일도 나름의 쏠쏠한 재미가 있다.
손발이 작던 시절, 명절이 되어 달력에 빨간 칠이 될 때면 꼭 한 번은 배를 탔다. 방학을 핑계 삼아 선심 쓰듯 한 번 정도 더 들렀던 외할머니댁은 집채만한 배를 타야만 닿을 수 있는 섬마을에 있었다. 기억이 남아있던 순간부터 되짚으니 물 위로 숨구멍을 내민 커다란 고래처럼 물가에 닿아 입을 쩍 벌리고 있던 여객선이 먼저 떠오른다. 크기에 압도될 법도 했지만, 매번 타던 놈이라 어린 날에도 제법 익숙한 태로 배에 올랐다. 어느 순간부터 두 발이 아닌 타오곤 승용차 안에서 고대로 갑판으로 옮겨졌는데, 참으로 멋지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친구들은 이런 아찔한 경험을 해봤을까 으스대며 섬에 사는 할머니를 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에 취해 빼꼼히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턱을 쳐들어 마음껏 우쭐거리곤 했다. 배 입구에 선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빈틈없이 열을 맞춰 빽빽하게 몸을 맞댄 차에서 내려 곧장 이층 선상으로 향한다. 몸이 작았으니 행동도 누구보다 빠를 터. 짠 바닷바람과 끈적한 바닷물에 칠이 벗겨진 녹슨 손잡이를 꽉 붙들고는 어린아이에게 절대 친절하지 않던 단이 제법 높은 철제 계단을 조심스레 올랐다.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던 어린이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강한 바닷바람이 들이쳐도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틀림없이 도달해야 했다. 체구가 작은 만큼 배포도 작은지라 고사리손으로 난간을 꽉 쥐고, 옆에 선 아빠의 바짓가랑이도 함께 붙들고는 육지와 멀어지는 장대한 광경을 눈을 떼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다. 귀가 아플 정도로 커다란 엔진 소리에 작은 아이의 함성은 들리지도 않았지만, 배의 꽁무니가 만들어내는 수면 위 하얀 거품을 보며 연신 탄성을 질렀던 것 같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에 달려드는 갈매기 떼도 매번 반가운 길동무. 어린 날, 큰 배를 탄다는 건 뜨거운 볕에 피부가 까매진 외할머니를 만나러 섬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물을 건넜으니 섬이구나 여겼을 뿐, 낮은 눈엔 발을 내디딘 곳이 섬인지 육지인지 분간할 도리는 없다. 나고 자란 부산에서도 가까이 바다를 두고 지냈으니 사면이 물로 가득한 할머니의 섬이 달리 보일 리도 없었다. 되려 도시 소녀에게 섬 생활은 불편함과 고단함이 우선. 선택할 거리가 적은 슈퍼는 한참을 걸어가야 했고, 화장실은 쪼그려 앉아야만 일을 볼 수 있었다. 책에서나 봤던 나무 문살에 종이가 발린 자그마한 문이 달린 할머니의 소박한 집은 여러모로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궁이 조절에 실패한 탓에 방바닥은 까맣게 그을려 있고, 마루 구석엔 뚜껑 속이 궁금하지 않은 철제 요강 단지가 새침한 소녀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편치 않은 환경에 긴장했던지, 사방이 어두운 밤이 되어 잠자리에 몸을 뉠 때면 작은 가슴은 조그만 풀 벌레 소리에도 놀라 요란하게도 콩닥거렸다.


그런데도 날이 밝아지면 단순했던 천진함은 지난 밤을 잊은 채 나름의 재미를 찾아 부지런히도 돌아다녔는데, 할머니 집에서 몇 발 떨어지지 않은 마을 우물이 모든 것을 상쇄할만한 짜릿한 발견이었다.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아래가 내려다보이던 깊은 동굴은 돌멩이를 던지는 방법으로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한참을 굵은 밧줄이 묶인 물동이를 내리쳐 물을 길어보겠다 씨름하고는 몸채만한 양철 물동이를 가득 채워 간신히 어깨에 매고 와 쓸 일 없는 차가운 지하수를 할머니 집 마당에 때려 붓는 쾌락으로 한나절을 보낸다. 육신의 고됨 따위가 문제가 될 턱이 없었다.


주워 모은 돌덩이로 얼기설기 낮게 쌓아 올린 돌담 덕에 안과 밖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던 할머니 집 마당에는 소녀의 유일한 섬마을 친구가 있다. 모든 것이 새카매 표정조차 읽기 힘든 흑염소가 여럿. 괜스레 오가며 녀석들을 잔뜩 약 올리고는 혼자 키득거린다. 가끔은 떼로 덤벼들까 봐 마음 졸이기도 했지만, 장난기 가득한 어린 날에는 하나뿐인 말동무를 그대로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주로 듣기만 했지만, 녀석도 가끔은 ‘메---에에’하고 대꾸를 해 지루한 하루의 위안이 됐다. 염소들은 자신만큼 까만 똥을 이리저리 흩뿌리고 다녔는데, 왜인지 여름이 지나면 한 마리씩 수가 줄어들더라.


섬에 왔으니 바다에 가는 일을 빠뜨릴 수 있나. 수영복 대신 이래저래 헐거워진 평상복을 대충 차려입고 나선다. 바닷가는 응당 고운 황금색 모래가 깔린 줄 알았건만, 어째 섬마을 해변은 제멋대로 생긴 자갈돌이 가득하다. 고운 모래만 밟고 자란 턱에 발을 찌르는 딱딱한 돌덩이로 가득한 바다가 몹시 거칠다. 얕은 물에서만 물장구를 치고는 온몸에 짠 기를 품은 채로 커다란 바위에 옹기종기 모여 붙은 낯선 생물들을 따기 시작한다. 미끄러워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건만 잔소리하는 엄마보다 키가 큰 바위를 이리저리 오르내리는 재미는 무엇보다 신이 났다. 손으로 떼어지면 뭐든 잡아 플라스틱병에 넣는다. 가끔 바닷가 돌을 들춰내면 운이 좋은 날엔 작은 게도 볼 수 있던 생명 가득한 바다. 사람 흔적 가득한 관광지 해변만 보고 자란 소녀에게 섬에서 만난 한적한 바다는 강한 힘이 넘쳤다. 무엇인지도 모른 체 잔뜩 채운 병을 자랑한다. 엄마는 잡아들인 놈들을 모두 먹을 수 있다 했지만, 도시에서 자란 딸에게는 마뜩잖았으므로 따는 재미만 실컷 누리고는 미련 없이 손을 털었다.


바다에서 멀지 않은 산길을 돌아오면 외할머니 집이 보인다. 언젠가 한바탕 수영을 마치고 바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작은 뱀을 본 일이 있는데, 엄마는 그제야 이 섬엔 뱀이 아주 많이 살고 있다는 섬뜩한 고백을 해주었다. 뱀 사(蛇)자를 써서 사량도라 이름 붙여졌단다. 그때부터 마구 걷던 걸음이 꽤 조심스러워졌지만, 다행히 그 뒤론 한 번도 뱀을 보지는 못했다. 어린 귀에 엄마의 말을 곧이 알아듣지 못하고 얼마만큼 자랄 때까지 할머니의 섬은 사랑이 넘치는 ‘사랑도’인 줄 알았다. 어찌 됐건 둘 다 멋진 이름 아닌가. 물놀이에 지친 육신을 바람이 살랑대는 마당 평상에 뉘고 하늘을 마주 본다. 엄마의 다리를 베고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저녁에는 직접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 넣어보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한참을 누워 뒹굴거렸음에도 재빨리 달리지 않는 시곗바늘 대신, 마당에서 빨랫줄을 지지하던 기다란 죽창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밀어대며 긴 하루를 보낸다. 할머니가 저녁 내 차린 투박한 밥상보다 한차례 힘겹게 걸어 손에 넣은 라면 한 봉지가 더 입에 맞았다.


섬에 박힌 시골은 뭍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미 오가는 길부터 차와 배를 모두 타야 했으니 번잡스러웠고, 너무도 옛것 그대로인 불편한 화장실, 끈질기게 달라붙는 벌레, 겨우 몸을 씻을 수 있는 찜찜함, 멀리 펼쳐진 심심한 풍경까지. 소녀에게 설레는 마음으로 얼른 가자 응석 부릴 장소가 아님은 분명했다. 마지못해 따라나서지만, 얼른 돌아올 날만 꼽는 할머니 집. 더욱이 명절에만 찾는 터라 엄마는 밀린 친척 집 방문을 한꺼번에 하기 위해 어린 손을 끌고 이리저리 부지런히도 다니셨으니, 자주 보지 못해 낯선 친척들 앞에 쑥스럽게 고개를 숙이고는 지루한 어른들의 이야기가 어서 끝나기만을 속으로 간절히 빌곤 했다. 깨끗하지 못한 바닥에 앉아 참아내는 시간이 참으로 지루하고 난감하다. 고깝게 깔끔한 체하던 소녀에게 섬마을은 전체가 소금물에 담가진 듯 찐득했고 따가웠다. 휴일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멋진 배를 탔다는 무용담을 털어놓을 때도 똑똑한 선생님조차 사량도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으니 이제껏 기세등등했던 소녀는 매번 풀이 죽어 할머니 집은 꼭꼭 숨어있는 작은 섬에 있다는 걸 자연스레 몸으로 느끼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홀로 계시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나마 이어지던 배를 탄 여정은 명맥을 이어가지 못한다. 엄마는 드물게 여전히 섬에 계신 친척 집을 들여다봤지만 가는 길이 수월하지 않아 굳이 어린 자식을 데려가시진 않았다. 몇 년 사이 할머니 집까지 처분해버렸고, 굳이 그 섬을 찾을 일은 없어져 버렸다. 언젠가 엄마로부터 섬에 멋진 다리가 놓였다는 사실과 이제는 제법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말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크게 담아두진 않았다. 다시 그곳에 갈 일은 없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했다. 어느덧 자라 고향을 떠나 살고 있던 덕에 명절이 되면 부모님이 계신 부산으로 향하는 게 일이 되었으니.
지나간 어린 날에 남겨진 할머니의 섬을 다시 찾은 건, 더는 때가 되어도 갈 곳이 없던 오월의 봄이었다. 자만했던 젊은 날의 건강은 급속도로 곤두박질쳤고, 큰 수술을 받은 턱에 직장까지 그만둔 채 지친 몸을 돌보는 데만 집중해야 했다. 퇴원 후 매일 방 안에 앉아, 흔한 동네 산책도 하지 않는 낙심한 딸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어느 날 엄마는 자신의 고향으로 하룻밤을 묵는 짧은 여행을 떠나자 권한다. 지친 몸을 따라 마음도 덩달아 지쳐가던 때, 아픔으로 아무런 의욕도 없던 날에 받은 엄마의 제안은 제법 마음을 움직였다. 낯설고 새로운 곳이 아닌 이미 익은 장소로 떠나는 짧은 일정. 모든 게 힘겨워진 자에게도 버겁지 않은 적당한 고됨. 섬에서 쭉 살고 계신 턱에 외할머니를 뵈러 가서야만 겨우 들렀던 엄마의 언니, 이모도 아직 섬에 계셨기에 하루 잠자리를 빌릴 수 있으니 당장 떠날 수 있다. 때가 되어 의무감에 떠나던 길이 아닌 어지간히도 잊고 지냈던 추억의 장소로 다시 향한다니 새삼 설렌다. 살아보니 육지 사람이 섬으로 들어갈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더라.


항상 부모님 뒤만 쫓았으나 이제는 경로를 알아볼 만큼 머리가 컸다.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배를 타야지.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 무엇보다 강렬하게 남아있던 배의 잔상을 오랜만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다. 몇 년 동안 묵혀만 둔 엄마의 운전면허로는 당장 도로를 달리긴 불안했기에 모녀는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고서 통영에 도착한다. 가오치 선착장. 수십 번 와 봤을 테지만 생각 없이 누비던 어린 기억에 가오치란 이름은 없다. 처음 듣는듯한 지명에 몰래 미소가 지어진다. 누가 섬으로 가는 길 아니랄까 봐 물고기 이름 같은 걸 붙여뒀구나. 시간이 한참 남은 덕에 출출함도 달랠 겸 한쪽 작은 식당으로 들어간다. 원체 낯선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물꼬를 트는 엄마는 유독 할머니의 섬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그 능력치가 절정에 달한다. 주인아주머니께 살갑게 말을 붙여 이내 섬 소식을 묻는다. 손바닥만 한 섬도 아닐 텐데 어찌 이리 서로의 안부를 알고 사는 걸까. 뼛속까지 육지 사람인 딸만 주변인이 되어 가만히 흰밥이 돌돌 말린 충무김밥을 입속에 넣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을 찾은 섬 주민 아주머니도 합류하시니 또 한 번 신기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몇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라는 말이 있던데, 섬마을 사람들은 몇 번 건널 일도 없겠다. 엄마는 이미 떠난 지 오래인데도 여전히 섬에 사는 사람처럼 모두와 경계가 없다. 한 사람만 민망한 몇십 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우리는 배에 올랐다.


오월의 평일. 늘 북적거렸던 때 찾던 곳이라 텅 빈 선착장이 한편 낯설었지만, 분명 어릴 적 밟았던 곳임은 분명하다. 한없이 넓게만 느껴졌던 장소가 이제야 한눈에 들어온다. 키가 큰 만큼 세월도 많이 흘렀겠지. 반가운 몸뚱이가 큰 녀석의 벌린 입으로 발을 디딘다. 낡고 거칠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보란 듯 곱게 칠해 말쑥해졌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하나둘 잊고 있던 친숙함이 차차 선명해지며, 여행이라 못 박고 떠나는 뱃길이 다시금 새롭다. 다만 여객선 실내에 머무를 수 없는 호기심만은 여전해 곧장 선상 밖으로 향한다. 철부지 어린 딸의 응석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꼭대기 층으로 올랐던 엄마도 이번만은 자진해 바닷바람을 맞기로 한다. 귀를 때리는 엔진소리에 적응이 될 때쯤엔 이미 배는 뭍에서 멀어지고, 제법 키가 비슷해진 모녀는 가만히 뱃머리에 섰다. 날씨 좋은 봄. 어린 날의 눈길이 바닷속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제는 고개를 들어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여유가 생겼다. 짠내 가득한 시원한 바람을 가슴 속 깊이 들이마신다. 습하지만 상쾌한 공기가 그간 병원과 방안에만 머물러 있던 탁한 속을 시원하게 훑어 내려간다. 이리저리 방향을 돌리며 출발하는 배 끝에 서서 다시 만난 풍광을 한 번에 품으니, 몇 번이나 봐왔을 텐데 이리 보니 절경이다.


오랜만에 정든 곳으로 돌아가는 엄마는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평소에도 농담이 잦은 편이지만, 당장 물에 빠지더라도 이곳 바다에서만은 헤엄쳐 살 수 있을 거라 거드름을 피우는 엄마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가엽다. 멀지도 않은 고향 땅을 왜 이제야 함께 오게 됐을까. 여전히 바닷새들이 곁을 맴돌고, 탁 트인 하늘과 바다는 저 멀리 끝이 없다. 엄마는 곁에 바짝 붙어 눈에 들어오는 작은 섬들에 대해 청하지도 않은 일말의 지식을 마구 뱉는다. 크게 관심이 가지 않음에도 가만히 듣고 섰다. 되려 듣기보다 신이 난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이리도 좋아하면서 먼저 찾을 여유도 없이 살고 있었다니 괜히 미안한 마음마저 들더라.


목적지에 다다라 소식만 전해 들었던 섬 사이에 놓인 다리를 직접 만났다. 그간 큰 강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멋진 다리들을 수도 없이 봐 왔기에 뭐 대수롭냐 싶지만, 섬 사이를 배로만 다녔던 엄마의 어린 시절에는 상상조차 힘든 비약적 발전이라더라. 엄마는 명성을 얻은 자식을 둔 사람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니 꽤 자랑스럽나 보다. 어린 날에는 사량도가 하나의 섬인 줄 알았는데 많은 섬을 뭉텅이로 지칭한다는 걸 이제야 확실히 안다. 상도와 하도의 구분이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정리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 한참 배를 타고 들어간 것 같은데 도착이 금방이다. 기억의 어딘가에 고이 접혀있던 모습들이 하나둘 눈 앞에 펼쳐진다. 섬은 생각보다 잘 차려입고 있어 관광객이 늘어난 덕인지 번듯한 마을 안내판과 숙박업소들도 눈에 띄었다. 난 사람들만 들락거리던 섬이 이제는 제법 손님을 맞아본 행세를 하니, 모습이 변한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서먹하다. 곧장 골목으로 들어가 이모 집을 찾는다. 의심 없이 열린 대문과 똑같이 열려있는 현관문. 아직도 이리 살 수 있나 놀랍도록 서로 간 믿음이 두텁다. 집을 비운 이모를 찾을 생각도 없이 엄마는 짐을 두고 얼른 나가자 재촉한다. 조용하고 낮은 동네에서 고민할 새 없이 항 근처에 덩그러니 세워진 버스 쪽으로 등을 떠민다. 두 대의 버스. 무엇이 다른지 구분이 되지 않지만, 엄마는 망설임 없이 한 쪽으로 가 발을 올렸다.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다는 버스 요금통의 당당한 문구가 바닷가 사람의 기개를 느끼게 해 또 한번 웃음이 났다. 아마 다른 곳에서 그와 같은 배짱을 만났다면 불쾌했을지도 모르나 왠지 쉬이 이해가 가는 게 나름 이곳에 애정이 있긴 있나 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버스 하나는 상도를, 하나는 하도를 향하는 다른 경로는 가진단다. 사량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상도의 지리산을 오르는 목적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타는 버스를 구별 한다면 헷갈릴 일은 없겠다.


도심 버스처럼 뒤따라 경적을 울려대는 차도, 정체된 구간도 없이 유유히 서 있던 버스는 제 나름의 시간에 시동을 건다. 기왕 찾은 장소니 마을버스 대신 제대로 된 관광을 하면 좋겠다 잠시 불평을 가지다가도, 자주 왔던 이곳을 거창히 여기지 못해 금세 포기하고 만다. 대단한 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지 않는 낮은 기대로 출발.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안에는 고작 세 명이 앉았다. 기사님은 익숙하게 운전대를 돌리니, 차량은 크게 기합을 한 번 부리고는 바퀴를 굴린다. 마을버스라는 게 가봤자 얼마나 가겠나 여긴 짧은 생각을 탓하라. 좁은 길 넓은 길, 굽이진 산길 가리지 않고 섬 전체를 꼼꼼히도 누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을 지나 곁으로 광활히 펼쳐진 바닷가를 열심히 질주한다. 요란한 소리와 달리 소박하고 군더더기 없는 운전 솜씨로 버스는 평온하다. 바깥 공기가 궁금해 덜컹거리는 의자에 앉아 창문을 열었다. 꽤 높은 지대를 지나고 있는 듯 멀리 낮게 바다가 보인다. 감사하게 좋은 날을 만나 눈이 부시게 내리쏟는 햇살이 빽빽한 숲을 통과하며 여러 갈래로 부서져 떨어진다. 햇살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녹색 잎의 움직임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다.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 덕분에 멋없이 달리는 버스 길이 한정 없이 오래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파란 바다와 탄탄히 다져진 흙길, 건강하게 뿌리 내린 나무가 끝없이 반복되고, 옆자리 엄마도 쾌속이 달리는 버스처럼 신이나 일일 해설을 자처하고 나섰다. 여긴 누가 살았었고, 저긴 예전에 무엇이 있었다는 과거형 설명이며 지극히 개인사에 따른 이야기들이지만 누구보다 애정이 묻어 나름 들을만하다. 창밖 모든 것이 찬란하여 종착지를 알릴까 벌써 조급해진다. 할머니의 섬이 이리 아름다운 곳이었나. 취향이 변한 건지, 섬이 변한 건지 왜 진작 자주 찾지 않았나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오감을 채우는 모든 것이 여행자의 입맛에 맞다. 번잡한 때를 피해왔으니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하다.


아쉬움으로 종착지에 다다르고 엄마와 이견없이 떠나기 전 한번 더 버스를 타겠다 약속한다. 관광 버스를 탔다면 좀 더 오래 누볐을지 몰라도 아쉬운 맛이 또 매력 아닌가. 이제 어디로 갈까. 말만 여행이지, 엄마도 본인이 자란 동네를 외지사람처럼 돌아다니기가 짐짓 어색한 모양이다. 뭐 특별한 게 필요한가. 이미 상도행 버스에서 기대 이상의 만족을 느꼈기에 그저 동네를 한바퀴 걸어보자 뜻을 맞췄다. 어차피 힘없는 딸과 함께라 빡빡한 일정도 무리일테니 너그러이 즐기기로 한다. 꽃이 만발에 피어 중년 여성은 여느 또래 그들처럼 봄꽃을 친구삼아 꾸준히도 사진을 찍어달라 딸을 조르고 있다. 아픈 모습을 담고 싶지 않아 찍히는 대신 찍어주는 역할을 도맡는다. 사진기 속 엄마의 미소. 이리 가까이 붙어보니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간다. 선명하게 핀 꽃 속에 묻힌 엄마의 생기어린 웃음이 정말로 보기가 좋다. 길가에 아무렇게 볕을 받고 있는 마늘도, 섬에서는 특별한 일도 아닐 길가에 말라버린 바다 생명도 뭍에서 온 이에게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 하나하나 의미가 있다. 어릴적에 봤던 것과 위치는 달랐지만 이제는 말라버린 우물도 하나 발견했다.

 

 
 

엄마는 골똘히 생각하다 작은 외할아버지댁에 가기로 한다. 어릴 적 몇 번 뵌 적은 있지만, 사실 그때는 명확히 누군지도 모른 채 따라다녔다. 자주 만나질 못하니 친가 쪽 가계도는 쉬이 그려지는데 외가 쪽은 영 맹탕이다. 아주 어릴 적 할아버지와 직접 배를 몰고 나가 바다 한가운데서 수영을 했던 나름의 추억이 있기에 긴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아릿하게 기억이 살아 다행이다. 엄마도 제법 골목이 헷갈려 이집 저집 기웃대다 넘겨짚은 어느 집 대문을 밀어본다. 인기척에 노쇠하신 할머니가 나오시고 한참을 헤아리시고서야 상대가 누군지 알아보셨다. 찾는 이가 드물어서일까, 반가움에 두 손을 꼭 잡으시고는 엄마를 집 안으로 들인다. 한낮임에도 캄캄한 불 꺼진 집 안에 할아버지가 덩그러니 소파에 앉아 있다. 누가 왔는지 눈보다 들어 알아채기가 빠른 듯, 할아버지는 소리 높여 전해주는 할머니의 목청에 그제야 엄마를 반겨 맞아주셨다. 기억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 중이라는 할아버지. 멋진 흰 수염에 새까맣고 다부진 몸집으로 뱃머리를 잡던 예전의 모습이 겹쳐 괜히 마음이 서운하다. 당장 거동도 힘들어 보이시기에 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염려해 힘 있게 붙잡지도 못하는 두 분을 뒤로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이를 한참 먹은 손녀에게 용돈을 쥐여주시는 거친 손을 뿌리치며 겨우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갈수록 생기를 더하는 섬에서 다시 만난 할아버지는 홀로 차분히 흐려져가고 있었다.


왠지 헛헛만 마음에 이리저리 동네를 전전하다 이모 집으로 돌아온다. 동네 반장을 자처한 이모는 아직 돌아오지 않아 주인이 올 때까지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본다. 아무리 자매라도 조심스러울 만도 한데 엄마는 제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거실 오른편 주방은 생명이 오래되어 요즘 보기 힘든 옛 물건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이래저래 관심을 보이니 엄마는 망설임 없이 뭐든 가져도 된다 허한다. 어째 주인도 아닌데 인심이 후하니 즐겁다. 저녁 무렵 돌아온 이모는 기억 속 모습보다 더 까만 얼굴로 모녀를 반긴다. 함께 오신 이모부는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나가 손수 잡아 오신 생선을 회 쳐주셨으나 이모로부터 아픈 애가 날것을 어찌 먹느냐 밥상머리에서 신나게 타박만 들으신다. 하루를 버려 애써 잡아 온 실한 놈들이니 억울할 만도 한데 이모부는 묵묵히 밥숟갈만 삼킨다. 오랜만에 들른 처제와 조카 앞에서 면을 구기셨으나 늘 있던 일인 양 조용히 식사만 하시는 모습이 왠지 정겹다. 엄마가 아빠를 다루는 솜씨와 몹시 흡사해 두 사람이 참으로 자매란 확신이 든다. 저녁은 김치에 흰밥만인데도 배가 부르더라.


늦게 잠드는 도시와는 달리 섬마을은 일찍 불이 꺼진다. 누가 전원이라도 꺼버린 듯 이모와 이모부는 조용히 잠자리에 드셨고, 평소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엄마마저도 나름의 일정이 고됐는지 금세 곯아떨어졌다. 일찍 마무리된 하루만큼 먼저 내일을 시작하겠지. 아직도 섬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자꾸만 떠오르는 주제 없는 생각들로 뒤척이다 잠이 든다. 까탈 부리던 소녀는 변함없이 고대로 자랐기에 이부자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으므로 눈을 감아 본다.


아침부터 부산한 소리에 귀부터 깨어났다. 역시나 이른 새벽부터 다들 일어난 모양. 멍한 정신이 제자리를 잡기도 전, 씩씩거리며 방에 들어온 엄마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일찍 떠나겠다 딸에게 선포한다. 괜한 불똥이 튈까 비겁하게 지켜보던 중, 방문 밖에서 날아드는 이모의 핀잔에 상황 파악 완료. 수려한 말발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엄마가 어찌 입을 꾹 닫고 대꾸 하나 하지 못하니 이것이 자매의 서열인가 싶어 구경꾼은 웃음만 났다. 큰일도 아닌 것이 엄마가 욕실을 쓰고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모는 달궈진 프라이팬에 콩을 볶듯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달달 볶아대고 있었다. 기운 빠지도록 별일이 아닌 탓에 금방 풀어지나 했는데 웬걸, 엄마는 진실로 뿔이나 얼굴이 붉다. 나이가 들어도 자매는 자매인가. 꼬마들이 다투듯 여전히 툭탁거리는 환갑을 훌쩍 넘긴 두 여성이 참으로 귀엽고 유쾌하다.


아픈 딸 덕에 억지로 앉은 아침상을 물리고, 엄마는 밖으로 나갔다. 일찍이 싸놓은 짐가방은 곧 떠날 사람처럼 현관에 던져놓은 채. 아직 기분이 덜 풀린 엄마의 비위를 맞춰보려 평소답지 않게 살랑대며 항구를 따라 걷는다. 무조건 이모 잘못이라 대신 탓했다. 슬슬 마음이 풀린 발길이 닿은 곳은 돈지마을. 어디에 붙어있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외할머니 집이 돈지라는 건 날적부터 듣고 자라 익숙하다. 낯익은 할머니의 옛터에는 오래전 큰 건물이 들어와 숙박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낡고 수수한 집이라고만 여겼는데 막상 눈앞에서 사라지니 몹시 아쉽다. 번듯하고 커다란 것들을 동경했지만 어느새 그 속에 살다 보니 꾸밈없이 낮은 할머니의 집이 그립더라. 흙이 지천으로 널린 포근한 터. 엄마도 새삼 서글픈지 서둘러 발길을 돌리려 한다. 다신 없을 지나간 날을 추억할 장소가 사라졌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고 자라 마지막까지 부모님이 계시던 곳. 엄마도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겠다 깨닫자 문득 엄마가 딱하다.


 조그맣던 슈퍼 대신 큰 마트가 자리 잡았지만, 섬 구석구석엔 여전히 그대로인 모습도 많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벌써 점심때. 엄마는 화가 가라앉았음에도 언니에게 부릴 자존심은 남아있었던지 급히 배표를 끊어버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준비 없이 온 여행이라지만 이다지 계획 없이 되돌아갈 줄이야. 허탈해도 어쩌겠는가. 중간에서 등이 터지기 전에 곱게 떠나자. 엄마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이모에게 전화를 건다. 막상 홧김에 떠나자 결정하고는 민망함에 먼저 화해를 청하나 보다. 모녀는 항구에서 몇 발 떨어지지 않은 식당에서 멍게 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무뚝뚝한 이모도 자신의 이름을 팔면 잘 대해줄 거라 나름의 상냥함을 펼쳤으니 추천대로 한다. 날것은 피하고 있어 하나는 살짝 데쳐 달라 주문한 뒤, 깔끔하게 차려진 한 상을 맞았다. 화창한 날씨에 나가 먹자며 이미 몸을 일으킨 엄마의 말에 망설임 없이 자리를 옮긴다. 바다가 보이는 노상에서 먹는 신선한 식사. 별다른 것 없어 보이는 한 그릇을 뚝딱 비벼 입으로 넣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엄마와 시선이 마주친다. 맛있다. 정말 맛이 좋다. 눈이 번쩍 뜨이도록 감칠맛이 나는 신선한 멍게. 묻지도 않았건만 연신 호평을 뱉어내며 엄마와 신속히 한 대접을 비웠다. 뱃구레가 허락만 한다면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을 텐데. 대체 어찌 이런 맛을 낼까 진정으로 궁금하다. 갓 잡은 재료가 비법일까. 다시 생각날 거라 확신이 들어, 놓는 숟가락이 아쉽다. 항구 곁에 앉아 속에 생명을 가득 품은 바다를 바라보며 삼킨 한 그릇이 참으로 알찼다.


아쉽지만 그대로 돌아간다. 여러 번 와 본 곳이라 이리도 쉽게 떠날 수 있나 싶다. 공들여 떠난 여행지라면 어느 누가 이렇게 쉬이 돌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생각보다 일찍 섬을 나섰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어렵던 중년 자매의 어이없는 다툼은 실로 화를 일으킨 모양이다. 별것 아닌 일에 갑작스레 일정이 당겨지니 황당하면서도 우습다. 어쩌면 이리 돌아가는 게 이번 여행의 마무리로 무엇보다 어울릴 게 없을 것도 같다. 급히 왔으니 또 겨를없이 떠나는 거지. 이 섬에서 엄마와 이모는 저리 숨김없이 싸우며 자랐을까. 문득 사량도에 덮어둔 엄마의 지난날이 궁금해진다. 무용담처럼 들어왔던 엄마의 옛 시간. 사는 이 모두가 모를 일 없고, 그리 모두가 친구였으며 섬 밖이 궁금해 머리가 크자 곧바로 섬을 벗어났다던 치기 어린 청춘이 자란 땅.
몸이 성치 않아 모두가 찾는다는 유명한 산을 올라보지는 못했지만, 찬찬히 섬 아랫길에 머문 하루에도 만족한다. 엄마를 품었던 곳이라 어떤 장소보다 정겹고 온화하다. 어린 날 느꼈던 섬마을의 불편한 따끔거림도 세월에 무뎌진 건지 보드랍고 따스하기만 하다. 뭍은 너무도 변해 뛰놀던 옛터가 구분도 못 하게 변해버렸지만, 사방이 물로 막힌 섬은 아무리 모습이 변했다 해도 바다에 뜬 곳이라 눈에 익어 낯설지 않다. 제자리에 있어 주니 마음이 흐뭇하다. 별다른 준비 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던 어린 날을 꺼내 보니 지친 마음에 생기가 돈다. 고맙게도 맥없이 쳐져 있던 아픈 이에게 날 것 그대로의 바다와 자연의 생명력은 다시 정신을 차릴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엄마와 딸, 각자의 어린 날이 모두 이 섬에 있다. 두 사람에게 이만큼 의미 있는 장소가 또 어디 있을까. 멀지 않은 곳에 툭하면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가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괜히 유명해진 섬마을이 서운하기도 하지만 유년 시절이 녹아있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내 것이니 문제없다. 가끔 찾아와 그때처럼 꾸밈없이 지내고 싶다. 돌아오는 뱃머리에서 엄마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약속한다. 돌아가면 좀 더 힘을 내보기로. 다음번엔 좀 더 건강한 모습으로 이곳을 찾기로. 또 어린 날 그때의 우리처럼 꾸밈없이 웃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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