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노련, 국회서 기자회견·특별결의문 발표 등 선상투표제 입법 촉구
국회, 비밀보장 측면에서 선상투표제 실행 난색
승선 중인 선원들의 투표권 보장을 위한 ‘선상투표제’가 정치권의 주요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국외에 거주하는 19세 이상 재외국민에 대한 투표권을 보장한다는 ‘재외국민투표법’ 입법이 추진되면서, 오랜 기간 투표권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선원들의 투표권 보장이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1월 29일 재외국민투표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하면서 선원들도 재외공관 방문을 통해 투표가 가능케 했으나, 선상투표제는 비밀보장의 어려움을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에 선상투표제를 오랫동안 지지해온 김형오 국회의장이 선상투표 도입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재외국민투표법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여 재외국민투표와 관련한 3개 법안 통과가 3일가량 늦어지기도 하는 등 논란이 증폭됐다.
해상노련, 선상투표제 입법화 촉구 기자회견
이에 따라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은 유기준 한나라당 의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과 공동으로 2월 4일 국회의사당 본관 기자회견실에서 ‘선상투표제 입법화 촉구’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유기준 의원은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에 국회가 마련한 선원부재자투표는 현실적으로 실효성을 갖기 어려우며 여우집 잔치에 두루미를 초대하여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으라는 이야기”라며 선원의 투표를 위해 운항 중인 선박이 정박하여 공관을 방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유 의원은 “선원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선상투표제가 비밀투표원칙이라는 부차적 요소로 인해 좌절돼선 안 된다. 반드시 재검토를 통해 선상투표제를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어서 해상노련의 방동식 위원장도 “2007년에 이미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선상투표제의 도입을 거부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우수한 선원 인력의 참정권을 무관심하게 방치하는 것”이라며 2월 임시국회에서 선상투표제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함을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국해기사협회의 민홍기 회장을 비롯하여 한국노총 출신의 강성천 의원과 이화수 의원도 참석하여 선상투표제 도입의 필요성을 지지했다.
한편 해상노련은 2월 18일 개최된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도 선상투표제 국회통과 특별 결의문을 발표하고 임시국회 회기 중 선상투표제가 통과되지 않을 경우 궐기대회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재판소 “선상투표 제한은 헌법 불합치”
선상투표제 도입논란은 10여 년 전인 1998년 선원의 선거권 확보를 위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개정을 국회에 공식 청원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03년 김형오 의원과 55명의 국회의원이 선상투표제 도입을 위해 서명한 선거법 개정법률안을 제출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의 배제 결정에 대한 수정안까지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바 있다.
하지만 부결 직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하여 2007년 선원들의 투표권 보장하지 않는 현행 공직선거법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헌재는 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선박에 장기 기거하는 선원들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아무런 법적 장치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들의 선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모사전송 시스템이나 기타 전자통신 장비를 이용한 선상투표 결과 그 내용이 일부 노출될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국외의 구역을 항해하는 선박에 장기 기거하는 대한민국 선원들의 선거권 행사를 보장한다고 하는 긍정적인 측면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결정요지를 밝힌 바 있다.
‘쉴드 팩스’ 이용하면 비밀보장 가능
해상노련의 선상투표제 도입요구안은 선거일에 원양구역을 항해하는 선원이 팩시밀리를 통해 투표용지를 송신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인 비밀투표원칙도 선거관리위원회의 팩시밀리를 수신 내용이 자동으로 감추어지는 ‘쉴드 팩스(shield fax)’를 사용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쉴드 팩스는 수신시 용지가 절반으로 접히는 장치로 비공개 투표를 가능케 할 수 있다.
해상노련측은 “실제 미국과 일본, 뉴질랜드 등의 국가에서는 선상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일본은 이미 2000년부터 선박에서 팩시밀리를 이용한 투표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비밀보장의 문제가 제기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언급하며, IT와 정보통신 기술 강국인 우리나라가 비밀보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못해 선상투표제를 도입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비밀보장’이라는 각론이 ‘선거권 보장’이라는 본론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1. 공직선거법 개정요구안
2. 대상 선거 및 신고대상 선원
3. 선상투표 절차
4. 선상투표기간 및 투표장소 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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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국회가 선상투표제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데에는 비밀보장 문제 외에도 △선장에 의한 강제투표행위 △외국적선 승선자 투표권 보장 등의 이유가 있다. 선상투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선장이 임시 선거관리 공무원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선상의 위계질서 때문에 선장의 정치적 성향이 선원들에게 강요될 수 있으며, 한국인 승무원이 극소수인 외국적선에서는 투표를 위한 조치가 어려울 것이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상노련은 “우리 사회는 이미 민주주의가 충분히 진행되어 힘의 논리로 정치적 견해가 흔들리지도 않으며, 타인의 생각을 지배하려는 태도도 보기 힘들어졌다”고 항변하고 있다.
재외국민투표법 통과로 인해 국내에서 병역과 납세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것이란 우려 속에서, 의무만 수행하고 참정권은 얻지 못하는 선원들의 소외감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해상노련은 기자회견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연간 2조원에 가까운 외화를 획득하고 세금과 각종 사회보험료 납부 의무를 철저히 이행하며, 산업역군으로서 사회와 국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선원들의 참정권에 정치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한 바 있다. 선상투표제는 2월 진행 중인 임시국회 회기 중 도입 가부가 결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