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걷는 자의 것이고, 섬은 건너는 자의 몫이다’

제7회 섬여행 후기 공모전 시상식이 구랍 1일 한국해운조합(KSA) 본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해양수산부가 주최하고 해운조합이 주관한 이번 공모전에는 160여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심사 결과 대상 1편, 최우수상 1편, 우수상 2편, 바다로 특별상 1편 및 장려상 10편 총 15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상을 수상한 이리나(필명)씨는 ‘길은 걷는 자의 것이고, 섬은 건너는 자의 몫이다’는 글을 통해 섬 여행의 긴장과 느닷없는 인연의 행복, 섬 여행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낯선 즐거움을 유려한 문체로 펼쳤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추억에 얽힌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 신민영씨의 ‘어린 날의 섬, 사량도’가 최우수상에 선정됐으며, 우수상은 나호선씨의 ‘내 거울이 비추는 곳, 덕적도’와 최옥숙씨의 ‘청산도는 ‘쉼’이다’ 2편이 각각 선정됐다. 바다로 특별상에는 김아람씨의 ‘섬이랑 썸탔섬’이 선정됐다.
해운조합의 협조로 대상 수상작과 최우수상, 우수상 수상작을 수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섬이 신비로운 이유는 쉽사리 발을 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날씨는 괜찮은지 여객선은 언제 뜨고 묶이는지, 미리 확인하고 준비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다. 그래서 더 간절하고 소중하고 애틋하다. 섬에 잠시 다녀가는 육지 사람도, 섬에 단기간 머무르는 임시 생활자도, 섬에서 태어나 쉽사리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토박이에게도 섬은 특별하다.
도시 출신이며 섬 생활 5년 차인 나는 섬에 들어온 뒤 연례행사로 굵고 짧은 해외여행을 추구했다. 섬에서는 뭍으로 잠깐 볼일을 보러 가려 해도 여객선 운항 시간 때문에 기본 하루 이상이 소요될 때가 많다. 자연스럽게 두 번 외출을 한 번으로 줄이게 된다. 그리고 짧은 여러 번의 나들이 기회를 모아 가성비 높은 해외여행을 꿈꾼다.


지금은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내지만, 섬에 들어온 후 벼르고 별러 유럽서점 투어를 다녀왔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여행지나 여행 상품보다 함께 발과 마음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소중한 기회였다. 서로 비슷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한 열하루는 매일 새로 꾸는 꿈같았다.
패키지여행을 다녀와 본 사람은 안다. 여행 마지막 날, 그새 부쩍 친해진 여행 동료들은 이제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도 계속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주 만나 여행지에서 나눈 우의를 이어가자 도원결의한다. 안 그럴 이유가 없고, 반드시 그럴 것만 같다. 그러나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킬 것 같던 맹약은 세월과 생활의 더께에 덮이고, 나중에는 쓸쓸한 날 한 번씩 꺼내 보는 사진 속에서만 펄펄 살아 존재한다.
그러나 유럽서점 여행을 함께 다녀온 이 팀은 달랐다. 각자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틈틈이 안부를 물었고, 가슴에 남는 글귀를 공유했으며, 힘 빠질 때 서로에게서 에너지를 얻었다. 언제 다시 만나도 늘 반가울 이름이었고, 함께한 시간을 생각만 해도 입가에서 희미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그 여행 친구들에게 섬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참에 나도 내가 사는 곳 아닌 다른 섬을 다녀보고픈 욕심도 있었다. 함께 여행 다녀온 친구 중에서 또래 다섯이 마음을 모았다. 마침 평소 알고 지내는 분이 남해의 여러 섬을 해상택시로 투어 하는 상품 (‘섬잇다’)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터라, 그 팀과 합류하면 일이 쉬울 듯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로 방역 단계가 들쭉날쭉해서 일정이 자꾸 변경됐고, 여행의 가부도 불투명한 상태로 차일피일 날짜만 미뤄지고 있었다.
끝내 ‘섬잇다’ 팀의 합류가 불발되자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비록 길라잡이 역할을 맡을 내가 길치와 방향치이고, 해상 택시 대신 여객선을 타고 들고 나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나를 따르라’ 깃발을 들어 올렸다. 여행 친구들은 무한 충성을 약속하며 겁도 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감사하게도 섬 여행의 기본 얼개는 ‘섬잇다’의 이동열 대표님이 짜주셨다. 몇 개의 안 중에서 통영 근처의 우도, 연화도, 한산도 세 개의 섬을 3박 3일 일정으로 소화하는 것을 택했다. 통영 산양읍의 슬로비 게스트하우스에서 2박하고 우도 펜션에서 1박 하기로 했다.
여행의 3요소가 장소, 경비, 사람이라면 여행의 3단계는 여행 전의 설렘, 여행 당시의 감격, 여행 후의 아련함이다. 우리는 여행 전부터 단톡방에 모여 설레는 마음을 주고받으며 기대감을 높였고, 만나서 하고 싶은 일과 가고 싶은 장소를 추천해가며 늦가을의 외유를 간절히 기다렸다.
11월 첫째 주 사람 왕래 드문 월요일에 우리는 각자 다른 지역을 출발해서 오후 6시에 통영으로 집결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도 가는 여객선을 탈 목적으로 사전 1박을 하는 거였으므로 첫날 저녁은 오로지 해후의 기쁨을 나눈 뒤 먹고 놀기만 하면 됐다. ‘슬로비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짐을 푼 뒤 바로 거나한 저녁과 영화 관람으로 첫 일정을 소화했다.


아, 아직 밝히지 않은 게 있었다! 우리 다섯은 모두 50대 중반의 기혼여성이다. 현실의 무게감과 적지 않은 장애와 태클을 극복하고 3박 3일 일정을 얻어낸 날, 50대 여성들의 마음가짐이 어떤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레스토랑 ‘오월’의 이름난 셰프님이 코스별로 우리 앞에 내주는 고급스러운 음식도 감격스러웠지만, 영화 시작 시간에 늦을까 봐 주차장에서부터 숨이 차도록 계단을 올라도, 사전에 힘을 너무 많이 빼서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아도, 길을 잃고 차로 골목을 계속 돌고 돌아도 우리는 즐겁기만 했고 흥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이층 침대 세 개에 나눠 자리를 잡고 정리를 한 뒤 다시 중앙에 모였다. 갑자기 모두의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번지나 싶더니 각자 선물로 챙겨온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손수 뜬 마스크 스트랩, 책, 홍삼 젤리, 초콜릿 등이 바쁘게 돌고 돌았다. 선물할 물건을 챙기며 기꺼웠을 마음이 예뻐서 서로 마주 보고 또 한참을 웃었다. 마침 평일이라 게스트하우스에 다른 손님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터라 목소리를 줄일 필요도 없었고, 다음날 일찍 기상해야 했지만 그 정도 체력은 돼서 늦게까지 근황을 묻기에 바빴다. 


명실상부 여행의 첫날이 밝았다. 첫 목적지인 우도는 섬이 작아 차 없이 들어가는 게 낫다고 해서 차는 게스트하우스 주차장에 세워두고 게스트하우스의 밴을 타고 통영항으로 갔다. 우도행 배에 오르자마자 친구들은 뱃전에 붙어 서서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유혹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갈매기들은 새우깡 간식에 이골이 났을 텐데도 여객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멋진 날갯짓과 ‘손안 물고 새우깡 물어가기’ 신공을 보여주었다. 이제 배 타는 덴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섬 주민인 나는 벤치에 여유롭게 앉아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자주 보는 사람들도 아니건만 우리는 어떤 인연이기에 이렇게 만나 웃음을 섞고 있을까. 여행 전에 기대감을 높이고자 선형이 단톡방에 올려준 박노해의 시 구절처럼 ‘인연은 서로를 알아보고 경외하는 것’이기에 가능한 일 같았다.


1시간이 채 못돼 우도의 작은 선착장에 내려 달달달 캐리어를 끌고 예약해둔 펜션을 찾아갔다. 미리 알아본바, 통영 우도는 20여 가구가 사는 작은 섬이지만 전국 일곱 개 우도 중에서 제주 우도 다음가는 크기라고 했다. 인접한 연화도와 보도교로 연결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연화도에 편의시설을 의존해서인지, 손때가 덜 묻고 숲이 훼손되지 않아 마치 열대우림의 어느 작은 섬에 들어선 듯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펜션에 짐을 풀고 왁자지껄 떠들어가며 구멍섬을 볼 수 있는 우도 끝자락으로 갔다. 자갈로 된 해변에서 구멍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물수제비도 던져가며 노닐다가 다시 섬 입구 쪽으로 돌아왔다. 우도에서는 유명 맛집 ‘송도호 식당’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기로 되어 있었는데, 계획이 무색하게도 그곳이 우도 유일의 식당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걱정했으나 곧 기우였음이 밝혀졌으니, 송도호 식당에서 먹은 음식과 식당 사장님과 보낸 정겨운 시간은 우리 여행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포인트 중 하나였다.


점심 메뉴는 해초 비빔밥이었다. 차도 없이 섬에 왔으니 막걸리와 해물파전도 곁들이기로 했다. 우리가 주문한 건 그뿐이었지만, 딸려 나오는 반찬 가짓수가 끝이 없었다. 모두 바다에서 잡아 올리고 채취한 것들로 양념해 무치고, 삶아 볶고, 데쳐 초고추장과 함께 그릇에 담겨 나왔다. 리액션 장인에다 숙원 끝에 성사된 외유에 한껏 들뜬 우리는 손 크고 솜씨 좋은 사장님의 요리에 금광이라도 발견한 듯 손뼉 치고 비명 지르며 환호했다.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말없이 꾸역꾸역 음식을 먹는 손님보다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 올리며 행복해하는 쪽에 더 마음이 가게 되어 있는 법! 사장님은 계속 음식을 내주었고, 우리는 하나 둘 허리띠를 풀었다. 
사장님은 우리보다 두어 살 많은 언니여서 서로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다가도 금세 함께 한숨을 쉬며 공감했다. 사장님과 나눈 대화 중에서 내게 가장 깊이 와 닿은 건 두 딸의 사연이었다. 워낙 주민 수가 적은 섬에서 또래 없이 외로운 딸들은 손님들을 그렇게 따랐단다. 명랑하고 붙임성이 좋은 아이는 손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지만, 시간이 되면 손님들은 언제나 가게 마련이어서 딸들은 선착장에서 손을 흔들며 눈물바람을 하는 게 일상이었단다. 보다 못한 사장님이 큰딸을 뭍에 사는 친정어머니한테 보내기로 했다. 할머니와 살면서 유치원 다닐 때는 그렇게 명랑하던 아이가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다시 섬에 들어와 연화도에 있는 초등학교 분교에 다니게 되자 또다시 말을 잃고 외로움을 탔다. 나이별로 섬을 들고 나기를 여러 번 반복한 끝에 지금은 두 딸 모두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힘든 엄마를 돕겠다고 주말마다 들어온단다. 씩씩한 여장부인 사장님이 딸들 얘기를 하면서 눈가가 촉촉해졌는데, 그 심정을 모를 리 없는 우리도 함께 마음이 아팠다.


우도에서는 바다낚시를 체험해보기로 되어있었다. 선착장에서 선장님이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갯바위 틈에서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고양이와 놀았다. 처음엔 한두 마리만 가까이 다가오더니 곧 여기저기에서 기다렸다는 듯 색색의 고양이가 튀어나왔다. 우리 다섯 명 중에서 고양이를 유독 무서워하는 정아가 사진을 제일 많이 찍었다. 넌 곧 집사가 될 운명이라고 우리가 놀렸더니, 아들이 워낙 고양이를 좋아해서 사진을 보내려는 것뿐이라 우겨댔다. 분명 몇 달 안에 고양이를 들이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주리라 모두 장담했는데 아직 그런 연락은 없다.
한참 놀고 있자니 선장님이 준비 완료를 알렸다. 구명조끼를 입고 흔들리는 작은 배에 올라타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선장님도 우리 또래인지 배 안을 채운 음악이 죄다 한창때 즐겨듣던 가요와 팝송이었다. 미리 주문했대도 이 정도 멋진 분위기를 연출하기는 어려웠을듯했다. 우리는 어기영차 노를 저어라 출정가 대신 우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래들을 목청껏 따라 불렀다.


나는 바다낚시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체험 낚시를 할 때는 바다낚시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물고기 잡힐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인 곳으로 배를 몰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팩트로 김을 빼는 대신 첫 바다낚시에서 도다리를 잡은 내 무용담을 끄집어내 친구들의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사실 우리는 선장님이 완벽하게 준비해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가 고기가 미끼를 물면 줄을 감아올리기만 하면 됐지만, 진지함만은 베테랑 낚시꾼 같았다. 그러나 고기가 줄을 잡아당기는 것보다, 강태공 흉내 내며 세월을 낚는 것보다 우리를 더 황홀경에 빠트린 일이 곧이어 일어났다. 망망대해에 표표히 떠있는 작은 낚싯배 주변으로 뭔가 발갛고 심상찮은 기운이 모이는가 싶더니 곧 까만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수평선을 따라 핏빛 노을이 둥글게 띠를 두른 채 우리 주변을 빙빙 도는 듯했다. 아니 도는 건 우리였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어 계속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보니 우리가 돌고 바다가 돌고 하늘이 돌았다. 모두 장관에 압도되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노을만 바라보았다. 친구들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나처럼 친구들도 머릿속이 텅 빈 채 그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이게 과연 현실이 맞는지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광경이 눈에 선하다. 

 
 

우리가 노을에 취해 있는 동안은 물고기들도 숨을 죽이고 있었는지 누구 하나 낚싯대가 당기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니, 설사 그런 느낌이 들었더라도 알아채지 못했거나, 나중으로 미루고 싶었을 것이다.
한참 만에 노을이 떠나고 까맣고 말간 밤바다와 하늘과 우리만 남았다. 그제야 우리는 마법에서 깨어난 듯 한 명씩 입을 뗐고 전보다 더 시끌벅적해졌다. ‘이게 말이 돼? 우리가 정말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게 맞아?’ 왁자지껄 떠들다 말고 자영이 선장님께 한마디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매일 보면 꿈에서도 노을을 만날 수 있을 테니 얼마나 좋으냐고. 그때 선장님이 철딱서니 없는 우리에게 던진 한마디에 우리는 빵 터지고 말았다. ‘아이고, 꿈에서까지 바다를 만나느니 차라리 군에 한 번 더 가는 꿈을 꾸는 게 낫겠심돠’ 그래, 그런 거지. 우리에게는 낭만이지만 선장님에게는 처절한 현실일 테니까. 하긴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까운 예로 그날도 선장님의 노심초사가 밑거름되어야 우리 같은 관광객이 만족할 수 있었다. 너울이 심해서 계획된 낚시를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다 같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데 누구는 연거푸 고기를 낚고 누구는 빈손이면 얼마나 실망이 클까. 과묵하고 행동 재바른 선장님의 시름이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되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 한 친구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더니 미친 듯 낚싯줄을 감아올렸다. 선장님이 전갱이를 낚았네, 쥐치를 낚았네, 재주가 좋네 하는 통에 작은 배 안은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정아는 돔을 낚아서 ‘돔선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릿수와 어종이 조금씩 차이는 났지만 한 명도 낙오된 사람 없이 모두 물고기를 잡았으니, 또래 선장님도 그제야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우리는 한 명이라도 빈손이면 밤새 숙소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틸 기세였으니.
송도호 식당에서의 저녁은 더 흥겨웠다. 우리가 잡은 고기로 사장님이 회 뜨고 찜하고 매운탕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바다낚시를 정복한 사람들처럼 기고만장했다. 저녁이 되자 안 그래도 적막한 섬은 고요 속에 잠들었고, 그날 우도에 들어온 유일한 외부인인 우리들은 당장 그 섬으로 이주해 올 것처럼 신명에 들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날 일찍 뭍에 볼일 보러 가야 한다는 사장님을 놓아드리고 펜션에 들어가 또 한참을 떠들다가 각자 자기만의 루틴에 빠져들었다. 둘은 하루치 만 보를 채워야 한다며 방안을 빙빙 돌았고, 둘은 책을 읽었고, 또 하나는 가족들에게 그날 찍은 사진을 보내기에 바빴다. 전날은 게스트하우스의 각자 침대에서 편히 잤는데 넓은 방에 주르륵 누워 잠이 와줄까 걱정하면서도 한 명씩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찍 눈을 떴다. ‘일몰만 멋지면 우도가 아니야, 일출은 더 멋져!’라는 식당 사장님의 말씀을 들어둔 터라 일출은 반드시 봐야 했다. 부스스한 머리를 적당히 매만진 뒤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왔다. 분명 인터넷으로 확인한 일출 시간 전인데 탁 트인 곳 어디에서도 해 뜨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고 사방은 이미 희붐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마침 배를 타러 나가던 식당 사장님을 만나 야트막한 산 위의 일출 포인트로 가야 해 뜨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갔다. 맞게 가고 있는지 우왕좌왕하는데 멀리서 해 뜨는 게 보였다. 아, 우도는 도대체 어쩌려고 우리한테 이렇게 아낌없이 다 주는 것인가. 전날 일몰에 이어 일출 역시 숨을 멎게 하고 말을 잇지 못하게 했다.


흑염소가 자기네 영역에 들어왔다고 ‘매헤헤’ 울어대는 밭틀길을 지나오며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정겨운 장소에 관해 얘기했다. 자영은 KOICA 단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나와야 했는데, 에티오피아에서 마음 내려놓는 훈련이 된 것 같다며 언제든 꼭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처음보다 오히려 연차가 쌓일수록 섬 생활이 새록새록 좋아져서 앞으로 어디에서 살든 내겐 평생 섬이 마음의 고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한 친구는 그날 그곳에서 우리가 함께 바라본 풍경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있으리라 말해서 모두의 ‘엄치척’을 받아냈다.


그날은 연화도에 가서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짐을 챙긴 뒤 골목을 오르내리다가, 어제부터 계속 음악이 흘러나오던 다이빙숍 앞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는 밑도 끝도 없이 잠시 차 한 잔하고 가라며 우리를 안으로 청했다. 우리는 과연 들어가는 게 맞을지 서로 눈치를 보다, 뭐 죽기야 하겠냐는 객기로 안에 들어갔다. 작은 시골집 두 채를 이어 만든 실내는 숙박시설을 겸한 다이빙숍이었다. 우리는 사장님이 직접 나무를 잘라 만들었다는 앉은뱅이 다탁에 앉아 두리번거리며 실내를 구경했고, 사장님이 내온 진귀한 차와 직접 재배한 과일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완전히 무장해제 되어버렸다. 사장님이 다이빙을 시작하게 된 사연, 우도로 오기까지의 과정 등을 들으며 친구들은 곧 각자의 반려자들과 그곳에 다이빙을 하러 오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게다가 사장님이 우리와 비슷한 연령대이고 고향이 강릉이라는 부분에 이르자 갑자기 친구 선형이 간단한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이 그리 멀지 않은 친척이고 선형이 사장님의 숙모뻘 된다는 게 확인됐다. 또 한 번 떠들썩하게 두 일가친척의 느닷없는 상봉을 축하했고, 여행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낯설지만 신기한 인연에 감탄했다. 


캐리어는 펜션에 놔둔 채 보도교를 걸어 연화도로 건너갔다. 연화도는 불교적인 이름답게 큰 절과 바다를 내려다보고 선 거대한 불상과 사명대사의 흉상이 모셔진 토굴 등 불교 색채가 강한 섬이다. 보덕암 가는 길에는 최고 전망을 자랑하는 해우소가 있다. 화장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망망대해와 시원한 바람을 마주하고 서면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의 시름이 다 날려가 버리는 듯하다. 연화도에 가는 사람에게 딱 한 곳을 권하라고 하면, 눈과 가슴이 뻥 뚫리는 공중화장실 ‘해우소’에 꼭 들어가 보라 말하고 싶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연화도가 초행이고 기독교인이라 트래킹에 방점을 찍었지만, 두어 번 와본 적 있는 나는 꼭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지난번에 사명대사가 수행했다는 토굴에 들렀을 때 공간을 가득 채운 대사의 좌상을 보고 규모와 입체감에 압도되어 소름이 오싹 끼쳤었다. 존재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어마어마했다. 마치 수백 년 전 인물인 대사가 오늘의 나에게 소리 없는 사자후를 터트리는 것 같았다. 당시 나의 상황 때문에 그런 감정에 휩싸인 것인지, 아니면 사명대사라는 인물이 앞으로 내게 엄한 스승 역할을 하려는 것일지 궁금했다. 날씨나 동행인의 유무, 내 감정 상태에 따라 대사를 대하는 느낌이 달라질지 어떨지 꼭 다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출렁다리와 용머리 전망대까지 다녀왔고, 다시 우도로 넘어가 섬을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친구들에게 말을 꺼내 볼 수 없었다. 아쉽지만 사명대사 토굴에는 나중에 나 혼자 다시 올 것을 기약했다.

 

 
 

짧은 연화도 일주를 끝내고 다시 우도로 넘어와 짐을 챙겨 펜션 밖으로 나오니, 그날 오전부로 아는 사이가 된 우도 다이빙숍 김영래 사장님이 승합차에 우리 짐을 실어 선착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는데 김 사장님이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다음날 한산도에 잠깐 들를 계획이라 했더니, 혹시 한산도에서 요트를 타보겠느냐고 물었다. 요트? 요트!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김 사장님은 당장 한산도 계시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의사를 타진했고, 곧 승낙이 떨어졌다. 한산도 전승균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받아 챙긴 뒤 김 사장님과 작별하고 통영행 여객선에 올랐다.
통영항에 픽업 나와 주신 슬로비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승합차를 타고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짐을 들여놓고 다시 나왔다. 통영항 근처에서 저녁을 먹은 뒤 그즈음 개장한 디피랑에 다녀왔다. 남망산 공원에 위치한 디피랑은 디지털 테마파크이다. 빛과 인공조명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세계는 섬과 섬을 들고 나는 아날로그적인 우리 여행과는 상반된 분위기여서 나쁘지 않았다. 그날은 우리 3박 3일 일정의 마지막 밤이어서 밖에서 헤매기보다는 숙소에서 우리만의 느낌대로 보내고 싶어 편의점에서 와인과 스낵을 산 다음 일찌감치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침대 사이 좁은 공간에 캐리어를 눕히고 그 위에 와인 상을 차렸다. 준비해 간 블루투스 스피커를 창가에 세워두고 신청곡을 받아 우리만의 BGM도 만들었다. 각자의 취향이 묻어나는 선곡이 모두 좋았지만, 그날의 압권은 현영의 신청곡이었다. 떠들썩하고 표현에 아낌없는 나머지 넷과는 달리 조용하고 철학적이면서도 은은한 미소로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현영다운 노래였고, 잊고 있던 추억의 곡이어서 더 울림이 컸다.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가만히 눈감고 귀 기울이면...’ 송창식의 밤눈이었다. 모두 침대 모퉁이에 머리를 기대고 노래에 심취했다. 밤눈의 마지막 소절 ‘한 발짝 두 발짝 멀리도 왔네’를 들으며 우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 발짝 두 발짝 우리를 지금 이곳으로 떠밀어준 인연과 운명이 신기하고 감사해서 친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자꾸만 비실비실 웃었다. 
다음 날 아침, 가볍게 단장한 뒤 구내 카페테리아에 가서 슬로비의 자랑인 맛깔난 조식을 먹었다. 평소 가족들의 끼니 걱정을 달고 사는 우리는 어떤 산해진미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소박하고 정갈한 한식에 더 감격했다. 우리 중년여성들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보통의 아침을 차려준데 감사하며 한 그릇씩을 너끈히 해치웠다.


체크아웃 준비를 하는데 전날 소개받은 한산도 전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몇 시 배를 어디에서 타고, 내리면 어디로 오라고 세심하게 안내해주셨다. 통영항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는 한산도는 이름처럼 한산하고 정갈한 느낌이었다. 전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포구로 차를 몰아가니 멀리서 초로의 남자분이 손을 흔들고 계셨다. 우리는 각자를 소개한 뒤 바로 요트에 올라탔다.
전 선생님은 부산에서 교사로 일하다 은퇴하고 한산도로 오셨는데 요트와 낚시 경력이 상당했다. 한산도에서 제2의 인생을 살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 근처 섬의 이름과 특징, 한산도에 사는 이색적인 사람, 요트 여행하셨던 경험뿐 아니라 요트의 작동 원리와 사모님과의 대학 때 로맨스까지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요트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며 강인하고 주체적인 한 사람의 인생을 굵은 선으로 훑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선생님은 딸 같은 우리가 신기한지 이것저것 물어봐 주셨고 당초 허락하신 30분을 서너 배 넘긴 시간 동안 돛을 부풀려주셨다.


요트 항해를 마치고 포구로 들어와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아기자기한 사모님과 인사했다. 밥이라도 먹고 가라는 두 분의 호의를 정중하게 사양하고 다음에 꼭 다시 만나 뵙고 싶다는 바람을 남긴 채 선착장으로 갔다. 배 시간 때문에 한산도는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지만, 다음 섬 여행에 꼭 다시 한산도를 포함하자는 다짐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통영항에 도착하고 나면 각자의 갈 곳으로 서둘러 흩어져야 했으므로 배 안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모두 섬 여행의 매력에 흠뻑 빠진 터라 곧 다시 만나자 약속했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잠시 소강상태여서 운 좋게 섬에 한 번 다녀온 뒤로 약속을 정하기만 하면 방역 조치가 상향되는 바람에 취소하기를 두어 번, 그 좋은 섬은커녕 다 같이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문득 그리울 때면 한 번씩 단톡방에 모여 수다를 떨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정겹고 흥겨울 수 있음을 알기에 오늘의 기다림이 야속하지만은 않지만, 얼른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란다.


섬은 자유요, 구속이다. 섬은 낭만이요, 공포이다. 섬은 고요요, 들끓음이다. 섬을 조금 아는 내가 섬을 처음 알아가는 친구들을 안내해 다녀온 3박 3일의 기억 덕분에 우리는 언제고 다시 만나 자유이자 구속을, 낭만이자 공포를, 고요이자 들끓음을 확인할 준비가 되어 있다. 때가 오면, 언젠가 선형이 단톡방에 올려준 박노해의 시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를 인용해 ‘길은 걷는 자의 것이고, 섬은 건너는 자의 몫이다’라는 문구로 친구들을 또 꼬여볼까 한다. 그러면 그때도 친구들은 서울, 일산, 대전, 용인에서 한달음에 달려올 테고, 길치와 방향치이지만 섬 주민이라는 이점을 가진 나를 겁도 없이 따라나설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박노해의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를 함께 외우며 씩씩하게 섬과 섬을 넘나들 것이다.
‘길은/길을 걷는 자의 것이다// 젊음은/ 젊음을 불사르는 자의 것이다// 사랑은/ 사랑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자의 것이다// 창조는/ 과거를 다 삼켜 시대의 높이에 선 자의 것이다// 계절은/ 계절 속을 거닐며 향유하는 자의 것이다// 인연은/ 그를 알아보고 경외하는 자의 것이다// 하늘은/ 간절하게 기도하고 순명하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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