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병은 멈출 줄 모른다. 코로나 백신이 접종되고 있어 이젠 한시름 놓으려나 했더니 센 놈이 나타났다.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이라는 변이가 확산일로에 있어 지구촌을 긴장시키고 있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싸움은 협상이나 휴전이 불가능할까? 오랜 방학을 끝내고 새해부터 재개하려던 콤파스도 열지 않기로 했다. 참으로 힘든 세월이다. 그나마 전파력이 세지만 증상은 심한 감기 정도라니 다행이나 아직 마음 놓을 단계는 아니다. 팬데믹 없는 평온한 세상을 꿈꾸며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위험, 선택 그리고 불확실성(Risk, Choice and Uncertainty)’은 오랜 세월 경제학이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것을 수학자요 경제학자인 조지 슈피로가 어려운 수학 문제 풀듯 풀었다. 그는 저서 ‘경제학 오디세이’에서 거친 항해를 헤쳐나간 오디세이같이 수학에서 행동경제학까지 이어진 경제적 의사결정의 구조와 방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난해한 수리경제학의 지평을 열었다. 이 책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불확실성을 줄이고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경제학적 사고력을 키워주었다. 슈피로는 스위스 취리히공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수리경제학을 공부한 후 교수가 되어 펜실베이니아대와 히브리대, 취리히대에서 강의하였다. 한때 스위스의 일간지 기자로 변신, 특파원이자 수학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경제학은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수학이다” “조지 슈피로의 ‘경제학 오디세이’는 수리경제학의 발전사를 다룬 흥미진진한 입문서다. 도박게임의 확률적 역설에서 시작하여 공리주의, 평형 이론, 게임 이론, 행동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수학적 사고가 사회현상 이해에 사용됐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 대한 평가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선택, 즉 의사결정을 한다. 그런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요인은 무엇일까? 행동경제학 발달로 인해 인간의 비합리성이나 제한적 합리성이 인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확률 이론을 비롯한 수학적 모델에 기초한 의사결정을 핵심으로 하는 경제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기본적인 수학이론, 위험, 선택, 불확실성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기대효용 이론은 불확실성에 놓여 있는 인간이 위험에 어떻게 대처하고 선택하는가를 결정하는 기본논리다. 기대효용 이론은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 측정, 가격과 거래량 결정 등 주요 경제이론과 자본자산 가격결정 모형의 주요 재무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는가’이다.

 
행복 그리고 부의 효용

‘모든 것은 역설에서 시작됐다’ 1713년 어느 날 스위스의 수학자 니콜라스 베르누이가 책상에 앉아 지인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에서 그가 별 뜻 없이 수수께끼 형태로 적어 내려간 수학 문제가 인간의 의사결정과 관련된 중요한 개념이 탄생하고 경제학이 하나의 과학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이때 니콜라스는 주사위 던지기 게임에서 이길 가능성 문제를 냈는데, 이 질문을 통해 당시에는 생소했던 기댓값 개념을 언급했다. 이것이 기댓값과 확률 이론이 탄생한 배경이다. 그후 니콜라스의 사촌 다니엘 니콜라스에 의해 얘기가 더욱 진전되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설과 룰렛게임, 도박 및 복권에 대한 기대치와 효용 이론을 정립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다니엘은 기댓값에 확률을 곱할 것이 아니라 각 판에서 얻을 수 있는 이윤의 효용에 확률을 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평균 효용을 구한 다음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이 각 개인이 느끼는 복권의 가치라며, 다음과 같은 합리적 제안을 하였다.
“부가 약간 늘어날 때 발생하는 효용은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재화의 양에 반비례한다” 그는 이런 논리로 ‘새로운 위험 측정 이론에 대한 설명’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의사결정에서 기댓값이 가지는 의미의 차이로 발생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설을 해석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이 있다. 쾌락주의자들은 인생의 목표가 쾌락의 극대화며, 쾌락은 늘어날수록 좋다고 말했다.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는 행복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신이 부여하는 차원 높은 행복이며, 나머지 하나는 쾌락이 주는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의 사상가 존 로크는 그의 통치론에서 자연법과 자연권을 주장하며, “인간은 정부가 존재하기 이전에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행동하고, 자신의 재화를 맘대로 처리할 수 있는 완벽한 자유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서술했다.


사회개혁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고통과 쾌락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고 믿고, 노골적인 사리 추구가 사회 공익에 보탬이 되는 행동으로 바뀔 수 있도록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를 조화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쾌락의 총합에서 고통을 뺀 것이 행복이라며, ‘최대 행복의 원리’ 개념인 ‘옳고 그름의 척도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말했다. 정의나 공정성, 평등 같은 의도의 적절성을 따지기보다 그 행동의 결과가 최대 다수의 사람에게 어떤 효용을 주는가를 도덕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리주의가 이렇게 탄생했다. 실제 비율이 거의 평등에 가까울수록 행복의 총량이 커지므로 의사결정자들은 부의 재분배를 권장하고, 나아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지향하는 헌법을 제정하여 모든 사람의 부가 평등해질 때까지 부를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렇듯 벤담이 효용의 증가 속도가 둔화한다는 사실을 공리로 명시했다면, 프랑스의 피에르-시몽 라플라스는 막연하고 기초에 머물던 확률 이론을 견실한 이론적 기반 위에 올라서도록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저서 ‘확률에 대한 철학적 시론’에서 효용이 증가하는 속도는 둔화한다고 명시했다. 즉, “돈이 안겨주는 효용은 그 돈에 비례하지 않는다. 돈의 효용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여왕이 된 수학
역사적으로 경제학 분야에서는 양적 추론보다 간단한 계산, 즉흥적인 관찰, 일화적 근거가 우세했다. 1870년대 중반까지 경제 문제를 풀기 위해 수학을 적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870년대 중반 서로 알지 못하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 출신의 세 남성이 같은 생각을 했다. 이들은 모든 경제적인 결정의 토대가 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그 돈이 제공하는 효용이며, 따라서 수학적 계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세 사람은 영국의 윌리엄 제번스와 스위스의 레옹 발라, 오스트리아의 카를 멩거였다. 당시의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것은 상품이나 제품의 가격결정 방식, 즉 ‘어떤 요인이 가치를 결정할까’였다. 고전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가 믿었던 것처럼 생산에 투입된 노동량이 재화의 가격을 결정할까? 물론 당시에도 효용이 가치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보긴 했으나 효용은 이해하기 힘든 개념으로 뉴턴의 만유인력같이 보이지 않는 줄이었다. 이렇던 효용 이론을 정립한 사람은 제번스였다.


제번스의 할아버지는 1816년 뱅크런 사태때 파산했고, 그의 아버지는 1848년 금융위기로 몰락했다. 이런 불운들로 인해 제번스는 어린 나이부터 예측할 수 없는 시장과 경제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제번스의 어머니는 주교가 쓴 ‘돈 문제에 관한 쉬운 가르침’이라는 어린이용 서적을 아들에게 읽어주었다.
제번스는 그 책을 통해 처음으로 경제학을 접했다. 그는 경제학을 물리학과 천문학처럼 제대로 된 학문으로 발전시키려면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제학이 하나의 학문이라면 반드시 수학적인 학문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가정은 가설을 기반으로 하는 ‘진실에 대한 근사치’에 불과하고, “물리학자들이 수학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갈릴레오 시대의 과학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수학과 효용에 관해 주장을 펼친 다음 제번스는 교환 이론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한계효용은 재화의 교환과 관련된 결정의 한계 지점에 위치하는 ‘무한히 적은 양의 상품이 갖는 효용’을 뜻한다는데 이르렀다. 레옹 발라의 최대 업적은 일반균형 이론이다.


그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수준에서 가격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상업과 거래를 통해 모든 상품시장이 결국 균형상태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이로써 모든 시장의 공통분모 역할을 하는 하나의 상품, 계산화폐가 등장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불과 몇 년 사이에 제번스와 발라는 똑같은 이론을 생각해냈다. 제번스는 발라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귀하가 상품의 희소성이라고 부른 개념은 내가 맨 처음 효용계수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효용도라고 부른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효용도란 실제로 상품 양의 함수로 여겨지는 효용미분계수입니다”


한계효용과 경제적 의사결정
카를 멩거는 수리경제학의 위력을 감지하고 효용 특히 한계효용이 경제적 의사결정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입증했다. 제번스가 직업 특성상 단조로운 태도를 보였고, 발라가 겸손하고 공손한 학자 같았다면, 멩거는 거칠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독일학자들이 가진 따분한 분위기에 활력을 더했다. 멩거는 사람들이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경제가 견실해진다고 이해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택하고 의지에 따라 행동할 자유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멩거의 ‘경제학 원리’에 의하면, 물건이 재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의 욕구가 있어야 하고, 해당 물건이 이를 충족시켜야 하며, 이것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재화에는 한계효용체감 법칙이 있으며, 재화의 가치는 마지막 한계 단위의 효용에 의해 좌우되는데, 생존보장을 위해 재화가 사용될 때 효용가치가 가장 크고, 행복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 그 가치가 줄며, 사치를 위해 사용될 때 효용이 가장 적다는 것이다.

 

멩거가 묘사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1870년대에 발전하던 수학적 방식과 논리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이것이 멩거가 한계주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유다. 제번스, 발라, 멩거가 경제적 담론을 제기한 혁신 이론은 의사결정자들이 총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재화의 양이 늘어날수록 재화가 제공하는 효용이 줄어든다는 개념, 즉 한계효용체감이다. 멩거가 독일의 정치경제학자 슈몰러와 그의 제자들 연구방식을 독일방식이라 부르며, 북쪽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한물간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고 비판하자, 슈몰러는 멩거의 주장이 지역주의와 정체된 과학에서 비롯되었다며 그를 오스트리아학파라고 부르며 혹평했다. 그러나 그후 우수한 멩거의 제자들에 의해 오스트리아라는 표현은 오히려 탁월함의 상징이 됐고, 요즘 많은 학자는 오스트리아학파 칭호를 영광의 훈장으로 생각한다.


 멩거의 한계효용체감 법칙을 더욱 발전시킨 사람은 프로이센의 헤르만 고센으로 그는 수학이 정치경제학 연구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사람들은 쾌락이라는 효용의 총합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즉, 포만감에 도달하기 전까지 특정한 재화를 더 많이 소비할수록 해당 재화가 제공하는 추가 효용이 줄어든다는 식으로, 이는 한계효용체감 법칙과 같았다. 이 원칙을 고센의 제1법칙이라 부른다. 그는 제1법칙을 토대로 하여 ‘비용 대비 효용의 극대화’라고 표현되는 경제원칙 고센의 제2법칙도 만들었다. 고센은 우주를 하나로 묶는 자연의 법칙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호작용을 조절하는 한계효용체감 법칙도 만들어낸 조물주의 지혜에 경외심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신은 공익 추구의 장애물인 인간의 이기주의까지도 공동체의 행복을 좌절시키기보다 극대화할 수 있도록 예비해두었다는 것이다.

 

수학자와 경제학자의 운명적 만남
1926년 저명한 수학자 데이비드 헐버트가 강의하는 당시의 괴팅겐대학 수학과는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여 수학자를 꿈꾸는 인재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헝가리 출신의 젊은 인재 폰 노이만도 있었다. 이미 뛰어난 수학자로 알려져 있던 노이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로서 그가 1926년 괴팅겐 수학협회에서 발표한 게임 이론은 당대의 화두일 정도로 경제학의 중요 토픽이었다. “완전히 자기중심적인 경제적 인간 호모 오이코노미쿠스(homo oeconomicus)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오랜 질문에 게임 이론이 해답이 됐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학뿐 아니라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법학 심지어 생물학 같은 다양한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폰 노이만이 찾아낸 주된 성과는 두 명이 참가하는 게임에 적용되는 최소최대정리(minimax theorem), 즉,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었다. 그는 한 참가자의 최소 상금을 극대화하여 상대방의 최대이익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문제는 나치 지배하의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경제학자 오스카르 모르겐슈타인과 노이만이 공동연구를 진행할 때까지 20년간 미결과제로 남아 있었다. 모르겐슈타인은 예측이 예측된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마침내 전반적인 균형상태와 완벽한 선견지명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모르겐슈타인과 노이만의 관계는 중간에서 이들을 이어주는 사람이 불필요할 정도로 즉각적인 지성의 교차와 깊은 공감이 있었다. 게임 이론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신했던 모르겐슈타인은 게임 이론이 경제학자에게 미치는 의미를 설명하는 논문을 먼저 썼다. 그들이 찾고자 한 것은 선호도를 수치로 변환하는 방법으로, 각 선호도에 구체적인 확률을 부여하면 서로 다른 여러 개의 결과를 한데 모아 기대효용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듯 수학 함수를 이용하여 인간의 선호도 수치를 환산한 것을 효용함수라고 불렀다. 드디어 연구보고서 ‘게임 이론과 경제 행동’이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두 사람이 공동작업을 시작한 지 5년만이었다. 모르겐슈타인이 게임 이론에 크게 기여한 것은 흥미롭고 도발적인 질문을 자주 던져 노이만의 천재성을 자극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게임 이론은 수학, 컴퓨터 과학, 핵물리학, 원자폭탄 개발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게임 이론과 경제 행동’은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견줄만한 기념비적 과학서적 반열에 올라섰다.


 
오스트리아학파와 시카고학파의 효용 이론
2차 세계대전이 끝을 향해 가던 무렵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공급이 국민생산에 영향을 미치며, 이를 이용하여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아울러 통화주의자였던 프리드먼은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자유시장과 변동환율, 교육 바우처, 모병제, 의사면허 폐지 등을 지지했다. 오스트리아경제학파 이름이 그랬듯 프리드먼이 주도하는 시카고학파라는 칭호도 탁월함의 상징이 됐다. 프리드먼과 공동연구자 새비지가 제시한 구불구불한 효용함수는 많은 사람이 한편으로 보험에 가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도박하는 이유를 밝혀냈다. 그들이 제안한 이론은 비단 복권이나 카지노 도박뿐 아니라 투자결정, 직업선택, 기업가적인 프로젝트 같은 모든 종류의 위험한 행동에 관해 설명했다.

 

그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 사람은 개인적 효용이라는 개념에 흥미를 느낀 대학원생 해리 마코위츠였다. 마코위츠는 그의 논문 ‘부의 효용’에서 사람들이 보험과 도박을 동시에 선호하는 심리는 ‘부유해지거나 가난해질 수 있는 도박, 즉, 보험 통계적으로 타당한 도박을 받아들이는 역설’과 상통한다는 답을 주었다, 무엇보다 마코위츠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뛰어난 논문은 금융저널에 게재된 ‘포트폴리오 선택’이었다. 주식 가격은 미래 배당금의 현재 할인 가치라는 것이 당시의 통념이었다. 하지만 마코위츠는 미래의 배당금은 불확실하므로 기대되는 미래 배당금의 현재 할인 가치가 주가를 결정한다고 해석했다. “만일 투자자가 증권의 기대 가치에 관심이 있다면, 포트폴리오의 기대 가치에 관심을 두고, 포트폴리오의 기대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증권에만 투자할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익뿐 아니라 위험도 감수해야 하므로 다각화를 택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의 포트폴리오 이론이 탄생했고, 마코위츠는 금융경제학 발전에 기여했음이 인정되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효용 이론의 약점은 서로 다른 사람끼리는 효용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통과 쾌락을 비교할 수 없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효용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효용과는 달리 사람들이 기꺼이 포기하고자 하는 위험 프리미엄은 비교가 가능하다.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 애로와 통계학자 프랫은 절대적인 위험 회피에 부를 곱하면 상대적인 위험 회피 정도를 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동 논문을 발표했다. 즉, 절대적인 위험 회피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부유해질수록 의사결정자가 어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기꺼이 내고자 하는 보험료가 줄어든다는 뜻이고, 절대적인 위험 회피의 증가는 부유해질수록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기꺼이 내고자 하는 보험료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인 위험 회피가 감소한다는 것은 투자자가 소유한 전체 부에서 위험한 일에 투자하는 비중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얼마나 많은 부를 갖고 있건 투자자들은 일정한 비율의 부를 투기적인 일에도 투자하고 싶어 한다.

 

인간을 기준으로 한 경제이론의 탄생
좋은 세상을 꿈꾼 전방위 지식인 모리스 알레의 이야기다. 프랑스의 전형적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알레의 할아버지는 목수였고, 아버지는 작은 가게를 꾸려가는 치즈 장수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어머니는 근근이 살아가며 어린 알레를 키웠다. 어린 시절 알레의 재능을 알아본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뛰어난 인재만 들어갈 수 있는 에콜폴리테크에 입학하여 1등으로 졸업했다. 그는 특히 수학과 공학에 뛰어났으나 대학을 졸업한 직후 성장하는 미국을 둘러보고 경제학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알레는 경제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 즉, 용인 가능한 수준의 소득 분배를 보장하는 한편 경제적인 효율성도 극대화할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응용경제학, 즉, 경제운용, 과세제도, 소득분배, 통화정책, 에너지, 운송, 채굴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경제학 발전에 공헌했다. 그는 시장경제가 균형에 도달하면 효율성이 극대화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 이론을 불확실성이 있는 경제까지 확대하였다. 과학을 공부했던 알레는 물리학에도 매력을 느껴 특수 고안한 원뿔 형태의 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기록했다.

 

그 결과 진자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동안 개기일식이 발생했고, 또 달이 태양 바로 앞을 지나가는 순간 진자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달이 태양 앞을 지나갈 때 중력파를 흡수하거나 휘게 만드는 현상으로, 부분적으로 행성체 영향을 받는 에테르를 가로지르는 움직임 때문에 우주가 각기 다른 축을 따라 다른 특성을 띠게 된다는 의미다. 빛을 파동하게 만드는 가상 물질 에테르 이론은 틀린 것으로 밝혀진 것이나 알레의 실험이 그 이론에 생명을 불어넣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일부에 의혹을 제기한 셈이다. 만일 그가 알레효과라고 알려진 이 현상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찾아냈더라면 알레는 노벨 경제학상에 이어 물리학상도 받았을 것이다.


알레 이후에 기대효용 이론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이는 1971년 발생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 미 국방부의 극비문서 펜타곤 페이퍼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뉴스 매체에 폭로된 악명 높은 사건이다. 여기엔 미국의 베트남전 군사 개입과 관련하여 로버트 맥나마라 미 국방장관의 지시로 진행된 일들이 담겨 있었다. 미국국민이 모르는 상태에서 베트남전이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확대됐고, 미국 행정부가 의회를 호도했으며, 대통령이 대중에게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이 문서가 캘리포니아 소재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로 보내졌고, 그후 펜타곤 페이퍼의 내용은 대니얼 엘즈버그라는 랜드연구소 연구원 때문에 엄청난 의혹에 휩싸이게 되었다. 미국의 역사를 바꾼 엘즈버그의 등장이다. 그는 “미국 시민으로서 그리고 책임있는 연구원으로서 이 정보를 감추는 일에 협조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위험해질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 결정에 따르는 결과를 감수할 준비도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높은 수준의 기밀문서 취급 인가가 필요한 극비 연구를 진행하던 엘즈버그는 핵전쟁을 시작할지 말지 같은 긴박하고 심각한 고차원적 의사결정에 어떤 과정이 숨어 있는지 연구를 통해 알게 됐다. 그는 “핵전쟁 위험은 어느 한쪽이 기습공격을 감행할 공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단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부담감과 의무감이 생겨 줄곧 내 인생과 연구에 영향을 미쳤다”고 고백했다. 엘즈버그는 행정부로부터 기밀누설로 기소되어 최대 115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과감히 폭로하였다. 엘즈버그가 펜타곤 페이퍼로 세간의 이목을 끌기 몇 년 전에 발표한 ‘사람들이 확률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를 다룬 그의 논문 ‘위험, 모호성, 멋진 공리’는 지금까지도 의사결정 이론 분야에 등장한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엘즈버그는 주관적인 확률조차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사람들의 선택이 모호성을 회피하려는 데서 비롯되며, 승산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을 때보다는 승산을 파악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쪽으로 선호한다고 말했다. 엘즈버그의 모호성 회피, 알레의 확실성에 가까운 안정성에 대한 선호, 또는 게임 이론에 따른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이든 간에 알레의 역설은 주관적 효용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엘즈버그의 역설은 주관적 확률의 불완전함을 말해준다. 두 결함 모두 무관한 변수의 독립성이라는 공리를 위반한 탓에 발생했다.


 
휴리스틱과 제한된 합리성

전통적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경제적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전제한다. 자신의 환경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정적 사고와 사리에 맞는 행동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카네기멜론대학 허버트 사이먼 교수는 인간행동에 관한 연구가 과학적으로 정확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격한 수학적 기초가 사회학에도 필요함을 깨닫고 ‘합리적 선택의 행동 모델’이라는 논문을 썼다. 사이먼은 실제 환경에서 계산능력 및 정보 접근성을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행동이 인간의 합리성을 대체한다는데 착안하여 ‘제한된 합리성’과 ‘만족화’ 개념을 정립했다. 경제학에 대한 웹스터 사전의 정의는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분배, 소비를 묘사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19세기 말 한계주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수학이 처음으로 경제학 영역에 진출했다. 전통적인 수학 모델은 합리적이고 계산에 능숙한 경제적 인간이 이윤이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규정했으나 일반 사람이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리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베르누이는 한계효용체감의 원리를 이용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설을 설명했고, 프리드먼은 구불구불한 효용곡선으로 보험과 도박의 역설을 풀었으며, 마코위츠는 여기에 구불구불한 구간을 추가했다. 이렇듯 이론적 추론에서 벗어나 인간에 관한 수학 모델이 아닌 인간 자체를 척도로 삼은 경제학을 발전시켜 왔다.


경제학자는 인간이 이윤, 효용, 비용을 최적화하는 한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수학자는 행위자들이 공리를 따르는 한 합리적인 존재로 보았고, 심리학자는 인간에 관한 미심쩍은 부분까지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규범경제학과 실증경제학이라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한다. 규범경제학은 어떤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을 극대화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경제적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실증경제학은 온갖 결점과 약점을 가진 일반인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신중하게 묘사한다. 반면에 사이먼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인간 자체가 비합리적이라기보다는 인지 제약 때문에 인간이 제한된 합리성을 갖게 된다고 주장했다. 뒤집어 말하면 제한적 범위 내에서는 인간도 합리적이라는 뜻이다. 의사결정자들은 최적의 방안을 찾기 위한 힘든 과정을 회피하고 최적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만족시키는 선택방안을 찾기 위해 경험법칙이라는 휴리스틱(heuristic)을 활용한다. 사이먼은 기대효용과 게임 이론을 비판하고, 제한된 합리성 이론을 제시했다. 최적화를 기반으로 하는 분석이 만족화와 휴리스틱을 기반으로 하는 모델로 대체됐다. 사람들은 학습과 경험, 환경과의 상호작용, 피드백을 통해 휴리스틱을 발전시킨다. 휴리스틱은 종종 상식 또는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추측이 되므로 경험법칙을 택하면 오류와 왜곡이 발생하기 쉽고, 편향이라는 실수를 저지른다.

 

미래의 경제학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은 당대 과학자들 사이에서 스타로 여겨졌다. 트버스키는 자신만만하고 재치 넘치는 인물이었고, 카너먼은 과묵하고 자기회의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그토록 많은 연구를 함께하며 조화롭게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었다. 두 사람이 발표한 획기적인 논문 ‘불확실성 아래에서의 판단-휴리스틱과 편향’에서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리는데 사용하는 다음 세 종류의 휴리스틱을 제안하고 분석했다. 즉, 대표성 휴리스틱은 논리가 아닌 특성을 보는 경향이고, 가용성 휴리스틱은 떠올리기 쉬우면 발생 확률도 높다는 착각이며, 기준점 휴리스틱은 먼저 숫자를 제시하는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험법칙은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오류, 즉,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편향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이 제시한 논거는 ‘인간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가 아니라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다. 전망이론에 의하면, 위험이 따르는 상황에서의 결정은 편집과정과 평가과정의 두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편집과정에서 의사결정자들은 당면한 문제를 좀 더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휴리스틱이 동원되고 온갖 부가기능과 편향도 함께 등장한다. 그리고 평가과정에서 의사결정자들은 대안을 평가하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을 선택한다. 카너먼은 프린스턴대학 교수로 재직 중에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하여 불확실성 아래에서의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연구했는데, ‘통합적 통찰력’을 논증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이는 작고한 트버스키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였다고 밝혔다.


허버트 사이먼은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을 주장하며 효용 극대화를 만족화로 대체했고,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합리적인 행위자 모델에서 최적의 믿음과 행동이 보편적 믿음 및 행동과 구분되는 체계적 편향을 찾아내어 제한된 합리성이 무엇인지를 증명했다. 그후 후학들은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실험을 통해 찾아낸 결과를 합리적 선택 이론에 적용하여 의사결정의 심리학을 행동경제 모델에 통합시켰다. 과연 앞으로 나타날 경제학 이론은 무엇이며, 미래의 경제학은 어떤 모습일까? 인공지능, 로봇 같은 합리성일까? 인간 스스로 발견하는 학습법 휴리스틱은 또 어떻게 될까? 오직 시간만이 답해줄 것이다.
지난해의 사자성어는 ‘고양이와 쥐가 함께 산다’는 묘서동처(猫鼠同處)였다. 나라 곳간을 지켜야 할 관리가 도둑과 한편이라니 나라가 온전할 리 없다. 임인년(壬寅年) 원단(元旦)이다. 올해엔 떠오르는 태양처럼 국민의 선택을 받을 인물이 부상할 것이다. 부디 좋은 대통령이 뽑혀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해지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의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