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회사의 운송중단으로 인하여 화주가 지출한 비용의 법적 성질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12. 11. 선고 2017가합560034 판결 -

 

 
 

서론
필자는 그간 여러 차례에 걸쳐서 한진해운의 파산과 관련한 법적 여러 쟁점들에 관하여 다룬 바 있다. 그것들은 ① 정기용선료 채권과 슬로트용선계약에 의한 선복사용료 정산금 채권 중 도산채권1)에 해당하는 부분과 공익채권·재단채권2)에 해당하는 부분은 각각 어떻게 구분되는가3) ② 선박소유자가 파산한 채무자(정기용선자)에 대하여 채무자가 유류 공급자에게 미지급한 연료유대금 채무와 관련한 장래의 구상금 채권(파산채권)을 가지는가4) 그리고 ③ 공익채권·재단채권 발생의 원인인 기본계약에 관한 중재합의가 있는 경우 그 지급을 구하는 소에서 파산관재인이 방소항변(妨訴抗辯)을 할 수 있는가5) ④ 도산채권자(회생채권자 또는 파산채권자)가 회생채권조사확정재판 또는 파산채권조사확정재판을 신청한 경우에도 방소항변에 관한 중재법의 규정이 적용 내지 준용(민사소송법 제224조 제1항 참조)되는가6) 등에 관한 것이다.


비록 제1심판결만으로 확정된 사건이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12. 11. 선고 2017가합560034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 한다)은 한진해운의 회생과 파산 과정에서 발생하였던 중요한 국면을 다루고 있다. 한진해운에 대하여 회생개시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한진해운의 운송이 중단되어, 한진해운이 운항하던 선박과 그에 적재된 컨테이너가 세계 각지에서 억류되거나, 화물이 예정된 목적지 아닌 장소에 방치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화주들은 방치된 자신들의 화물을 회수하여 다른 선박운송업자에게 운송을 의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야 하였고, 이러한 조치는 당연히 화주들에게 추가적인 비용의 발생을 야기하였다. 대상판결에서는 화주들이 위와 같은 비용을 지출하게 됨으로써 한진해운에 대하여 가지게 되는 채권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공익채권·재단채권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도산채권에 해당하는지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하에서는 대상판결을 토대로 해운회사의 운송중단으로 인하여 화주가 지출한 비용의 법적 성질에 관하여 살펴본다.

 

사실관계
가. 한진해운에 대하여 2016. 9. 1. 회생절차개시결정(이하 ‘이 사건 회생절차개시결정’이라고 한다)이 내려졌고, 피고(한진해운의 파산관재인)는 같은 날 관리인으로 선임되었다가 이후 한진해운이 2017. 2. 17. 파산선고(견련파산)를 받음에 따라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되었다.
나. 원고들(4개 회사)은 미국7) 또는 영국의 법률에 따라 설립된 보험회사들로서 한진해운과 해상화물운송계약을 체결한 화주들과 사이에 화물의 멸실·파손 등 손해에 관하여 보험을 인수한 해상적하보험의 보험자들이다. 
다. 한진해운은 다수의 외국화주들과 사이에 해상화물운송계약을 체결하고 화주들이 의뢰한 화물을 운송하기로 하였으나, 이 사건 회생절차개시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한진해운의 운송이 중단되는 사태(이하 ‘이 사건 운송중단’이라 한다)가 벌어졌고, 그에 따라 화주들은 다른 선박운송업자에 대한 대체운송 비용과 방치되었던 화물의 보관료, 화물을 대체운송 선박에 옮겨 싣기 위한 환적비용 등(이하 ‘이 사건 비용’이라 한다)을 지출하였다. 
라. 원고들은 화주들에게 이 사건 운송중단으로 인하여 화주들이 지출한 이 사건 비용 상당의 금액 중 화주들의 자기부담금 액수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보험금으로 지급하였다.

 

사건의 경과
가. 원고들은 자신들이 각각 지출한 보험금 상당액에 관하여, 화주들이 한진해운에 대하여 가지는 이 사건 비용 채권을 보험자대위에 의하여 행사할 수 있거나 화주들로부터 이 사건 비용 상당 채권을 양수받았기 때문에 양수인으로서도 이를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원고들은 위 비용 채권이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회생법’이라 한다) 제179조 제1항 제2호, 제5호, 제6호, 제7호에서 정한 공익채권에 해당하였고, 이후 한진해운에 대한 파산선고가 이루어져 위 채권이 채무자회생법 제6조 제4항, 제2항 제2호에 의해 재단채권에 해당하게 되었음을 전제로, 피고를 상대로 직접 그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나. 이에 대하여 피고는 여러 본안 전 항변8)을 하는 한편, 이 사건 비용 채권은 회생채권에 해당하고,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가 폐지된 후 파산절차로 이행됨에 따라 위 채권이 채무자회생법 제6조 제5항에 의한 파산채권이 되었으며, 파산선고 후에 파산채권자가 파산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파산관재인을 상대로 직접 파산채권의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부적법하다고 다투었다.
다. 법원은 이 사건 비용 채권이 원고들 주장과 같은 공익채권 및 재단채권에 해당하지 않고,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에서 정한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에 해당하여 회생채권에 해당하고,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가 폐지된 후 파산절차로 이행됨에 따라 위 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6조 제5항에 의한 파산채권이 되었다고 판단하였다. 나아가 파산채권에 대하여 이 사건과 같이 이행의 소로써 직접 피고를 상대로 채권의 지급을 구하는 것은 소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법원의 판시사항
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고들의 소를 모두 각하하였다.

원고들이 주장하는 이 사건 비용 채권은 회생채권에 해당하고,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가 폐지된 후 파산절차로 이행됨에 따라 위 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6조 제5항에 의한 파산채권이 되었다.
채무자회생법 제424조에 의하면 파산채권은 파산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행사할 수 없고, 파산선고 후에 파산채권자가 파산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직접 파산채권의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는 것은 부적법하다(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다10310 판결, 대법원 2017. 6. 29. 선고 2016다221887 판결 등 참조).
원고들이 파산채권에 해당하는 이 사건 비용 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파산법원에 그 채권을 신고하고 채권조사기일에서 파산관재인 등의 이의 여부에 따라 파산채권으로 확정받거나 부인된 채권에 대해서는 파산채권 확정의 소를 통하여 파산채권으로 확정받을 수 있을 뿐이고, 이 사건과 같이 이행의 소로써 직접 피고를 상대로 그 채권의 지급을 구하는 것은 소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
따라서 원고들의 소는 모두 부적법하다.


검토
가. 도산채권과 공익채권ㆍ재단채권

채무자가 회생절차 또는 파산절차, 즉 도산절차에 들어서게 되면 도산절차 개시 전에 채무자와 법률관계를 맺은 제3자의 권리 대부분은 도산절차에 복종한다. 이처럼 도산절차의 개시에 의하여 권리 행사가 제한되고, 도산절차를 통하여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가진 채권을 통틀어 도산채권이라고 한다. 그리고 도산채권 중 회생절차에 따르는 것을 회생채권(채무자회생법 제118조), 파산절차에 따르는 것을 파산채권이라고 한다(채무자회생법 제423조 이하).9) 이와 달리 일정한 권리는 도산절차에 의하지 않고 수시변제 및 도산채권에 대한 우선변제의 대상이 되는데, 이처럼 도산채권과 대치되는 채권을 회생절차에서는 공익채권(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80조)이라 하고, 파산절차에서는 재단채권이라 한다(채무자회생법 제473조, 제475조, 제476조).10) 공익채권이나 재단채권은 그 성질, 발생시점, 발생원인에 있어서 잡다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11) 기본적으로는 회생절차와 파산절차의 유지와 속행, 재산의 관리·처분·환가·배당 등을 위하여 지출되어야 할 비용에 대한 청구권이나 관리인·파산관재인의 직무행위 의하여 생긴 제3자의 청구권 등과 같이 채권자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회생절차 또는 파산절차의 수행으로 인하여 생기는 채권이라는 것이 개념적 기초를 이루고 있으나, 형평의 관념 또는 정책적인 배려에 기하여 포함된 것들도 있다.12) 우리 채무자회생법상 채무자에 대한 회생절차 폐지에 이은 파산선고가 있는 경우(이른바 ‘견련파산’), 회생절차에 있어서의 공익채권은 재단채권으로 하고, 회생계획인가 전 회생절차가 폐지되어 파산절차로 이행되는 경우 회생절차에서의 회생채권의 신고, 이의와 조사 또는 확정은 파산절차에서 행하여진 파산채권의 신고, 이의와 조사 또는 확정으로 본다(채무자회생법 제6조 제4항, 제5항, 제2항).13)
도산채권과 공익채권·재단채권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공익채권자·재단채권자는 도산채권자와 달리 직접 관리인·파산관재인에게 그 변제를 요구할 수 있고, 이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관리인·파산관재인을 상대로 이행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14) 이와 달리 도산채권자는 도산절차 내에서 채권신고 및 확정절차를 통해서만 권리를 확정 받아 행사할 수 있을 뿐이고, 도산절차 외에서 따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 그 소는 소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15) 이 사건에서 원고들과 피고가 이 사건 비용 채권이 공익채권인지 회생채권인지 다툰 이유도 근본적으로 이 때문이다.

 

나. 이 사건 비용 채권의 법적 성질 –
    회생채권 해당 여부

대상판결은 이 사건 비용은 한진해운이 화주들과 체결한 해상화물운송계약 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인한 손해 그 자체이므로, 이 사건 비용 채권은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에서 정한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으로서 회생채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은 ‘이 사건 운송중단으로 인하여 한진해운이 화주들에 대하여 부담하는 화물운송의무가 채무불이행이라는 종국적 상태가 되었고, 향후 더 이상의 이행 문제를 남기지 않고 종료되어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등의 문제가 남을 뿐’이라는 선결적 판단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판단은 위 해상화물운송계약이 더 이상 이행의 문제를 남기지 않고 종료되었다는 선결적 판단에 있어서나, 이 사건 비용 채권이 회생채권에 해당한다는 결론에 있어서나 그 타당성에 다소간의 의문이 든다.

 

1) 한진해운과 화주들 사이 해상화물운송계약의
   자동 종료 여부

우선 ‘한진해운과 화주들 사이의 해상화물운송계약이 한진해운의 채무불이행에 따라 그대로 종료되었다’는 선결적 판단은 그와 같이 볼 논리적 근거가 무엇인지가 불분명하다. 대상판결의 판시는 당사자들이 체결한 계약의 목적달성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 계약이 자동적으로 해소된다는 영미법상 계약좌절 내지 계약목적 달성불능의 법리(이른바 ‘Doctrine of Frustration’)16)를 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계약의 종료 내지 효력의 소멸에 관하여 위와 같은 명료한 실체법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위 해상화물운송계약들을 규율하는 준거법에 관한 확인이 전제되었어야 한다. 대상판결이 그 준거법에 관한 판단 없이 해상화물운송계약들의 종료 여부에 관하여 판단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만약 한진해운과 화주들 사이에 체결된 해상화물운송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이라면 위와 같이 계약좌절 내지 계약목적 달성불능의 법리에 따라 계약이 종료 내지 해소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준거법이 우리나라 법이었다면 아마도 그렇게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상법 제810조 제1항은 운송계약의 법률상 당연 종료사유로 ① 선박의 침몰 또는 멸실 ② 선박의 수선불능 ③ 선박의 포획 ④ 불가항력에 의한 운송물의 멸실을 명시하고 있다.17) 항해 중 그 항해 또는 운송이 법령을 위반하게 되거나 그 밖에 불가항력으로 인하여 계약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 경우는 운송계약의 해지사유에 해당할 뿐이다(상법 제811조 제2항, 제1항). 이러한 우리 상법 규정에 의하면, 한진해운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계약이 이행의 문제를 남기지 않은 채 당연 종료된다고 보기 어렵다.

 

2) 화주들의 해제권 행사에 대한 제한
우리나라에서 운송계약은 민법상 전형계약의 하나인 도급의 일종으로 이해되므로,18) 한진해운과 화주들 사이에 체결된 해상운송계약의 준거법인 우리나라 법인 경우 화주들로서는 이 사건 운송중단이 있을 때 해상운송계약을 해제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운송인이 파산선고를 받거나 운송인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되는 경우 화주는 채무자회생법 제119조에 따른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해제와 관련한 제한을 받게 된다.
이를 부연하자면 다음과 같다. 도급인이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에는 민법 제674조 제1항에 의하여 수급인 또는 파산관재인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이 경우 수급인은 일의 완성된 부분에 대한 보수와 보수에 포함되지 아니한 비용에 대하여 파산재단의 배당에 가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우 도급계약의 해제는 장래에 향하여 도급의 효력을 소멸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원상회복은 허용되지 아니한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그에 따라 민법 제674조 제1항은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해제 또는 이행의 효과에 관한 채무자회생법 제337조의 적용을 배제하는 특칙으로 이해되는바, 위 조항은 도급인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에도 유추적용 된다.19) 그런데 수급인이 파산하거나 수급인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된 경우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특칙이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그러한 경우에는 일반 원칙에 따라 관리인의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해제 또는 이행의 효과에 관한 채무자회생법 제337조, 제121조가 적용될 것이다.


이러한 법리에 따르면, 해상화물운송계약의 준거법이 우리나라 법인 경우에20) 해운회사에 대하여 회생절차가 개시되어 그 운송계약의 이행을 담보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관리인이 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를 선택할 수 있고, 만약 해제를 선택한다면 그로 인한 화주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채무자회생법 제121조 제1항에 의한 회생채권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는 관리인의 선택권 행사에 관할 재량에 따르게 되어 있고, 그 상대방은 관리인이 계약의 이행을 선택하거나 계약의 해제권이 포기된 것으로 간주되기 전까지는 임의로 계약을 이행하거나 관리인에게 계약의 이행을 청구할 수 없다.21) 따라서 관리인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관리인의 귀책사유로 인한 이행지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상대방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해제권을 행사할 수 없다.22)


다시 대상판결의 사안으로 돌아와서 보면, 한진해운의 관리인이었던 피고가 해상화물운송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에 관한 선택권을 행사한 바도 없고, 그렇다고 하여 화주들이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위 해상화물운송계약을 해제하였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또한 위와 같이 화주들의 해제권 행사는 제한된다). 대상판결은 특히 목적지 변경이 이루어진 화물의 경우에는 관리인이 계약의 해지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방론을 설시하기도 하였으나,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위 해상화물운송계약이 피고의 선택권 행사에 의해 해제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3) 이 사건 비용 채권이 회생채권인지 여부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의 ‘회생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금’은 우리 판례 법리상 대상판결이 의도하는 바와 같은 손해배상금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즉 우리 판례는 “구 회사정리법 제121조 제1항 제2호에서 ‘정리절차개시 후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과 위약금’을 후순위 정리채권으로 정하고 있으나, 여기서 규정한 손해배상금과 위약금은 정리절차개시 전부터 회사에 재산상의 청구권의 불이행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지급하거나 또는 위약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여야 할 관계에 있을 때 그 계속으로 정리절차개시 후에 발생하고 있는 손해배상 및 위약금 청구권을 의미한다”고 한다.23) 이에 따르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의 손해배상금은 회생절차개시 전에 이미 발생한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에 기초하여 계속 발생하는 손해배상금을 의미한다.24) 따라서 대상판결이 이 사건 비용이 이 사건 회생절차개시결정 후에 비로소 발생한 한진해운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라고 하면서도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 소정의 손해배상금에 해당한다고 평가한 것은 종래 우리 법원의 판례와 채무자회생법 규정의 체계적 해석에 반한다.25) 


만약 한진해운의 관리인이었던 피고가 채무자회생법 제119조에 따라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인 화주들과의 해상화물운송계약을 해제하였다면, 화주들이 입은 손해는 채무자회생법 제121조 제1항에 의한 회생채권에 해당한다. 그러나 앞서 2)항에서 본 바와 같이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피고가 화주들과의 해상화물운송계약을 해제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이 사건 비용 채권이 회생채권인지 여부는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 소정의 회생채권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1호의 회생채권은 의사표시 등 채권 발생의 원인이 회생절차 개시 전의 원인에 기해 생긴 재산상의 청구권을 말하고, 채권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아니하였더라도 주요한 발생 원인이 회생절차 개시 전에 갖추어져 있으면 그에 해당한다.26) 이와 달리 회생절차개시 이후 관리인이 채무불이행을 하는 등 채권이 회생절차 개시 후 관리인의 직무행위에 기하여 발생하는 경우에는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 소정의 공익채권에 해당한다.27) 따라서 다소 거칠게 말하면, 회생채권은 아래 다.의 1)항에서 보는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 소정의 관리인의 직무수행 행위로 인한 제3자의 청구권과 대응관계에 있다.28) 그리고 결론부터 말해, 필자는 이 사건 비용 채권은 회생절차개시 이후에 관리인의 채무불이행에 기하여 발생한 것으로서,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 소정의 공익채권에 해당한다고 본다. 상세는 항을 바꾸어 살펴본다. 

 

다. 이 사건 비용 채권의 법적 성질 –
    공익채권 해당 여부

원고들은 이 사건 비용 채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이 정하는 공익채권의 유형 중 ① 회생절차개시 후의 채무자의 업무 및 재산의 관리와 처분에 관한 비용청구권(제2호) ② 채무자의 업무 및 재산에 관하여 관리인이 회생절차개시 후에 한 자금의 차입 그 밖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청구권(제5호) ③ 사무관리 또는 부당이득으로 인하여 회생절차개시 이후 채무자에 대하여 생긴 청구권(제6호) ④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서 관리인이 채무자의 채무의 이행을 하는 때에 상대방이 갖는 청구권(제7호)에 해당하여 공익채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피고가 파산절차에서 이 사건 비용과 유사한 대체운송비 등을 재단채권으로 인정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이 사건 비용 상당 채권도 재단채권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도 하였다. 이하에서는 각 항목별로 그 타당성을 검토해본다.

 

1) 관리인의 업무집행 비용 및 직무수행 행위로 인하여 생긴 제3자의 청구권(제2호, 제5호) 
회생절차는 사업의 계속적 경영을 전제로 하므로, 회생절차 개시 후 관리인의 업무 및 재산의 관리·처분에 따른 비용이 계속적으로 발생하거나(제2호), 관리인의 거래행위 등으로 인한 제3자의 청구권이 생길 수 있다(제5호). 이때 상대방의 청구권은 공익채권이 된다.
제2호 소정의 청구권 중 업무에 관한 비용은 원재료 구입비, 공장·기계기구 등의 차임이나 유지수선비, 전력·가스·수도 등의 요금 등이 해당할 수 있다.29) 재산의 관리에 관한 비용은 예컨대 회생회사의 재산에 대한 소송에 관한 소송비용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고, 재산의 처분에 관한 비용은 예컨대 법원의 허가를 얻어 불용자산을 매각하거나, 회생계획안에 따라 재산을 처분함에 드는 비용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30)


우리 법원은 정기용선자인 한진해운에 대하여 관리인이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부터 정기용선계약을 해지할 때까지 사이에 발생한 선주의 정기용선료 채권이     ‘업무에 관한 비용’으로서 공익채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고,31) 한진해운과 공동운항 및 선복할당계약을 체결한 얼라이언스(Alliance)의 회원사가 정산금을 구한 사건에서 해당 정산금 청구권이 실질적으로 슬로트용선계약에 따른 용선료 청구권의 성격을 가짐을 전제로 정산금 전부가 ‘업무에 관한 비용’으로서 공익채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32) 이는 정기용선계약과 슬로트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33)
제5호 소정의 청구권은 관리인의 운영자금 차입 등 법률행위로 인한 것뿐만 아니라 관리인이 채무자의 업무를 관리함에 있어서 업무집행과 관련하여 타인에게 불법행위를 가하여 그 타인이 관리인에 대하여 가지는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34) 관리인의 공익채권 지급의무 이행지체 등과 같은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35) 등도 포함한다.


대상판결은 화주들이 이 사건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 관리인에 의한 한진해운의 영업이나 사업 계속과는 관계없이 자신들의 화물을 예정된 목적지까지 다시 운송하기 위해 이 사건 비용을 지출한 것이므로, 위 비용은 회생절차개시 후의 ‘채무자의 업무 및 재산의 관리와 처분에 관한 비용(제2호)’이라거나 ‘채무자의 업무 및 재산에 관하여 관리인이 회생절차개시 후에 한 자금의 차입 그 밖의 행위로 인하여 생긴 청구권(제5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이와 같은 판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회생절차의 개시결정이 있는 때에는 채무자의 업무 수행과 재산에 대한 관리·처분 권한은 관리인에게 전속한다(채무자회생법 제56조 제1항). 관리인은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 채무자와 동일시되고, 채무자가 제3자에게 부담하는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36)


관리인은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의 개시에도 불구하고 한진해운이 종래 수행하던 화물운송이 원만히 이행되도록 관리, 감독할 의무를 부담한다. 대상판결은 이 사건 운송중단에 관하여 “한진해운에 대한 회생절차개시 이후 한진해운이 각 화주들에 대하여 부담하고 있던 화물의 운송의무를 불이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와 같이 이 사건 운송중단을 한진해운의 해상화물운송계약상 채무불이행으로 평가한다면, 이는 관리인의 채무불이행으로 귀결되고, 결국 이 사건 비용 채권은 그로 인하여 화주들이 입은 손해라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 따라서 필자는 이 사건 비용 채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 소정의 공익채권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이 아래 제6호와 관련하여 보는 것처럼, 이 사건 운송중단 사태에 대응하여 운송주선인이 지출한 비용을 사무관리로 인한 비용상환청구권 또는 부당이득 반환청구권으로서 공익채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판결례와도 균형이 맞는다.

 

2) 사무관리 또는 부당이득으로 인하여 회생절차개시 이후 채무자에 대하여 생긴 청구권(제6호) 
회생절차개시 후에 타인의 사무관리나 손해로 채무자가 이익을 얻었다면 회생채권자 등 관계인 전체에 이득이나 이익이 되므로 사무관리로 인한 비용상환청구권과 부당이득 반환청구권 가운데 회생절차개시 후에 생긴 것은 공익채권으로 취급한다.37) 예컨대 본래의 납세의무자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로 인하여 과세관청에 의하여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된 자가 그 납세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취득한 구상금채권은 이에 해당할 수 있다.38) 우리 법원은 운송주선인인 원고가 이 사건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 자신의 운송의뢰에 의해 운송되던 화물이 각국에서 압류·유치되거나 양하항이 아닌 곳에서 하역되어 방치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진해운에게 이미 지급한 하역비, 운송비를 이중으로 지급하거나, 한진해운이 지급하여야 할 하역비, 운송비를 대신 지급하는 등으로 비용을 지출한 사안에서, “원고는 한진해운과의 관계에서 한진해운이 운송하던 화물에 관하여 스스로 운송과 관련한 하역비 등을 지급하고 운송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여 화물을 관리하여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이 사건 회생절차개시 이후 한진해운이 부담하여야 할 하역비와 운송비 등을 대신하여 지급하고, 그 운송화물에 관한 압류 및 유치권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방치된 화물을 화주에게 전달하는 등으로 한진해운의 운송 관련 사무를 관리하였고, 이러한 사무관리를 통하여 향후 한진해운이 화주들에게 배상하여야 할 손해를 방지하거나 최소화하였다고 볼 수 있고, 한편으로는 그러한 과정에서 한진해운은 법률상 원인 없이 원고가 대신 지급한 하역비와 운송비 등 상당의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하여 원고는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그 비용 상당의 사무관리로 인한 비용상환청구권 또는 부당이득 반환청구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6호 소정의 공익채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39)  


대상판결은 이 사건 운송중단 이후 화주들이 방치된 화물을 회수하여 다른 선박운송업자에게 그 운송을 의뢰하여 예정된 목적지까지 운송하도록 한 것은 화주들이 자신들의 화물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원하는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본인들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므로 이를 두고 화주들이 법적인 의무 없이 타인인 ‘한진해운의 사무’를 대신 관리한 것이라거나 화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본인들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지출한 비용으로 인하여 한진해운이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은 것으로도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은 타당하다. 다만 앞서 본 운송주선인 사안과 결론에 있어 차이가 나는 지점은 흥미롭다. 필자는 화주들의 경우 한진해운(관리인)과 해상화물운송계약상 법률관계가 존재하므로 그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화주들이 가지는 손해배상청구권은 제5호의 공익채권에 해당하고, 운송주선인의 경우 해상화물운송계약상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 운송중단에 대응하여 지출한 비용은 단지 제6호의 공익채권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렇게 보는 것이 운송주선인과 화주의 지위 차이를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3)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에서 관리인이 채무자의 채무의 이행을 하는 때에 상대방이 갖는 청구권(제7호)
회생절차에서 관리인이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이행을 선택하는 경우 관리인은 회생절차개시 당시 채무자가 가지던 계약상 지위를 그대로 승계하게 된다.40) 이러한 경우 상대방의 채권을 회생채권으로 하면 상대방의 채무에 대해서는 완전이행을 강제하면서 그 채권에 대해서는 회생계획에 의한 권리변경을 수인하게 다는 결과 형평에 반하므로, 관리인이 상대방의 이행을 청구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계약상 채무자의 채무도 이를 이행하도록 함으로써 양 당사자 사이에 형평을 유지하고자 상대방의 채권을 공익채권으로 한 것이다.41) 
대상판결은 이 사건 운송중단으로 한진해운이 화주들에 대하여 부담하는 화물운송의무는 채무불이행이라는 종국적인 상태가 되어 향후 더 이상의 이행 문제를 남기지 않고 종료되었고,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한진해운의 관리인이 한진해운의 화물운송의무를 이행하기로 선택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이 사건 비용 상당 채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7호에서 정한 청구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은 후자의 이유만으로 충분히 그 타당성을 수긍할 수 있으나, ‘이 사건 운송중단으로 인하여 한진해운이 화주들에 대하여 부담하는 화물운송의무는 그대로 종료되었다’는 판단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4) 파산채권을 재단채권으로 인정하는 합의에 의한
   성질 변경 여부

대상판결은 ① 사실관계에 비추어 피고가 한진해운에 대한 파산절차에서 이 사건 비용과 유사한 항목을 재단채권으로 인정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② 피고가 다른 채권을 재단채권으로 인정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비용 상당 채권의 성격이 회생채권 내지 파산채권에서 공익채권 내지 재단채권으로 변경된다거나 이를 재단채권으로 인정하여야 한다고 볼 뚜렷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필자는 이 사건 비용 채권이 공익채권에 해당한다고 보므로, 필자의 결론에 따르면, 이에 관한 검토는 불필요하다. 다만 위 ② 부분은 법리적인 판단이므로 살펴보건대, 우리 판례에 의하면 공익채권은 개별 법률규정에 의하여 인정되는 것이어서 관리인이 채권의 법적 성질에 관하여 정확하게 법률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회생채권을 공익채권으로 취급하였다는 사정만으로 회생채권의 성질이 공익채권으로 변경된다고 볼 수 없다.42)


 
결론

대상판결은 간단한 듯 하면서도 도산채권과 공익채권·재단채권의 구분에 관한 다양하고 유의미한 실무적 시사점을 던져준다. 필자가 논의를 생략한 부분을 포함하여, 대상판결은 해당 사안에서 문제되는 다양한 쟁점들을 꼼꼼하고 정치하게 정리하여 판단하였다.
다만 한진해운과 화주들 간의 해상화물운송계약이 이 사건 회생절차개시결정 이후 발생한 이 사건 운송중단에 의하여 당연 종료되었다는 전제 아래, 이 사건 비용 채권이 채무자회생법 제118조 제3호 소정의 회생채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부분은 앞서 본 바와 같은 아쉬움이 있다.
필자는 이 사건 비용 채권은 회생채권에 해당하지 않고, 회생절차개시 이후 행하여진 관리인의 채무불이행에 따라 발생한 손해배상청구권으로서 채무자회생법 제179조 제1항 제5호 소정의 공익채권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는 단지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으나, 그만큼 도산절차를 둘러싸고 주장되는 청구권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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