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관 KMI 연구위원
임종관 KMI 연구위원

쥐의 해인 무자년(戊子年)이 저물고 소의 해인 기축년(己丑年)의 새해가 떠올랐다. 지난달에 있었던 어느 좌담회에서 한 해운회사 사장님은 2008년을 ‘환희와 좌절의 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아마도 전 세계 해운인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해의 환희는 평범한 환희가 아니라 ‘역사적 환희’였고, 좌절도 ‘역사적 좌절’이었다. 따라서 무자년의 해운역사는 앞으로 상당기간 되새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소가 되새김하듯이 우리 모두 환희와 좌절의 교훈을 되새김하게 될 것이다.


가장 먼저 되새김해야 할 것은 선가의 상식이다. 2007년부터 2008년 8월까지 케이프사이즈 벌크선(capesize bulk vessel)의 가격에서는 중고선가가 신조선가보다 3,000만 달러나 높게 형성되고 있었다. 선가의 상식은 소형선보다 대형선의 가격이 높고, 중고선보다는 신조선의 가격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중고선의 가격이 신조선의 가격보다 높다는 것은 선가의 상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비상식의 해운시황이 20개월이나 지속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의 상황이다. 통상적인 시황에서 4,000만 달러에 머물던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의 건조가격이 역사적 호황기에 9,900만 달러까지 상승하는 것은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평상시 2,200만 달러에 머물던 중고선가가 1억 3,000만 달러까지 치솟아 일시적으로 신조선가보다 높게 형성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중고선의 가격이 20개월 동안이나 신조선가보다 높게 형성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많은 선주들이 이러한 기회를 이용해서 보유선박을 대거 처분하였다면 중고선가는 곧바로 신조선가 밑으로 하락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상식을 지키는 선사보다 비상식을 추구하는 선사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비정상의 기간이 길어졌던 것이다. 많은 선사들과 많은 은행들이 비정상적인 시황에 많은 자본을 투자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조선소들도 이러한 비정상의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시설투자를 하였다. 선가상식이 어긋난 역사에 대해 선사나 금융기관이나 조선소 모두 반성하는 마음으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되새김해야 할 것은 수요공급의 상식이다. Clarkson사의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운항중인 건화물선은 2001년 2억 8,660만 톤에서 2008년 4억 2,450만 톤으로 48%나 증가하였는데 2008년 현재 조선소에 발주된 신조선 잔량이 2억 9,780만 톤이나 된다. 3-4년 후면 세계 건화물선이 7억 톤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2001년 선박량의 2.5배나 되는 선대규모이다. 따라서 앞으로 해상물동량이 2배 이상으로 증가해야 통상적인 시황이 연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동량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세계소비의 80%를 차지하는 선진국경제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에 생산설비만 잔뜩 확장시켜 놓은 채 선진국의 구매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따라서 세계경제는 당분간 과잉설비와 과잉재고에 허덕일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상당기간 해상물동량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시장에 쏟아져 나올 3억 톤의 선박은 향후 해운시황 회복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결국 많은 해운회사들을 쓰러뜨리고, 금융기관에 막대한 부실채권을 안겨줄 것이며, 조선소에게 무료한 휴식만 강요할 암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따라서 해운회사, 금융기관, 조선소 등 세 당사자는 현재 조선소에 남아있는 3억 톤의 건조물량이 해운시장 수급상황의 장애물이라는 점에 공감해야 할 것이며, 이 선박들의 건조시기를 수정하는 대타협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되새김해야 할 것은 지난 해 맛보았던 ‘역사적 환희’의 여운이다. 비록 현재 좌절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형편이기는 하나 2008년의 환희는 확실히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고, 아주 강렬한 것이었다. 해운시장은 전통적으로 미국, 일본, 유럽을 중심축으로 작동해왔다. 이 전통의 시장에 중국이라는 신흥국의 잠재력이 가세하면서 역사적 호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잠재력은 아직 다 반영되지 않았다. 중국의 저가 생산능력만 반영되었을 뿐 잠재소비능력은 미처 반영되지 않았다. 구매력평가기준으로 중국은 이미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다. 만약 베이징이나 상하이 시민들이 서울시민들처럼 밤늦게까지 집밖에서 활동한다면 엄청난 소비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13억의 인구대국인 중국의 소비활동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여기에 인도와 러시아와 브라질이 가세한다면 27억 명의 거대한 소비시장이 조성될 수 있다. 무자년 해운시황의 환희는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의 서곡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해운회사나 금융기관이나 조선소는 바야흐로 역사적 공조체제를 구축해가야 할 때이다. 새아침이 밝혀진 기축년에는 해운, 조선, 금융인들이 힘을 모아 좌절의 뿌리를 제거하고, 공생공조의 새로운 씨앗을 함께 뿌려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