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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맵(New Map)’
[574호] 2021년 07월 01일 (목) 10:47:55 한국해사문제연구소 강영민 전무 timkang@hanmail.net

태양의 계절 6월이다. 해가 가장 긴 하지가 6월에 있어 그렇게 불렀나 보다. 6월에도 열리지 못한 콤파스, 아쉬움을 김용택의 시 ‘6월’로 달랜다.

 

6월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정감 있는 시 ‘6월’을 읽노라니 흰 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햇살이 쏟아지는 초여름 6월의 오후가 생각난다. 살랑 부는 6월의 바람에도 파르르 흔들리는 나뭇잎은 애써 지우려 해도 슬며시 떠오르는 그리운 임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리라. 호국보훈의 달 6월 그리고 6일 현충일. 나라와 겨레를 위해 뜨거운 젊은 피를 바친 호국영령들을 기리며 묵념한다.


 
새 지도
에너지, 기후, 지정학이 바꾸는 새로운 패권 지도 ‘뉴맵(New Map)’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너지 및 국제관계 전문가 대니얼 예긴이 쓴 책이다. 예긴은 에너지 이슈가 생길 때마다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찾는 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그는 클린턴부터 트럼프까지 미국 4개 행정부의 에너지부 자문위원을 맡았다. 예긴은 예일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문학과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후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며 많은 저서를 남겼다. 석유산업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그의 저서 ‘황금의 샘’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였고, 미중패권과 신재생 에너지 확산을 예고한 ‘2030 에너지 전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글로벌 리더들의 극찬을 받았다.


‘뉴맵’은 에너지와 지정학적 문제에 의해 극적으로 변화하는 새로운 지도를 다룬 책으로 이 지도의 함의를 소상히 설명한다. 지정학은 국가 간의 세력균형과 갈등을 다루는 학문이며, 에너지 문제는 세계적인 공급과 흐름 안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변화를 반영한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에너지와 관련된 미국의 위치 변화, 재생가능 에너지 자원의 위상, 기후문제에 대한 새로운 정치학에 의해 좌우된다.


예긴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나는 지도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극적인 변화들을 개념적으로 생각해보려 했다. 미국의 지도에선 미국을 세계 최대 석유수입국에서 세계 최대의 석유생산국으로 변화시킨 셰일혁명에 대해 설명했고, 러시아의 지도는 러시아의 방대한 에너지 자원을 통해 푸틴이 어떻게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내세울 수 있었는지와 러시아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왜 다시 아시아 쪽을 향하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중국의 지도에선 관계개선에서 시작하여 강대국으로 경쟁하기까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 변화가 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찰했다. 중동의 석유를 주로 수입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중동의 지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제국의 붕괴와 함께 중동에 세워진 국가들의 지도를 바꾸려는 지속적인 노력에 대한 이해를 제공했다. 이란과 이슬람 성전주의자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것도 새로운 지도의 작성이며, 중동의 산유국들도 석유수출 의존도를 낮추면서 경제를 다각화하는 방식으로 경제지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다른 지도들은 자동차산업의 사업방식이 전기자동차와 자율자동차, 그리고 차량 공유가 조합된 새로운 자동차 관련기술 중심으로 변모할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기후지도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질문으로 반세기 역사를 자랑하는 풍력 및 태양광산업이 충분한 경쟁력이 있음에도 그런 경쟁력을 보일 수 없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런 지도를 통해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의 미래와 더불어 새로운 에너지 및 지정학적 지도에서 한국이 갖는 위치와 새로운 지형에서 한국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미국의 새로운 지도
석유 지도를 일거에 바꾼 셰일혁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가스전 개발은 당시의 일반적인 기술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격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실험적이면서도 독창적인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단단히 굳어있는 퇴적암 지층인 셰일 암석층 사이에서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방법으로 상업적 이득을 거둘 것으로 확신한 사람은 조지 미첼이며, 그의 신념과 확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다. 그는 텍사스 북쪽의 바넷 셰일이라는 곳의 퇴적암 지층 안에 작은 통로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암석층 내의 천연가스가 가스정으로 흘러나오게 하는 방식을 착안했다.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수압 파쇄법, 즉 물과 모래 및 여러 화학물질 등이 뒤섞인 용액을 강한 압력으로 지층에 쏘아 균열을 만들고 그 틈으로 천연가스가 빠져나오게 하는 프래킹 기술이었다. 또 하나는 중요한 역할인 특수 동력장치인, 지하 1마일 혹은 2마일 지점에서 시추장비의 날 끝을 90도 각도로 돌린 후 계속 수평으로 회전하며 전진시키는 기술이었다. 이러한 수평굴착기술에 프래킹 기술을 접목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결합이었고, 이를 통해 셰일 암석층 안에 있는 천연가스를 성공적으로 뽑아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2007년까지만 해도 미국 발전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졌던 석탄의 비중이 2019년에 24%까지 떨어졌고 천연가스의 비중은 35%로 올라갔다. 같은 기간에 미국경제가 2배 이상 성장했음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90년대 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 역시 셰일가스 덕분이다.

 

아주 짧은 기간 새로운 기술변화에 힘입어 텍사스는 경이로운 번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2009년 1월에서 2014년 12월 사이 텍사스의 석유생산량은 3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를 제외한 모든 OPEC 회원국들을 능가하는 수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런 혁명은 석유자원의 지도를 바꾸었다. 미국은 다시 한번 세계 석유산업의 주역으로 복귀했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로 촉진된 경제활동의 증가가 급격한 수입감소와 맞물려 그로 인한 이득이 공급망 및 금융연결망을 통해 미국경제 전반을 선순환시켰다. 당시 FRB 의장이던 버냉키는 셰일혁명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에 불어닥친 가장 유익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렇듯 셰일가스는 미국의 제조업 부흥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셰일혁명은 세계 석유시장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고 에너지 안보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켰다. 수십년동안 석유시장을 지배하던 OPEC과 비OPEC 국가들의 대결이라는 구도가 사라지고 새로운 개념과 구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빅3 시대가 열렸다. 2020년 코로나 사태에 따른 석유시장의 커다란 위기 속에서도 이들 세 나라 사이의 전례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그 시대를 바로 볼 수 있었고, 에너지 자원이 지정학적 갈등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러시아의 지도
러시아의 부활을 이끌고 경제발전을 뒷받침한 것 역시 석유와 천연가스였다. 지난 150년 동안 러시아제국과 소비에트연방 그리고 1991년 이후의 러시아연방공화국을 포함한 러시아는 세계 에너지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동시에 석유와 천연가스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대 후반 소비에트연방은 세계시장에서 석유수출국으로 복귀했다. 볼가강과 우랄산맥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산시설이 건설되고 시베리아 서부에서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유전지대가 발견되면서 이루어진 성과였다. 그러나 곧이어 중동지역으로부터 석유공급이 넘쳐나자 세계유가가 하락하였고, 소련의 석유산업은 타격을 받았다. 게다가 1970년대가 시작되면서 소비에트연방의 중앙경제식 경제정책은 실패를 거듭하여 1985년 고르바초프가 소비에트연방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젊고 열정 넘치는 고르바초프는 경제 부문의 개혁을 결심했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이듬해 석유가격이 폭락하면서 소비에트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경제부장관이자 총리였던 예고르 가이다르는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연대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1991년 12월 옐친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및 벨라루스 의회 의장들은 공산당 간부들이 애용하던 숲속의 사냥꾼용 통나무집에 모여,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 USSR이 국제법과 지정학적 현실의 주체로서 이제 완전히 해체된다고 선언했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는 통합되어 있던 석유산업체계도 함께 붕괴시켰다. 카스피해 서쪽 연안에 있던 기존 시설은 새롭게 독립한 아제르바이잔의 소유가 되었고 동쪽의 유전지대 역시 새롭게 독립한 카자흐스탄의 소유가 되었다. 소비에트연방 시절의 경제체제가 무너지자 시베리아 서부의 거대한 석유산업 역시 분열되며 혼란 속에 빠졌다. 2000년 옐친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푸틴의 목표는 사회질서를 회복하고 경제상황을 안정시키며 정부의 권위를 회복함으로써 러시아를 강대국 위치로 복귀시키려 했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모두 석유산업과 관련하여 운이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이 러시아를 이끌 때 유가가 폭락했고 러시아 경제도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푸틴은 운이 좋았다. 석유가격이 그가 집권한 2000년대부터 정상을 되찾더니 브릭스 시대에 이르러선 계속 상승하였다. 이렇듯 석유와 천연가스로 인한 수익이 늘어나자 러시아 경제도 크게 되살아났고, 국방력 강화를 비롯해 강대국으로의 복귀를 위한 자금지원이 가능해졌다.


천연가스와 가스관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하나로 이어줌과 동시에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천연가스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에너지 자원이며 경제와 산업을 뒷받침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에 더해 서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의 천연가스관이 자국 영토를 지나가게 해주며 받는 수수료 명목의 관세 역시 우크라이나 정부의 주요한 수입원이다. 2006년 1월 가즈프롬은 우크라이나 쪽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우크라이나는 서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를 자국으로 빼돌렸고, 서유럽에 천연가스 부족사태가 일어나자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 위기가 닥쳐왔다. 이러한 상황으로 러시아와 서유럽 모두 에너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으나 양측이 생각하는 에너지 안보의 개념은 확연히 달랐다. 유럽연합 전체 에너지 소비량에서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5% 정도다. 유럽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40%를 차지하는 러시아 천연가스는 유럽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10%를 책임지고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본토의 최대 천연가스 공급지는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가스전과 영국 북해의 가스전으로 EU 비회원국인 노르웨이가 유럽연합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유럽 천연가스 시장의 24%를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유럽이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9%는 알제리를 중심으로 하는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나온다.
 2014년 후반에 유가가 다시 폭락하자 석유에 의존하던 러시아의 경제가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루블화의 가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은행들이 파산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보조금과 소요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위기대응 계획을 세웠고 그 과정에서 국부펀드 자금을 적절히 끌어다 사용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국부펀드 자금은 러시아의 재무장관이던 쿠드린이 1998년 외환위기로 러시아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외환보유가 바닥나는 쓰라린 경험을 살려 몇 년에 걸쳐 조성한 것이다. 그는 석유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국부펀드 조성이나 해외채무 상환에 사용한다는 비판에도 궂은 날을 대비했는데, 그의 지혜가 빛을 발한 셈이다. 이후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으로 고조된 미중 갈등의 와중에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급속히 호전되어 한때 마르크스와 레닌의 공산주의 이념으로 뭉쳤던 두 나라가 이제 석유와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다시 하나가 되고 있다.

 

중국의 지도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가 시작되고 2008년 금융위기가 세계를 덮치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경제 질서를 관리하는 미국의 방식을 세계는 별다른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의 대재앙이 자본주의 중심 미국경제의 심장부를 강타하자, 국가나 공산당 같은 정당이 경제문제를 책임지는 중국식 모형이 미국방식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더구나 중국이 2009년부터 세계경제를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로 이끈 핵심동력이 되자, 자신들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미국을 바라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중국의 관점에서 금융위기는 미중관계에 역사적 분수령이었고, 이를 기점으로 미국도 중국을 대등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렇듯 G2의 경쟁은 두 가지 영역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하나는 말 그대로 일반적인 지도에서 볼 수 있는 남중국해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 경제지도를 다시 그리려는 이른바 일대일로다. 남중국해야말로 미국과 중국이 직접 충돌할 수 있는 가장 첨예한 대립 지점으로, NATO 총사령관을 역임한 스타브리디스 제독도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현재 남중국해를 통해 3조 5,000억달러 규모의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중국 해상교역량의 3분의 2, 일본 해상교역량의 40%로 전 세계 교역량의 30%에 달하는 규모다.

 

중국의 지리학자 바이메이추는 “지리학을 배울 때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애국심이다. 지리학을 배우는 이유 또한 국가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해”라며, 다른 종류의 전쟁인 지도전쟁을 선포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충돌은 여러 섬의 영해 문제와 관련되며, 남중국해가 완전한 공해인가, 아니면 일부라도 중국 영해에 속하는가 하는 것이 쟁점이다. 또한, 배타적 경제수역 EEZ에 대한 것으로, 중국은 EEZ 안을 지나는 선박이나 항공기에 간섭할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된다고 주장하여 미국과 직접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단순한 항행의 자유가 아닌 ‘외해에서 군사활동을 할 자유’를 제기하여 국제 갈등을 빚으며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다는 것이 국제변호사 벡맨의 주장이다. 이렇듯 남중국해는 법의 문제, 국력의 문제, 그리고 자원과 역사의 문제로 해결이 한층 난해해졌다.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가 말했던 것처럼 남중국해는 말라카해협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곳이다. 중국의 에너지 안보와 관련하여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항로와 멀리 떨어진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자원이 아니라 항로 자체와 그 항로를 오가는 화물이다. 수출과 수입의 상당 부분을 남중국해 통로에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서도 중국이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중요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선포한 일대일로의 일로는 바다로 이어지는 길을 개척하는 의미이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로 간 뒤 다시 아라비아반도 쪽으로 올라가 지중해를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만들자는 것이다. 중국 바닷길 개척의 최종 목표는 곳곳에 중국의 해상무역에 도움이 되는 항구를 건설하고 중국해군을 위한 기항지를 제공하겠다는 이른바 ‘진주 목걸이’ 전략이다.
요즘 중국은 많은 나라에 가장 좋은 투자조건을 제시하는 곳이다. 사회 기반시설 및 에너지 자원 개발을 위한 투자자금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세계경제 지도에 자국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하는 나라들은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미국보다 새롭게 일어서는 중국 편에 서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실정이다.

 

중동의 지도
2014년 여름, 한 편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한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 조직원이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 사이에 있는 어느 모래밭에 나타났다. 그는 이라크와 시리아의 국경선을 만들었던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이제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국가 ISIS의 발아래 사라졌다며, “앞으로 우리는 이런 국경선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다. 이어 그의 선언을 뒷받침하듯 국경초소가 폭파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모든 국경선을 지워나갈 것이다” 오래전 영국의 보수당 의원이자 기행문 작가인 사이크스와 프랑스 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인 피코에 의해 만들어진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의해 중동의 지도가 새로 그려졌다. 두 사람은 비밀리 만나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모래밭 위에 그어진 선’은 지중해를 마주보고 있는 하이파 근처에서 시작되어 페르시아 국경 근처인 키르쿠크까지 이어지며, 선의 북쪽은 프랑스의 보호령, 남쪽은 영국령이 된다. 두 사람이 그린 지도에는 다른 내용도 들어 있었다. 프랑스는 파란색 지역, 영국은 붉은색 지역에 대해 직접적인 통치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다만, 사이크스와 피코가 격렬히 충돌한 한 가지 쟁점은 바로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성지의 관리문제였다. 물론 그들이 그저 텅 빈 지도 위에 마음대로 지도를 그렸던 것은 아니다. 기존의 지도들이 없었다면 그리 쉽게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도움이 된 것은 오스만제국의 지도로 이 제국의 행정구역인 빌라예트를 상세히 표시한 지도가 완성된 때는 1864년이었다. 어느 역사학자는 이렇게 지적하는 글을 남겼다. “민족 구성을 의식해 행정구역을 나누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사이크스와 피코는 이렇게 다양한 언어와 민족으로 구성된 오스만제국의 지도 위에 다시금 자신들만의 선을 그어 구역을 나누었다. 이번에도 역시 언어나 민족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첫 번째 중동의 지도자 나세르는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만들어진 중동지역의 지도를 바꿔놓으려 했던 인물이다. 중동지역의 각 국가를 갈라놓고 고립시키는 국경선을 상징하는 철조망을 철거하고 대신 모든 국민을 범아랍권 안에 모이도록 만들었다. 1956년 호기롭게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단행한 나세르는 여세를 몰아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를 사실상 단일 국가인 통일아랍공화국으로 합병시켰으나 3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가 패배하여 시나이반도까지 이스라엘에게 빼앗기자 그는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 이로써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지워버리고 중동지역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려던 나세르의 원대한 야망이 물거품으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비난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굴욕을 겪으며 그는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중동지역에서 이란혁명과 팔레비 국왕의 망명,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혼란스러운 틈에 이라크에선 사담 후세인이 잔혹하게 권력을 휘두르며 아랍세계의 새로운 맹주가 되기 위한 첫발을 내딛고 있었다, 이란의 호메이니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는 후세인은 이란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후세인은 빠른 시일 내에 전투를 끝내고 승리를 거둬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볼 계획이었다. 그가 차지하려 했던 곳은 역사적으로 아라비스탄이라고 알려진 지역의 일부로, 이란의 영토지만 페르시아어가 아닌 아랍어를 사용하는 후제스탄 지역이었다. 이란 유전지대의 90%가 몰려 있는 후제스탄을 페르시아인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것이 후세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석유가 자신이 만드는 새로운 아랍 초강대국을 위한 경제적 무기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소모전으로 교착상태에 빠지고 유가하락으로 경제적인 타격을 입자 국제연합이 제시한 휴전안을 받아들여 전쟁은 끝났으나 그동안 사망자가 50만명, 부상자 100만명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1990년 이란-이라크전쟁이 마무리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았으나 후세인은 중동지역의 지도를 다시 그리겠다며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쿠웨이트 점령에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더 나가 이라크 군대는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지대로 집결하였다. 세계 석유 매장량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사우디의 유전지대를 빼앗을 속셈이었다. 이제 후세인은 나세르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범아랍권의 지도자가 되어 사이크스와 피코 아니 그 이전의 오스만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가 중동지역의 과거 국경선들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격퇴를 위한 34개국 연합을 이끌어내 냉전시대 처음으로 전례없는 다국적군을 결성하여 후세인의 이라크를 패퇴시켰다. 바그다드 함락과 함께 후세인은 생포되어 반인도주의적 행위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16년 전인 2004년 미국 정보공동체 산하의 연구조직인 미국 정보위원회가 ‘미래 세계의 지도’라는 보고서를 펴낸 적이 있다. 2020년을 예상하는 이 보고서에 담긴 여러 내용 중에는 유행병에 대한 것도 있는데, 참으로 섬뜩한 예측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유행병이 창궐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1918년과 1919년 사이에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으로 2,000만명이 사망했다. 만일 개발도상국의 거대 도시에서 이런 종류의 전염병이 발생한다면 끔찍한 재앙으로 그 피해는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될 것이다. 주요 국가의 사망자 수가 100만명 단위에 이르고 병이 확산되는 동안 여행과 교역이 중단될 것이고, 각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어 우리가 이룩한 세계화는 큰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불안한 미래의 예고편이었다.

 

불안한 미래
에너지와 지정학적 관계에 대한 새로운 지도는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까?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와 중국의 변신, 그리고 인도의 경제개방 등의 모든 상황이 합쳐지며 25억명 이상의 인구가 세계경제로 새로 편입되었고 이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기회와 관계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세계경제는 인터넷과 비용이 적게 드는 상호교류, 진보한 운송수단, 자본과 기술, 지식 그리고 인간의 흐름에 의해 더욱 하나로 연결되었고,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보다 협력적인 세계질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게 되었다. 이런 모든 상황은 세계화라는 용어로 뭉뚱그려 설명되었고, 이 세계화의 과정을 이끄는 원동력은 바로 에너지 자원이었다. 코로나19 위기 이전의 세계경제 규모는 90조달러였고, 향후 5년 안에 100조달러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다시 90조달러 규모를 회복하려면 적어도 2~3년이 걸릴 것이며 100조달러 달성에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마저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제와 백신이 빨리 개발되었을 때의 얘기다. 이번 위기로 우리의 일상생활 자체가 바뀔 것이다. 디지털 기술과 가상현실 속의 세계를 통해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갑자기 그 속도를 빨리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또한, 지정학적 문제에도 영향을 미쳐 민족주의와 보호주의에 직면한 각국 사이에서 충돌이 더욱 심각해지고 협력은 더욱 어려워지며, 장벽 또한 높아지고, 국제기관들은 분열된 세계 공동체 안에서 기댈 발판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포함해 이런 양극화와 함께 벌어지고 있는 위험들은 앞으로 세계정치를 결정짓는 중요 요소가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은 세계 경제활동에 타격을 입히고 실제 분열이 일어나는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국이 본격적으로 대립하면 결국 세계가 고통을 받을 것이다. 에너지 자원 그중에도 석유와 천연가스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계와 새로운 지정학적 상황 속에서도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셰일혁명은 미국경제는 물론 국제적인 지위까지 바꿔놓았다. 새로운 석유질서는 순전히 그 규모에 의해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빅3가 지배하고 있다. 2020년 봄에 시장이 붕괴되자 이들 국가들은 같은 처지가 되어 뜻을 하나로 모았지만, 앞으로 언제든 시장과 각자의 입장에 변화가 생기거나 기후문제가 부각되면 세 나라의 이해관계 역시 다양하게 바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는 강대국으로서의 위치 확립과 유럽과의 관계 우크라이나와의 다툼 그리고 중국과의 협력 등에서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중동지역에서는 석유 그리고 최근의 천연가스가 앞으로도 이 지역의 경제발전과 지역경쟁 구도에서의 우위, 인구통계, 안정성 및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계속 중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새로운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은 과거와 같은 에너지 안보가 아니라 기후변화와 젊은 세대들의 성향 변화다. 기후변화 문제와 정부의 지원, 투자자들의 결단, 다른 종류의 기업 및 혁신가들의 협업은 물론 디지털에서 신소재,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사업모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다양한 기술과 역량의 융합으로 혁신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혁신을 통해 탄생하며, 좋든 나쁘든 그 기술은 에너지와 지정학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 지도가 우리에게 쭉 뻗고 변하지 않는 길만 알려주리란 보장은 없다.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변화는 일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불가피하게 새로운 지도가 그려지며 경로 또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셰일혁명과 2008년 금융위기, 아랍의 봄과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전기자동차의 대중화나 태양광발전 비용의 하락,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경제를 암흑기로 밀어놓은 코로나19의 유행, 미국 정치계를 뒤흔든 2020년의 폭동과 시위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듯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정확히 그려갈 수는 없다. 그러나 예측하거나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들은 있는 법이다. 변화 속에서도 세밀하고 합리적인 새 지도를 그리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해법학회 배병태 명예회장님을 떠나보내고 허전한 마음 달랠 길 없다. 나를 무척 아껴주신 손주찬 교수님에 이어 배병태 박사님마저 타계하시니 고아처럼 외롭고 쓸쓸하다. 해법학회 학술발표회 참석을 위해 전북대로 가는 도중 금산사에 들러 경내를 함께 산책하고, 목포해대에서 열린 학술발표회 후의 회식에서 세발낙지가 얼굴을 덮어 웃음을 자아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부디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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