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퇴보’의 갈림길에 선 홍콩

작년 2,234만 teu로 싱가폴항에 1위자리 6년만에 내줘

 

연간 1,400여면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천국 홍콩. 홍콩관광의 하이라이트는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보는 야경이다. 현란한 조명을 뿜어내는 홍콩섬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은 다소 과장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홍콩의 번영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입항하는 컨선에서 본 홍콩야경 치열하다


컨테이너선을 타고 홍콩항으로 입항할 때 눈에 들어오는 홍콩의 야경은 화려함이 아니라 치열함이다. 초대형 선박들이 쉴새없이 드나드는 길목이지만 주변 섬들을 오가는 여객선과 어선들까지 뒤엉켜 홍콩항은 1년 내내 분주하고 혼잡하다. 터미널마다 빼곡히 들어찬 선박,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갠트리 크레인, 트레일러의 소음까지 섞여 전쟁터가 따로없다.


그러나 ‘무질서속의 질서’, ‘익숙한 노련함’이 홍콩항 곳곳에 배어있다. 한때 아시아의 4龍으로 기세를 올리던 홍콩의 저력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바로 홍콩항이다.


홍콩항은 24시간 가동을 멈추지 않는 자유무역항이다. 포스트 파나막스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8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을만큼 크고 넓다. 매주 80여개의 세계적인 선사들의 선박 450척이 입항해 화물을 싣고 내린다.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부터 홍콩은 물론이고 중국 수출입 화물 수송의 관문으로서 홍콩항은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매주 80여개 선사 450척 선박 입항
홍콩항은 민간기업이 개발과 설계, 운영을 담당하고, 정부는 항만개발시 참여회사와 개발계약을 체결하는데만 관여한다. HIT, MTL, DPA, HIT-COSCO 등 4개회사가 각각 운영하는 콰이청(Kwai Chung) 터미널은 면적이 53㎢, 총 9개 터미널에 24개의 선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홍콩항 전체 컨테이너 처리량의 60% 이상을 담당한다. 이밖에 미드 스트림(Mid-sream), 리버 트레이드(River Trade) 터미널과 기타 일반 부두 등이 컨테이너와 함께 다양한 화물을 취급한다.


워낙 컨테이너 처리물량이 많아 전체의 20% 정도는 홍콩 앞바다에서 바지작업으로 처리하는데, 인명 사고나 화물손상 등의 위험이 있지만 본선이 접안하여 작업하는 경우보다 40%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루 18척이 부두에 머무는 시간 6-8시간
홍콩항은 최대 수심 15.5미터의 화강암반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항만조건을 갖추고 있다. 컨테이너 야드가 협소해 풀컨테이너는 5-6단을 적재하고, 빈컨테이너는 8단까지 쌓도록 하고 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장치 허용기간은 7일(환적화물 14일)을 제공한다. 


홍콩항의 화물 처리 생산성은 단연 최고다. 하루 18척의 선박이 입항하여 작업을 마치고 나가는데 평균 6~8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인근 경쟁항만 보다 2-3시간 빠르다. 컨테이너 선적과 관련된 최신 터미널 운영 시스템인 nGen(next generation)의 가동과 철저한 노무 관리가 중요한 포인트라는 게 홍콩항의 자랑이다. 1996년 1세대 운영시스템이 탄생한 이후 지난 4월 2세대 nGen이 선보이면서 모든 화물 관리와 작업이 더 빨라졌다.


이밖에도 터미널 정문에 트레일러가 도착하기 전에 화물을 가장 편리하게 싣고 내릴 수 있도록 위치가 지정되어 있으며, 휴대폰 문자 메시지와 음성을 이용해 트레일러 운전사에게 적재위치를 알려주거나 긴급상황을 전파하는 시스템도 운영하고 있다.

 

저장·가공·제조에서 거주까지 허용한 자유무역항
홍콩항은 이처럼 높은 생산성과 선진화된 물류서비스와 함께 잘 발달된 금융·무역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자유 무역항으로서 화물의 저장, 가공, 제조는 물론 개인의 거주와 소비까지 허용함으로써 일찍부터 국제 물류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홍콩항은 이제 성장과 퇴보의 갈림길에 섰다. 지난해 홍콩항의 컨테이너 화물 처리량은 2004년 보다 2% 증가한 2,243만TEU를 처리한 반면 라이벌 싱가폴항이 8.7% 늘어난 2,320만TEU를 처리해 1위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6년만이다. 홍콩항의 물동량 증가율 2%는 4년만에 최저수준이다. 위태위태하던 일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같은 징후는 곧곧에서 나타나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홍콩항의 충격은 크다.


세계 4위인 인근 선전항(얀티안, 쉐코우, 치완)이 18.6% 증가한 1,620만TEU, 3위인 북중국의 상해항이 24% 증가한 1,808만TEU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참담한 수준. 선전항의 급성장이 홍콩항의 위축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선전항은 최근 2-3년간 홍콩항의 물량 20% 이상을 잠식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홍콩항의 성장 기반이던 인근 광동성 지역의 육로 운송 화물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간 감소한 것보다 무려 4배 이상이 지난 1년 동안 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홍콩항 실태 연구를 수행한 맥킨지(Mckinsey)도 이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홍콩항의 화물 치리비용이 선전, 광조우 등의 항만보다 비싼데다, 육로운송에 따른 추가 비용과 시간 등으로 화주들이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중국 지역에서 육로를 이용해 선전항으로 옮기는 것보다 홍콩으로 운송하는데 드는 비용이 200달러가 더 높고, 터미널 처리비용도 100달러 추가 된다.

홍콩은 줄곧 중국경제의 고속성장과 이에 따른 남중국 물동량 급증의 수혜를 톡톡히 누려왔으나 1997년 7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거꾸로 같은 나라의 항만이 된 선전항의 위세에 눌려 정체의 운명을 맞고 있는 느낌이다.


보다 근본적인 요인으로는 남중국에 집중되던 제조업 기지들이 중북부 지역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이 때문에 상해, 닝보, 청도 천진, 대련 등의 항만이 급성장하고 있어 홍콩항은 뚜렷한 돌파구를 못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홍콩당국은 외항선박 및 주강 삼각지(Pearl River Delta)를 오가는 선박들의 유치를 위해 선박등록비를 비롯한 각종 비용감면과 입항 등록절차 간소 등의 해운업발전대책을 수립해 시행키로 했다.

 

싱가폴항의 경쟁력 벤치마킹 자성론 대두
결국 홍콩항은 싱가폴, 카오슝, 부산 등과 함께 자국의 선전항과도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는 이중고속에 앞으로 세계 최대항만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 때문에 환적화물의 대거 유치로 1위로 올라선 싱가폴의 경쟁력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홍콩항은 이대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 것인가. 그렇게 쉽사리 경쟁력을 상실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국정부는 기본적으로 선전, 상해항과 함께 홍콩항을 균형적으로 개발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정부는 선전항 터미널 개발 속도조절을 통해 홍콩과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어느때 보다 홍콩항 스스로 기울이는 열정도 대단하다. 우선 홍콩항의 최대강점인 효율성을 더욱 증대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홍콩항의 컨테이너 처리실적은 시간당 115개로 주변의 선전과 상하이항보다 크게 높다. 이같은 효율성에다 2010년 홍콩과 마카오 및 심천을  잇는 다리(Y-Bridge)를 건설해 광동지역 특히 주강삼각지(Pearl River Delta)지역의 물동량을 최대한 유치하겠다는 복안이다.


홍콩의 경제회복도 청신호다. 중국 반환이후 실업율 급증, 경제성장 둔화 등으로 얼어붙었던 홍콩경제가 지난해는 실업율이 전년보다 거의 1% 감소한 5.3%에 머물고, 경제성장율은 7% 전후가 될 것으로 추정되는 등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2년 4개선석 추가개발, 3000만teu목표
홍콩은 이미 1990년에 설립된 항만개발위원회(PMB, Port and Maritime Board)를 설립하여 홍콩항의 미래를 준비해왔다. 콰이청의 9호 터미널이 지난해 6선석으로 문을 열었고, 2012년 완공을 목표로 4개 선석 규모의 추가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연간 컨테이너 처리물량이 2010년경에는 연간 3,000만TEU, 2020년까지는 4,000만TEU가 될 것이라는 것이 홍콩항의 전망이다.


“NO MONEY, NO TALK”. 돈에 유난히 관심히 많은 홍콩사람들을 빗대는 말이다. “꿍시파차이”라는 정초 인사말도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해지자’라는 뜻이고 보면 아주 냉정하고 실용적인 홍콩사람들의 비즈니스 성향과 가치관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 


홍콩항이 비록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지만, 그들이 결코 호락호락하게 1위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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