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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과 ‘게임 오버’
[567호] 2020년 12월 01일 (화) 12:46:54 한국해사문제연구소 강영민 전무 showload@chol.com

겨울로 넘어가는 늦은 가을 오후 경희궁 주변의 오솔길을 산책했다.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을 수놓은 양탄자 위를 걷는 듯 황홀하다. 계절의 정취에 흠뻑 젖는 11월이다. 코로나 감염병의 3차 유행이 예고되어 11월에도 콤파스 문을 열지 못했다. 백신과 치료제가 속히 나와 코로나로부터 해방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11월은 주목할만한 것이 없는 달인가 했더니,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당선되었고 기업인의 긍지를 심어준 삼성 이건희 회장의 타계와 추수감사절이 있었거니와 11월을 주제로 한 주옥같은 시들도 많이 있었다. 그중에 이해인의 아름다운 시 ‘11월에’를 싣는다.

 

 ‘11월에’
나뭇잎에 지는 세월/ 고향은 가까이 있고/
나의 모습 더없이/ 초라함을 깨달았네
푸른 계절 보내고/ 돌아와 묵도하는/ 생각의 나무여
영혼의 책갈피에/ 소중히 끼운 잎새/
하나하나 연륜 헤며/ 슬픔의 눈부심을 긍정하는 오후
햇빛에 실리어 오는/ 행복의 물방울 튕기며/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조용히 겨울을 넘겨보는/


11월의 나무 위에 연처럼 걸려 있는/ 남은 이야기 하나
지금 아닌 머언 훗날/ 넓은 하늘가에/
너울대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별밭에 꽃밭에 나뭇잎 지는 세월/
나의 원은 너무 커서/ 차라리 갈대처럼/ 여위어 간다

 

11월에 고른 책은 제목이 극적인 ‘게임 오버(Game Over)’다. 서구식 세계화의 본질을 ‘20대 80 사회’라는 명쾌한 표현으로 규정한 ‘세계화의 덫’의 저자 한스 페터 마르틴이 썼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했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편집국장을 맡았던 저널리스트로서 유럽의회에 진출하여 15년간 세계화의 본질과 향방을 추적했다. 당초 그는 ‘게임 오버’가 너무 자극적이라 책명을 ‘충돌의 소용돌이’라고 짓고 싶었으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세계 상황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없이도 트럼프주의는 계속되고, 중국 시진핑의 끊임없는 권력확장 때문에 세계는 더욱 불확실해지고, 쇼비니즘적인 민족주의 극우파들이 어설픈 딜레탕티슴을 보이고 있어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한다. 1,2차 세계대전을 약어로 WW1, WW2로 표시하는데 이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WWC로 표시할 정도로 세계적인 팬데믹 대전을 치르고 있다. 세계는 WW2 이후 애써 쟁취해온 정치경제 사회적 성과들을 기록적으로 잃어가는 중이다.

 

미국식 라이프 스타일이 제 발등을 찍는 동안, 중국의 자본주의적 감시공산주의자들은 고개를 돌린 채 웃고 있다. 도처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셧다운 되고 있다. 현 상황이 전쟁이 될지 아니면 평화적 혁명으로 결론지을지는 지구촌 시민에게 달렸다. ‘세계화의 덫’에서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거센 공격을 경고했으나 지나고 보니 예언이 되었다. 이제 서구세계와 그들이 쌓아온 문명화를 향해 ‘게임 오버’라고 외친다. 이제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부재한 곳에서도 자본주의가 작동하며, 중국은 특유의 사회적 자본주의를 통해 냉전시대 종식 이후 진정한 승자로 올라섰으며, 앞으로 자유를 저격하는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초세계화와 디지털화, 주식시장의 붕괴와 기후변화 그리고 대규모 이민은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던 4개의 기둥인 입법과 사법, 행정 그리고 제4의 권력 언론을 산산조각냈다. 안정된 사회적 기반이 없는 자유민주주의는 위태로워졌고,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안은 민족적 쇼비니즘을 이끌었다.

 

침몰하는 세계와 민주주의의 몰락
세계적 자산운용사 GMO의 설립자 제임스 몬티어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대재앙이라고 불렀다. 1970년대 중반부터 두각을 나타낸 신자유주의 경제전략은 완전고용보다 물가조정을 목표로 하고, 사람과 재화의 이동성 증가와 무역증대로 세계화를 강화하며, 새로운 투자나 성장 대신 주주이익의 극대화, 유연한 노동시장 추구와 노동조합 약화였다. 신자유주의의 독특한 메커니즘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쳐 포퓰리즘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화답이 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앞으로 닥쳐올 위험이 아닌 시작이었고, 예측가능한 미래의 현실이라는 사실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이 엘리트층을 포함해 사회 모든 계층에 만연해있다. 정부는 태만하고 비효율적이며 쓸데없이 권위적이고 정치인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집중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목표가 없었다. 문제가 분명한데도 못본 척 넘겨버리고 결함이 많거나 무능력한 인사를 지도자 자리에 앉혀 자기 당에 유리한 쪽으로만 일을 밀어붙였다. 마치 경제적 지진과 정치적 화산폭발이 예상되는 지점에 있으나 도주로를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티모스(thymos)를 가지고 있다.

 

티모스는 존중받고 싶고 자긍심을 느끼기 원하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분노의 감정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이 감정의 위력을 과소평가한다. 그러나 시장 특히 금융시장은 합리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때가 매우 많다.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이나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은 이성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행동을 할 때가 아주 많다.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그저 중서부 주민이나 나이 든 백인 유권자들이 현혹당한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판이다. 비민주적 대안을 선호하는 경향은 젊고 부유한 미국 시민사회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오늘날 염려해야 할 대상은 열린 사회가 신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비민주적으로 통치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정보주권에서 비롯된다. 정보주권과 정보보호를 둘러싼 투쟁은 단지 개인 영역의 탈환을 위한 다툼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권력이 개인정보마저 좌지우지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제어해야 한다. 광범위한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통치권 확보를 위한 도구가 되어 신민족주의자들과 독재자의 손에 넘어가 정보민주화로 돌아갈 수 없는 길에 접어든다면 인간의 기본권은 마구 유린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화의 덫에 걸렸다. 게임은 끝났다. 다음 게임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경제적 세계화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1차 세계대전 전후에 자본주의를 구원한 것은 사회민주주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성공한 뉴딜정책과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스탈린의 소련과 위성국가의 진짜 사회주의로부터 서구를 지켜냈다. 서구에서는 사회적으로 잘 길든 자본주의가 승리를 거뒀는데, 스웨덴과 덴마크는 그의 모델이었다.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국제통화질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발족한 브레튼우즈체제가 1973년 효력을 다해 폐기되자, 신자유주의가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함께 문제해결의 새로운 원칙으로 등장했다. 1992년 정치경제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주창한 ‘역사의 종말’ 즉,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국가체제와 경제체제를 물리치고 끝내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버드 대학 대니 로드닉 교수는 경제적 세계화와 국가의 주권, 민주주의는 동시에 달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세계화를 추구하려면 민족국가나 민주주의를 포기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를 고수하는 사람은 민족국가와 세계경제의 융화 중 하나를 골라야 하고, 민족국가를 지키려면 심화된 민족주의 혹은 강화된 세계화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부채라는 덫에 걸린 유로존 국가들과 브렉시트, 프렉시트, 이탈렉시트를 위협받는 유럽연합(EU)도 이제 민주주의와 세계화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광범위하게 적용될 때조차 사회적으로 유용하다는 견해가 신자유주의 경제 추종자들 사이에 두드러진다. 그들은 민영화, 국가 개입의 최소화, 자본시장의 탈규제화를 비롯해 새로운 시장의 힘이 작용하는 모든 것을 신봉한다. ‘20대 80 사회’는 세계적으로 기업이 결정을 내릴 때 고려하는 기본적 비즈니스 환경이다. 그 결과 20%를 차지하는 고소득 가계와 저소득층 80% 가계만 존재하는 2층 사업모델이 새로 등장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리카도는 200년 전에 비교우위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무역상대국보다 생산성이 낮은 경우에도 국제교역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무역 복지향상과 경제적 풍요로움에 기여했다. 그러나 국경없는 경제자유화로 부가 증가했다지만, 그 풍요로움을 맛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국민경제의 발전 상태에 따라 무역규제는 경제부흥을 도울 수도 가로막을 수도 있다. 보호주의와 자유무역은 흑백논리로 구분되지 않으며 선택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금융위기의 부정적 유산 중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자산의 불평등이며, 세계 모든 지역에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세계화가 급격히 이루어져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아시아의 중산층이다. 그러나 세계화로 확실한 이득을 본 집단은 부유한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막론하고 소득상태 1%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작금의 세계화를 미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유령이 판치도록 돕는 일이다.

 

서구사회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거부했는가
시민권을 통한 개인 자유의 보호, 권력의 분립, 신뢰할 수 있는 법치국가,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제도를 통한 정치적 변화, 진지한 정보, 근본적 문제에 집중하고 어떤 세력에 의해 조작되지 않는 선거운동,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정치가 먼저인 우선순위, 소수를 배려하는 관용 등 모든 가치가 세계에서 사라지는 중이다. 민주주의자들은 무능력해졌고, 그 대표자들의 신뢰도는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독일인의 3분의 2가 민주주의 정당은 말만 많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민들은 정치에 실망하거나 절망했고 그간의 신뢰를 철회했다. 이런 격동의 시대에 투표와 토크쇼 같은 것들이 민주주의가 할 수 있는 전부인지 묻는다. 역사학자 미하엘 볼프존은 정치적 결정권자들의 의지와 실제로 그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는 “나는 하고 싶다. 하지만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정당은 공룡이 됐다. 신뢰를 잃으면 잃을수록 점점 더 고립되는 쪽을 택한다. 과연 그들에게 시대에 걸맞는 소통방식, 수평문화, 새로운 화두, 디자인의 개념이 있는가 묻고 싶다. 국민의 대표 국회의원에게 독립성이라는 단어는 외계어에 가까울 정도로 민의를 전달하는 지렛대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 신뢰를 잃어버린 언론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정당과 미디어가 각각 한 축을 맡은 민주주의의 구조에서 미디어는 최고의 권력기관이나 다름없음에도 언론인들은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다른 것으로 구분하지 않고 그저 정도의 차이로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제 와서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인가? 정당들은 의무를 다하지 않고, 미디어는 심지어 공영방송마저 권력에 고삐를 잡혔으며, 선출되지 않았고 해명할 의무도 없는 로비스트들이 배후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구체적인 비판들이 제기되었으나 이러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그 탓에 지나치게 많은 권력이 특권층 소수 사회의 엘리트들에게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서구사회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이유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건물은 한 층이 더 필요하다. 즉, 사회자유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공정한 사회적 분배를 위한 여건이 확보되도록 경제질서를 세워나가야 한다. 이러한 방향은 독일분단 시절 서독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신자유주의가 끼어들면서 방치돼버렸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아무 이유 없이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친 것이 아니다. 이 삼박자를 유념하지 않은 열린 사회는 실패했다. 평등과 박애 없이 자유 혼자서는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유럽의 엔드게임과 무너진 연합의 꿈
독일에서 새로운 우파 민족운동이 형성되고 좌파 진영에서도 자라 바겐크네히트를 중심으로 집단적 움직임이 일어나자 유럽연합은 존재론적 위기에 처했다. 역사적으로 유럽대륙은 한 번도 하나인 적이 없었다. 2017년 네덜란드에서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프랑스에서 마리엔 르 펜이 도모한 신민족주의적 변혁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유럽연합에게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2019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연합의 가치와 미래를 둘러싼 대격전이 벌어졌다. 헤이그와 파리에서 또한 수많은 다른 국가와 지역에서 빌더르스나 르 펜보다 훨씬 매력적인 새로운 지도자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도 유럽연합이 저지른 4가지 실수 덕분에 비옥해진 토양 위에 씨를 뿌려 열매를 거두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신규 국가들의 조속한 유럽연합 가입에 적극 개입하고 과감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것은 자국을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이끌어 추후 브렉시트의 빌미가 됐다. 유럽연합 내의 이주, 특히 폴란드인 이주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파견노동 규정에서 비롯된 임금인하 압박이 2016년 영국인 다수가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게 된 요인으로 꼽힌다.

 

만약 블레어 전 총리가 유럽연합 확대를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영국은 여전히 유럽연합과 함께 했을 것이다. 유럽연합의 와해를 조장해온 신민족주의자들의 정치는 오히려 그들이 부단히 맞서 싸워온 리스본조약에 부합할 수도 있다. 리스본조약 역시 유럽의회에 영향력 있는 공동결정권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2009년 수정된 조약이 발효됨으로써 유럽연합 권력중심이 품었던 환상, 즉 보수당과 사회민주당, 자유주의당, 녹색당이 함께 사중주에 도전해보리라던 꿈이 사라졌다. 프랑스의 상황도 녹록치 않다. 프랑스의 법률가 마레셀은 “모든 프랑스 법조항의 80%가 유럽연합의 강요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2022년이면 32세가 되는 당찬 마레셀이 마크롱에게 도전장을 내밀 것이고 승산도 충분하다. 어떤 정당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운동이 조직되고 나면, 프랑스인들은 마크롱의 ‘전진!’에 이별을 고할 것이다. 마크롱이 용도폐기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실망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계획대로라면 누구보다 먼저 마리 르 펜의 손녀인 마레셀이 잔다르크가 되어 전장에 나설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옥스퍼드대 교수 티모시 애쉬는 “브렉시트 이후 독일과 프랑스만의 핵심 유럽이 형성되는 동시에 불만을 가진 다양한 유럽연합들도 생길 것이며, 영국인들은 새로운 연합체를 형성하여 유럽연합을 좀 더 갈라놓으려 시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8년 봄 트럼프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과 대화의 기반을 만들면서 더 이상 북한과의 핵무기 갈등에 중국 지도자의 중재노력이 불필요해지자 과감하게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강화하고 이란과의 핵 조약도 파기했다. 트럼프 이후 미국 우선주의와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미국 달러화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결론적으로 그가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트럼프주의는 지속될 것이다.

 

신민족주의와 비대칭적 양극화
새로운 우파민족주의와 권위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래 거의 거론된 적이 없던 마키아벨리즘을 숭상한다. 정치적 토론을 축소하는 것부터 무기에 열광하는 것까지 세계 곳곳에서 신민족주의자들이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행동 전략을 펼치고 있음이 목격된다.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지난 수십년간 정치적 의견을 바꾸지 않았음에도 좌파 취급을 받는다. 노벨경제학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이를 ‘비대칭적 양극화’라고 불렀다. 유럽의 정치적 무게중심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 대신 이미 극복했다고 믿었던 권위주의가 새로운 옷을 입고 활개친다. 의사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갈등도 빚어진다. 독립적인 언론인의 책무는 처음엔 저지를 당하더라도 계속 외쳐야 하고 적절한 때에 행동해야 한다. 이 일을 언론인이 아니면 누가 한단 말인가? 정부와 집권당은 언론에 깊이 개입하며 공영방송까지 옥죄고 있다.


정치적 입김에 의해 방송의 임원진이 새로 교체되고 있다. “임원진이 정권에 의해 교체된다면 그 방송은 정부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오스트리아의 일간지 미디어 국장 피들러가 평했다. 최근 언론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주주의가 좋지만 비민주적이어도 괜찮고 인권은 중요하지만 의사표현의 자유는 상관없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적, 정치적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의 복수를 대신해주겠다고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사상 최대의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미국의 부채는 이전의 2배로 늘어났고, 트럼프가 주도한 새로운 법안이 공화당 의원들에게조차 스트레스가 되었다. 서구 국가들도 오래전부터 경제성장과 생산적 투자가 희귀해져 감세를 감당할 방법은 새로 빚을 내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하는 것뿐이다. 지금의 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무력화했고 정부의 명령을 그저 수행하는 기관으로 격하됐다. 트럼프의 자국 보호주의는 프랑스에서부터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의 신민족주의자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한 나라가 무역의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은 산업 전환이나 재교육을 돕는 것이나, 관세나 다른 장벽으로 그들을 보호할 수도 있는데, 트럼프는 후자를 택했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는 단기적 보호를 제공하고 잠깐 유리하게 제공할 뿐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정체성 정치는 여성운동에서 보듯이 해방운동에서 사용되던 수단이자 더 많은 사람을 연합하는 포용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정체성 정치는 편가르기이자 진짜 문제를 숨기기 위한 연막으로 민주주의의 위협이다. 디지털 시대는 감시환경을 이끌었다. 우리는 안보와 방역에서 과도한 예방적 조치를 경험했다. 그로 인해 법치국가의 가장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인 무죄추정의 원칙이 공권력을 제한하는 기능을 상실했다. 이러한 추세는 법과 원칙이 사라진 공간에서 개인의 권리가 묵살되고 법적 안정성과 신뢰가 포기되는 예외적 상황이 영구화하여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예방국가에 이를 것이다.

 

다가오는 전쟁의 소용돌이
경제전문가가 아닌 트럼프는 미국에 해를 끼치는 환율 조작의 냄새를 맡았다. 통화전쟁이 머지않았음을 예고한다. 새로운 보호주의를 만들어내는 무역전쟁과 그 형제인 통화전쟁이 지금까지 호황을 누려온 세계무역에 전운을 깃들이고 있다. 마치 세계 경제공황을 겪었던 1930년대가 손짓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아주 쉽게 전쟁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평화조약은 이른바 ‘이원원칙’ 위에 하나의 질서를 확립했고 20세기까지 유효했다.


그러나 전쟁도 평화도 아닌 세 번째 선택지는 없다. 지금이 전시인지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선전포고 없이 드론만으로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인터넷상의 공격은 통제불능으로 치닫는다. 국제결의의 무효화나 양자조약의 철회 또한 더욱 전쟁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의 국제문제 잡지 포린 어페어는 어떤 빌미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자세히 묘사했다. 그의 시나리오에 의하면, 싸움이 관세로 시작해 환율문제로 격화한 다음 남중국해 인근에서 미국의 수색정과 중국의 어선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충돌하자 중국 해군 프리깃함이 발포함으로써 전쟁이 발발한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국장 모우지스는 “우리는 인간적인 외교술이 세계에서 실패한 것 같다”는 싸늘한 결론을 내렸다. 미국의 학술지 원자과학자회보가 1945년부터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를 발표하고 있는데, 그 시계가 지금 자정 12시 2분 전을 가리키고 있어 세계가 ‘게임 오버’되기까지 불과 120초 남았다.


자유주의가 사라진 이후의 삶
그야말로 게임은 끝났다. 의사표현의 보편적 자유와 민주주의, 함께 살아가는 전체 가치를 존중하는 다양성, 균형잡힌 부의 분배를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나라는 이제 한줌도 안 된다. 자유주의가 사라진 감시국가에서 간섭이 수시로 이루어진다. 무늬만 토론일 뿐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대화가 일상화하고,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은 입을 열기도 전에 저지당한다. 중산층 사람들은 민족주의 바람에 휩쓸려 전제주의 지도자를 뽑아놓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뼈아픈 경험을 하고 있다. 디지털 민주주의에서 벌어지는 관료들의 횡포는 구조적인 면에서 옛날 군주들의 형태와 다르지 않다.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부패와 족벌주의는 열린 사회보다 비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번성한다. 민주주의적 원칙이 약화할 때, 정권비판자들이 핍박을 받을 때, 정권과 가까운 사람들이 정부 용역을 독식하고 입법부와 사법부, 언론이 강자에게 고개 숙일 때, 그때가 바로 시민들의 비폭력 저항이 시작될 적기이다. 정의와 자유, 박애, 기회의 평등과 개방성을 위해 싸울 가치는 충분하다. 경제적 양극화 증가와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보다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믿을만한 분배이다. 열린 사회에서 애국심을 합헌적으로 실천하고, 다양한 형식의 분배를 통해 신민족주주의자들에게 쏠렸던 시민들을 다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 안으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생태사회적 시장경제의 틀 안으로 말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열린 광장이었던 아고라가 부활해야 한다. 열린 사회와 관용사회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지금 당장 토론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한 번이라도 자유로운 생각과 토론을 제한당하거나 금지된 자는 현재도 미래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로운 게임은 설 자리를 잃었다. 다만,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은 아직 새로운 게임의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게임을 위한 아이디어
지금 우리는 거대한 변혁의 앞이 아닌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은 이미 급진적으로 변해왔다. 위기의 분화구 여러 개가 맞물려 시스템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극단적 불평등, 어디서나 감지되는 불안, 엘리트들의 반란, 무역분쟁, 금융위기, 곧 다가올 경기후퇴, 기후변화, 인구변화, 이민, 로봇기술, 디지털화, 미국과 러시아, 중국에 이르는 전제적 권력자들의 전쟁욕망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개개인에 대한 치밀한 감시와 연결된다. 지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만들어갈 수 없다. 새로운 게임을 위한 18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1)자신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대화하자. 누구나 원한다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극단주의자와의 대화는 무의미하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파와 좌파, 부자와 빈자, 청년과 노인, 여성과 남성, 노조와 신자유주의자까지 함께 모여 토론하자 2)교육으로 사회적 균형을 추구하자. 역사상 극단적인 사회불평등과 불안은 전쟁과 자연재해, 전염병 그리고 교육으로 인해 현저히 감소했다. 전반적인 교육수준을 높여 사회적 균형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3)미래를 이성적으로 껴안자. 산업화가 그러했듯이 현재 진행중인 기술혁명 또한 필연적이다. 개방성을 추구하고 비판 의식을 갖는 것은 결코 지금의 혁명을 거스르는 행위가 아니다 4)정서교육과 미디어 활용 교육이 필요하다. 호기심을 북돋우고 복잡성을 꿰뚫어보는 것이 학습목표의 핵심이다. 정서교육과 미디어 활용 교육은 온라인 상에 범람하는 증오에 휩쓸리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닻 역할을 할 것이다 5)디지털 인권도 보호돼야 한다. 정보 삭제권이 보편적으로 실현돼야 하며, 소셜미디어에 글을 게시할 때는 그 메시지의 만료일자를 정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관리는 민주시민의 의무이며 디지털 인권을 향하는 목적지는 자유이다 6)감시를 감시하자. 개인과 공공, 국가의 정보는 엄격하게 분리돼야 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정치경제적 흐름은 다수에게는 작은 파이를, 극소수에게는 매우 큰 파이를 제공했다. 증가한 자산은 공정하게 분배돼야 한다 7) 복지국가를 이해하자. 사회적으로 보장된 사람은 안정감을 느끼고 변화와 새로움에 한결 개방적이다. 창의력을 좀먹을 정도의 과중한 세금 부과는 지양돼야 한다 8)노동을 새롭게 생각하자. 디지털 변혁은 사회내 노동의 입지를 급격히 변화시킬 것이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노동 유연성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삶의 안정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9)자유무역에서 공정성을 연결하자. 무역협정은 모든 관계자를 고려해야 하며, 글로벌 플레이어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활용돼서는 안 된다 10)금융시장의 고삐를 끝까지 놓지 말자. 은행과 금융업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인이지 결코 주인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금산분리 시스템이 이를 보장할 수 있다 11)세금천국의 오아시스를 말려버리자. 역외재단과 페이퍼 컴퍼니처럼 세금 회피를 위한 도피처가 돼서는 안 된다 12)사회계층 간의 경계를 넘어야 한다. 사회계층 간의 경계를 넘어 서로 대화하자. 도시 안에 고급 주거단지와 임대주택을 함께 짓자 13)민족주의적 쇼비니즘을 간파하자. 민족주의적 쇼비니즘은 배타성을 낳고 마침내 전쟁으로 이어진다 14)누구에게나 고향은 필요하다.

 

고향에 대한 감정에 젖는 것은 시민의식과 법, 인권에 침해되지 않는 한, 당연하며, 누구에게나 고향을 가질 권리가 있다 15)난민을 유발하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자. 빈곤과 전쟁을 피해 산업화 국가로 유입된 난민에 대한 인식전환과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 16) 정당의 소수독점을 깨자. 정당은 미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추첨으로 구성된 시민위원회가 의무적으로 도입돼야 한다. 처음에는 자문기관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입법에 참여하는 기관으로 격상될 수 있다 17)유럽연합이 더 강해져야 한다. 유럽인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유럽연합이 더 강해져야 하고, 핵심영역에 집중해야 하며, 끝없이 민주화되고 투명해져야 한다 18)전제주의에 정면으로 대항하자. 중국과 전제주의 국가의 감시자본주의가 세계를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정치 경제적으로 막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적으로 피해를 입더라도 보편적 인권과 정보보호권을 옹호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 다음 게임이 우리를 기다린다.
 코로나19로 암담했던 2020년이 저물어 간다. 추운 날씨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거리는 한산하지만, 백화점과 서점에 진열된 성탄 장식과 크리스마스 카드에 얼어붙은 맘이 훈훈해진다. 캄캄한 밤을 지나 밝은 아침, 행복한 새해를 맞았으면 좋겠다. 혹독한 시련기에도 변함없이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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