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홍 성동조선해양 대표이사 회장

 

일반사원에서 출발해 세계 제1의 조선소의 CEO까지, 그의 이력에서 일반인들은 희망을 찾을 수 있다. 33년간 조선의 외길을 걸으며 기업과 자신을 동시에 세계 무대에서 ‘Top’으로 올려놓은 유관홍 회장. ‘조선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가 조선업에 진출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화학을 전공한 이후 원자력 발전소에서 잠시 일한 이력도 찾아볼 수 있고, 잠시 잡지사 경영을 해본 적도 있다. 그러던 중 입사하게 된 현대중공업에서 그는 높은 선가에 조선업에 매료됐다고 한다. 당시 한국경제는 가발생산 등에 의존할 때였으니, 2,500만불씩이나 하는 배를 다루는 것이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터. 그 이후 조선업에 젊은 열정을 뿜어냈고, 그 결과 지금의 명성까지 얻게 됐다. 현대중공업에서의 33년을 제1의 조선인생으로 정주영 명예회장을 돕는 일을 해 왔다면, 지금은 제2의 조선인생으로서 그간 내가 배우고 익힌 것으로 ‘유관홍 식’의 또 하나의 ‘No.1'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 회장님의 성동조선해양 취임은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소 때늦은 질문이긴 하지만 다시 성동조선해양을 통해 조선업계에 재진출하게 된 계기는? 
“2005년 12월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퇴임할 당시는 물론 그 이후 한동안도 다시 업계에 돌아와 일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정황이 있었지만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큰 틀에서 국가에 봉사한다는 일념에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다.

 

나의 능력과 힘이 닿아, 큰 틀에서 국가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런 결심을 이끌어 낸 것과 지금 성동에 몸담고 있는 것은 그간 성동에서 나에게 제안해왔던 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내가 여기에 와 있느냐 보다 성동의 미래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에 있다.”

 

■ 이미 널리 알려진 회장님의 유명세가 오히려 결심 이후에 부담으로 느끼신 적은 없는지?
“지금도 무게를 많이 느낀다. 신입사원들의 똘망똘망한 눈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사실 이곳에 온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었다. 인생을 사는데 피크가 있고 바로 그때 그만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시선에서였다. 결국 그 피크가 현대중공업 사장으로서 업계를 떠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조언해 왔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생각과 철학으로 지금 이곳에 와 있다. 현대중공업에서의 조선인생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만들어 놓은 것을 좀 더 다듬고 가지 치는 일을 했다면 지금의 성동에서는 내가 정주영 명예회장이 되어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 일을 하니 감회가 새롭다. 결국 지금 나의 비전과 나의 훈련방식대로 성동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당시 정주영 명예회장이 이런 생각이었겠구나, 이렇게 어려웠겠구나 하는 그런 감정을 느낀다. 내 평생의 스승이신 정주영 명예회장에게서 배운 것들을 지금 여기서 내 힘으로 일구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책임에 대한 어깨는 무겁지만, 생각과 힘은 어느 20대보다도 더 활기차다.”

 

■ 취임이후 지금의 성동으로 만들기까지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사람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사실 이곳은 아직까지 교육이나 주택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우수 인력을 유인할 만한 유인책이 상당히 부족하다. 하지만 그간 조선업계에 몸담아 오며 쌓은 많은 인재들이 나를 믿고 기꺼운 마음으로 합류해줘 그들에게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그 다음으로 중히 여긴 것은 기술이다. 설계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경쟁력있는 조선소냐 아니냐의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즉 설계 진영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성동의 미래가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때문에 설계부서 직원들과는 신입사원까지 통틀어 500명 이상의 직원들과 매주 금요일 7시 한자리에서 미팅을 한다. 이 시간을 통해 설계부문에 개선해야 할 사항들을 공히 인지하고 이의 개선을 위해 더욱 매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 있다.

 

설계부문에 있어서는 아직 더 다질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 우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성동인’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의 사전적인 의미를 되새겨 보자면, 서로 아끼고 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가족 같은 성동을 만드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이것은 사랑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성동조선해양을 경영해 오신지 2년이 넘어섰다. 지금 성동조선의 모습은 초기, 이 회사를 맡게 되면서 그려놓은 회장님의 계획과 일치하는지?
“그 이상이다. 예를 들면 지금 성동의 수주잔량이 세계랭킹 8위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지난해에 첫 호선을 인도한 회사가 현재 8위라는 것은 대단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이런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현재 성동의 발전속도를 현대중공업의 발전추이와 비교해보자면, 현대중공업이 1972년 조선업을 시작할 때 연간 30만톤의 건조 생산능력을 갖추었고, 그것이 1995년 60만톤의 생산능력으로 확대하면서 세계 1위 기업으로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 과정까지 23년의 시간이 걸렸다. 성동의 경우 내년 100만톤, 2010년 120만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현대중공업이 95년까지 23년간 성장해 일구어 놓은 능력의 2배를 신조 5년만에 이루어내는 것이다.”

 

■ 최근 국내시장에 중형급 조선소들의 출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견해는?
“한국 조선은 어느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역사와 함께 세계시장점유율을 50%이상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한국은 배를 짓기 위한 요소인 기술인프라, 각종 자재 인프라, 인적인프라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국내 조선소 중에 그 어떤 조선소도 배를 짓는 기술이 없어서 망하는 조선소는 없다는 말이다. 최근 중국의 신생조선소의 수가 140개에 육박한다. 그런 중국에 비하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고 우려를 많이 하지만 우리나라의 신생조선소는 고작해야 10개 미만이다.

 

결국 한국의 신생조선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R/G 발급과 관련된 금융조건인데, 이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신생조선소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결국 국가가 조선산업 육성이라는 큰 틀에서 장기적인 계획아래 정책과 제도를 병행해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 후판가 상승이 최근의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일은.
“조선산업은 연동산업이다. 볼트, 너트부터 시작해서 엔진에 이르기까지 배 한척에 소요되는 2만 가지의 자재가 함께 발전해야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이다. 그렇게 일괄성장이 가능한 것은 역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적어도 조선산업만큼은 국가 우위산업으로 국가장기 플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재 조선업계에서 겪고 있는 후판공급 문제는 결국, 그간 한국조선산업의 성장과 함께 병행해 발전됐어야 할 부분이다.

 

철판은 이 산업의 쌀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자국철판 수급율은 50%도 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쌀의 공급이 어려워 폭동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이에 반해 일본은 100% 자국철판을 공급받는다. 정부가 나서 쌀값을 안정시키듯이 철판가 또한 정부가 나서 안정시켜야 할 부분이다. 특히 수급에 따라 어느날 갑자기 제철소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미래를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철저한 장기플랜이 필요하다.”  

 

■ 중소형 조선소의 경우 인력난이 더욱 심각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성동은 남다른 기업문화로 하나로 뭉쳐있는 듯하다. 그 비결은?
“앞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성동인은 서로 아끼고 중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이 우러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가 누구든 그 리더에 힘이 집중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동의 임직원들은 나를 중심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집중될 수 있게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매일 아침 오전 5시 45분에 열리는 조찬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몇 시에 일어나야 하겠는가.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6월 28일이 내가 성동에 취임한 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취임 2주년 기념 깜짝이벤트로 직원들이 직접 춤과 영상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정말이지 가슴이 뭉클해왔다. 나를 믿고 따라주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인가, 지금의 이 열정과 도전의식을 어떻게 끝까지 끌고 가야 하나. 수많은 생각과 무게가 느껴지는 가운데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런 정도의 분위기면 괜찮지 않은가. 나는 우리 조선소를 가장 즐겁고 행복한 조선소로 만들고 싶다.”

 

■ 조선시장에 이제 곧 불황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 속에서 신생조선소들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그 어떤 산업을 막론하고 호황기가 있으면 내려가는 시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결국 그 때를 대비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준비를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회사의 성쇠가 결정된다. 다시 말해 신생조선소라 할지라도 정확한 판단으로 회사를 경영해 나간다면 미래는 있다. 반대로 지금 대형조선소라고해도 미래에 대한 나름의 비전과 전략이 없으면 그 회사들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최근 한국조선에 대한 미래를 얘기하면서 항상 따라 나오는 것이 중국조선인데, 중국에서 경쟁력있는 조선소들이 많이 몰려온다손 치더라도 결국 한국에 있는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이다. 성동의 경우 세계 선박시장에서 나오는 발주물량 100% 중 2%만 수주하면 발전할 수 있다. 불황이 온다고 조선소가 다 문닫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우리는 그 2%를 지속적으로 수주할 수 있는 전략을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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