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0. 6. 11. 선고 2018다249018 판결 -

 

이필복 울산지방법원 판사
이필복 울산지방법원 판사

1. 서론

스위치 선하증권(Switch B/L)은 운송인이 최초 발행한 선하증권(이하 ‘원 선하증권’이라 한다)을 대체하여 발행하는 선하증권을 말한다. ‘교환선하증권(交換船荷證券)’이라고도 한다. 해운 실무상 스위치 선하증권은 다양한 목적으로 발행된다. 예컨대 운송물의 선적 이후에 발생한 사정변경 등을 이유로 수하인, 운송물량, 하역항, 선적일 등 수출입계약의 내용을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나, 한 건의 선하증권을 분할하거나 반대로 여러 건의 선하증권을 통합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운송인이 원 선하증권을 회수한 후 그 내용을 수정하여 스위치 선하증권을 발행한다. 그러나 오늘날 스위치 선하증권은 중계무역의 거래구조상 중계무역업자가 원 선하증권의 내용을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에 가장 빈번하게 발행되고, 이때 스위치 선하증권의 발행과 관련한 법적 문제들이 전형적이고 현저하게 발생한다. 중계무역이란 수출입거래에 있어서 무역업자가 수출입계약의 당사자가 되어 원수출자로부터 수입한 물품을 다시 최종수입자에게 수출하고 그 대금의 차액을 취득하는 형태의 거래형태를 말한다. 중계무역에 있어서 중계무역업자는 원수출자와 최종수입자가 서로를 알게 되면 양 당사자가 직접거래를 함으로써 자신의 사업기회를 잃게 될 위험이 있으므로, 원 선하증권에는 최종수입자가 아닌 자신을 수하인으로 표시하고 스위치 선하증권에는 원수출자가 아닌 자신을 송하인으로 표시함으로써 원수출자와 최종수입자를 서로 노출시키지 않을 이익이 있다. 또한 중계무역업자는 스위치 선하증권을 기초로 화환어음 및 신용장 거래를 함으로써 최종수입자로부터 더 신속하게 물품대금을 회수하고 원수출자에게 물품대금을 결제할 수도 있다. 중계무역 실무상 중계무역업자의 이와 같은 필요와 이익에 의해서 스위치 선하증권이 발행되고 있지만, 스위치 선하증권은 우리 상법이 예정하고 있는 선하증권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그 유효성과 효력 등 스위치 선하증권과 관련한 법률문제에 대하여는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20. 6. 11. 선고 2018다249018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은 스위치 선하증권의 유효성과 효력에 관하여 대법원이 명확한 법리를 설시한 최초의 판결이다.

2. 사실관계

가. 무역업을 하는 국내의 A 회사는 중국의 B 회사로부터 강판 코일 21개(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고 한다)를 ‘운임포함 인도(Cost and Freight, CFR)’ 조건으로 매수하여 태국의 C 회사에 ‘운임, 보험료 포함 인도(Cost, Insurance and Freight, CIF)’ 조건으로 매도하는 중계무역 방식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나. B 회사는 중국의 D 회사에게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의뢰하였고, D 회사는 2015. 5. 28. 중국 상하이항에서 이 사건 화물을 선적한 후 송하인(shipper)을 B 회사, 수하인(consignee)을 ‘E 은행의 지시인’, 통지처(notify address)를 A 회사로 하는 선하증권(이하 ‘이 사건 제1선하증권’이라고 한다)을 발행하였다.

다. A 회사는 C 회사가 신용장을 개설한 태국의 F 은행으로부터 매도대금을 추심하기 위하여 피고에게 이 사건 제1선하증권을 대체하는 선하증권의 발행을 요청하였다. 이에 피고는 송하인을 A 회사, 수하인을 F 은행의 지시인, 통지처를 C 회사로 하는 선하증권(이하 ‘이 사건 제2선하증권’이라고 한다)을 발행하면서 운송인란에 서명하였고, A 회사로부터 서류비용 명목으로 미화 240달러를 지급받았다.

라. 이 사건 화물은 2015. 6. 8. 방콕항에 도착하였고 방콕항의 야적장에서 8일 동안 보관되었다가 2015. 6. 16. C 회사의 공장으로 운송되었는데, 포장을 풀었더니 21개 중 18개의 코일에서 녹손이 발견되었다. C 회사는 이 사건 화물 중 3개만 정상 물품으로 수령하였다.

마. 원고는 A 회사와 사이에 이 사건 화물의 운송 중 위험을 담보하기 위한 적하보험계약을 체결한 보험자인데, C 회사로부터 녹손이 발견된 18개의 코일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받자 검정인에게 이 사건 화물을 검사하도록 하였고, 검사 결과 방콕항에 임시로 보관 중 비로 인해 화물이 침수되면서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판단되자 C 회사에 잔존물 매각 대금을 제외한 나머지 손해보험금을 지급하였다.

3. 사건의 경과

가.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피고가 ①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의뢰받은 운송인 또는 개입권을 행사한 운송주선인에 해당하고, ②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 사건 제2선하증권의 발행인으로서, C 회사에 대하여 운송인으로서의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주장하면서 위 손해보험금 상당액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자신은 A 회사의 요청에 따라 스위치 선하증권을 발행하고 서류작업 비용만을 받았을 뿐 운송인 또는 개입권을 행사한 운송주선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원고의 주장을 부인하였다. 제1심법원은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즉 제1심법원은 ① 피고가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의뢰받은 운송인 또는 개입권을 행사한 운송주선인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하여는 “물품운송계약은 당사자의 일방에게 물품을 한 장소로부터 다른 장소로 이동할 것을 약속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일정한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으로서, 운송계약에 따른 권리·의무를 부담하는 운송인은 운송의뢰인에 대한 관계에서 운송을 인수한 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확정된다(대법원 2007. 4. 27. 선고 2007다4943 판결)”는 법리를 전제로, 피고는 A 회사의 요청에 따라 서류작업만 하였을 뿐으로서 송하인인 B 회사와 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거나 운송주선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또한 제1심법원은 ② 피고가 제2선하증권의 발행인으로서 운송인의 책임을 부담한다는 주장에 대하여는, “선하증권에 운송인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바로 운송인으로서 운송계약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 운송계약상 운송자가 누구인지 확정한 후 그 운송인에 대한 송하인의 권리를 선하증권의 취득자가 취득한다”는 법리를 전제로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나. 원고는 제1심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항소심에서도 제1심법원에서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제1심판결의 결론을 뒤집고 원고의 청구를 사실상 전부 인용하였다(일부 지연손해금 청구 기각). 즉 항소심 법원은 제1심법원과 달리, ① 이 사건에 관한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가 이 사건 화물에 관한 원 선하증권인 이 사건 제1선하증권을 대체하는 스위치 선하증권인 이 사건 제2선하증권을 발행함으로써 이 사건 화물에 대한 운송을 인수하여 스스로 운송인이 되었다고 인정하였다. 또한 ② 설령 피고가 스스로 운송인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피고는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소지인에 대하여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혹은 선적한 것으로 보고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라 운송인으로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 상법 제854조 제2항에 의해 인정되는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에 따라, 이 사건 제2선하증권의 발행인으로서 이를 선의로 취득한 C 회사에 대하여 운송인으로서의 책임을 진다고 판단하였다. 이처럼 항소심 법원은 원고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임으로써 제1심판결과는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다. 피고는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대법원은 아래 4항 기재 법리를 기초로, ① 피고는 이 사건 화물에 대한 운송계약을 체결한 운송인이 아니므로 이 사건 화물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아니하고, ② 운송인이 아닌 자가 발행한 이 사건 제2선하증권이 적법한 선하증권이 아니라서 유가증권으로서 효력이 없는 이상, 이를 선의로 취득한 자에 대하여 발행인으로서의 책임을 부담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하여, 항소심의 판단에는 선하증권을 발행할 수 있는 운송인의 개념과 선하증권의 선의취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4. 대법원의 판시사항

대상판결은 아래와 같이 스위치 선하증권인 이 사건 제2선하증권의 유효성과 효력에 관련된 법리를 설시하였다.

 

[판시사항]

가. 선하증권은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을 표창하는 유가증권으로 운송계약에 기하여 작성되는 유인증권이고, 상법은 운송인이 송하인으로부터 실제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고 있는 것을 유효한 선하증권 성립의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으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아니하였는데도 발행한 선하증권은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여 목적물의 흠결이 있는 것으로서 무효이다(대법원 1982. 9. 14. 선고 80다1325 판결,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47585 판결 등 참조).

나. 이른바 스위치 선하증권(Switch B/L)은 운송인이 최초 발행한 선하증권(이하 ‘원 선하증권’이라고 한다)을 대체하여 발행하는 것으로 주로 선적 이후에 수하인이나 물량 등 수출입계약의 내용을 변경하기 위한 경우 또는 한 건의 선하증권을 분할하거나 반대로 여러 건의 선하증권을 통합할 필요가 있을 경우 등 원 선하증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발행하게 된다. 이러한 스위치 선하증권도 유효한 선하증권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선하증권의 발행요건을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 즉, 스위치 선하증권도 운송물을 수령하고 발행하여야 하므로 발행권자는 원칙적으로 운송계약의 당사자로서 원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이나 선박소유자 또는 운송인의 위임을 받은 선박대리점이나 운송주선인 등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의 교부를 위임받은 자이어야 하고, 권한 없는 자가 발행하는 경우에는 적법한 선하증권이라고 볼 수 없다(상법 제852조, 제855조 참조). 따라서 제3자가 아무런 원인관계 없이 원 선하증권만을 교부받았다고 하여 운송물의 점유가 이전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할 수 없고, 새롭게 운송을 인수하여 원 선하증권을 대체하는 스위치 선하증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다. 나아가 선하증권의 발행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행한 스위치 선하증권은 효력이 없으므로 이러한 무효인 선하증권을 발행한 경우 운송인이 아닌 자가 그 문언증권성에 따라 발행인으로서 스위치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자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도 볼 수 없다.


5. 검토

가. 운송인의 확정

운송인은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으로 나뉜다. 계약운송인(contractual carrier)은 송하인과 운송계약을 체결한 운송인을 말한다. 실제운송인(actual carrier)이란 계약운송인의 위임을 받아 운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행하는 자로서 계약운송인의 사용인이나 대리인이 아닌 자를 말한다. 실제운송인은 독립적 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로서 그 법적 성질은 하수급인이다. 실제운송인이 누구인가는 객관적인 사실의 문제이므로 이를 확정하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이와 달리 계약운송인이 누구인가는 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의 문제를 수반하므로 이를 확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다는 사정은 그가 운송인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다. 예컨대 운송주선인의 명의로 하우스 선하증권(House B/L)이 발행되었다면 그는 계약운송인으로 사실상 추정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운송의뢰인과 운송계약을 체결한 계약운송인의 지위에 있는지 여부는 사실인정의 문제로서 구체적인 경우에 대부분 당사자의 의사 해석에 달려 있으므로, 어떤 사람이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다고 하여 그가 반드시 운송인의 지위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서도 스위치 선하증권(이 사건 제2선하증권)을 발행한 피고가 계약운송인인지 아닌지에 관한 사실인정에 있어서 제1심판결과 항소심판결의 판단이 달랐고, 대상판결은 이를 부정한 제1심판결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이 사건에서 피고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고, 중계무역업자인 A 회사, 운송인인 D 회사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판결문의 내용에 비추어 피고는 A 회사로부터 단지 스위치 선하증권 발행을 위한 서류작업만을 계속적으로 위탁받아왔고, D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관계에서라면 피고가 단지 스위치 선하증권인 이 사건 제2선하증권을 발행한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인수한 계약운송인의 지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와 달리 만약 피고가 D 회사의 운송을 지원하는 이행보조자로서 D 회사로부터 스위치 선하증권인 이 사건 제2선하증권의 발행 권한을 위임받았다거나, A 회사와 독자적인 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면 피고의 지위를 달리 평가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나. 스위치 선하증권의 유효성과 효력

스위치 선하증권이 유효한 선하증권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선하증권의 발행요건을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 대상판결도 이 점을 분명히 하였다. 스위치 선하증권의 유효성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측면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적법·유효한 원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 또는 그 대리인이 발행하여야 스위치 선하증권이 적법·유효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원 선하증권을 회수하는 것이 스위치 선하증권의 적법·유효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1) 적법·유효한 원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 또는 그 대리인의 발행

선하증권은 운송인이 운송물의 수령을 원인으로 하여 발행하는 유인증권(有因證券) 이다(상법 제852조, 제855조). 따라서 ① 운송계약이 존재하지 않거나 유효하지 못한 경우, ② 운송인 또는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 발행의 위임을 받지 않은 자가 아닌 사람이 발행한 경우, ③ 운송물의 수령·선적 없이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에는 그 선하증권은 적법·유효하지 않은 선하증권이 된다. 이는 원 선하증권을 대체하는 스위치 선하증권을 발행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스위치 선하증권은 적법·유효한 원 선하증권의 존재를 전제로 하므로 원 선하증권의 적법·유효요건과 스위치 선하증권 자체의 적법·유효요건이 함께 충족되어야 한다. 따라서 스위치 선하증권은 ① 송하인과 운송인 사이에 스위치 선하증권을 발행하기로 하는 합의와 원 선하증권 발행의 원인인 운송계약이 유효하게 존재할 것, ② 원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 또는 그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 발행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 발행할 것, ③ 원 선하증권 발행 당시 운송인이 운송물을 수령하고 선하증권을 발행하였을 것이라는 요건들을 충족해야 적법·유효한 스위치 선하증권이 된다.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피고가 원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인 D 회사로부터 선하증권 발행의 위임을 받지 아니하고 스위치 선하증권을 발행하면, 그 선하증권은 무효이다.

이와 관련하여 선하증권의 유인증권성과 문언증권성 사이의 관계가 문제된다. 상법 제854조 제1항은 “제853조 제1항에 따라 선하증권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과 송하인 사이에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개품운송계약이 체결되고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제1항의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소지인에 대하여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혹은 선적한 것으로 보고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라 운송인으로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이로써 선하증권 발행의 당사자 사이에서는 선하증권의 기재에 추정적 효력이 인정되고, 선하증권 발행인과 선의의 제3자 사이에서는 간주적 효력이 인정된다고 설명된다. 선하증권 발행인과 선의의 제3자 사이에 인정되는 간주적 효력은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文言證券性)’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문언증권성으로 인하여, 비록 유효요건을 갖추지 못한 선하증권이라 하더라도 선의의 제3자에 대하여는 선하증권이 채권적 효력을 가지고, 선하증권의 발행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라 운송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선하증권의 유인증권성과 문언증권성이 교차·충돌하는 지점에서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서는가 내지는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이 어느 범위까지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종래 운송인이 운송물을 수령·선적하지 않거나 이미 운송물을 수하인에게 인도한 후 발행한 이른바 ‘공(空)선하증권’의 효력이라는 맥락에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이에 관하여는 국내의 학설이 나뉘어 있다. 문언증권성을 우위에 놓는 견해는 운송인은 선의의 선하증권 소지인에 대하여 선하증권에 기재된 바에 따라 운송물을 인도할 채무를 부담한다고 본다. 운송인은 ‘선하증권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간주되므로, 운송물을 수령하지 않았거나 운송물이 다름을 선의의 선하증권 소지인에게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유인증권성을 우위에 놓는 견해는 상법 제854조는 선하증권 자체가 유효함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운송물을 전혀 수령하거나 선적하지 않은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다면 그 선하증권은 무효라고 본다. 따라서 해당 선하증권은 당연히 채권적 효력도 가지지 못한다. 우리 판례는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하지 아니하였는데도 발행한 선하증권은 원인과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여 목적물의 흠결이 있는 것으로서 무효이다”라고 하여 일관되게 유인증권성을 우위에 놓는 해석을 해 왔다. 운송물을 수령하지 못하게 된 선하증권 소지인은 운송물을 수령하지 않고 선하증권을 발행한 것을 불법행위로 하여 운송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뿐이다.

이 사건에서도 적법·유효 요건을 갖추지 못한 선하증권이 채권적 효력을 가지는가가 문제되었다. 이는 종래 논의되었던 ‘공(空)선하증권이 채권적 효력을 가지는가’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발행권한 없는 자가 발행한 선하증권도 채권적 효력을 가지는가’의 문제를 쟁점으로 한 것이다. 원고는 ‘피고가 설령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인이 아니더라도 이 사건 제2선하증권의 발행인으로서 운송인의 책임을 부담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제1심법원은 ‘선하증권에 운송인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바로 운송인으로서 운송계약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 운송계약상 운송자가 누구인지 확정한 후 그 운송인에 대한 송하인의 권리를 선하증권의 취득자가 취득한다’고 하여 이를 부정하였고, 항소심 법원은 ‘피고는 상법 제854조 제2항에 의해 인정되는 선하증권의 문언증권성에 따라 이 사건 제2선하증권의 발행인으로서 이를 선의로 취득한 C 회사에 대하여 운송인으로서의 책임을 진다’고 하여 이를 긍정하였다.

대상판결은 “스위치 선하증권도 … 발행권자는 원칙적으로 운송계약의 당사자로서 원 선하증권을 발행한 운송인이나 선박소유자 또는 운송인의 위임을 받은 선박대리점이나 운송주선인 등 운송인으로부터 선하증권의 교부를 위임받은 자이어야 하고, 권한 없는 자가 발행하는 경우에는 적법한 선하증권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전제에서, “선하증권의 발행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행한 스위치 선하증권은 효력이 없으므로 이러한 무효인 선하증권을 발행한 경우 운송인이 아닌 자가 그 문언증권성에 따라 발행인으로서 스위치 선하증권을 선의로 취득한 자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유인증권성을 우선시한 기존의 판례 법리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2007년의 상법 개정을 통해서 구법의 제814조의2가 현행법의 제854조로 되면서 그 문언이 변경되었고, 현행법하에서는 기존의 판례 법리에 변동이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대상판결은 현행법하에서도 기존의 판례 법리가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2) 원 선하증권의 회수는 적법·유효요건인가?

운송인은 스위치 선하증권을 발행할 때 원 선하증권을 모두 회수하여야 한다. 원 선하증권이 회수되지 않으면 두 개의 선하증권이 유통되어 사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운송인은 이로 인한 책임을 부담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5다241600 판결은 중계무역업자인 피고가 운송인인 원고와 스위치 선하증권 발행 합의를 하면서 원 선하증권을 회수하여 원고의 이행보조자에게 반환하기로 약정하였고, 원고가 위 합의에 따라 스위치 선하증권의 소지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하였음에도 피고는 원 선하증권 회수 및 반환의무를 불이행하여 원고가 원 선하증권을 소지하고 있던 원수출자에게 화물손실금 명목의 돈을 배상하게 되자,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원 선하증권 회수 및 반환의무 불이행으로 인하여 발생한 화물손실금 명목의 돈과 소송비용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운송인이 스위치 선하증권 발행 시 원 선하증권을 발행하지 않으면 운송인은 그로 인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운송인이 원 선하증권을 회수하는 것을 스위치 선하증권 발행의 적법·유효요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스위치 선하증권이 원 선하증권의 적법한 대체물이 되기 위해서는 선하증권의 유일성 또는 상환증권성과 충돌하지 않아야 하므로, 원 선하증권과 상환으로 발행되어야만 스위치 선하증권을 적법·유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은 선하증권과 운송물 사이에 관한 것으로서, 운송물이 운송인을 통해 운송되고 있는 상황임을 전제로 스위치 선하증권을 발행함에 있어서는 상환증권성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다. 운송인이 원 선하증권을 회수하지 않은 채 스위치 선하증권을 발행함으로써 선하증권의 이중 유통 위험이 발생하는 것과는 별개로, 해당 스위치 선하증권이 부적법·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봄이 더 타당하다. 위 2015다241600 판결 역시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이해되고, 대상판결이 원 선하증권의 회수·상환을 스위치 선하증권에 특유한 유효요건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 역시 이러한 점을 시사한다.

6. 결론

대상판결은 대법원이 스위치 선하증권의 유효요건에 관하여 명확한 법리를 선언하였다는 점에서 일단 의미가 있다. 또한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는 스위치 선하증권의 채권적 효력 유무와 관련하여 선하증권의 유인증권성과 문언증권성 사이의 우열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확인하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간 공선하증권을 중심으로 해서만 이루어졌던 유인증권성과 문언증권성 사이의 관계에 관한 논의의 지평이 스위치 선하증권을 매개로 해서 더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대상판결의 요지를 체계적으로 해설하는 한도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논의만을 다루고 있다. 향후의 과제는, 해운 실무상 나타나는 다양한 선하증권 유형의 특성 및 그와 관련한 법적인 유의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예컨대 스위치 선하증권은 운송인이 원 선하증권을 회수하고 발행한다는 점에서 서렌더 선하증권(Surrendered B/L)과 유사한 측면이 있고, 동일한 운송물에 대하여 두 종류의 선하증권이 순차로 공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입권을 행사한 운송주선인과 실제운송인이 발행하는 하우스 선하증권, 마스터 선하증권(Master B/L)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이들은 모두 무역업자의 신속하고 원활한 자본회수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이에 관하여 체계적인 연구를 하고 적절하게 규율함으로써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무역금융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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