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에서 외국선원에 형사관할권 없다

 
 

<사건>
1심 부산지방법원 2015. 6. 12. 선고 사건번호 2015고합52
①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선박교통사고도주)
②업무상 선박과실매몰
③해앙환경관리법 위반

 

피고인 2명
2심 부산고등법원 2015. 12. 16. 선고 사건번호 2015노384 (검사의 항소 기각)

 

항소인 검사

 

<유류오염: 유죄>
피고인 A는 라이베리아 국적 컨테이너선 (54,271톤)의 2등 항해사이고, 피고인 B는 조타수였다. 피고인들은 2015. 1. 16. 03:00경 부산 수영구 민락동 동쪽 10마일 해상에서 부산 남외항 묘박지를 향해 항해했다. 조타수 B는 전방 경계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로 8내지 14노트로 움직이던 어선이 멈춰있는 것으로 오판하고 두 선박 충돌 전에 충분한 시간과 거리를 두고 항해사에게 선박의 움직임을 보고하지 않았다. 2등 항해사 A는 챠트룸에서 항해 서류를 작성하느라 전방 경계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로, 어선이 멈춰있는 것으로 오판하고 300미터 전방까지 근접할 동안 선박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변침과 감속을 하거나 음향신호, 발광신호, 통신기기를 이용한 주의 환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컨테이너선 우현으로 어선을 들이받아 침몰한 어선에 적재된 연료유 600리터를 유출시켰다.


피고인들은 선박충돌을 일으키고 연료유를 유출시켜 해상을 오염시켰음에도 충돌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에서 이탈했다는 이유로 부산지법은 피고인들을 각 벌금 200만원에 처했다. 유출된 연료유가 소량이고 방제작업이 이미 완료된 점을 참작하여 벌금액을 적게 한 것이다.

 

<업무상과실치사 후 도주, 업무상 과실선박매몰: 공소 기각으로 처벌 안함>
피고인들은 선박충돌로 어선에 승선하고 있던 피해자 2인 (57세, 50세)을 해상에 추락시키고도 신속히 구조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해 피해자들을 실종되게 하고 어선을 침몰시켰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선장이나 승무원이 피해자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경우 가중처벌한다. 특히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도주하거나, 도주 후에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
수난구호법도 조난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박의 선장과 승무원은 요청이 없더라도 조난된 사람을 신속히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선원법도 선박충돌의 경우 각 선박의 선장이 서로 인명을 구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다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5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들은 유엔해양법협약 제 97조 제1호가 ‘공해에서 발생한 선박충돌이나 항행사고에 관해 선장이나 선원의 형사책임이나 징계책임이 발생하는 경우, 관련자에 대한 형사 또는 징계 절차는 선박의 기국이나 관련자의 국적국의 사법 또는 행정당국 외에서는 제기될 수 없다’는 조항을 근거로 피고인들에 대해 우리나라의 재판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1심 부산지법: 재판권 없다>
사고 발생지는 우리 영해 밖이어서 공해에 해당한다.
1926년 M사건에서 프랑스 우편선 M은 터키 선박과 공해상에서 침몰했고 티키선이 침몰해 8명의 터키인이 사망했다. M선박이 터키에 입항하자 터키 정부는 M의 프랑스인 선장을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피고인들에 유죄판결이 내려졌고 프랑스는 자국의 재판권을 주장해 외교적 대립이 발생했다. 양국의 합의로 상설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었고, 동 재판소는 M의 과실로 인한 충돌로 인해 피해를 입은 선박의 본국인 터키도 재판권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런데 M 판결은 ①선박에 관한 기국의 영토권 즉, 기국주의에 반한다 ②범죄 피의자에 대해 피해자 국가가 보복적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기국주의를 취하는 해양법협약이 1982년 채택되고 1994년 발효하였다. 우리나라도 1996년 협약을 비준하여 우리나라에도 효력을 미치게 되었다. 이 사건 가해선박의 선적국 라이베리아는 2008년에, 피고인들 국적국인 필리핀은 1984년 해양법협약을 비준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이 사건에 대한 재판권을 가지지 않는다.

 

<검찰 항소하다>
검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다음 같이 주장했다.
① 해양법협약은 비난가능성이 높은 고의범에는 적용되지 않고 과실범에만 적용된다.
② 해양법협약의 입법취지는 선사의 정상적 항해에 대한 연안국의 불합리한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다. 도주선박죄는 정상적 항해에 일상적으로 수반되는 사고가 아니다.
③ 수난구호법이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 국내법은 도주선박죄를 선박충돌과 별개로 처벌한다. 피고인들의 도주에 대하여는 해양법협약의 적용이 배제되고 객관적 영토주의에 의해 대한민국이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권을 가져야 한다.
④ 라이베리아는 편의치적국이어서 형사재판관할권을 행사할 의지나 여력이 없어서 진정한 형사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또 대한민국이 피고인들을 긴급체포한 이후 형사절차 진행 상황을 필리핀 대사관에 통보했는데도 필리핀이 현재까지 재판권 행사를 주장하지 않았다. 형사사법 공조 양자 조약에 의하더라도 대한민국이 필리핀에 피고인들의 형사처벌을 요청할 근거가 없는 점을 보면, 라이베리아와 필리핀은 묵시적으로 재판권 행사를 포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제2심 부산고법: 재판권 없다>
부산고법도 1심 부산지법의 판결을 지지하면서 다음같이 대한민국의 재판권을 부인하여 피고인들을 형사처벌하지 않았다.
① 해양법협약은 선박충돌에 대한 형사책임은 가해선박의 기국과 선장의 국적국만 물을 수 있게 했다. 그렇다면 선박충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구호의무 위반(도주)에 대한 형사책임만 해양법협약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하기는 어렵다.
② 공해상 선박충돌 후 구호의무 위반으로 우리나라가 해양법협약을 배제하고 형사재판권을 행사한 과거 사례가 없다.
③ 공해상 선박에 대하여는 기국주의가 적용되고 예외적으로 해적, 노예수송, 해상테러, 대량 해양오염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연안국의 추적권이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도주선박죄는 기국주의를 변형할 만큼 반인륜적인 범죄라고 보기 어렵다.
④ 해양법협약을 무리하게 축소 해석해 우리나라의 재판권을 인정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에 반하고 외교분쟁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
⑤ 주한 필리핀 대사관은 대한민국 법무부에, 해양법협약에 근거해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관할권이 필리핀에 있으며 관할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평가>
컨테이너선이 경계를 제대로 하지 않아 작은 어선을 충돌해 50대 선원 두 사람을 바다에 빠뜨려 죽게 하고 구조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해 피해자들을 사망케 한 질이 나쁜 뺑소니 사건이다. 선박도주는 해적, 해상테러, 해양오염보다 더 비난가능성이 높으므로, 법원은 해양법협약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가해자 필리핀 선원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형사재판관할권을 인정했어야 했다. 해양법협약이 ‘선박충돌이나 항해에 관련된 사고’의 경우 선적국이나 선장/승무원의 국적국에서만 형사절차를 제기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망사고 후 뺑소니와 같이 고의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은 단순한 ‘항해에 관련된 사고’의 예외로 보아 대한민국에서 형사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육상에서 사람을 치고 도주한 뺑소니 운전에 대해 각별히 무거운 처벌을 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유족이 가해자들로부터 민사 손해배상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고 후 외국으로 도주한 가해자들이 우리 수사기관으로부터 소환되거나 형사재판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민사 손해배상에도 성의를 보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하지 않아 억울한 한국인 선원 피해자를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한 아쉬운 판결이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