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사람들은 새로운 꿈을 꾸었다. 실용정부의 출범으로 과거의 불편했던 일상들이 개선될 것이라는 꿈이다.
그러나 ‘쇠고기 파문'으로 인한 촛불집회, 대통령 중국 방문 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한ㆍ미동맹 폄하 발언, 부시 대통령 방한과 관련한 대미외교의 미숙성, 대북정책의 비일관성과 박왕자씨 피살 사건의 미숙한 처리, 아세안지역포럼(ARF) 의장성명에서의 외교적 미숙성, 게다가 일본정부와 극우단체의 독도 도발과 미국지명위원회의 독도 주권미지정지역의 표기로 인한 국가적인 혼란 등으로 실용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 한 번 못 펴보고 반년동안 사람들의 꿈을 무산시켰다. 그래서 현 정부의 위기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민족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꿈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 꿈은 단순하다. 국력을 배양하여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갈 미래의 영토주권을 확실하게 담보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 꿈을 실현하는 작업은 그대로 현 정부의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주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호흡하고, 시련을 견디며 발전하여 온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도 국가인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육지인 유라시아 대륙을 등에 업고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을 일본 너머로 바라보고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이지만 가장 큰 대륙과 해양사이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영토의 흥망성쇠는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단군 조선왕국은 대륙세력인 한제국의 침략에 의해서 무너졌고, 삼국시대와 신라 및 발해 고려왕조, 조선왕조는 당, 송, 원, 명, 청 등 대륙제국들의 영토 침탈과 고난 속에 슬기롭게 주권을 이어왔다. 대륙세력의 근간인 중국대륙을 지배하는 제국들에 비하면 우리 민족의 영토는 너무도 작았기 때문에 항상 외침과 그 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오늘날은 어떨까? 북경올림픽 개막식에서 2008개의 북을 앞세워 중국의 세계4대 발명품인 종이, 화약, 인쇄술, 나침반을 토대로 중국이 제대로 온 세상을 향해 포효하고 웅비하는 기상을 보였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한나라의 영광과 가장 문화가 만개했던 당나라의 영화를 되짚어 보인 것이다. 스포츠행사 속에 숨어있는 중국인의 패권주의가 엿보이는 순간이다. 이들은 얼마 전에 동북공정이라는 미명하에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려 했고 또 제주도 남단의 이어도도 자국의 영토로 편입을 시도하고 있다. 대륙세력의 새로운 위협이다.
해양세력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19세기 말경부터 태평양을 건너 밀려오는 해양제국들은 우리 영토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다툼에 영향을 받는 처지로 만들었다. 해양세력인 일본은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청을 치기 위하여 같은 해양세력인 영국과 영·일동맹을 맺었고, 또한 같은 해양세력인 태평양 건너 미국과 맺은 ‘테푸트·가쓰라 밀약’을 배경으로 우리영토를 식민지화하고 말았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1945년 해방을 맞아 끝났지만 주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이해관계 속에 우리의 영토는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주변 해양 및 대륙세력의 제국들 틈바구니에서 영토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어려운 처신을 해야 하는 위치가 되어 있다.
미국 또한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위험할 수 있다. 즉 전후 연합국의 주축이었던 미국이나 영국은 독도가 원래 한국 영토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이 상황은 1949년 11월에 갑자기 바뀌게 된다. 이때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 동서냉전 중, 일본국은 해양세력인 미국진영의 최전선으로 위치지어지게 된다. 이 시기, 한반도 남부는 미국의 입김이 들어간 대한민국 지배하에 있었으나, 남북한 대립의 가운데, 한국은 일본만큼이나 미국 진영 속에 확고한 지위를 점하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동서냉전을 고려한다면, 되도록 많은 영토를 일본에 남겨두는 편이 미국으로서도 조금은 유리한 셈이었다. 게다가 한 때 제주도도 일본령으로 하자는 주장이 미국에 있었다고 알려진다.
결국 한국 일본의 반발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는 독도에 대한 명확한 언급 없이 끝나게 되지만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승만 라인을 긋고, 실효적 지배에 들어가자, 미국은 지금까지 그대로 묵인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므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주권문제는 당사자끼리의 문제라는 명분으로 중립의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지명위원회가 그토록 완강히 불가를 외치던 독도의 ‘주권 미지정’ 지역 표기 변경이 부시의 한 마디에 바뀌었듯이 미국의 이해관계가 바뀌면 언제든지 상황이 반전될 수 있다는 국제정치의 논리를 주목 해야 한다. 자국의 이해관계가 걸리면 국제관계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환경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도발을 한다고 해서 그 문제를 명쾌하게 단기간에 끝장낼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세계 2차 대전 후 대륙세력의 대표인 소련과 해양세력의 대표인 미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소련 연방의 붕괴 후 대륙세력의 대표주자가 중국으로 바뀌면서 미중 간의 ‘느슨한 양극체제’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해양세력은 미·일, 대륙세력은 중·러로 대체되어 두 세력 4개국 간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환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력이 향상되어 주변 4강에 대한 우리의 처지가 전과 다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들을 의식하는 외교행보를 할 수 밖에 없다. 즉 한 가지 위기에 한 가지 논리와 주장만으로 맞설 수 없다는 것이다. 영토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독도, 이어도, 간도, 백두산, 두만강의 녹둔도, 욕심을 부리면 만주나 대마도처럼 영토주권이 걸린 양보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소리만 요란한 정치적인 행태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치밀하고도 조직적으로, 그러면서 조용히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간 숱하게 많은 정치인 애국지사들이 영토문제만 나오면 세상을 뒤집을 듯이 요란을 떨며 대책을 내놓고 책임자 추궁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았는데 나아진 것은 없고 책임 추궁하는 위치와 당하는 처지만 바뀌었을 뿐이다. 영토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위치에선 정부가 나섬으로서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정부주도하에 민간이나 비공식 루트를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야만 외교적으로 친구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
일본과 독도 영유권 문제를 예로 들어보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이지만 민관이 모두 나서서 일본을 적대시하며 국민감정을 자극시키는 것이 현명할까. 우리는 여전히 북핵 문제, 경제적인 문제, 중국 내 탈북자들의 인권문제 해결 등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도움이 필요한 형편이다.
중국의 태도는 어떤가? 한반도에 대하여 여전히 남북이 통일도, 전쟁도, 교류도 하지 않기를 바라는 3불정책이 기조를 이루고 있다. 한·일의 과거사 문제는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중국은 한국 입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다. 일본과 중국은 서로 경계하지만 경제에 의존도가 높아 서로 껴안아야 평화도 얻고 경제적 이익도 얻는다. 이렇게 주변국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일본을 가장 경계해야 할 친구로 두고 미국, 중국, 러시아의 움직임 또한 항상 경계하고 있어야한다. 이런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 우리의 셈법은 항상 어렵기만하다.
19세기 이전까지의 우리의 영토는 대륙세력과 우리민족의 상관관계로, 19세기 이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진실과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모양이 바뀌었다. 그래서 미래의 영토주권에 대한 담보는 항상 불안했다. 오늘도 우리의 영토문제는 여전히 양대 세력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현실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국가 전략은 단순하다. 이 전략을 제대로 세워 올바르게 실천하면 곧 이명박 정부의 기회가 될 것이며 우리의 오랜 꿈을 실현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그것은, 첫째 우리 국력의 현주소를 제대로 파악한 후 부족한 국력을 전력을 다해 키워 주변 국가들이 무시할 수 없는 유인책과 강제력을 길러야 한다. 둘째 우리의 모자라는 국력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많은 친구를 만들어야한다. 미국은 주변 국가 중 힘이 가장 세니 한미 동맹을 기본으로 하여 일본과의 관계는 동맹을 돈독히 하는 방향으로 재정립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한 중, 한 러 관계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국가의 지속성은 국력배양에서 나온다. 국력이 허약하고 동맹상태에 틈이 보이면 주변강국들은 언제든지 우리영토를 넘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