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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사판례 연구(12)
영국법에 의한 용선계약 당사자의 확정
[555호] 2019년 12월 02일 (월) 14:06:25 이필복 komares@chol.com

- 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7다224807 판결 -
 

   
이필복
울산지방법원 판사

1. 서론
국제사법(國際私法)은 섭외적 법률관계 또는 사안에 적용될 법, 즉 준거법(準據法, applicable law)을 결정하는 법을 말한다.1) 해상법은 그 국제성으로 말미암아 가히 국제사법적 논점의 보고(寶庫)라고 할 만큼 국제사법적 쟁점이 빈번하게 문제된다.2) 필자는 지난 6월호에서 ‘해상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재판관할합의와 준거법’이라는 제목으로 대법원 2019. 4. 23. 선고 2015다60689 판결에 관하여 평석한 바 있다. 위 평석에서 필자는 국제사법이 다소 전문적이고 낯선 법이기는 하지만 해상운송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국제적인 해상운송과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국제사법적 쟁점을 늘 인식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3)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7다224807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은 의사표시의 해석에 관한 영국법상의 원칙을 주요 판시사항으로 삼고 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는 항해용선계약서에 기재된 ‘~를 위하여/대리하는(for and on behalf of)’이라는 문구의 해석이 중요한 쟁점이 된 사건이었는데, 해운실무에서 국제사법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판결이다.
2. 사실관계
가. 원고는 해상화물 운송용 선박 등에 공급될 유류의 매매 및 공급 등을 목적으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이하 ‘홍콩’이라고 한다)의 법인이고, 피고 1은 해운중개업 및 해운대리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법인, 피고 2는 해운업 및 해상화물 운송사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법인이다.
나. 화주인 A 회사는 2013. 11. 5. 피고 1과 사이에 ‘팜박4) 건살물 6,000톤(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고 한다)을 B 선박으로 말레이시아 파시르구당항에서 대한민국 군산항 등으로 운송하는 용선계약’(이하 ‘이 사건 제1운송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다.


다. 피고 1은 같은 날 위 B 선박의 선주인 피고 2와 사이에 ‘이 사건 화물을 B 선박으로 말레이시아 파시르구당항에서 대한민국 군산항 등으로 운송하는 용선계약’(이하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다. 이때 작성되어 피고 2가 선박소유자로 서명·날인한 선복확약서(Fixture Note, 이하 ‘이 사건 선복확약서’라고 한다)는 당사자가 명시적으로 합의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국제표준계약서식 중 하나인 GRAINCON'94에 따르기로 하였는데, 위 서식은 당사자 사이에 별도의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 영국법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 사건 선복확약서 본문의 고객/계정(Account)란에는 ‘A회사를 위하여/대리하는 피고 1(ACCT: 피고 1 for and on behalf of A)’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위 선복확약서 말미의 계약당사자 서명·날인 란에 ‘on behalf of charterers’라는 기재 아래에 피고 1의 서명·날인이 되어 있고, ‘on behalf of owners’라는 기재 아래에 피고 2의 서명·날인이 되어 있다.


라. 피고 2는 위 B 선박으로 이 사건 화물을 무사히 운송한 다음 2013. 11. 29. 피고 1에게 이 사건 제2운송계약에 따른 운임 미화 143.110.73달러의 지급을 요청하였고, 피고 1은 2013. 12. 4. 피고 2에게 약정된 운임을 지급하였다. 이후 피고 1과 A 회사는 피고 2에게 면책증서(보상장)을 발행하여 주었다.
마. 원고는 2013. 12. 12. 피고 2에 대한 229,472,
870원의 유류대금채권이 있어 피고 2를 상대로 그에 대한 지급명령신청을 하여 2013. 12. 30. 지급명령을 받았으며, 위 지급명령은 2014. 1. 22. 확정되었다. 한편 원고는 2013. 12. 3. ‘피고 2가 A 회사로부터 항해용선계약에 따라 지급받을 운임채권, 채선료채권 등’을 244,296,634원의 범위에서 가압류 하였다가, 2014. 3. 7. 위 확정된 지급명령을 집행권원으로 하여 위 가압류를 본압류로 이전하는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다(이하 ‘이 사건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이라고 한다). A 회사는 위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 사건의 진술최고서에서 “당사는 원고의 부당 가압류로 인하여 마치 피고 2와 채권채무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오인받고 있으며, 당사는 채무자인 피고 2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며, 채무자와 일체의 거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고가 압류 대상자로 당사를 지정한 것은 잘못된 행위이며, 원고가 압류한 채권은 피고 1에게 지급할 채권입니다”라고 답변하였다.


바. 피고 1은 2014. 3. 11. A 회사에게 이 사건 제1운송계약에 따른 운임으로 미화 148,514.26달러(한화 156,727,000원 상당액)의 지급을 요청하였고, 2014. 3. 18. A 회사를 상대로 156,727,000원의 지급을 구하는 지급명령 신청을 하여 2014. 3. 24. 지급명령을 받았으며, 위 지급명령은 2014. 4. 11. 확정되었다.    
사. A 회사는 2014. 4. 18. 피공탁자를 ‘피고 1 또는 피고 2’로, 법령조항은 ‘민법 제487조 후단 및 민사집행법 제248조 제1항’으로 하여 156,727,000원을 법원에 공탁하였다(이하 ’이 사건 공탁‘이라고 한다). A 회사가 기재한 이 사건 공탁의 공탁원인사실은 다음과 같다.
“공탁자는 화주로서 2013. 11. 5. 해상운송업자인 피고 1과 이 사건 화물을 말레이시아에 운송해주는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피고 1은 위 운송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피고 2와 다시 운송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이에 피고 1은 피고 2에게 운임 156,727,000원을 지급하였습니다. 그런데 피고 2의 채권자인 원고는 피고 2와 공탁자(A 회사)가 직접 운송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오인하여 위 운임에 관하여 채권가압류신청 및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신청을 하여 결정을 받았고, 같은 운임에 대하여 피고 1은 지급명령신청을 하여 지급명령이 확정되었는바, 이에 공탁자로서는 위 운임을 누구에게 지급해야 할지 알 길이 없어 법률관계 해결 및 변제를 위하여 변제공탁과 집행공탁을 겸하여 공탁하는 바입니다.”


3. 사건의 경과
가. 원고는 2015. 4. 9. 피고들을 상대로 이 사건 공탁금의 출급청구권자가 원고라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 1은 피고 2와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는 A 회사가 아니라 피고 1이고, A회사와 위 운송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는 피고 2가 아니라 피고 1이므로 이 사건 공탁금출급권자도 당연히 피고 1이라고 다투었다(피고 2에 대한 재판은 공시송달로 진행되었다).
나. 제1심법원은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 아래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피고 2와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피고 1’인가 아니면 ‘A 회사’인가라는 것이었다. 원고는 이 사건 선복확약서 중 ‘A회사를 위하여/대리하는 피고 1’이라는 기재가 있는 점, A 회사가 피고 2에게 면책증서(보상장)를 발행하여 준 점을 근거로 피고 1은 A 회사를 대리하는 지위에 있었을 뿐이고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당사자는 피고 2와 A 회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1심법원은 “이 사건 선복확약서 말미의 화주 서명·날인란에 피고 1의 명의가 날인되어 있고 피고 1 측에서 서명을 한 점, A 회사가 피고 1에 이 사건 해상운송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을 위임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점, 오히려 A 회사는 피고 2와의 계약관계를 일관되게 극구 부인하고 있는 점, 피고 2도 계약상대방이 피고 1이라고 하는 점, A 회사가 보상장을 발행하기에 앞서 피고 1이 먼저 보상장을 발행한 점, 선하증권에는 운송계약당사자가 아닌 송하인, 수하인도 기재할 수 있는 점, 피고 1이 국제거래에서 A 회사의 후광을 입기 위하여 위와 같은 표현을 추가하거나 보상장의 제공을 요구할 수도 있어 보이는 점 등의 사정과 앞서 인정한 사실관계에 비추어 볼 때 원고가 주장하는 사유만으로는 A 회사가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당사자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5)
 

다. 원고는 제1심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항소를 모두 기각하였다. 원고는 항소심에 이르러, 설령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당사자가 A 회사가 아니라 피고 1이라면, 피고들과 A 회사는 이 사건 선복확약서에 피고는 항소심에 이르러 피고 1이 A 회사의 대리인이라는 취지의 ‘A회사를 위하여/대리하는 피고 1’을 기재함으로써 ‘피고 1이 A 회사를 대리하여 피고 2와 계약을 체결한다’는 내용의 통정허위표시를 한 것이므로 민법 제108조 제2항에 따라 선의의 3자인 원고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주장을 추가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제1심판결의 이유를 인용하여 설시하면서, 위와 같이 추가된 주장에 대하여는, “이 사건 선복확약서 말미의 계약당사자 서명·날인 란에 ‘on behalf of chaterers’라는 기재 아래에 피고 1의 서명·날인이 되어 있고, ‘on behalf of owners’라는 기재 아래에 피고 2의 서명·날인이 되어 있는 것은 피고 1과 피고 2의 대표자나 권한 있는 담당자가 각기 피고 1과 피고 2의 기관으로서 서명·날인한 것으로 보이고, 이러한 피고 1의 서명·날인 부분에 피고 1이 A 회사를 대리한다는 기재는 없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선복확약서 1면에 ‘A회사를 위하여/대리하는 피고 1(ACCT: 피고 1 for and on behalf of A)’이라고 기재된 것만으로 피고 1이 A 회사를 대리하여 피고 2와 용선계약을 체결한다는 의사표시가 존재하는 것과 같은 외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6)


라.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원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였다. 항소심 판결까지는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준거법 쟁점이 문제되지 않았고 우리나라 법을 적용하여 제2운송계약의 당사자를 확정하였으나, 대법원은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임을 전제로 영국법상 의사해석원칙을 적용하여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당사자를 판단하였다. 우리나라 법이 아닌 영국법의 의사해석원칙을 적용하였지만, 대법원이 구체적으로 이른 결론은 제1심판결, 항소심 판결의 그것과 동일하였다.

 

4. 대법원의 판시사항
대상판결은 이 사건 선복확약서는 당사자가 명시적으로 합의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국제표준계약서식 중 하나인 GRAINCON'94에 따르기로 하였는데, 위 서식은 당사자 사이에 별도의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 영국법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 사건 제2운송계약(대상판결에서는 ‘이 사건 항해용선계약’이라고 표시한다)에 적용할 준거법은 영국법이라고 전제하였다. 대법원이 판시한 영국법상 의사해석원칙은 다음과 같다.

 

[판시사항]
가. 영국법에 의하면 법원은 당사자들이 선택한 용어의 법적 의미와 효과를 판단함에 있어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볼 때 어떠한 의미로 이해할 것인지를 기준으로 평가하여야 하고, 특히 계약의 문언이나 용어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의미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용선계약서에 ‘다른 사람을 위하여/대리하여(for and on behalf of)'라는 문구가 있다면,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의미로 해석하여야 한다.
나. 그러나 계약서 본문에 ‘대리인’이나 ‘본인을 위하여 행위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에도 대리인의 자격 표시 없이(without qualification) 서명을 하였다면, 영국법상 누구를 계약당사자로 확정할지 문제된다.
용선계약서 본문에 대리인으로 볼 수 있는 표현을 기재하였으나 당사자의 서명란에 자격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한 경우(in his own name without qualification)에는 영국법상 서명란에 이름이 기재된 자를 계약의 당사자로 보아야 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해당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결정함에 있어서 계약서에 이름이 기재된 당사자가 그 계약서에 서명한 방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당사자의 서명이 해당 계약을 확정짓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계약서에 서명하는 자가 해당 계약에 구속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면 그 서명에 자신의 자격을 표기하였거나 달리 자신이 직접 계약할 의사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어야 한다.
다. 나아가 영국법에 의하더라도 대리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대리인에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대리권을 수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authorise), 대리인이 동의함으로써 대리관계가 성립한다. 따라서 본인과 대리인 사이에 수권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 대리행위를 인정할 수 없게 된다.


5. 검토
가. 영국법상 의사해석원칙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해상법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의사표시의 해석 일반론에 관한 것이었다.
제1심판결과 항소심 판결은 준거법에 관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우리법상 의사표시 해석원칙을 적용하여 이 사건 선복확약서에 기재된 ‘A 회사를 위하여/대리하는 피고 1(ACCT: 피고 1 for and on behalf of A)’라는 문구의 의미를 해석하였다.7)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에 등장하는 A 회사와 피고들 모두 대한민국 회사이고 이 사건 제1, 2운송계약 모두 대한민국에서 체결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 각 운송계약은 말레이시아 파시르구당항에서 대한민국 군산항 등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국제  해상물건운송계약’이고, 특히 그 문구 해석이 문제된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으로 합의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항해용선계약에 관한 국제표준계약서식 중 하나인 GRAINCON'948)에 따르기로 하였으며, 위 서식은 당사자 사이에 별도의 의사표시가 없는 경우 영국법을 따르도록 규정9)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법적인 고려가 필수적인 사건이었다. 보다 일반적으로는 국제적인 수반하는 운송계약이나 운송계약에서는 반드시 국제사법과 준거법에 관한 검토를 하여야 하고, 특히 표준계약서식이나 선하증권 등을 매개로 영국법에 연결되는 것은 아닌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법률행위는 일정한 법률효과의 발생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의사표시를 필요불가결한 요소로 하는 법률요건을 말한다.10) 국제사법에서 법률행위는 일반적으로 법률행위의 실질(實質)11)과 방식(方式)12)으로 구분되어 논의되는데, 이때 법률행위의 실질은 실질적 성립요건(유효성)과 효력을 의미하고, 법률행위의 방식은 법률행위의 형식적 성립요건(유효성)을 의미한다.13)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와 긴밀한 결합관계에 있으므로, 의사표시의 성립 및 효력에 관한 문제 그리고 의사표시의 해석에 관한 문제는 원칙적으로 각각의 법률행위의 실질의 준거법에 의해서 정해지게 된다.14) 대상판결은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이므로 그와 관련한 의사표시의 해석 역시 영국법에 의하여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삼았다.


대상판결은 위 판시사항과 같이 영국법상 의사해석원칙을 상세히 정리하였다. 그 중 이 사건의 해결에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부분은 “용선계약서 본문에 대리인으로 볼 수 있는 표현을 기재하였으나 당사자의 서명란에 자격을 나타내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한 경우(in his own name without qualification)에는 영국법상 서명란에 이름이 기재된 자를 계약의 당사자로 보아야 한다”는 부분이다. 대상판결은 이를 기초로 ① 이 사건 선복확약서 말미의 용선자 서명란에는 피고 1이 A 회사를 대리한다는 기재 없이 자신의 명의로 서명·날인을 하였다는 사정을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로 삼고, ② 이 사건 선복확약서의 고객/계정란에 기재된 ‘A 회사를 위하여/대리하는 피고 1(ACCT: 피고 1 for and on behalf of A)’라는 표현 외에는 피고 1이 대리인으로 계약을 체결하였음을 명백히 하는 내용이 없는 점, ③ A 회사가 피고 1에게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을 체결할 대리권을 위임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는 점, ④ A 회사는 일관되게 피고 2와의 계약관계를 부인하는 점 등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당사자는 ‘피고 1(항해용선자)’과 ‘피고 2(선박소유자)’라고 판단하였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에서 대상판결이 제2운송계약의 당사자에 관하여 내린 결론과 그러한 결론에 이르기 위하여 고려한 사정은 제1심판결, 항소심 판결의 그것과 같았다. 그러나 만연히 우리나라 법을 적용하여 계약당사자를 확정하는 것과 국제사법적 통로를 경유하여, 즉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파악하고 그에 따라 의사표시해석의 원칙 역시 영국법에 의하여 계약당사자를 확정하는 것은 질적으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사건에서는 운이 좋아서 제1심판결, 항소심 판결의 결론과 대상판결의 결론이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법률관계에 적용될 준거법을 확정하고 외국법을 조사하여 적용하는 것은 때로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준거법을 달리함으로써 뜻밖의 전혀 새로운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국제사법의 통로를 경유하려는 노력을 계속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 재운송에 관한 법률관계
대상판결에서 확정한 법률관계에 의하면, A 회사는 피고 1에게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의뢰하는 내용의 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하였고, 피고 1은 다시 피고 2에게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의뢰하는 내용의 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법률관계는 우리 강학상의 ‘재운송계약’에 관한 법률관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항해용선자가 자기 명의로 제3자와 운송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 이를 재운송계약이라고 하는데, 재운송계약은 용선계약이든 개품운송계약이든 무관하다(상법 제809조 참조).15) 사실관계가 다소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A 회사가 피고 1에게 이 사건 화물의 운송을 의뢰할 때 이미 피고 2 소유인 ‘B 선박’으로 운송하기로 합의된 것을 보면 피고 1과 피고 2 사이에는 잠재적·포괄적인 항해용선계약이 이미 체결된 상태였고, 단지 피고 1이 A 회사로부터 이 사건 화물운송 역무를 인수함에 따라 피고 2와 개별적·구체적인 항해운송계약을 체결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본다면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은 주운송계약, 이 사건 제1운송계약은 재운송계약에 해당한다.


만약 이 사건에 우리 상법이 적용된다면, 상법 제809조에 의하여 선박소유자인 피고 2는 위 재운송계약의 이행이 선장의 직무에 속한 범위 안에서 A 회사에 대하여 상법 제794조 및 제795조에 따른 책임을 진다.16) 다만 선박소유자인 피고 2와 재운송계약의 상대방인 A 회사 사이에는 원칙적으로 아무런 직접적 법률관계가 없으므로, 피고 2가 A 회사를 상대로 운임이나 용선료를 청구할 수는 없다.17) 한편 이와 달리 운송주선인인 피고 1이 A 회사와 제1운송계약을 먼저 체결하고 나서 비로소 그 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실제운송인(선박소유자)인 피고 2와 다시 개품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 법률관계는 재운송계약에 관한 법률관계와 유사한 점이 많지만, 이 경우에는 상법 제809조가 적용되지 아니한다.18) 
그러나 이 사건에서 이 사건 화물의 운송에 문제가 발생하여 그 손해배상 등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우리 상법이 아니라 영국법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주운송계약인 이 사건 제2운송계약의 준거법이 영국법이므로, 선박소유자인 피고 2의 책임 부담 유무 및 그 범위는 영국법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상판결에서는 이 사건 화물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한 사안에서 운임(용선료)의 귀속 주체가 누구인지가 문제되었지만, 만약 화물이 운송 중에 멸실·훼손된 때에는 보다 복잡한 법률관계의 검토가 필요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6. 결론
해상법, 특히 그중에서도 해상운송과 관련한 법에 대해서는 국제사법과 준거법 결정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쟁점이 된 법률관계에 대하여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함으로써 우리나라 법을 적용하면 패소할 사건도 승소로 이끌 수 있고, 우리나라 법에 따라 승소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가 패소하는 뜻밖의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이것은 일종의 큰 위험이므로 이 위험을 잘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해서는 국제사법적 고려를 늘 하여야 한다. 대상판결은 제1심판결, 항소심 판결과 같은 결론에 이르면서도 국제사법을 경유하는 논리적 경과를 보여줌으로써 해사사건에서 국제사법의 중요성을 환기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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