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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체험기
[553호] 2019년 10월 01일 (화) 16:00:01 김동관 komares@chol.com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걷는 770km 거리의 초광역 트랙킹 루트인 ‘해파랑길’을 찾는 트랙킹족이 늘고 있다. 정부가 2010년 지정한 ‘해파랑길’은 10개 구간에 50개 여행지를 거치는 루트로 총 코스는 50개이다. 올해초 해파랑길 걷기에 도전한 필자가 트렉킹을 하며 동행자에게 툭툭 건네거나 혼잣말하듯 기록한 日誌식의 체험기를 투고해왔다. 이번 6월호부터 구간별 체험기를 수차례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편집자 주>

 

18코스 칠포해변 - 화진해변 19.3km / 5시간
-2019년 6월 22일 토요일 흐림

다시 떠남에 대한 설레임...기대감 때문인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04시 30분. 일어나기 싫어 이대로 계속 잠들면 좋겠는데 두 번의 알람 소리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샤워하고 배낭을 챙겨 아내가 운전해 광명역에 도착했다 해두 후배는 서울역에서 도시락을 챙겨 온다고. 05시 56분 포항행 KTX에 오르니 반가운 얼굴이 맞이한다. 둘이서 아침 식사 비빔밥을 먹고는 배불러서 헉헉...양도 많아서리…. 텅빈 객실에서 창밖으로 동이 트는데 이내 취침 모드로 돌입한다.
08시 15분 포항역 도착. 시간 절약을 위해 택시를 타고 칠포해수욕장으로 향하다 함께 한 컷을 하고 모래사장으로 가 바다와 마주하는데 이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잿빛 하늘과 넘실대는 파도 그리고 몸을 날려 버릴 듯한 바람. 가벼운 모래는 이리저리 휩쓸리고 이른 아침 이어서인지 아무도 없는 바다엔 그저 나만 존재하는 것 같아 좋았다

 

   
 

08시 45분 칠포해수욕장을 뒤로 한 채 목 계단을 올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세찬 바람을 따라 코스에 들어선다. 잔뜩 흐린 하늘에 비가 올까 걱정하며 한편으론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으로, 걸어가는 오른편에서 몰아치는 바람에 바다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밀려온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포말을 뿌리며 비산한다. 그냥 여기 해오름 전망대에 머물러 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오도리해변을 지나 여러 작은 포구를 거치며 주말 아침의 한적한 동네 풍경에 여유로운 나들이를 즐기고 이가리해수욕장 모래변을 걷다가 포스코 수련원이 사유지라서인지 해변길을 벗어나 동네 안쪽 도로로 걸으며 조금은 짜증이 나네. 그냥 쭉 걸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이어서 월포해수욕장의 휑하니 인적 드문 백사장을 거쳐 조사리해변. 1965년 12월 해룡작전 중 파도에 순직한 꽃다운 5인의 해병 순직비를 보며 우리의 젊은 영웅을 기리지 못하는 이시대의 암울함에 다시금 가슴이 먹먹함을 느낀다.


방석항에 들어서며 수많은 테트라포트로 쌓아 올린 해일 방조제에 입이 딱 벌어진다. 전부터 궁금해 온 것이지만 누가 저 많은 테트라포드를 납품했을까, 단가가 얼마일까, 전국 항만마다 포구마다 다 있을 것인데 누군지 돈 많이 벌었겠다, 우린 둘이서 그 누군가를 질시하고 낄낄대며 부러워했다.
대진항을 돌아서며 내륙으로 접어 들면서 도로에서 벗어나 울창한 송림길에 이번 코스의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날이 개어 햇살이 따가웠는데 마침 송림 속으로 들어오니 별유천지비인간이라 좋구먼. 짧은 휴식처럼 솔향기에 취한다 싶더니 금방 끝나버리고 앞에 화진해변이 펼쳐진다. 13시 45분 별 둘 코스여서인지 생각보단 빨리 완주했다. 내친 김에 역시 별 둘 코스인 강구항까지 걷기로 하였다.

 

19코스 화진해변 - 강구항 15.8km / 5시간 30분
지경항을 지나 지경교를 건너며 우리는 해파랑길에서 가장 길다고 하는 포항구간과 작별했다 참으로 징하디 징한 그러면서도 기억에 남는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영덕 블루로드 D코스로 접어든다. 장사해수욕장 초입 해변가에 커다란 배가 정박해 있어 뭔가 궁금했는데 이곳이 6.25 전쟁때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하여 학도대원 등 772명과 지원요원 56명으로 양동작전이 펼쳐진 장사상륙작전 전적지였다. LST는 침몰하고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의 부상자, 수십명의 행불자들이 지킨 대한민국에 우리는 살고 있고 그 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여야 한다.


길은 바다와 같이 연이어 이어지고 파도소리 벗 삼아 걸어가는데 3살 젊은 후배는 늙은 선배의 동행 바램(좀 천천히 걸었으면)을 몰라라 하고는 잘도 걷네. 에고 다리는 아픈데 어쩌지 못하고 걷다보니 구계항...MBC 주말연속극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라는 입간판이 눈에 띄네. 강구항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벼...몰것다 어디면 머가 중한디 지금은 빨리 걸어야제. 저기 삼사해양산책로를 한바퀴 돌아오며 바다 위에 잠시 머물고 삼사해상공원에 올라 이리 돌고 저리 돌며 천하제일화문석도 보고 계단 계단 걸어올라 경상북도 개도 100주년 기념 경북대종 보고 진짜로 울리는지 스틱으로 때리다 해두가 옆에 있던 소녀에게 너는 나중에 이런 뽄 받지 마라카네. 졸지에 저는 나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되돌아보니 멀리 장사해변 전시선박이 아스라이 보이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 본다.

 

   
 

차도를 따라 돌아 내려오며 어느새 바닷가에 내려서고 파도치는 해변엔 해산물 팔고 민박도 하네. 그냥 여기서 퍼지고 한잔 할까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걸어 걸어 오포해변을 지나니 건너편이 강구항이네. 마지막까지 이층 복도를 걸으며 오십천 건너편 영덕대게거리를 바라보며 얼른 인증도장 찍고 대게 묵자. 근데 해파랑길 입간판 앞에 떡하니SUV가 막아 서있네. 비집고 들어서서 인증샷 찍고는 홧김에 신고하려는데 해두가 말리네 좋은게 좋다나. 그래도 질서는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강구교를 건너 지친 몸을 누일 자리 찾는데 조금 괜찮 보이는 모텔이 하루밤에 9만원 이라카네. 너무 비싸 두말않고 나와서 걷고 있는데 대게집 아지매가 묵고가라고 잡네. 숙박도 같이 하는데 5만원이란다. 덥석 승낙하고 방에 들어가니 Upgrade 여인숙이네. 그러거나 말거나 씻고 내려와 벼루고 벼뤘던 영덕대게 한 마리에 소주 한잔 걸치고 나니 세상 부러울게 없어라.
비싼값을 치루니 국내산 표시까지 해주네 역시 우리나라 상술은 최고야..


 
20코스 강구항 - 영덕해맞이공원 18.8km / 6시간 04분
-2019년 6월 23일 일요일 흐림 후 맑음

새벽 5시 20분 잠 못 잤다는 후배는 일찍이도 일어나 부시럭 거리고 어젯밤에 예약해 둔 해물식당에서 아구탕을 먹고 모텔을 나서니 아침 7시 날이 밝았다. 매번 느끼지만 해파랑길 만든 사람은 뱅뱅 돌리는게 취미인지를 모르겠네. 바로 가면 되는 길을 이리 저리 돌리네. 이번 코스는 영덕블루로드 A코스라네 편안한 해변길도 있을 것 같은데 해두는 뭐 지도에 보니 절벽이 있어 차도 밖에 없으니 기존 코스로 가자네-나중에 영덕터미널로 택시타고 가면서 보니 길 좋더만-에라 그라자구나. 뭐 산길도 좋은데 이번 코스는 별이4개라  힘든 코스인데 걱정이 앞선다.


초입부터 가파르고 뒤돌아 보면 강구항 전경이 펼쳐지고 봉화산을 거쳐 금진구름다리까지 산길을 걷는다.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숨도 차고 어제 걸었던 거리의 후유증으로 발바닥도 아프고 종아리도 뭉치고 자꾸만 쉬고 싶어지는 마음. 오르막에서는 내가 앞서고 내리막에서는 해두가 빠르고 둘 다 나이는 못 속이는가 보다 235M 고불봉을 피크로 오르며 진짜로 그만 갔으면 싶었다. 하지만 정상에서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바람개비 풍력발전기들이 오디세이아에서의 사이렌처럼 유혹하고 있어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임도를 따라 걷고 걸었다. 중간 중간 남은 거리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해서 안 그래도 힘든 길이 짜증나네.
돌고 도는 임도를 따라 자꾸만 파고드는 번뇌를 떨쳐버리고 무념무상으로 걷다 보니 우린 둘이 하나되 걷고 있네. 해파랑길의 좋은 점은 이렇게 자신과의 합일로 걸을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다. 영덕풍력발전단지에 다가 갈수록 계곡은 까마득히 깊고 그래서 고소공포증 있는 우리 두 사람은 길 안쪽으로 붙어 걸었다 낄낄 소심한 지고. 어느 새 풍력발전기 밑 마치 거인국에 온 듯한 착각으로 새로운 경험 근데 윙윙 거리며 전기를 생산한다는데 전자파는 없는 걸까.

 

   
 

어느 듯 임도가 끝나고 도로에 내려서면 눈이 시릴 정도로 짙푸른 동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고 도로를 걷다보면 정크&트릭아트 전시관 앞에 거대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로봇인가 뭔지 모르지만 미국에 있는 우리 손자(데릭) 녀석이 좋아할 듯 하다.
마지막 힘을 내어 걸으니 어느 새 영덕해맞이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창포말등대가 게딱지 붙이고 우뚝 서있다. 푸른 바다에 다시 한번 더 마음을 빼앗기고 매점 아지매한테 택시 콜 부탁하고는 빛의 거리 입구에서 이번 트레킹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다음번엔 영덕불루로드 B코스라는데 기대된다 택시타고 영덕터미널 오니 13시 20분 고속버스 예매표를 받으려다 보니 14시 버스가 있네. 해두는 빨리 가자고 하는데 내는 좀 아쉽네 뒤풀이로 회 한사라 해야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냥 짜장면 급하게 시켜서 5분 만에 먹고는 서울행 버스 맨뒷자리에 몸을 싣고 우리는 꿈나라로 가다 중간에 안동 거쳐 서울 와서 바로 헤어진다. (2019.06.26. 5:10)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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