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5다220627 판결 -

 

[그림 1] Y호가 J호 지원을 받으며 제8부두를 이안하는 상황
[그림 1] Y호가 J호 지원을 받으며 제8부두를 이안하는 상황

서론
선박소유자 등1)의 책임제한제도(shipowner’s limitation)는 선박소유자가 그의 기업 활동인 선박의 이용 또는 해상항행활동의 수행 과정에서 지게 된 채무 중 일정한 요건이 갖추어진 것에 대하여 해산(海産, aritime property) 또는 일정한 금액을 한도로 하여 총책임(總責任, total liability)을 제한하는 해상법상의 특수한 법률제도를 말한다.2)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제도는 해상운송 과정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과 그 손해발생에 대하여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을 제한함으로써 해상기업을 보호하려는 정책적·연혁적 근거에 기초해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을 제한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둠으로써 화주에게 배상액의 최저한을 보장하는 것에도 그 목적이 있다.3) 연혁적으로는 책임제한의 방식(책임의 한도가 되는 재산)에 관하여 프랑스에서 발달한 위부주의, 독일에서 발달한 집행주의, 영국에서 발달한 금액책임주의, 미국에서 발달한 선가책임주의 등 입법례가 다양하게 발달해 왔으나, 오늘날에는 금액책임주의가 그 합리성을 인정받아 최근의 국제조약에서는 금액주의를 채택하고 있다.4) 우리나라 역시 금액주의를 채택하고 있다(상법 제770조 제1항).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제도는 선박소유자 등 해상기업주체가 하나의 사고 또는 항해에서 생긴 모든 채권자에 대한 책임을 총체적으로 제한하는 제도이다(총체적 책임제한, global limitation).5) 이처럼 책임제한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절차는 파산절차와 유사하게 법원이 관리인을 선임하여 제한채권의 조사·확정 및 배당 등의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6) 그러므로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은 원칙적으로 법원에 책임제한절차를 개시할 것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주장하여야만 한다.7) 상법 제776조 제2항은 ‘책임제한절차 개시의 신청, 책임제한의 기금의 형성·공고·참가·배당,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별도로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다. 상법 제776조 제2항이 정한 바에 따라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의 절차에 관한 사항을 정한 법률이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절차에 관한 법률’(이하 ‘책임제한절차법’8)이라고 한다)이다. 책임제한절차법은 전체 95개의 조문으로 구성된 단행법률로서, 「① 책임제한절차의 개시신청 → ② 책임제한절차의 개시결정 →③ 제한채권자 등의 참가 → ④ 제한채권의 조사 및 확정 → ⑤ 배당」으로 이어지는 책임제한절차를 규율한다.


총체적 책임제한절차인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절차는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19. 8. 29. 선고 2015다220627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은 책임제한절차법 제59조가 정한 ‘사정의 재판에 대한 이의의 소’에 관한 것이다. 대상판결을 매개로 하여 책임제한절차법상 핵심 쟁점이 되는 사항들을 개관하는 것이 이번 글의 목표이다.9)  

 
2. 사실관계
가. 피고는 선적국 대한민국, 총 톤수 4,166톤인 기선 ‘A 선박’(이하 ‘이 사건 선박’이라 한다)의 소유자로 해상운송업에 종사하는 회사이고, 원고들은 위 선박에 선적되었던 화물들의 화주, 보험자 등이다.
나. 이 사건 선박은 2011. 9. 5. 19:00경 부산항을 출항하여 제주도로 항해하던 중 2011. 9. 6. 00:57경 여수시 삼산면 상백도 부근 해상에 이르러 1층 화물창(main deck, 이하 ‘이 사건 화물창’이라 한다)에 시동을 켠 채 적재된 활어운반트럭에서 발생한 전기 배선의 합선으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하였고, 위 화재가 2층 화물창, 3층, 4층 객실 및 상부갑판 등으로 옮겨 붙어 선적된 자동차, 화물 등이 소훼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이하 ‘이 사건 사고’ 또는 ‘이 사건 화재’라고 한다).


다. 이 사건 선박의 선장과 선원들은 조타실에 설치된 화재경보장치 표시반의 경보를 통하여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위 화재로 발생한 연기, 유독가스 등으로 인하여 정확한 화재발생지점을 확인하지 못하였고 화재발생지점의 확인을 시도하던 중 발생한 폭발이 일어나자 선장은 화재진압을 포기하고 퇴선명령을 내렸다.


라.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들은 이 사건 선박에 선적하였던 자동차, 화물 등이 소훼되는 손해를 입었다.
마. 피고는 2012. 4. 13. 서울중앙지방법원 2012책1호로 책임제한절차법 제9조에 따라 책임제한절차개시를 신청하였고, 위 법원은 2012. 7. 11. 책임절차제한개시를 결정하였다(이하 ‘이 사건 책임제한절차’라 한다). 원고들은 이 사건 책임제한절차에서 이 사건 사고로 소실된 화물, 자동차 등에 관한 자신들의 손해배상채권 또는 구상금채권을 제한채권으로 신고하였다. 그러나 피고는 위 책임제한절차에서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는 화재로 인하여 생긴 손해이므로 상법 제795조 제2항에 따라 운송인이 면책된다고 주장하며 원고들의 제한채권신고에 대해 전액 이의하였다.


바. 책임제한법원은 피고의 이의에 대하여 책임제한절차법 제57조 제1항에 따라, 2013. 8. 28.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는 화재로 인하여 생긴 손해이고 위 사고가 운송인인 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화재로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상법 제795조에 따라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면책되었다고 보아 원고들이 신고한 각 제한채권이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결정을 하였다(이하 ‘이 사건 사정재판’이라 한다).

 

3. 사건의 경과
가. 원고들은 2013. 9. 16.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사정재판에 대하여 책임제한절차법 제59조에 의하여 ‘사정의 재판에 대한 이의의 소’를 제기하였다. 원고들은 ① 피고가 선장 및 선원들에 대하여 화재에 대한 교육·훈련을 소홀히 하였고, ② 이 사건 선박은 처음부터 화재탐지장치, 소방설비 등에 구조적 결함이 있었으며, ③ 활어운반트럭의 시동이 켜진 상태로 두도록 하는 등 이 사건 화물창의 화물 및 차량 적재가 관련 법령을 위반하여 잘못 행해졌다는 점 등을 들어 이 사건 사고의 원인이 된 화재가 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하여 발생·확대된 것이므로, 피고가 상법 제795조 제2항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이 면책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나. 제1심법원은 우선 “상법 제795조 제2항은 ‘운송인은 선장·해원·도선사, 그 밖의 선박사용인의 항해 또는 선박의 관리에 관한 행위 또는 화재로 인하여 생긴 운송물에 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한다. 다만, 운송인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화재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상법 제795조 제2항 단서에서 말하는 '운송인'이란, 운송인 자신 또는 이에 준하는 정도의 직책을 가진 자만을 의미할 뿐이고, 선원 기타 선박사용인 등의 고의 또는 과실은 여기서의 면책제외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2다39364 판결 참조)”는 판례를 판단의 기초로 삼았다. 이를 기초로 ‘화재가 선장 또는 선원들의 과실에 의하여 발생 또는 확대된 것이라도 그것이 선장 또는 선원들에 대한 화재 관련 교육 및 훈련의 결여에 기인한 것이라거나, 화재를 진압하기에 충분한 소방장치의 결여 또는 결함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이는 운송인 자신의 과실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 운송인은 상법 제795조 제2항의 화재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는 법리를 전제하였다. 다만 그 구체적인 사실인정에 의하여 위 ① 내지 ③의 사항에 기초한 피고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제1심법원은 원고들이 이 사건 책임제한절차에서 제한채권으로 신고한 손해배상채권 또는 구상금채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이 사건 사정재판에 대한 이의의 소를 기각하였다.10)   


다. 원고들은 제1심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원고들은 항소심에서는 제1심에서 하였던 ①, 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세부 사정들을 추가, 강조하여 주장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 역시 구체적 사실인정에 의하여 위와 같은 원고들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는 판단을 하여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하였다.11) 
라. 원고들은 다시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아래 4항과 같은 이유를 들어 상고를 기각하였다.

 

4. 대법원의 판시사항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를 설시하여 항소심 판결을 정당한 것으로 수긍하였다.

 

[판시사항]
원심은 피고 소유의 선박에 적재된 활어운반트럭에서 발생한 이 사건 화재에 관하여 위 트럭의 적재나 화재의 진압 조치 등 화재의 발생이나 확대에 있어 선장 등의 과실이나 피고의 선장 등에 대한 화재 교육 등의 부족, 선박의 소방시설 등의 구조적 결함이 있다고 볼 수 없어 이 사건 화재가 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니므로, 운송인인 피고는 상법 제795조 제2항에 의해 이 사건 화재로 인한 운송물에 관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이 사건 책임제한절차에서 화재로 소훼된 화물의 손해배상채권 등을 신고한 원고들의 제한채권이 존재하지 아니한다는 이 사건 사정재판을 인가하였다.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상고이유 주장과 같이 상법 제795조 제2항의 운송인 면책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심리를 미진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


5. 검토
가. 책임제한절차법의 주요 절차 개관
1) 책임제한절차의 개시신청

책임제한사건은 책임을 제한할 수 있는 채권(이하 ‘제한채권’이라 한다)이 발생한 선박의 선적(船籍) 소재지, 신청인의 보통재판적(普通裁判籍) 소재지, 사고 발생지, 사고 후에 사고선박이 최초로 도달한 곳 또는 제한채권에 의하여 신청인의 재산에 대한 압류 또는 가압류가 집행된 곳을 관할하는 지방법원의 관할에 전속(專屬)한다(책임제한절차법 제2조).12) 이는 경합적인 전속관할을 규정한 것으로서, 신청인은 자신에게 편리하고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여 책임제한절차를 신청할 수 있다.13) 여기서 한 가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책임제한절차에 적용될 실체법과 절차법이 달라질 가능성이다. 우리 국제사법 제60조 제4호는 ‘선박소유자·용선자·선박관리인·선박운항자 그 밖의 선박사용인이 책임제한을 주장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 책임제한의 범위’는 선적국법에 의한다고 규정한다.14) 따라서 문제된 선박이 대한민국 선적 선박인 경우에는 우리 상법과 책임제한절차법을 적용하여 책임제한절차를 진행하면 될 것이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만약 문제된 선박이 대한민국의 선적이 아닌 경우에는 신청인이 책임제한을 주장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 책임제한의 범위와 같은 실체적 사항에 관하여는 당해 선적국법을 적용하고, 책임제한기금의 설정과 제한채권의 조사·확정 및 배당과 그에 관한 절차적 사항에 관하여는 책임제한절차법을 적용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15)  


책임제한절차가 개시되면 제한채권자는 기금으로부터 배당을 받을 수 있을 뿐, 신청인이나 수익채무자의 일반재산에 대하여서는 그 변제를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책임제한절차법 제27조).16) 그러나 책임제한절차개시의 신청이 있더라도 제한채권자의 권리행사는 지장이 없으므로 절차개시결정까지 신청인 또는 수익채권자에 대한 강제집행 등이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렇게 되면 책임제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될 수 있다.17) 이에 책임제한절차 개시의 신청이 있는 경우 법원은 신청인 또는 수익채무자의 신청에 의하여 책임제한절차 개시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제한채권에 의하여 신청인 또는 수익채무자의 재산에 대하여 진행 중인 강제집행, 가압류, 가처분 또는 담보권실행으로서의 경매절차의 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제16조).18) 정지명령에 반하여 절차를 진행하더라도 그것은 무효이나,19) 법원이 이미 행해진 절차를 취소할 수는 없고 당해 절차에 관하여 이미 생긴 효과가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20)

 

2) 책임제한절차의 개시결정
책임제한절차의 신청인은 ‘제한채권에 관련하는 손해를 일으킨 사고를 특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신청의 원인사실’과 ‘제한채권의 액(額)이 책임한도액을 초과하는 것’을 소명(疎明)21)하여야 한다(책임제한절차법 제10조). 상법 제769조 단서는 채권이 ‘선박소유자 자신의 고의 또는 손해발생의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로 인하여 생긴 손해에 관한 것인 때’에는 책임제한을 배제한다고 규정한다. 우리 대법원은 ‘선박소유자 책임제한절차와 별도로 선박소유자 등에게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는 소송이 제기된 경우, 그 소송에서는 책임제한의 배제를 주장하는 채권자가 상법 제769조 단서에서 정한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존재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하지만, 선박소유자 책임제한절차에서는 절차개시를 신청하는 신청인이 구 상법 제746조 단서에서 정한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부존재에 대하여도 소명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여 신청인에게 위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부존재에 대한 소명책임이 있다고 하였다.22) 이들 요건을 소명하지 못하면 책임제한절차 개시신청은 기각된다(책임제한절차법 제18조). 


우리 책임제한절차법은 책임제한절차의 개시결정에 앞서 책임제한액에 상당한 기금(책임제한기금)을 형성하도록 하고 있다. 즉 법원은 책임제한절차 개시의 신청이 타당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신청인에 대하여 14일을 넘지 아니하는 일정 기일에 상법 제770조 제1항 각 호 및 같은 조 제4항에 따른 책임한도액에 상당하는 금전과 이에 대한 이자를 더하여 법원에 공탁(供託)할 것을 명하여야 한다(책임제한절차법 제11조 내지 제15조).23) 법원의 공탁명령에 따라 신청인이 현금 또는 공탁보증서를 제출하는 것은 책임제한절차 개시결정을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3) 제한채권자 등의 참가
법원은 책임제한절차의 개시결정과 동시에 관리인을 선임하고 제한채권의 신고기간과 조사기일을 정한다(책임제한절차법 제20조). 책임제한절차가 개시된 경우 제한채권자는 책임제한절차에 참가하여 책임제한기금으로부터 배당을 받을 수 있을 뿐이고, 책임제한기금 외에 신청인 또는 수익채무자24)의 재산에 대하여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책임제한절차법 제27조). 제한채권자들은 책임제한절차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채권을 신고기간 내에 신고하여야 한다(책임제한절차법 제43조, 제45조).
이러한 불이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잠재적인 제한채권자는 선박소유자와 책임제한을 배제하는 합의를 할 수도 있다. 우리 판례는 “상법 제769조 본문은 그 규정 형식과 내용 및 입법 취지 등에 비추어 임의규정으로 보아야 하므로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고 한다.25) 다만 이 합의는 그러한 배제약정을 한 당사자 사이에만 적용되고, 예컨대 수익채무자인 책임보험자 등 제3자는 여기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26)

 

4) 제한채권의 조사 및 확정
책임제한절차법에서는 제한채권 조사·확정과 관련하여 조사기일, 사정의 재판, 사정의 재판에 대한 이의의 소를 차례대로 규정하고 있다.27) 우선 법원은 조사기일을 열어 신고된 채권이 제한채권인지와 그 내용(원인과 금액), 상법 제770조 제1항의 구분에 따른 제한채권의 분류를 조사한다(책임제한절차법 제53조). 관계인은 조사기일에 출석하여 이의할 수 있는데(책임제한절차법 제54조), 만약 이의가 없다면 조사기일에서 조사된 것과 같이 확정되지만(책임제한절차법 제56조), 이의가 있다면 법원은 이의가 있는 채권에 관하여 결정의 형식으로 사정(査定)의 재판을 한다(책임제한절차법 제57조). 사정의 재판은 확인적 내용을 갖는 일종의 비송적 절차로 책임제한절차법 특유의 절차이다.28) 사정의 재판에 이의가 없다면 사정의 재판 결과에 따라 확정되지만, 이의가 있다면 이의를 진술한 자 또는 이의 있는 채권을 신고한 자는 사정의 재판에 대한 이의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결국 채권의 내용, 액수 등은 이의소송 결과에 따라 확정된다(책임제한절차법 제59조).
사정의 재판은 선박소유자의 책임을 묻는 사건에서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이의를 소송절차를 통해 해결하려면 절차가 매우 번잡해지고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여 소송으로 하지 않고 간이·신속한 비송재판을 통하여 일차적으로 이를 해결하게 한 것이다.29) 이에 대하여는 실무적인 관점에서, 조사기일에 이의된 채권에 대하여는 일정한 요건 아래에서 사정재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송절차를 진행하여 제한채권액을 확정하는 것이 보다 신속하고 적정한 재판절차일 수 있다는 입법론적 비판도 제시된다.30)


조사기일에서 확정되면 책임제한절차 내에서 제한채권 여부와 그 내용 등을 다툴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채권이 조사절차에서 제한채권으로 확정되더라도 제한채권 확정의 효력은 책임제한절차 내에서만 미칠 뿐이므로, 책임제한절차에 참가한 채권자는 책임제한절차와 상관없이 채무자를 상대로 한도액의 제한 없이 책임을 추급하는 개별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이러한 개별소송을 ‘절차외소송’이라고 한다).31) 다만 책임제한절차법은 사정의 재판에 대한 이의의 소와 절차외소송이 경합하는 경우에는 그 모순·저촉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를 두고 있다(책임제한절차법 제61조 내지 제64조).32) 절차외소송을 제기한 채권자는 책임제한절차에서 배당표에 대한 이의신청기간이 지나기 전에 자기의 신고채권에 관하여 절차외소송이 계속 중인 사실을 증명하여 배당 유보의 신청을 할 수 있다(책임제한절차법 제70조, 제71조 제1호). 절차외소송의 실질적 효과는 문제된 채권이 제한채권으로 인정되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① 만약 선박소유자 등이 절차외소송에서 선박소유자의 책임제한 항변을 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즉 문제된 채권이 제한채권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으로서는 책임제한절차의 폐지 또는 책임제한절차 개시결정의 취소를 정지조건으로 하여서만 제한채권자의 청구를 인용할 수 있다.33) ② 이와 달리 절차외소송에서 채권자가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존재를 주장·증명함으로써 문제된 채권이 비제한채권이라는 판결 등이 확정되면, 당해 채권은 책임제한절차로부터 제척되어, 채권자는 책임제한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채무자의 일반재산에서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책임제한절차법 제74조).34) 결국 절차외소송은 문제된 채권이 비제한채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때에 한하여 비로소 실효적인 가치를 가지게 된다. 

 

5) 배당 
책임제한절차는 신청인에게 있어서는 책임제한의 이익을 얻기 위한 절차이나, 제한채권자에게 있어서는 제한채권에 대한 배당을 받기 위한 절차이다. 책임제한절차법은 제65조 내지 제70조에서 배당표의 작성 및 인가(제66조), 배당표의 공고 및 비치(제67조), 배당표에 대한 이의(제68조), 배당(제69조)에 관한 절차적 사항을 정하고 있다. 책임제한절차에 참가한 자가 공탁에 관한 법령에 따라 기금으로부터 배당액을 수령할 수 있게 된 경우 신청인 및 수익채무자는 책임제한절차 외에서 해당 제한채권에 대하여 그 책임을 면한다(책임제한절차법 제73조). 즉 배당은 신청인과 수익채무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효과가 있다.35)


 
나. 이 사건의 검토
앞서 본 책임제한절차의 전체 과정을 보면, 책임제한절차에서 ‘제한채권의 조사 및 확정’ 단계가 가장 쟁점적인 단계가 됨을 알 수 있다. ‘책임제한절차의 개시결정’ 단계에서도 관계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을 수 있지만, 책임제한절차의 개시결정 단계에서는 비교적 객관적이고 분명한 자료들에 의하여 신청인이 소명책임을 다할 수 있다.36)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신고한 제한채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상판결을 통해 비로소 확정되었지만, 위 제한채권의 존재를 전제로 한 이 사건 책임제한절차에 대한 개시결정이 내려진 것을 보더라도 ‘소명’이 요구하는 입증의 정도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는 신고된 채권이 제한채권에 해당하는지 여부, 채권의 내용(원인과 금액), 분류가 다투어진 것이 아니라 신고된 채권의 존부 자체가 문제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측면이 있다. 만약 이 사건 책임제한절차에서 신고된 손해배상채권 또는 구상금채권이 존재한다면 이는 상법 제769조 제1호 소정의 ‘선박에서 또는 선박의 운항에 직접 관련하여 발생한 선박 외의 물건의 멸실 또는 훼손으로 인하여 생긴 손해에 관한 채권’으로서 제한채권에 해당할 것이라는 점에는 별다른 의문이 없다. 다만 상법 제795조 제2항이 ‘운송인은 선장·해원·도선사, 그 밖의 선박사용인의 항해 또는 선박의 관리에 관한 행위 또는 화재로 인하여 생긴 운송물에 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한다. 다만 운송인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화재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37) 원고들로서는 이 사건 화재가 운송인인 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임을 증명하여야만 제한채권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38) 위 상법 제795조 제2항 단서에서 말하는 ‘운송인’이란, 운송인 자신 또는 이에 준하는 정도의 직책을 가진 자만을 의미할 뿐이고, 선원 기타 선박사용인 등의 고의 또는 과실은 여기서의 면책제외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대상판결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39) 제1심판결에서부터 대상판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 사건 화재 발생에 대한 피고의 과실이 없다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다. 유류오염배상법상 책임제한절차
‘유조선’에 의한 유류오염사고는 피해규모가 크고 피해자의 수가 많아서 일반적인 선박소유자의 책임제한제도만으로는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배상을 하기 어렵다. 이에 국제사회는 1차적으로 ‘1969년 유류오염손해에 대한 민사책임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Civil Liability for Oil Pollution Damage, 1969, 이하 ‘1969년 민사책임협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여 ‘선박소유자’에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책임을 지우고, 2차적으로 ‘1971년 유류오염손해의 국제보상기금설립을 위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stablishment of an International Fund for Compensation for Oil Pollution Damage, 1971, 이하 ‘1971년 국제기금협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여 ‘정유회사 등 유조선 화주들’에게 선주책임을 초과하는 범위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체계를 구축하였다. 우리나라는 1978. 12. 18.에 ‘1969년 민사책임협약’에, 1992. 12. 8.에 ‘1971년 국제기금협약’에 각각 가입한 다음40) 그 내용을 받아들여 유류오염손해배상 보장법(이하 ‘유류오염배상법’이라고 한다)을 제정하였기 때문에, 우리법의 손해배상체계도 국제적 체계와 동일하게 되었다. 즉 ‘일반선박’의 경우에는 상법 해상편에 규정된 책임제한액의 적용을 받지만, ‘유조선’41)의 경우에는 상법이 아닌 유류오염배상법의 적용을 받아 별도의 책임한도액42) 내에서 책임을 지게 되고, 그 한도를 초과하는 손해에 대해서 피해자들은 다시 별도로 조성된 국제기금(International Oil Pollution Compensation Fund, IOPC Fund)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실무를 보면, 2007년 충남 태안 해안에서 삼성중공업의 예인선이 유조선인 허베이 스피리트호를 충격하면서 발생한 이른바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를 둘러싼 책임제한절차가 책임제한절차에 관한 수많은 실무례를 만들어냈다. 유류오염배상법 제41조는 유류오염배상법에 따른 책임제한절차에 관하여는 책임제한절차법을 준용한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유류오염배상에 관한 책임제한절차에 대하여도 기본적으로는 책임제한절차법이 적용된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로 인한 유류오염배상에 관한 책임제한절차는 이제 상당히 마무리된 상태이다. 대전지방법원에서는 2017년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와 관련된 책임제한절차와 사정의 재판에 대한 이의소송을 실제로 담당한 판사들의 실무경험을 기초로 한 분석을 집대성한 『대규모 해양오염사고 재판실무』를 냈다. 이는 위 대형 사건을 우리 법 발전의 계기로 삼은 모델로서 고무적인 일이며, 위 책의 실무적 가치 역시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43)

 

6. 결론
이상과 같이 선박소유자 등 책임제한절차의 큰 줄기와 핵심적 쟁점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대상판결은 책임제한절차와 관련하여 커다란 쟁점이 될 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정의 재판에 대한 이의의 소’라는 낯선 유형의 재판에 관한 실제 사례를 매개로 들여다봄으로써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절차에 대하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 사건보다 더 관심을 기울일 사건은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와 관련한 책임제한절차이다. 위 사건을 통해 축적된 실무례는 향후 우리나라의 책임제한절차 실무에 커다란 자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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