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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 스피리트’호 오염사고를 되돌아보며(上)
-인도선원 처벌과 관련된 논란을 중심으로-
[553호] 2019년 10월 01일 (화) 15:42:53 박영선 komares@chol.com

 

   
박영선
베트남 해양대학교
초빙교수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선거를 10여일 앞두고 있던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던 크레인 부선(Crane Barge) 삼성1호와 대형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이하 ‘허베이호’)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허베이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은 주변 해역을 거대한 기름띠로 뒤덮었으며, 이후 유출된 기름은 조류를 타고 충청남도는 물론 경기도 및 전라북도의 해안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전국적으로 약 200만명의 자원봉사자가 이 지역을 찾아 방제작업을 하였으며, 피해지역 주민에 대한 지원과 해양환경의 조속한 복원을 위해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사고를 일으킨 선원들은 물론 관련된 회사들은 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받았다. 또 피해를 입은 지역주민들은 대부분 관련 절차에 따라 국제기금으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았다. 따라서 이 오염사고는 대형 해양사고 중의 하나로 기억될 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 글의 목적은 허베이호 사건 중 비록 큰 조명은 받지 않았지만 사실 논란이 많았던 외국선원의 처벌문제를 차분하게 되돌아보고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고자 함이다. 사실 이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에 내재된 많은 제도적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어 연구할 가치가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다소 뒤늦게 이 문제에 집중하는 이유는 사고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관련자들을 엄벌에 처하라는 국민적 분노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으며, 보상과 관련된 법적 소송도 거의 마무리되어 필자의 글이 소송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또 필자도 공무원 신분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와 이제는 비교적 자유롭게 정부에 대한 비판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사고 후 우리나라에서는 허베이호 선원들을 대형 해양오염사고를 일으킨 악당으로 매도하고 처벌하였지만, 국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에서 훌륭하게 직무를 수행했다고 허베이호 선장에게 2008년 올해의 선장상(Shipmaster of the Year Award)을 수여하였다. 이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또 당시 국제적으로 해양사고 발생 시 선원에 대한 과도한 처벌을 억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 진행되던 중이었는데 우리나라는 이에 반하여 이들을 구속시켰다. 더욱이 구속된 선원에 대한 처우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어 많은 인도 국민을 격분케 하였고, 인도 내 반한감정이 들끓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나라와 인도 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되었음은 물론 국제해사기구(IMO)에서도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이들이 왜 처벌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언론에서도 인도 선원의 처우 및 인도 내에서의 반한시위 사태를 거의 보도하지 않아 이 문제의 심각성을 거의 알 수 없었다.


이 사건에서 허베이호 선원에게 과실이 있다는 논거는 이 분야의 전문기관인 해양안전심판원(이하 ‘해심원’)이 제공하였다. 허베이호 선원들은 정박선으로서 이동 중인 크레인바지에 추돌당한 피해자이며, 오염 확산을 위하여 국제기준을 따랐다고 주장하였으나, 해심원은 이를 모두 배척하고 이들에게 직무상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후 법원은 재판 중 이들의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항소심 법원은 이례적으로 선박파괴죄를 적용하여 법정 구속하였다. 항소심의 논리는 해심원의 재결을 적극 수용하여 허베이호는 삼성 예인선단과의 충돌을 제대로 피하지 못한 과실이 있으니 허베이호 선원들도 삼성1호 예인선단의 선원들과 함께 허베이호 파괴의 공범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법원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며 한국정부를 비난하였다.  


원칙적으로 사고가 발생하면 철저한 사실 확인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향후 유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이 채택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냉철한 이성보다는 일단 관련자를 처벌하라는 감정이 앞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고가 나면 많은 매스컴들은 관련자들을 악마처럼 비난하고, 이들은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선동한다. 그러나 관련자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차분하게 해양사고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행위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다. 국가가 관련자에 대한 처벌에 집중하면 일시적으로 성난 국민을 달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유사한 사고의 예방은 기대하기 어렵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 문에 열쇠도 달고, 주변에 CCTV를 설치하는 등 외양간을 고쳐 다시는 소를 잃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마련해야지 마당쇠만 혼내는 것은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이 글의 핵심은 마당쇠를 혼내는 법적 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한편, 외양간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하는 방안에 관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의 개요>
가. 충돌사고

사고 예인선단(이하 ‘삼성예인선단’)은 총 4척의 선박으로 구성되어있다. 예인선 삼성T-5호 및 예인선 삼호T-3호는 대형 해상 크레인부선 삼성1호(총톤수 1만 1,828톤)를 예인줄로 예인하고, 닻 작업선(Anchor Boat) 삼성A-1호는 삼성1호의 뒤쪽에서 예인줄로 삼성1호의 진행방향을 보조적으로 조절하며 따라가는 형태로 운항한다.
삼성예인선단은 거제시 고현항으로 가기 위하여 2007년 12월 6일 14시 50분경 인천대교 공사현장을 출항하였다. 이날 23시 30분까지는 날씨가 좋아 정상적으로 항해하였으나 덕적군도를 지나면서부터 점차 기상이 악화되었다. 다음날 00시 13분부터 예선들의 선수방향이 심하게 흔들리고 속력이 2노트 이하로 감속되었다. 삼성예인선단은 우현 측의 강한 풍파에 밀려 침로를 따라가기는 하나 극도로 불안정하게 지그재그(zigzag) 형태로 항해하였다. 같은 날 04시경 삼성T-5호는 정상항해가 불가하다고 판단하여 인천항 쪽으로 피항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피항을 위해 예인선들이 침로를 000도로 변침하여도 삼성1호가 끌려오지 않고 오히려 예인선들을 동쪽으로 끌고 가자 예인선들은 피항을 포기하고 당초의 예정항로로 복귀하였다.


06시 30분경 삼성1호의 선수부가 당시 정박 중 거의 정북 쪽을 향하고 있던 허베이호의 선수 우현 측에서 좌현 측으로 횡단하였다(충돌의 위험 감소). 그러나 06시 52분경 삼성T-5호와 삼성1호를 연결하는 예인줄의 중간부분이 외력을 못 이기고 절단되었다. 예인줄 절단으로 더 이상 예인작업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삼성1호는 07시 00분경 비상투묘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파가 심하여 삼성1호는 1∼2노트 정도의 아주 느린 속도로 허베이호 쪽으로 접근을 계속하여, 2007년 12월 7일 07시 06분경 삼성1호의 크레인 붐 끝의 화물고리(Hook)가 허베이호의 선수갑판 마스트 상부에 처음 충돌하였다. 07시 13분경 삼성1호의 좌현 선수부가 허베이호의 좌현 1번 화물탱크에 충돌하여 파공이 발생하였다. 이후에도 추가적인 충돌이 발생하면서 좌현 3번 및 5번 화물탱크에도 파공이 생기고, 이 파공을 통하여 많은 양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었다.
중국 홍콩 선적의 허베이호는 인도인 선장 차울라(Jaspreet Chawla) (이하 ‘차울라 선장’)의 지휘 하에 중동산 원유 약 26만톤을 적재한 상태로 2007년 12월 6일 19시 18분 대산항 항계 밖에 정박하였다. 이 선박은 다음날 오후 유류하역시설(Single Buoy Mooring. SBM)에 접안하여 화물을 양화할 예정이었다. 정박 당시의 기상은 풍력계급 3정도의 북동풍이 불고 약 2노트의 남서향 조류가 흐르고 있었다.


다음날 04시경 1등항해사 체탄(Syam Chetan) (이하 ‘체탄 1항사’)은 중국인 실습항해사와 함께 정박당직을 수행하였다. 이 당시에는 기상이 악화되어 풍력계급 7의 서풍이 불고 파고 4미터의 파도가 일고 있었다. 같은 날 06시경 삼성예인선단이 악천후에 밀리며 약 1.5노트 속력으로 당시 약 345도 방향을 향하고 있던 허베이호의 선수 쪽 약 1마일 거리까지 접근하였다. 체탄 1항사의 보고를 받고 06시 06분경 선교에 올라온 차울라 선장은 자선의 선수 우현 약 20도 거리 약 0.7마일 내외의 위치에서 크레인 부선 삼성1호가 작업등을 여러 개 켠 채 예인선 두 척에 끌려 선수 좌현 쪽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차울라 선장은 예인선단이 선수는 서쪽을 향하고 있으면서 실제 이동은 남쪽으로 자선의 좌현 측을 향해 속력 약 1.5노트로 선수를 횡단하여 비스듬히 내려오고 있으므로 좌현 정횡부근에서 최근접점(CPA) 약 0.3마일 정도로 통과해 갈 것으로 예상하였다. 06시 17분경 선장 차울라는 삼성예인선단의 예상침로로부터의 거리를 넓히기 위하여 주기관을 극미속 후진으로 사용하면서 선수부에 나가 있는 체탄 1항사에게 닻줄을 더 풀어주라고 지시하였다. 그는 기관을 사용하며 닻줄 4절을 더 풀어주어 총 13절(13 Shackles on Deck)까지 내주었다. 그러는 사이 삼성1호는 06시 32분 경 허베이호의 선수를 횡단하였고(충돌위험 감소) 06시 40분경에는 허베이호 좌현 측 횡방향인 진방위 약 340도 거리 약 0.3마일에서 최근접점 위치를 지나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06시 54분경 그는 삼성T-5호가 삼성1호 쪽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았으나 이것이 예인줄 절단 때문인지는 알지 못하였다.


선장 차울라는 삼성1호가 다시 접근해 오자 06시 57분경 해상교통관제센터로부터 닻을 감아 기관을 사용하여 이동해줄 것을 거듭 요청받았고, 이에 따라 06시 58분과 58분 30초에 각각 미속후진과 반속후진을 연속 사용하였다. 그러나 주기관(Main engine)에 고온경보(High Temperature Alarm)가 울리면서 주기관 회전수가 자동감속(Auto Slow Down)되어 허베이호는 조종불능상태가 되었다. 선장 차울라는 삼성1호가 떠밀려와 충돌의 위험을 느끼게 되자 07시 00분경 체탄 1항사에게 닻줄을 끊어 버리라고 지시하였고, 주기관의 조종불능상태가 해소되자 07시 04분 30초경부터 충돌을 피하고자 주기관을 후진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허베이호는 07시 06분경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부선 삼성1호와 충돌하였다.

 

나. 오염사고
07시 28분경 차울라 선장은 좌현 날개갑판(Wing Deck)에 나가 체탄 1항사에게 모든 탱크에 대한 측심(Sounding)을 지시하였으며, 이 작업은 09시 45분경에야 완료되었다. 09시 38분경 해양경찰 직원이 허베이호에 승선하였고, 차울라 선장은 그들과 협의를 거쳐 화물유 유출을 막기 위하여 1번과 3번 좌현 화물탱크 파공부에 방수매트(Collision Mat)를 붙들어 매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차울라 선장은 체탄 1항사에게 지시하여 10시 경부터 모든 화물탱크에 불활성가스(Inert Gas)를 주입하였다.1) 차울라 선장은 10시 35분경 화물유 펌프를 가동시켜 손상된 탱크에 적재된 원유를 비교적 여유가 있는 다른 탱크로 이송을 시도하였으며, 같은 날 11시 15분경부터 우현 측 평형수 탱크에 해수를 주입하여 선체를 약 5도 내외로 우현으로 경사시켰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다음 날인 8일 23시 40분경에 화물유 유출이 멈추었으며, 그 사이에 약 1만 2,547킬로리터(약 1만 900톤)의 원유가 유출되었다.

 

<해양안전심원판의 원인판단>
가. 해양안전심판원의 재결
1) 충돌원인

해양안전심판원(이하 ‘해심원’)은 이 사건에서 삼성예인선단이 충돌의 주된 원인을, 정박선인 허베이호는 일부의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즉, 삼성예인선단은 기상악화로 조종성능이 제한된 상태로 정박선 허베이호에 접근한 상태에서 예인선 삼성T-5호의 예인줄이 파단되며 부선 삼성1호가 허베이호 쪽으로 떠밀려가 충돌을 발생시킨 주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허베이호는 당직태만과 안일한 대응으로 조기에 적극적인 피항동작을 취하지 아니한 데다, 충돌의 위험이 급박한 상황에서 주기관 사용준비 태만으로 피항동작을 취하지 못한 일부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2) 항법의 적용
해심원은 사고 당시 예인선들은 조종성능이 심각하게 제한된 상태이고 허베이호는 정박선(Vessel at anchor)이므로,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 제2장에서 규정하는 정상적인 항법규정을 적용하기는 어렵고 동 규칙 제2조(책임)2)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3) 동 규칙 제2조(a)항에서 규정하는 선원의 상무(Oordinary practice of Seaman)에 따르면 모든 선박은 시각, 청각은 물론 그 당시의 사정과 상태에 적절한 모든 유효한 수단을 동원하여 항상 적절한 경계를 유지하고, 당시의 상황에 알맞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야 한다. 따라서 조종성능이 심각하게 제한된 당시 상황에서 삼성 예인선단은 충돌위험을 경고하고 비상투묘를 하는 등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를 해야 하고, 허베이호는 주기관(Main engine)을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고, 경계를 철저히 하여야 하며, 충돌의 위험을 안고 접근하는 다른 선박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주기관 사용 등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3) 해양오염의 원인
해심원은 재결서 주문에서 해양오염은 충돌로 인하여 허베이호의 화물탱크가 파공되면서 화물유가 해상으로 유출되어 발생한 것이나, “오염이 확대된 것은 허베이 스피리트 측이 충돌 후 부적절한 비상대응조치로 화물유 유출속도를 증가시키고 화물유 유출방지를 위한 조치를 소극적으로 이행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처음 해양오염은 1차적으로 충돌에 기인한 것이므로 삼성예인선단이 해양오염의 주된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이후 허베이호는 적절한 유출방지 조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오염의 확대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허베이호의 부적절한 비상대응조치로 지목된 4가지 사항에 관하여는 아래의 평석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4) 허베이호 선원에 대한 조치
가) 차울라 선장

이 사람은 아래와 같은 부적절한 행위를 하여 해양오염의 원인을 제공하였으며, 해심원은 이를 직무상 과실로 인정하였다. 다만, 이 사람은 외국 해기면허를 소지하여 징계처분이 불가하므로 이 사람에 대하여 시정을 명하였다.
① 야간에 선박통항이 빈번하고 차폐되지 아니한 장소에 정박하면서 항해당직체제를 유지하지 아니함.
② 정박당직자가 당직업무를 엄격히 수행하도록 지휘·감독할 책임이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당직항해사가 정박당직업무를 태만히 한 채 실질적으로 이를 수행하지 아니함으로써 조종성능이 심각하게 제한된 상태로 접근하는 대형 예인선단에 대한 동정감시 태만으로 여유 있는 시기에 충돌의 위험을 보고받지 못하여 조기에 충돌을 피하기 위한 동작을 취하지 못함.


③ 충돌의 위험상황에 접하였으면 주기관을 사용하면서 닻을 끄는 등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예인선단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최선의 응급조선을 취해야 할 선원의 상무(船員의 常務. Good Seamanship)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주기관을 극미속 후진으로 사용하면서 닻줄만 일부 풀어주는 등 소극적인 피항동작을 취함.
④ 사고 당시 허베이 스피리트가 정박한 장소는 통항선박들과의 충돌위험이 있고 차폐물이 없는데다 해저의 저질이 파주력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모래이며 조류가 3노트 이상으로 강한 곳이기 때문에 기상이 악화되면 닻이 끌릴 수도 있는 위험이 있는 장소이므로 이 선박은 운항지침서 및 선원의 상무에 따라 당연히 주기관을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준비상태로 유지하였어야 했으나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아 충돌의 위험이 급박한 상황에서 주기관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음.
⑤ 예인선단의 접근속력이 아주 느려 충돌에 따른 충격이 크지 않았고 허베이 스피리트의 선체손상정도가 경미하였을 뿐만 아니라 폭발의 가능성도 희박한 상황에서 허베이호의 안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다음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아니함.


○ 파공에 대한 임시 봉합조치
○손상된 탱크의 기름을 손상되지 않은 탱크로 이송
○손상된 탱크의 내부압력 강하
○선박의 충분한 우현경사
  
나) 체탄 1항사
이 사람은 아래와 같은 부적절한 행위를 하여 해양오염의 원인을 제공하였으며, 해심원은 이를 직무상 과실로 인정하였다. 다만, 이 사람도 외국 해기면허를 소지하고 있으므로 징계 대신 이 사람에 대하여 시정을 명하였다.
① 야간 정박당직 중 실질적인 정박당직근무를 수행하지 않아 접근하는 삼성 예인선단을 인식하지 못하고 충돌의 위험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선장에게 보고를 함으로써 선장이 여유 있는 시기에 피항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함.
② 위 차울라 선장의 ⑤번과 동일

 

나. 평석
1) 너무 많은 충돌원인

해심원 재결서의 주문에서 “이 사건 충돌은...예인선단 측이 예인항해중...정박선 허베이 스피리트에 가까이 접근한 상태에서 삼성T-5호의 예인줄이 파단되면서 부선 삼성1호가 허베이 스피리트 쪽으로 떠밀려가 발생한 것이나[주인], 허베이 스피리트 측이...조기에 적극적인 피항동작을 취하지 아니한데다 충돌의 위험이 급박한 상황에서 주기관 사용준비 태만으로 주기관이 조종불능상태가 되어 피항동작을 취하지 못한 것도 일인이 된다[일인]”며, 삼성 예인선단이 사고의 주인을, 허베이호가 일인을 각각 제공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재결서 본문의 원인란에서는 충돌의 원인으로서 아래의 <표 1>과 같이 총 14가지를 열거하고 있으나4) 그 수가 너무 많아 사고의 주요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 더욱이 원인 다음에 ‘직접원인의 일부’, ‘간접원인의 일부’, ‘직접원인의 상당부분’과 같이 해심원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용어들을 추가하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고원인이 너무 많으면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예방대책 마련에 역량을 집중하기도 어렵다.


물론 해양사고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사고와 관련된 여러 가지 원인을 열거한 해심원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는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사고원인은 주요한 원인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해심원의 지침에서도 사고발생원인은 ‘사고발생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여,5) 원인으로 취급해야 할 인과관계에 대한 제한을 하고 있다(해양사고의 조사 및 심판에 관한 법률(이하 ‘해심법’이라 한다) 사무처리요령, 별표 4, 재결서 작성요령, 이유의 기재요령, 5.나.(1)).

 

2) 악천후와 해양사고
<표 1>에서는 너무 많은 원인을 열거하여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건의 경과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의 핵심은 예인선 삼성T-5호와 부선 삼성 1호를 연결했던 예인줄의 파단임을 알 수 있다. 기상악화 상태에서도 최소한도의 조종성능을 가지고 있던 삼성 예인선단이 조종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은 이 예인줄이 끊어지며, 삼성1호를 더 이상 예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예인줄이 끊어지게 된 원인을 밝히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표 1 : 해심원 재결서에 따른 충돌의 원인>

1. 예인선단의 예항능력부족. 직접원인의 일부
2. 예항검사 부적절. 직접원인의 일부
3. 예인선단 피항 시 외부와 연락 불이행. 간접원인의 일부
4. 예인선단 피항시기 지연. 직접원인의 일부
5. 예인줄 파단강도 충분. 원인과 무관
6. 파랑 상에서 선체에 미치는 동적하중이 파단강도를 초과하여 예인줄 파단. 직접원인의 일부
7. 예인줄 파단. 직접원인의 일부
8. 예인선단 조기 비상 투묘 불이행. 직접원인의 일부
9. 예인선단의 경계태만. 직접원인의 일부
10. 허베이호의 당직체제 부적절 및 당직불이행. 직접원인의 상당부분
11. 허베이호의 주기관 사용준비 태만으로 인한 조종불능상태. 직접원인의 상당부분
12. 허베이호가 주기관을 사용하여 닻을 끌면서 적극적으로 피항하지 아니함. 직접원인 상당부분
13. 삼성예인선단 선박위탁관리회사의 안전관리불철저. 직접원인의 일부
14. 삼성예인선단 용선운항자의 해상안전관리체제결여. 간접원인의 일부

 

<표 1>의 원인 5에서 예인줄의 파단강도는 충분하였고, 원인 6에서는 ‘파랑 상에서 선체에 미치는 동적하중이 파단강도를 초과’하여 예인줄이 파단되었다고 한다. 또 원인 7에서는 삼성 예인선단이 허베이호의 선수방향을 지나 그대로 진행하면 충돌의 위험이 완전히 해소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삼성T-5호의 예인줄이 절단되어 삼성1호가 바람에 밀리며 뒤로 다시 되돌아와 충돌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당시 예인줄은 파단강도가 충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악천후 상태에서 발생한 선박들의 동적하중이 이를 초과하였기 때문에 끊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즉, 예인줄을 끊어지게 한 힘은 해상고유의 위험(Perils of the Sea)6) 중의 하나인 악천후에서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자연력에 의하여 사고가 발생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러나 재결서에서는 막연한 추정에 의하여 예인줄의 사용방법이 잘못되어 파단되었다고 설명하고 뚜렷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7) 사실 예인줄이 파단될 수 있는 원인으로는 그 밖에도 예인줄 자체에 잠재된 하자. 재질의 피로도 증가 등 여러 가지가 있기도 하다.

 

바다에서는 육상과 달리 악천후와 관련된 사고가 많다. 거대한 폭풍은 아무리 큰 선박도 침몰시킬 수 있으며, 돌풍, 강조류, 폭우, 농무 등의 해양기상은 해양사고 발생의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해심원 심판의 목적은 원인규명 및 유사사고의 재발방지이기 때문에 악천후 등 해양기상상황은 대체로 원인규명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있다(해심법 제4조 제1항). 따라서 해심원이 사고 원인으로서 악천후를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 인재(人災)로 취급하고 있다. 인재가 되면 해양사고 발생의 원인은 사고 당시의 해기사의 개인 과실이 되어 징계나 형사벌을 받게 된다. 예컨대 선박 도선작업 중 돌풍이 불어 선박이 축조 중인 호안을 접촉한 사건에서 해심원은 자연력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도선사의 과실을 인정하였다.8) 그러나 예보가 없어 순간최대풍속이 초당 20미터를 초과할 정도의 강력한 돌풍을 미리 예측할 수 없었던 당시의 사정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도선에 필요한 예선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판단한 해심원의 재결은 매우 아쉽다.

 

3) 불활성 가스의 주입
해심원은 해양오염이 삼성 예인선단의 허베이호 충돌이라는 1차 사고에 의하여 촉발되었음은 인정하면서도 허베이호 선원들이 선박기름오염비상계획서(Shipboard Oil Pollution Emergency Plan. SOPEP)에 의한 대응조치 미흡으로 오염이 확산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특히 허베이호는 공기유입에 의한 폭발을 예방하기 위하여 파손된 화물탱크에 불활성 가스를 주입하였던 바, 해심원은 당시 폭발의 위험성이 낮았으며, 불활성가스의 주입은 화물탱크의 압력을 높여 기름 유출량을 증가시킨 것으로 판단하였다. 또 폭발의 위험성이 낮은 근거로서 이 선박에 적재된 화물유의 성질상 정전기 발생이 어렵고, 산소가 탱크 내부로 들어가기 어렵고, 탱크 내에 점화원(불꽃, 열)이 없고, 실제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점을 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해심원의 판단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손상된 탱크에서 기름이 유출되면 그 빈 공간에 새로운 공기가 유입되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정전기 등에 의한 폭발위험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SOPEP 지침에서는 안전확보 차원에서 선체손상 시 불활성 가스를 주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해심원의 판단은 SOPEP의 규정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고, 추후 국제적인 문제가 되었다(자세한 내용은 5. 국제적인 논란에서 설명). 필자는 안전을 위한 불활성 가스 주입 문제가 심판과정에서 충분히 토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원은 왜 SOPEP 위반이라는 반대의 판단을 하게 되었는지 매우 궁금하다.9)

 

4) 허베이호 선장의 과실
해심원은 차울라 선장의 다음 5가지의 행위를 열거한 뒤 이를 직무상 과실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직무상 과실을 인정하려면 주의의무의 존재, 주의의무의 위반, 행위가 직무상의 행위인지, 당시의 상황에서 취한 행위가 평균적인 선원으로서 합당한 조치인지, 행위와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등의 과실요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해심원의 판단에는 다소 논리가 부족하여 다음과 같은 반박의 소지가 있다. 특히 ② 및 ④에서 해심원은 책임소재에 대한 착각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참고로 영국의 해운 전문지 로이드 리스트(Lloyd’s List)는 해심원의 판단과 전혀 달리 차울라 선장이 사고 당시 어려움 속에서 전문가 선원(professional Mariners)으로서 훌륭한 행동을 했다고 하여 2008년 올해의 선장상(Shipmaster of the Year Award)을 수여하였다.10) 또 국제유조선협회(INTERTANKO)는 2009년 6월 11일 허베이호 선원들의 무죄가 확정되자 허베이호의 조치가 인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유조선 운항에 관한 국제기준과 관행에 부합한다며 차울라 선장의 조치를 치하하였다.

 

가) 정박하면서 항해당직체제를 유지하지 아니함
선장은 정박 중 필요시 항해당직체제를 유지할 수 있지만(STCW Code Section A-VIII/2, para. 18), 항해당직체재를 유지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를 과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선장은 해당 선박의 상태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에서 어떤 당직을 수행할지는 그의 직업적인 판단에 맡겨져 있다. 따라서 당직 시행에 관한 그의 재량권은 존중될 필요가 있다. 선박안전법과 해사안전법 모두는 누구든지 선박의 안전을 위한 선장의 전문적인 판단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 정박당직자를 지휘ㆍ감독할 책임이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당직항해사가 정박당직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아니함으로써 조기에 충돌을 피하기 위한 동작을 취하지 못함
당직항해사가 정박당직근무를 소홀히 하였다고 하여 이를 곧바로 평소 선장이 지휘·감독을 소홀히 하였다거나, 당직근무 소홀로 인하여 조기에 충돌을 피하기 위한 동작을 취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평소 선장이 지휘·감독을 철저히 해도 당직자가 당직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당직근무의 소홀이 항상 충돌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에서처럼 항행 중의 다른 선박이 정박 중의 선박에게 갑자기 돌진할 경우 정박선의 정박당직업무 소홀과 충돌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11) 인과관계가 없는 과실은 당연히 사고원인이 될 수 없으며, 과실을 저지른 사람에게 책임을 추궁할 필요도 없다.

 

다) 충돌의 위험상황에서 주기관을 사용하면서 닻을 끄는 등의 적극적인 피항동작을 취하지 아니함.
당시 허베이호는 삼성T-5호의 예인줄이 끊어질 것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또 이를 알았다고 해도 그 결과 삼성 예인선단이 어느 쪽으로 이동할지 충분한 정보가 없었으며, 예인줄 절단부터 충돌까지 시간적으로 제한된 상황(약 12분)에서 닻을 끄는 피항동작을 취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더욱이 전속후진기관을 사용하면 피항할 수 있다는 해심원의 주장은 추정에 불과할 뿐 이를 입증할 수는 없다. 추정에 근거한 과실주장은 공허하다. 영국선장협회도 당시의 상황에서 기관을 사용하여 닻을 끄는 조치는 적절한 조치가 아니며, 충돌을 피하고자 닻줄을 풀어내며 뒤로 후진한 허베이호 선장의 조치가 가장 적절한 조치였다고 판단하고, 이에 관한 내용의 공식 서한을 대한민국 대법원에 보내온 바 있다. 이 서한에 대한 우리나라의 공식반응은 없었다.

 

라) 정박 중 주기관 배기밸브 교환작업을 하였으며,
작업 후 냉각청수밸브를 열지 아니한 채 방치함으로써 주기관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음
선장의 판단에 따라 정박 중 기관정비를 행한 조치가 과실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사실 배기밸브 교환은 기관이 작동 중에는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박 중 선장이 당시의 상황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시행할 수밖에 없다. 또 기관정비 후 냉각청수밸브를 개방하지 아니한 행위는 기관정비 담당자인 기관장의 과실이지 이를 선장의 과실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선박에 근무하는 어떤 선원이 과실을 저질렀다고 하여 그 과실이 무조건 선장의 과실이 될 수는 없다.

 

마) 허베이호의 안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소극적으로 행함
위에서 본 것처럼 SOPEP의 규정에 따라 행한 선장의 조치를 과실로 판단함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5) 체탄 1항사의 과실
해심원은 체탄 1항사의 다음 행위를 과실로 인정하였으나, 차울라 선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반론도 가능하다.

가) 당직 중 충돌의 위험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늦게 보고함으로써 선장이 여유 있는 시기에 피항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함
기본적으로 이 사람의 행위가 직무상 과실이 되려면 그 과실과 충돌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람이 선장에게 보고한 시간은 이날 06시 05분으로서 선장은 07시 06분의 충돌시간까지 여러 가지 정보를 취득하고, 조치를 검토할 수 있는 약 1시간의 시간이 있었다. 따라서 이 사람의 보고가 늦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고, 설사 보고가 늦었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와 충돌 간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특히 사고 당시 삼성 예인선단은 자력으로 허베이호의 선수를 우현에서 좌현으로 통과하여 점점 멀어지는 과정에서 갑자기 예인줄이 끊어지면서 되돌아와 충돌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설혹 더 빨리 보고했다고 해도 상황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나) 허베이호의 안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소극적으로 행함(선장의 과실과 동일)
해심원은 선박의 총책임자인 선장은 물론 화물관리담당자인 1항사에게도 동일한 직무상 과실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선장에게는 지휘명령권이 있으며, 1항사가 행하는 화물의 관리도 결국은 선장의 지휘를 받아 행하게 된다. 따라서 그 결과가 잘못되었을 경우 선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있어도 그 지휘를 충실히 따른 1항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법원의 유죄판단>
가. 법원 판결 과정
1) 제1심 (대전지법 서산지원)의 판단
가) 체탄 1항사

당직 근무 중 체탄 1항사는 알파(ARPA) 레이더를 제대로 활용하지 아니하고, 육안을 통한 지속적인 경계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경계의무소홀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허베이호가 닻줄을 더 내어줌으로써 삼성 예인선단과의 충돌의 위험이 감소되었다가 삼성T-5호의 예인줄 파단이라는 예상하기 어려운 사태로 인하여 충돌에 이른 것이므로 체탄 1항사의 경계의무 위반행위와 충돌 간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취지로 판결하였다. 또 해양오염은 충돌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해양오염의 책임에 대하여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따라서 ①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형법 제187조) 및 ②해양오염환경관리법위반죄 모두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되었다.

 

나) 차울라 선장
법원은 선박충돌에 관련된 하울라 선장의 행위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검토한 후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 법원은 체탄 1항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해양오염의 책임에 대하여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① 기관을 준비상태로 유지한다 함은 선교의 지시에 따라 지체됨이 없이 선교에서 기관을 즉각 가동할 수 있는 상태로 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정도를 뜻한다고 할 것이다. 증인의 법정진술에 의하면 기관을 준비상태에 두지 아니하고 정지한 경우 기관 작동 시까지 통상 30-40분이 소요된다고 하는 바, 차울라 선장이 기관 작동을 지시한 다음 11분 정도 만에 기관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점에 비추어 기관 준비상태 유지에 대한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없다.


② 차울라 선장이 닻줄 4절을 신출하면서 약 110m 이상의 거리를 후진한 당시 상황은 충돌의 위험이 소멸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 위험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고, 만일 삼성T-5호의 예인줄이 파단되지 않았다면 충돌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앵커를 신출하고 후진기관을 사용한 선장 차울라의 충돌회피 동작이 부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③ 예인줄의 파단은 예견하기 어려운 돌발적인 상황이었으며, 예인줄이 파단된 것을 인식할 수 있었던 때로부터 충돌할 때까지 동안 전속후진기관을 사용하면 주묘가 되고 그를 통하여 충돌을 막을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충돌회피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다.

 

2) 제2심(대전지법)의 판단
대전지법은 허베이호 선원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제1심의 판단을 뒤엎고 허베이호 선원들에게 선박충돌로 인한 선박파괴죄 및 해양오염으로 인한 해양환경관리법위반죄 모두를 유죄로 인정하였다.
선박의 충돌과 관련, 체탄 1항사는 당직근무를 소홀히 하여 선장에게 보고를 늦게 했고, 이로 인하여 선장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만든 과실이 있다. 차울라 선장은 당시 상황에서 닻을 끌면서 반속 이상의 속도로 후진하는 것이 유일하고 최선의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극미속 후진하면서 닻을 풀어주는 소극적인 조치만을 취한 과실이 있다. 결국 1항사와 선장은 공모하여 과실로 선박을 파괴하는 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또 충돌로 인한 허베이호의 파손의 정도는 유조선의 교통기관으로서의 용법의 일부가 상실되는 파손이라고 봄이 상당하고, 또한 선박파괴에 이르렀느냐 하는 점은 사고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인바 사후에 간단한 수리를 통하여 항해할 수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허베이호가 선박파괴의 정도가 아니라 단순 파손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12)


해양오염과 관련, 선장과 1항사는 공동으로 손상된 탱크로부터 다른 탱크로 화물이송을 충분하게 하지 않았으며, 손상된 탱크에 불활성 가스를 주입함으로써 유출을 촉진시켰으며 선박을 5-6도 만을 경사시켜 기름 유출량을 확대시킨 과실이 있다. 결국 선장에게는 금고 1년 6월 및 벌금 2,000만원, 체탄 1항사에게는 금고 8월 및 벌금 1,000만 원이 각각 선고되어 법정에서 구속되었다.13)

 

3) 제3심(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차울라 선장 및 체탄 1항사의 충돌 및 오염 방지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한 원심 결론을 모두 인정하였다. 다만 허베이호의 충돌로 인한 손상은 경미하고, 이를 수리할 때까지 유조선으로서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었다고 해도 이러한 손상은 형법 제187조에서 정한 선박의 ‘파괴’에 이를 정도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에 관한 원심의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따라서 과실에 의한 해양오염죄는 확정되었다.

 

4) 파기환송심(대전지법)의 판단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허베이호 선원의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나. 평석
위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제2심인 대전지법은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를 인정하여 허베이호의 선장 및 1항사를 법정 구속하였다. 이러한 외국선원의 구속은 국제 해운계의 흐름과 맞지 않는 조치였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후 대법원은 이러한 제2심의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결과적으로 대전지법의 판결은 국내외적으로 소란만 일으킨 일종의 과잉판결로서 해석될 소지가 많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대전지법의 항소심 판결의 내용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당시 사회적 분위기 및 해심원 재결의 역할
대전지법이 항소심에서 다소 엉뚱한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은 해심원의 재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해심원 재결과 사법부 판결 일자 및 순서는 다음의 표2로 요약할 수 있다.
이 표의 순서에 의하면 제1심인 대전지법 서산지원의 판결 당시에는 해심원의 재결서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천지방해심원의 재결이 나온 이후 진행된 대전지법의 항소심에서는 이를 참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재판 당시 이 사고는 매우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14) 허베이호 선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제1심 판결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았었다. 마침 해심원은 허베이호에게도 일부 과실이 있다는 취지의 재결을 내렸는바, 대전지법으로서는 해심원의 의견을 바탕으로 허베이호 선원들에게 선박파괴 및 해양오염에 대한 유죄를 인정했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실제 허베이호 선원의 과실을 인정하는 대전지법의 판결문은 해심원의 재결서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2)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의 존재의 이유
우리 형법에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를 처벌하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선원들이 선박을 운항하다 보면 악천후, 충돌, 좌초, 접촉 등에 의하여 선박이 멸실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이 때 국가공권력이 개입하여 해당 선원의 업무상 과실(주의력 부족)로 인한 결과(선박파괴)를 처벌하는 근거규정이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이다. 그러나 이 규정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선박이 파괴되었다고 하여 공공의 질서가 어지럽혀지거나 개인의 손해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선박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멸실된 선박의 소유자는 선박보험에 의하여 손실을 보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 규정의 목적은 선원들의 주의를 촉구함으로써 해상교통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형벌은 국민의 자유를 심하게 훼손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인 간 조정이 가능한 사항에 대하여는 굳이 공권력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미미한 사안에 대하여 국가형벌권을 남용할 경우 법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의 경우 선박파괴를 처벌하는 입법사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편, 자동차에 의한 교통사고의 경우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의하여 해당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하거나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는 과실이 있는 운전자를 처벌하지 않고 있다. 보험에 가입해서 피해보상이 원만하게 처리될 경우 국가형벌권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과실에 의한 손상사고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도 배상에 관한 문제는 개인 간의 문제로서 국가가 굳이 개입할 근거는 찾기 어렵다. 따라서 해당 법조문은 삭제하거나,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유사한 내용의 가칭 ‘해양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하여 불필요한 선원에 대한 처벌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3) 추정에 근거한 유죄 인정
대전지법은 “당시 상황에서는 닻을 끌면서 반속 이상의 속도로 후진하는 것이 유일하고 최선의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극미속 후진하면서 닻을 풀어주는 소극적인 조치만을 취한 과실이 있다”라며, 차울라 선장의 피항방법 상 과실을 인정하고 이를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 위반으로 보았다. 그러나 대전지법의 판단은 사고 당시 사용할 수 있는 정보가 충분치 못하여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된 선장의 입장이 아니고, 사고 이후 여러 가지를 검토한 후 도달한 것으로서 현실과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허베이호가 ‘유일하고 최선의 방법’으로서 닻을 끌면서 반속 이하로 후진할 경우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은 추정일 뿐 실제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입증할 수 없는 추정은 유죄판단의 근거로 볼 수 없다.


유류오염죄의 적용과 관련하여도 대전지법은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면 상당량의 기름 유출을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허베이호 측이 조기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과실로 기름유출량이 확대된 측면이 있다”며 역시 추정에 근거한 유죄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 등의 조치’가 결과적으로 기름유출을 줄였을지, 반대로 폭발의 원인이 되어 더 큰 유출이 일어났을지는 증명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추정의 이유로서 해양오염과 폭발의 위험 중 해양오염이 현재 진행 중이므로 더 급박하다거나, 정전기로 인한 폭발의 가능성이 적으니 불활성 가스를 손상된 탱크에 주입하면 안된다고 하는 등의 설명은 폭발방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SOPEP 규정이나 업계의 관행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다.
물론 상기의 추정은 증명기준이 비교적 자유로운 해심원의 심판에서는 사안에 따라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격한 증거법칙이 적용되는 형사재판에서 증거가 아닌 추정에 기반한 유죄인정은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추정에 근거한 대전지법의 유죄판결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 형법상 인과관계
행위자를 처벌하려면 그의 행위와 결과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일정한 결과가 행위자의 행위와 무관하게 발생하였다면 그 결과는 피해자에게 우연하게 일어나 불행한 결과이지 행위자가 만들어낸 불법한 결과가 아니다. 우연한 결과에 의해 발생한 불행한 결과에 대해 행위자가 책임지는 것은 부당하므로 형법은 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범죄구성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다.15)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방법으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행위와 결과 간에 상당성이 있어야 한다는 상당인과관계설이 통설이다. 상당성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는 다시 여러 가지 학설로 나뉘지만 대법원은 일체의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는 객관적 상당인과관계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16)


허베이호 사건에서 대전지법은 선원들이 행한 행위가 선박의 충돌이라는 결과와 모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예컨대 원심에서는 예인줄의 파단에 의하여 충돌이 발생하였으므로 차울라 선장의 과실과 충돌이라는 결과 발생에 대하여 인과관계가 단절된 것으로 보는 취지로 판결하였으나, 항소심은 충돌위험의 실현이라는 결과를 바탕으로 결과와 허베이호 선원들의 과실이 ‘상호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인과관계가 단절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심지어 대전지법은 허베이호가 예인줄의 파단에 일부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17) 1항사의 경계 불충분, 선장의 부적절한 피항동작이 모두 충돌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또 기관의 자동감속과 충돌의 인과관계에 대하여도 허베이호가 ‘전속 또는 반속후진기관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충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배척하였다. 또한 대전지법은 예인선단이 교신의무를 이행하였다면 “허베이호에서 미리 대비하여 적절히 피항함으로써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18)


이 판결의 특이한 점은 상세한 검토 없이 당시 상황에서 허베이호가 행한 행위는 모두 결과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점이다. ‘상호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설명도 결국은 결과를 바탕으로 두리뭉실하게 바라본 것에 불과할뿐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더욱이 논리나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아니하고 추정에 근거한 인과관계 유무 판단은 논리가 취약하다. 만일 추정에 대한 반증이 입증되면 추정에 기반한 모든 논의는 허물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대전지법은 허베이호 선원들을 처벌할 목적으로 가지고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나 의심스럽다.

 

5) 기존의 판례에서 현저하게 일탈
우리 형법은 사람의 현존하는 기차, 전차, 자동차, 선박 또는 항공기를 전복, 매몰, 추락 또는 파괴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제187조),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제187조의 죄를 범한 자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89조 제2항). 대법원은 확립된 판례로서 형법 제187조에 정한 ‘파괴’의 뜻은 기차, 전차, 자동차, 선박 또는 항공기 등의 교통기관으로서의 용법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파손을 의미하는 것이고, 경미한 손괴를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석해 왔다.19) 따라서 선박이 일부 파손된 경우 형법 제187조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지법은 종래의 대법원 판례를 무시하고 허베이호의 일부분이 손상된 이 사건에서 이 손상을 ‘파괴’라고 해석하였다. 당연히 이 사건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은 매우 이례적인 이 판결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21)


법률해석에 관하여 하급심은 대법원의 판례를 좇아가는 것이 사법부의 일반적인 관례이다. 물론 판사의 소신에 의하여 하급심이 판례에서 벗어난 판결을 내릴 수는 있으나, 이런 판결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최종심인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피하기 어렵다. 또 일반적으로 보수성이 강하다고 평가되는 법원의 분위기에서 관례에 벗어나는 소위 ‘튀는’ 판결을 한 판사는 승진이나 전보에 있어 불이익을 당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설사 판사가 강한 소신이 있더라도 실제 이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지법이 이런 판결을 내린 배경에 대하여 필자는 당시 법원 내부에서 일종의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사법농단사건을 통하여 조금씩 밝혀지고 있듯이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사법부는 사회적 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하여 뒷거래를 통하여 이상한 판결을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6) 허베이호는 스스로 선박을 파괴하였는가?


다른 선박의 추돌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선박이라 하더라도 조금이나마 과실이 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는 민법의 과실상계에서 찾을 수 있다. 민법에서는 피해를 입은 자에게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관하여 과실이 있을 경우 법원은 손해배상의 책임 및 그 금액을 정함에 이를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396조). 따라서 과실상계란 손해배상책임에서 채권자(피해자)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에 이를 참작하여 과실비율을 정함으로써 채무자(가해자)의 손해배상책임을 감면하는 제도이다. 이와 같이 가해자의 책임을 감면하는 이유로는 피해자의 행위가 손해의 발생에 기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손해에 대하여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칙상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통설). 또 가해자의 배상액을 감액하여 줌으로써 종국적으로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22)


선박충돌은 불법행위의 특수한 경우로서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하게 된다. 민법에 따르면 양 선박은 연대하여 책임을 부담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가해자의 누구에게나 전액청구를 할 수 있으며, 전액 손해배상을 한 가해자는 다른 가해자에게 과실비율에 따른 구상청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법에서는 선박충돌에 따른 특칙을 정하여 선박충돌이 쌍방의 선원의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때에는 쌍방의 과실의 경중(과실비율)에 따라 각 선박소유자가 물적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분할하여 분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상법 제879조 제1항). 다만, 제3자의 인적 손해에 대하여는 쌍방의 소유자가 연대하여 책임을 진다(동조 제2항). 이 경우 각 선박의 과실비율에 관한 판단은 사실심 법원의 자유재량에 속한다.


과실비율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면서도 유사한 제도로는 해심원의 원인제공비율이 있다. 원인제공비율은 해양사고의 발생에 2명 이상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 각 관련자가 원인에 기여한 비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해심법 제4조 제2항). 특히 원인제공비율은 관련자가 사고 당시 해기사로서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 하였는지를 바탕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는 형사소송절차와 같은 엄격한 증명을 요하지 아니하고, 해양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직무상 과실과 결과발생 간의 인과관계도 비교적 쉽게 인정하고 있다.23) 선박충돌사고의 경우 대부분 쌍방의 과실에 의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원인제공비율은 통상 양 선박이 나누어 부담하게 된다(예: 갑선: 을선=90:10). 결과적으로 원인제공비율은 일부 원인을 제공한 선박에게도 책임을 분담하도록 함으로써 과실상계와 유사하게 쌍방 간 책임의 공평·타당한 분담에 기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형법의 기본목적은 법익보호를 위하여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따라서 형법은 범죄행위자의 책임을 기초로 하되, 과실범의 경우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한다. 선박충돌의 경우는 쌍방 모두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항행 중인 선박과 피항능력이 매우 제한된 정박 중인 선박의 경우는 다소 다르다. 이 사건에서 보듯이 주요 원인을 제공한 것은 운항 중이던 삼성 예인선단이며, 만일 그들의 원인제공(과실)이 없었더라면 충돌이 발생하지도 않았고, 정박 중인 허베이호의 과실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원인을 제공한 삼성 예인선단 측을 처벌하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민사적 성격을 가진 과실상계나 원인제공비율과 같이 피해자의 과실을 문제 삼을 경우 설사 피해자라고 할지라도 공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24) 이 경우 허베이호 선원들은 삼성예인선단과 공모하여 자신이 승선하고 있는 선박을 스스로 파괴하였다는 이상한 결과가 된다.25) 애초부터 과실범을 처벌하는 목적은 당초 행위자의 주의력 부족에 따른 결과를 처벌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그 결과와 부수된 과실이 있는 피해자를 처벌하는 것은 국민의 상식과 법 감정에도 맞지 않는다.26) 더욱이 피해자는 가해자의 가해행위를 거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100% 완벽한 대응조치를 취할 수도 없다. 사법당국은 허베이호 사건과 같이 정박선과 항행선이 충돌한 경우 주요 법익침해자인 삼성예인선단 선원만을 처벌하고, 정박선인 허베이호의 경미한 과실은 불문에 붙이는 상식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7) 선장과 1항사는 과실을 모의할 수 있는가?
대전지법은 1항사의 당직근무 소홀 및 선장에게 늦은 보고라는 과실과 선장의 소극적인 피항동작이라는 과실을 묶어서 업무상과실선박파괴죄의 공범으로 각각 유죄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2인 이상이 과실로 범죄의 결과를 발생시킨 경우 과실범의 공동정범 인정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우리 형법상 공동정범은 원칙적으로 고의범이어야 하는데 고의 없는 각각의 행위로 결과를 발생시킨 사람들을 공범으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많은 논란이 있으나27) 대법원은 이 부분에 대하여 파기환송을 하였으므로 검토에 대한 실익이 적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8) 1항사의 형사적 책임

대전지법은 해양오염과 관련, ‘공동과실’이라는 항목에서 허베이호의 선장 및 1항사(화물책임자)는 화물이송의 불충분, 손상된 탱크에 불활성 가스 주입, 선박경사 미흡으로 기름 유출량을 확대시킨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여 해양환경관리법 위반으로 각각  2,000만원 및 1,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였다. 물론 허베이호가 취한 조치의 과실 여부는 논란이 있으므로 아래(5. 나. 2))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선장의 지휘·감독에 따라 행동한 1항사를 과실범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항해위험의 극복과 선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장에게는 공법상의 강력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선장은 선원을 지휘·감독하며, 선내에 있는 사람에게 선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명령을 할 수 있으며(선원법 제6조), 선원이 상급자의 직무상 명령에 따르지 아니하는 경우 해원을 징계할 수 있다(동법 제22조 제1항 제1호). 또 누구든지 선박의 안전을 위한 선장의 전문적인 판단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여서는 안 되고(해사안전법 제45조),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동법 제110조 제4항). 따라서 선원들은 선장의 전문적인 판단에 의한 직무상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허베이 1항사의 경우 화물책임자로서 화물관리에 관한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선장의 지휘·감독을 받아 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 군대조직에서와 마찬가지로 선박에서의 모든 직무상 행위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수행하고, 그 결과는 다시 상급자에게 보고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1항사의 행위가 결과적으로 과실로 인정될 경우 지시를 내린 선장은 당연히 과실범으로 처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령에 따라 선장의 지시를 따른 1항사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내 조직상 1항사에게는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는 행위지배권이 없으므로 주의의무위반(과실)의 판정기준으로서 예견가능성과 결과회피가능성을 따질 수 없다. 또한 현실적으로 외견상 적법한 선장의 명령을 따른 행위가 처벌될 수 있다면 선장을 정점으로 한 선박의 지휘·감독 체제에 큰 혼란이 올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필자는 명백하게 불법이 아닌 한 상급자의 지시에 따른 하급자의 행위에 대하여는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하급자의 행위지배권은 상급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선원처우에 관한 국제적 논란과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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