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과 선박우선특권

- 대법원 2019. 7. 24.자 2017마1442 결정 -

이필복 울산지방법원 판사
이필복 울산지방법원 판사


1. 서론

최근 몇 년간 해상법 학자들과 실무가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던 사건에 관한 대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대법원 2019. 7. 24.자 2017마1442 결정(이하‘대상결정’이라고 한다)은 정기용선자를 상대로 상법 제777조 소정의 선박우선특권 있는 채권을 가진 채권자가 정기용선의 목적물인 선박에 대하여 선박우선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가 쟁점이 된 사건이다. 이는 선체용선에 관한 상법 제850조 제2항을 정기용선의 경우에도 유추적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도 논의된다. 상법 제850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상법 제850조
(선체용선과 제3자에 대한 법률관계) 
① 선체용선자가 상행위나 그 밖의 영리를 목적으로 선박을 항해에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에 관한 사항에는 제3자에 대하여 선박소유자와 동일한 권리의무가 있다.
② 제1항의 경우에 선박의 이용에 관하여 생긴 우선특권은 선박소유자에 대하여도 그 효력이 있다. 다만, 우선특권자가 그 이용의 계약에 반함을 안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종래 우리 대법원은 상법 제850조 제1항을 정기용선에 유추적용하는 것을 긍정하여왔다. 즉 대법원은 2007년 개정 전의 구 상법 하에서 “당사자 간에 체결된 정기용선계약이 그 계약 내용에 비추어 선박에 대한 점유권이 용선자에게 이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선박임대차와 유사하게 용선자가 선박의 자유사용권을 취득하고 그에 선원의 노무공급계약적인 요소가 수반되는 것이라면 이는 해상기업활동에서 관행적으로 형성 발전된 특수한 계약관계라 할 것으로서 이 경우 정기용선자는 그 대외적인 책임관계에 있어서 선박임차인에 관한 상법 제766조1)의 유추적용에 의하여 선박소유자와 동일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 할 것이므로 정기용선자는 선장이 발행한 선하증권상의 운송인으로서의 책임을 부담한다”고 분명히 선언한 바 있다.2) 위 판례들에서 구 상법 “제766조”라고 하여 제1항, 제2항을 구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위 판결들은 모두 운송물의 멸실·훼손으로 인한 정기용선자의 운송계약상 책임이 문제 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판례상 제1항이 유추적용됨은 분명하였으나 제2항이 유추적용되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대상판결은 우리 판례상 상법 제850조 제1항뿐만 아니라 제2항까지도 정기용선에 유추적용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정기용선자가 채무자인 경우 정기용선된 선박에 선박우선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일차적으로는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또한 선박우선특권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는가도 중요한 쟁점으로 작용한다. 즉 선박우선특권이 ‘공시되지 않는 물권’으로서 다른 담보권자와 채권자의 기대와 이익을 해할 수 있다는 측면을 주목하는 견해는 상법 제850조 제2항을 정기용선에 유추적용하는 데 조심스러울 수 있고, 반대로 선박우선특권의 ‘채권자 보호 기능’을 중시하는 견해는 정기용선에서도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이하에서는 기존의 학설과 판례의 동향을 살펴보면서 대상결정이 가지는 체계적 함의를 탐색하고자 한다. 

2. 사실관계

가. 신청인은 대한민국 선적인 이 사건 선박의 소유자로서 국내 법인이고, 피신청인들은 예선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 회사이다. 

나. 신청인은 2015. 1. 27. 이 사건의 채무자인 A 회사와 사이에 이 사건 선박에 관하여 용선기간 2년, 용선료 월 2억원으로 하는 정기용선계약(이하 ‘이 사건 용선계약’이라고 한다)을 체결하였다. A 회사는 이 사건 용선계약에 따라 이 사건 선박을 사용하면서 피신청인들과 사이에 이 사건 선박에 대한 예인·예선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피신청인들로부터 그 용역을 제공받았다. 

다. 그러나 A 회사는 피신청인들에게 예인·예선 용역계약에 따른 예선료를 지급하지 않았다(위 미지급 예선료를 ‘이 사건 예선료’라고 한다). 이에 피신청인들은 2015. 7. 13. 이 사건 선박의 정박지 관할법원인 인천지방법원에 이 사건 예선료 채권이 상법 제777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하는 선박우선특권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위 예선료 채권을 피담보채권으로 하여 이 사건 선박에 대한 선박임의경매절차 신청을 하였다. 위 법원은 2015. 7. 15. 이를 받아들여 이 사건 선박에 대하여 선박임의경매개시결정(이하 ‘이 사건 임의경매개시결정’이라고 한다)을 하였다.3)

3. 사건의 경과 

가. 이 사건 선박의 소유자인 신청인은 이 사건 임의경매개시결정에 대하여, ‘이 사건 용선계약은 정기용선계약이므로 선체용선계약에 관한 규정인 상법 제850조 제2항, 제1항 등이 적용될 여지가 없으므로 피신청인들은 채무자인 A 회사에 대하여 선박우선특권을 가진다 하더라도 선박소유자인 신청인에게는 그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위 임의경매개시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였다. 

나. 제1심법원은 2015. 8. 27. ‘이 사건 용선계약은 정기용선계약으로서 채무자는 정기용선자의 지위를 가지는데, 이 경우 선체용선계약에 관한 규정인 상법 제850조 제2항, 제1항이 유추적용되므로, 피신청인들이 A 회사에 대하여 가지는 이 사건 예선료 채권은 상법 제777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하는 선박우선특권으로서 선박소유자인 신청인에 대하여도 그 효력이 있고, 따라서 피신청인들로서는 이 사건 선박에 대하여 그 우선특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신청인의 위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하였다.4) 

다. 신청인은 제1심결정에 불복하여 항고하였다. 항고심 법원은 신청인의 항고를 받아들여 제1심결정을 취소하고, ‘이 사건 임의경매개시결정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하였다. 항고심 법원은 “정기용선계약은 ‘선박소유자가 여전히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관리권을 가지는 반면 용선자는 그러한 지배관리권을 갖지 아니하기로 하는 계약’으로서 선박임대차계약이나 선체용선계약과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계약일 뿐 아니라, 현행 상법 제850조 제2항, 제1항의 규정체계나 문언상 위 각 규정은 선체용선계약에 한하여 적용되는 규정임이 명백하므로, 위 각 규정은 정기용선계약에 대하여 유추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오히려 위 각 규정의 반대해석상 정기용선계약에 있어서는 선박의 이용에 관하여 생긴 우선특권이라 하더라도 선박소유자에 대하여는 그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고, 이러한 법리를 기초로 신청인의 항고를 받아들인 것이다.5) 

라. 피신청인은 위 결정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재항고하였다. 대법원은 대상결정에서 아래와 같은 이유로 “선체용선에 관한 제850조 제2항의 규정이 정기용선에 유추적용되어 정기용선된 선박의 이용에 관하여 생긴 우선특권을 가지는 채권자는 선박소유자의 선박에 대하여 경매청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항고심 결정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인천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하였다. 

4. 대법원의 판시사항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3가지 이유로 선체용선에 관한 상법 제850조 제2항이 정기용선에 유추적용된다고 판시하였다. 

[판시사항]

가. 정기용선계약은 선체용선계약과 유사하게 용선자가 선박의 자유사용권을 취득하고 그에 선원의 노무공급계약적인 요소가 수반되는 특수한 계약관계로서 정기용선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화물의 선적, 보관 및 양하 등에 관련된 상사적인 사항의 대외적인 책임관계에 선체용선에 관한 상법 제850조 제1항이 유추적용되어 선박소유자와 동일한 책임을 부담한다(대법원 1992. 2. 25. 선고 91다14215 판결, 대법원 2003. 8. 22. 선고 2001다65977 판결 참조).

나. 선체용선에서 선박의 이용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는 선체용선자만이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고 선박소유자와 제3자 사이에는 원칙적으로 직접적인 법률관계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나, 상법은 선박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제850조 제2항을 두어 선박우선특권은 선박소유자에 대하여도 효력이 발생하고 그러한 채권은 선박을 담보로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선박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은 선체용선과 정기용선이 다르지 않다.  

특히 상법 제777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된 예선료 채권을 보면, 채무자가 선박소유자 또는 선체용선자인지, 정기용선자인지를 구별하지 않고 우선적으로 보호하여야 할 필요성이 크다. 예선업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예선의 사용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선박의 입항 및 출항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 제1항),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위반하여 예선의 사용 요청을 거절한 때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동법 제55조 제4호). 이처럼 예선업자는 대상 선박을 이용하는 자가 누구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예선계약의 체결이 사실상 강제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예선계약 체결 당시 예선료 채무를 부담하는 자가 선박소유자인지 여부 등을 확인하기도 곤란하다.

다. 상법 제777조 제1항에서는 선박우선특권이 인정되는 채권을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으므로, 정기용선자에 대한 그와 같은 채권에 관하여 선박우선특권을 인정하더라도 선박소유자나 선박저당권자에게 예상치 못한 손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5. 검토

가.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1) 정기용선계약의 개념

정기용선계약(定期傭船契約, Time Charter)은 선박소유자가 용선자에게 선원이 승무하고 항해장비를 갖춘 선박을 일정한 기간동안 항해에 사용하게 할 것을 약정하고 용선자가 이에 대하여 기간으로 정한 용선료를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계약을 말한다(상법 제842조). 정기용선은 ‘용선자가 일정기간 동안 선원부선박의 사용권을 얻어 자기의 해상기업에 이용하는 것’으로서 항해용선(상법 제827조 이하)과 선체용선(또는 선박임대차, 상법 제847조 이하)의 중간적 계약 형태이다.6) 즉 정기용선은 항해용선과 달리 용선자가 선박의 자유사용권과 항해지휘권을 얻는다는 점에서 선체용선과 같지만,7) 선체용선과 달리 용선자가 선박에 대한 점유와 지배권을 가지지 못하고 선박소유자가 선박에 대한 점유와 선장·선원의 선임·감독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선체용선과 다르다.8) 이러한 점에서 정기용선은 항해용선과 선체용선의 단점을 보완한 제도이며 양자의 중간에 위치한 것이라고 이해되는 것이다.9) 어떠한 용선계약이 항해용선인가, 정기용선인가, 그리고 선체용선인가는 선박에 대한 점유와 지배·관리권의 귀속 등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계약조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결정하여야 한다.10) 이 사건의 항고심 결정과 대상결정은 이 사건 용선계약의 계약조건 등을 검토하여 이 사건 용선계약이 정기용선계약이라고 판단하였다.  

2)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은 정기용선계약의 대외적 법률관계(정기용선자와 제3자의 관계)를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와 주로 관련되어 있다.11) 정기용선자와 선박소유자 사이의 내부관계는 기본적으로 용선계약에서 정한 바에 의한다.12) 그러나 정기용선자와 제3자의 외부관계는 용선계약에서 정한 대로 당연히 구속력을 가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기용선의 준거법에 기초한 법의 해석 영역으로 남겨져 있다.13) 그런데 현행 상법은 정기용선계약의 대외적 법률관계에 관한 명문의 규정을 달리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내법상 정기용선을 운송계약(또는 항해용선) 또는 선박임대차계약(또는 선체용선)에 준하여 취급함으로써 해당 계약형태에서 정한 대외적 법률관계에 관한 법률규정을 정기용선계약에 유추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법적 쟁점이 첨예하게 제기되어 온 것이다.14)

가) 학설

국내에서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에 관하여는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견해로 요약해볼 수 있다.

① 용선계약설(운송계약설)15): 정기용선계약은 선박소유자가 일정 기간 동안 정기용선자가 지정하는 운송물을 운송하기로 하는 계약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운송물이 선박소유자 등의 점유·관리 아래 있는 점 등을 주된 근거로 든다.16) 영미의 통설은 정기용선자가 ‘선박의 점유와 지배권(possession and control of the ship)’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정기용선계약을 항해용선계약과 같이 운송계약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17) 
② 혼합계약설: 정기용선계약은 선박임대차와 노무공급계약의 혼합계약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전통적인 국내의 다수설로 소개되며,18) 독일과 일본의 통설·판례가 이를 따른다고 한다.19) 
③ 특수계약설: 정기용선계약은 선박임대차계약에 근접하면서 노무공급계약을 수반하는 특수계약이라는 견해이다.20) 오늘날 국내의 통설로 보인다. 다만 선장이나 선원의 과실로 인한 사용자책임(불법행위책임)에 대하여는 아래 ④와 같은 학설의 분기(分岐)가 나타난다. 앞서 본 위 대법원 1992. 2. 25. 선고 91다14215 판결은 “정기용선계약은 선박에 대한 점유권이 용선자에게 이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선박임대차와 유사하게 용선자가 선박의 자유사용권을 취득하고 그에 선원의 노무공급계약적인 요소가 수반되는 내용으로서 해상기업활동에서 관행적으로 형성 발전된 특수한 계약관계”라고 판시하였는데, 이는 특수계약설을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④ 해기·상사구별설: 특수계약설에 기초하면서 선박의 항행 및 관리에 관련된 ‘해기사항’에 대하여는 선박소유자가, 화물운송과 관련한 ‘상사사항’에 대하여는 정기용선자가 책임을 부담한다는 견해이다.21) 이는 정기용선자와 선장 및 선원과의 사이에 고용관계가 없고, 정기용선자가 해기사항에 대한 지시·명령권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이러한 기초에서 선박의 항행과 관리로 인하여 제3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때에는 정기용선자와 선박소유자가 연대책임을 진다는 견해도 있다.22) 
⑤ 유형설: 정기용선계약을 용선자 자신의 화물을 운송할 목적으로 체결하는 ‘운송형(적하지향형) 정기용선계약’과 선박의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형(선박지향형) 정기용선계약’으로 나누어, 전자는 운송계약, 후자는 선박임대차계약으로 보는 견해이다.23)

나) 판례

우리 판례는 앞서 본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특수계약설에 기초해 있다고 이해된다. 그런데 대법원 2003. 8. 22. 선고 2001다65977 판결은 “정기용선계약에 있어서 선박의 점유, 선장 및 선원에 대한 임면권, 그리고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관리권은 모두 선주에게 있고, 특히 화물의 선적, 보관 및 양하 등에 관련된 상사적인 사항과 달리 선박의 항행 및 관리에 관련된 해기적인 사항에 관한 한 선장 및 선원들에 대한 객관적인 지휘·감독권은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로지 선주에게 있다고 할 것이므로, 정기용선된 선박의 선장이 항행 상의 과실로 충돌사고를 일으켜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용선자가 아니라 선주가 선장의 사용자로서 상법 제845조 또는 제846조24)에 의한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것이고, 따라서 상법 제766조 제1항25)이 유추적용될 여지는 없으며, 다만 정기용선자에게 민법상의 일반 불법행위책임 내지는 사용자책임을 부담시킬 만한 귀책사유가 인정되는 때에는 정기용선자도 그에 따른 배상책임을 별도로 부담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26) 위 판결은 해기적인 사항에 관하여는 상법 제850조 제1항이 유추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하여 해기·상사구별설을 취한 것으로 이해된다.27) 한편 비교적 최근의 대법원 2009. 6. 11. 선고 2008도11784 판결, 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9다99754 판결에서는 정기용선계약에 관하여 “선박의 점유, 선장 및 선원에 대한 임면권, 그리고 선박에 대한 전반적인 지배관리권이 모두 선주에게 있는 점에서, 선박 자체의 이용이 계약의 목적이 되어 선주로부터 인도받은 선박에 통상 자기의 선장 및 선원을 탑승시켜 마치 그 선박을 자기 소유의 선박과 마찬가지로 이용할 수 있는 지배관리권을 가진 채 운항하는 선박임대차계약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판시하여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에 관한 입장이 다소 달라진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상결정은 우리 판례의 입장이 해기·상사구별설을 따르고 있음을 재확인하였다. 

다) 검토  

요컨대 오늘날 국내의 통설과 판례는 ‘특수계약설’에 기초하여 정기용선자의 외부관계(정기용선자와 제3자의 관계)에 대하여 상법 제850조 제1항이 유추적용된다고 본다.28) 필자도 일단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자체에 관한 논의로서는, 국내법의 해석상 ‘특수계약설’, 그중에서도 상사책임과 해기책임을 달리 취급하는 ‘해기·상사구별설’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에는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을 정한 다음 정기용선계약의 대외적인 법률관계를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에 따라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정기용선계약의 대외적인 법률관계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정기용선계약의 내용을 참작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어가고 있다.29)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정기용선자의 ‘상사책임’은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이나 제850조 제1항의 유추적용 여부 문제와는 무관하게 ‘운송인의 채무불이행책임’ 문제로 취급되고(따라서 정기용선자가 운송인의 지위를 취득하는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30) 이른바 ‘해기책임’은 선장과 선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용자책임을 정기용선자에게 귀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선박소유자에게 귀속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취급된다.31) 필자는 정기용선계약의 대외적인 법률관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접근방법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법을 취한다고 하여 정기용선계약의 대외적 법률관계와 관련한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논의가 그 의미를 전부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구체적·개별적 접근방법에 의하여 해결되지 않는 사안이나 사항에 대하여는 결국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을 고려하여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예가 바로 이 사건에서 문제된 ‘정기용선된 선박의 이용에 관하여 생긴 선박우선특권의 효력이 선박소유자에게 미치는가’라는 쟁점이다.32) 지금까지 주로 ‘정기용선계약에 제850조 제1항을 유추적용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논의가 이루어져 왔지만, 사실 ‘정기용선계약에 제850조 제2항을 유추적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 논의가 더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나. 선박우선특권

선박우선특권(船舶優先特權, Maritime Lien)은 해상기업자인 선박소유자가 항해계속을 위하여 필요한 자금, 물자 또는 노무의 제공을 받아야 할 때 채권자가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확실한 담보권을 부여할 필요성으로부터 발생된 제도이다.33) 선박우선특권은 ‘해상법상의 특수한 담보물권’으로 이해된다(통설).34) 선박우선특권의 근거로는 ① 해상기업이 신용(금융)을 용이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할 정책적인 필요성과, ② 선박소유자 책임제한제도와의 공평과 균형35)을 고려하여 일정한 해사채권에 대하여는 선박우선특권에 의한 강한 보호를 인정하여야 했던 연혁적 배경이 제시된다.36) 그런데 선박우선특권은 그 법률상 효력이 선박저당권보다도 우선하는 강력한 효력을 가짐(상법 제788조)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공시제도가 없으므로, 선박금융을 위하여 실제로 많이 행하는 선박저당을 통한 금융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선박금융의 활성화를 위하여 선박우선특권의 합리적 제한이 요구된다.37) 

한편 우리 국제사법 국제사법 제60조 제1호, 제2호에 의하면 선박우선특권의 성립 여부나 선박우선특권과 선박저당권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준거법은 원칙적으로 선적국법이다.38) 따라서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외국적 선박이 압류되어 선박우선특권이 실행되고, 우리나라 법과 선적국법이 선박우선특권의 피담보채권 인정의 요건과 범위, 선박우선특권의 효 등을 달리 정하는 경우, 선박우선특권자, 선박저당권자 및 그 밖의 채권자는 선박우선특권 행사의 결과를 알 수 없는 극히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게 될 우려가 있다.39) 따라서 선박우선특권에 관하여 국제적으로 통일된 규범을 마련할 이익이 적지 않다. 1993년 제네바에서 채택된 ‘선박우선특권과 저당권에 관한 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Maritime Liens and Mortgages)’(이하 ‘1993년 선박우선특권협약’이라고 한다)은 이와 같은 선박우선특권 제한과 선박우선특권에 관한 국제적 통일규범의 필요성을 고려한 것이다.40)  

다. 상법 제850조 제2항이 정기용선계약에 유추적용되는지 여부 

1) 상법 제850조 제2항이 정기용선계약에 유추적용되는지 여부는 두 가지 단계로 검토하여야 한다. 첫째가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상 선체용선계약에 관한 제850조 제2항을 유추적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고, 둘째가 과연 정기용선자에 대한 채권에 대하여도 선박우선특권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의 문제이다. 

2) 먼저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상 제850조 제2항을 정기용선계약에 유추적용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보면, 국내의 통설·판례라 할 수 있는 ‘특수계약설(해기·상사구별설)’을 따른다면 이를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41) 대상결정 역시 특수계약설을 따른 기존 판례를 원용하면서 이를 수긍하였다(위 판시사항 가.항). 정기용선계약에 대한 제850조 제2항의 유추적용을 부정한 이 사건의 항고심 결정은 선박충돌 책임에 관하여 구 상법 제766조 제1항의 유추적용 가능성을 부정하였던 대법원 2003. 8. 22. 선고 2001다65977 판결이 ‘유추적용에 관하여 신중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은 특수계약설에서 이탈하거나 이를 재고하는 취지에서 그와 같이 판단하였다기보다는 선장과 선원, 그리고 선박에 대한 선박소유자의 전반적인 지배관리권으로부터 유래하는 해기책임의 특수성을 고려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결론에 이른 것으로 이해된다.42)  

3) 다음으로 정기용선자에 대한 채권에 대하여도 선박우선특권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검토하여야 한다.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상 제850조 제2항을 정기용선계약에 유추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유추적용은 정당성과 합리성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43) 대상결정은 ① 선박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은 선체용선과 정기용선이 다르지 않다고 판시하면서 특히 이 사건에서 문제된 예선료 채권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였고(위 판시사항 나.항), ② 상법 제777조 제1항에서 선박우선특권이 인정되는 채권이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으므로 정기용선자에 대한 그와 같은 채권에 관하여 선박우선특권을 인정하더라도 선박소유자나 선박저당권자에게 예상치 못한 손해가 발생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위 판시사항 다.항). 이는 대법원이 제시하는, 정기용선자에 대한 채권에 대하여도 선박우선특권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근거이다. 필자는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기 어려우나, 위 근거에 대하여는 충분히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권성원 변호사는 정기용선자에 대한 채권에 대하여도 선박우선특권을 인정하는 경우 다른 담보권자와의 관계에서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과 아울러, 선박우선특권이 담보물권의 일종인 한 정기용선자를 피담보채무자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물권법정주의 원칙에 따라서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지적을 한다.44) 어쨌든 대상결정은 정기용선계약이 제한적으로나마 선박임대차로서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선체용선계약에 관한 규정을 유추적용할 만한 충분한 논리적 기초가 있다는 전제하에, 채권자 입장에서 용선자와 선박소유자 내부관계를 알 수 없고, 정기용선자에 대한 채권을 기초로 선박우선특권을 인정하더라도 거래의 안전을 해칠 염려가 없다는 등을 고려하여 ‘채권자 보호’라는 정책적 가치에 더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1993년 선박우선특권협약은 1967년 선박우선특권협약에서 선박우선특권의 피담보채무자로 규정하였던 ‘다른 용선자(other charterer)’를 삭제함으로써 정기용선자와 항해용선자에 대한 채권을 선박우선특권의 피담보채권의 범위에서 제외하였다. 또한 우리 대법원 2014. 10. 2.자 2013마1518 결정은 1993년 선박우선특권협약 제4조 제1항에서 선박우선특권의 피담보채무자로 규정한 ‘선박운항자(operator)’에 정기용선자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함으로써 1993년 선박우선특권협약의 해석상 정기용선자에 대한 채권에 대해서는 선박우선특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45) 이 사건의 항고심 결정은 정기용선자에 대한 채권이 선박우선특권의 피담보채권이 될 수 없다는 근거 중의 하나로 위 결정을 근거로 들었다. 위 결정은 1993년 선박우선특권협약을 비준한 러시아법이 준거법이 된 사안에 관한 것으로서, 우리 상법을 준거법으로 하는 이 사건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46) 다만 이 사건의 항고심 결정은 ‘선박우선특권으로 담보되는 채권을 합리적으로 축소·조정하여 선박저당권자의 지위를 강화하고 선박금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위 선박우선특권협약의 개정 취지와 입법 방향을 우리 상법의 해석에 있어서도 고려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대상결정이 이러한 국제협약의 추세에는 반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운데47) 이 역시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정기용선자에 대한 채권 중 선박우선특권이 인정되는 채권에 관하여 본다. 구체적으로 상법 제850조 제2항이 정기용선계약에 유추적용되는지가 문제되는 채권은 상법 제777조 제1호의 채권, 즉 채권자의 공동이익을 위한 소송비용(경매비용), 항비, 도선료, 예선료, 최후 입항 후의 선박과 그 속구의 보존비·검사비 등의 채권에 한정된다.48) 상법 제777조 제2호의 ‘선원과 그 밖의 선박사용인의 고용계약으로 인한 채권’은 정기용선계약의 속성상 선박소유자에 대한 채권이고, 제4호의 선박충돌 등 항해사고로 인한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은 ‘해기책임’으로서 우리 판례상 선박소유자에 대한 채권이므로 정기용선자에 대한 선박우선특권의 피담보채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제3호의 해난구조·공동해손으로 인한 채권은 그 성격이 다소 애매한 면이 있으나 역시 ‘해기책임’의 영역에 포섭된다고 생각된다. 결국 상법 제850조 제2항의 유추적용을 긍정하더라도 정기용선자를 채무자로 하는 선박우선특권의 피담보채권의 범위는 위와 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6. 결론

상법 제850조 제2항이 정기용선계약에 대하여 유추적용될 수 있는가, 혹은 정기용선된 선박의 이용에 관하여 생긴 우선특권을 가지는 채권자가 선박소유자의 선박에 대하여 선박우선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는 ① 정기용선계약의 법적 성질과 ② 선박우선특권의 취급에 관한 가치판단에 관한 종합적인 검토를 필요로 한다. 대상결정은 ① 쟁점과 관련하여 한동안 다소 모호하게 흐려져 있던 대법원의 입장을 다시 선명하게 밝혔다. 대상결정은 이 점 하나만으로도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진다. 한편 대상결정은 ② 쟁점에 관하여 ‘거래의 안전 보장’과 ‘채권자의 보호’라는 정책적 가치 중 후자에 더 무게를 두었다. 대상결정은 상법 제850조 제2항을 정기용선계약에 유추적용하더라도 ‘거래의 안전’이 해쳐질 염려가 없다고 평가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대법원의 가치판단은 앞으로 계속 새로운 평가와 검토, 혹은 도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기용선계약의 대외적 법률관계에 관한 법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입법을 통해 그 내용을 분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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