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걷는 770km 거리의 초광역 트랙킹 루트인 ‘해파랑길’을 찾는 트랙킹족이 늘고 있다. 정부가 2010년 지정한 ‘해파랑길’은 10개 구간에 50개 여행지를 거치는 루트로 총 코스는 50개이다. 올해초 해파랑길 걷기에 도전한 필자가 트렉킹을 하며 동행자에게 툭툭 건네거나 혼잣말하듯 기록한 日誌식의 체험기를 투고해왔다. 이번 6월호부터 구간별 체험기를 수차례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편집자 주>

















15코스 호미곶 - 홍환보건소 14.7km / 5시간 25분
2019년 5월 31일 금요일 맑음

토요일 좀더 걸을 수 있는 시간 확보를 위해 금요일 23시 40분 반포고속버스터미널에서 포항행 심야 우등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앞서 경주구간에서 한번 야간 이동을 해 본 탓에 새벽 3시 30분에 일전에 상경 시 파악해 둔 사우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버스 첫차로 구룡포항으로 향한다. 구룡포항 환승센터에서 호미곶행 지선 버스를 탔다. 아침햇살이 따가운데 호미곶 해맞이 광장엔 이른 시간 탓인지 인적이 드물다. 지난번 코스 마칠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길도 막히고 그랬는데 좀은 의아해 했다. 근처 식당에서 물회와 회비빔밥으로 아침을 먹고 힘차게 코스 출발한다.

 
 

2019년 6월 1일 토요일 맑음
08시 05분 안내 지도에선 내륙 산길로 되어 있는데 우린 저번 구간처럼 해파랑에 의미를 두고서 해안길로 들어섰는데 어렵쇼 해파랑길 표시가 있네. 아마도 새로이 코스를 만들었나보다. 아니 해안길이 기존 코스고 내륙 산길이 새로운 코스라네. 아직도 니스칠 냄새가 나는 나무 데크길을 걸으며 너무도 화사한 하늘과 바다, 그리고 기분좋은 바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가는 도중 일제때 일본 실습선이 조난 당한곳의 기념비도 있네.

대보항을 거쳐 호미숲 해맞이터를 가는 중에 독수리바위가 있다는데 나는 암만 봐도 좀 거시기 하네. 사람들의 입소문은 항상 확인해봐야 하는가보다... 해가 중천으로 향할수록 점점 더워져 걸어가는 내내 생수를 들이키며 온몸이 땀에 젖네. 벌써부터 이러면 한여름엔 어떨게 해야할지 걱정이네. 걷다보니 대동배리라는데 김해김씨 삼현파 문중산이라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떡하니 있네. 코스길인데 다른 사람은 우짜겠노. 나야 조상 할아버지께서 통과시켜주시겠지. 하하하 해파랑길 가는 이가 많으면 통과세라도 받으면 수입이 괜찮을낀데 우리 둘밖에 없으니 그것도 별로다야. 산길로 올라가 내려다 보니 구룡소...썰물이라서 그런가 설명 사진과 달리 말라버려 어디 용 아홉 마리가 있을까 싶다.

어느 덧 홍환항을 거쳐 홍환해수욕장을 지나고 보니 둘레길 국시방 앞에 아지매들이 모여있네. 해파랑길에 잘못하면 점심을 굶는다는 지난번 학습효과로 팔각정에 앉아 국시 한그릇 말아 묵다. 그리 썩 잘하진 못해도 그럭저럭 요기로 떼우고 일어서는데 팔각정 페인트가 덜 말라서 해두 흰바지에 묻었다. 웃으시는 할머니께 뭐라고 할수도 없고. 이런 소동에 지나다 보니 코스 인증도장 찍는 곳이 안보인다. 설마하고 지도를 보니 아뿔사 홍환보건소를 1.6Km나 지나쳐 버렸네. 아, 이 더운 날에 다시 돌아가려니 진짜 짜증이야. 그래도 할 수 없지 돌아가야지. 홍환보건소 앞에도 해파랑길 입간판이 안보여 다시 지도를 보니 홍환마트 앞이네. 이리저리 찾는데 홈마트. 백년손님마트... 왜 이리 안보이나 왔다갔다 하는 거를 본 마트 주인이 묻는다. 이런 제길 방송국 촬영하고 백년손님마트로 바뀌었다고. 그리고 가게 앞에 인증도장 찍는 기 있네. 아이고 팔자야. 가만히 보니 내륙 산길을 타고 오면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주인왈 자기가 관리해야 한다나 그리고 뭐 크게 홍보물을 할까 한다고. 제발 그리 합쇼. 다시 1.6Km를 걸을려니 엄두가 나지 않네. 요행으로 동네에서 아지매가 타고 나오는 콜택시에 합승해서 하선대입구에 내리다.

 

 
 

16코스 홍환보건소 - 송도해변  22.4km / 6시간 55분 
13시 59분 연오랑세오녀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는 먹바우에서 사진 한컷하고 돌아가니 선녀가 놀던 하선대라네. 지금이라도 선녀가 있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몰라주고 바다만 하염없이 말갛게 빛나고 있어. 이어지는 긴 나무 데크길이 참으로 좋았다. 바다 위를 걸어가는 느낌. 해국을 보고 선바우도 보고 지루할 틈 없이 걷다보니 조리대 숲길로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 이르다 참 많이도 전설 따라 시설을 해 놓았는데 아이들이랑 한번 오면 좋을 것 같다. 이제는 나는 손자랑 와야겠지만도. 잠시 구운 계란 한알씩 까먹고 청룡회관을 가로질러 임곡항을 거쳐 도구해변에 다다르다. 포스코까지 이어진 도구해수욕장은 아직은 썰렁한데 부산 해운대보다 두세배는 될 것 같은 너른 백사장이 인상적이다. 몇몇 남자들이 물속에서 뭘 캐는데 보니 백합조개네. 바다가 깨끗하니 많은가 보다. 시간이 있으면 나도 함 잡아 보련만. 백사장 좌측 절반 정도는 해병대 훈련장소라는데 토요일이라서 통제가 안되어 무사 통과하였다.

냉천교를 지나면서 포스코 담을 끼고 한참을 도로 위를 걸었다 더운 날씨에 참으로 힘든 코스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걸었는데 차량 정체가 심해서 보니 포항불꽃축제기간이네. 구형산교를 통제하여 형산강 큰다리로 건너 강변체육공원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어 가수 노래하며 한참 분위기를 띄우고 있네. 불꽃놀이는 저녁 9시에 한다는데 아직 2시간 반이니. 이 더운데 자리 깔고 놀고 있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길을 가야 하니 사람 사이로 부대끼며 갈려니 고생이다.

한참 인파 속을 지나 좀 뜸해질 즈음에 강변공원 끝 송도해변에 들어서다 말끔하게 단장된 해수욕장이 도심에 가까워서인지 많은 이들이 주말오후를 즐기고 있고 목적지 자유의 여신상 앞에선 밴드 연주가 한창이다. 마치 우리를 환영하는 것처럼 하하하. 근데 입간판은 있는데 인증도장이 보이지 않네. 주위에 물어보니 없단다. 포항 공무원 욕하며 할 수없이 인증샷만 찍고 숙소 모텔을 물색했다. 생전 처음 가본 무인모텔에 불꽃축제 때문에 모텔비가 따블이고 방도 없다네. 우짜노 혹시나 하고 옆에 허름한 여관에 물어보니 방이 2개 있단다. 좋고 나쁘고도 없이 그냥 감사하는 마음으로 방에 들어가니 참 옛날 여인숙 비스무리한게 스프링 침대이다. 해두는 이불을 더 달라고 해서 바닥에서 자기로 하다.

샤워하고 나와서 여관 주인이 하는 부산돼지국밥 한그릇에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바구 주고 받으며 형제의 정을 느낀다...해변으로 나오니 그제사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을 보며 여수밤바다 포차에서 맥주한잔 시원하게 마시고 여관으로 들어와 피곤하여 세상 모르고 잠을 잤다는 사실. 나 땜에 해두는 잠을 설쳤다고 하는데 좀 미안한 마음이 드네. 

 
 

17코스 송도해변 - 칠포해변  17.9km / 6시간 15분
-2019년 6월 2일 일요일 맑음

잠을 설친 해두 덕분에 일찍 나섰지만 포항구항 쪽으로 직진하는 바람에 또 길을 잘못 들어서서 되돌아가야 하네. 이런 실수를 또 하다니 그래서 앞으론 해파랑 표시가 안보이면 지도를 봐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또 그런가. 좌회전해서 제 코스로 들어서니 포항 운하 큰다리를 건너니 좌측에 죽도시장이 있네. 우린 어제 새벽같이 버스타고 갔던 먼길을 힘들게 걸어서 왔구먼. OMG...포항함 초계선도 보고 KOREAN COAST GUARD 경비함도 보며 부두가를 걸어 포항여객선터미널 앞. 울릉도로 가려는 관광객들로 식당은 북적이고 이곳 명물인 물메기탕을 먹으려니 수급이 안돼서 없다고 하네. 아쉽지만 된장찌개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걷는다.

백사장 위로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흑인 처자는 비키니 차림으로 눈길을 사로 잡네. 좋은 시절이여. 바다 위 영일대 전망대를 스쳐지나가며 올라 가보지 못함을 지금은 후회하고 두호항부터 이어지는 끝없는 해변길이 따가운 햇살에 무심한 마음으로 걷게 하네. 짐짓 수도하는 모습으로 보였는지. 바다채 펜션 앞에서 쉬면서 앞서 걷던 해두는 나보구 생각할 시간을 줬다는데 내는 젊은 넘 따라 가느라 진이 다 빠졌다고요.

여남항에서 짧은 숲길로 들어서서 힘겁게 올라가니 산마루에 한무리 해파랑길 걷는 사람이 쉬고 있네. 여자 4명 남자 5명 백두대간 타다가 만나서 매달 첫 토요일에 사당에서 밤에 출발하여 2코스씩 걷는다고. 막걸리 한잔 얻어 먹고 인사하고 먼저 갔는데 죽천항 지나 해파랑 가게에서 조우하여 사진 한 장 남긴다.

포항국제컨테이너터미널 옆을 지나며 한창 철로 마무리 공사 중인데 여기도 앞으로 많이 변하게 되겠지. 낚시점거리 카페에서 국수 한그릇... 국물이 끝내줘요. 꼭 집에서 먹던 그 맛 이다. 손님이 많았는데 이 집도 앞으로 번창할 것 같다. 용한1리 해변은 서핑의 메카였다. 아마도 한여름엔 서핑족으로 넘쳐날 것이야. 이어지는 해변은 이름은 없지만 배후 공사가 한창이어서 언젠가는 이름난 해수욕장이 되겠지. 근데 백사장엔 밀려온 쓰레기가 천지인데 또 포항 공무원 탓을 하다 제발 제대로 행정 봉사를 할 수는 없는 걸까.

곡강천을 가로지르는 칠포 인도교를 건너니 드디어 목적지 칠포해변이다. 패러글라이딩이 파란 하늘 배경으로 날아 내리고 코스를 마쳤다는 해방감도 잠시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댕긴단다. 마트 아가씨에게 물어서 지선 버스를 타고 흥해로 가서 포항행 버스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어제 새벽에 간 사우나에서 샤워하고 죽도시장으로 회 한사라에 뒷풀이한다. 다음번엔 버스코스에 맞춰 KTX로 포항역으로 오기로 하고 서울행 프리미엄 버스에 몸을 싣다 굿바이 포항!! (2019.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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