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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의 탄생’
[552호] 2019년 08월 29일 (목) 14:46:01 강영민 showload@chol.com)

성하의 8월, 역사저널리스트 송동훈 저 ‘대항해시대의 탄생’을 폭염을 잊을 정도로 흥미롭게 읽었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모험’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통해 평소에 소홀했던 이베리아반도 역사를 접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탄생’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는데, 첫째는 레콩키스타 즉 이베리아반도에 통일국가를 이루어가는 과정이고, 둘째는 그곳에서 촉발된 대항해시대의 해양개척사이다. 유럽의 서쪽 끝자락에 이베리아반도가 있음에도, 많은 유럽인들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피레네산맥을 넘으면 아프리카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이 들으면 펄쩍 뛸 얘기지만, 이베리아반도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해가 된다.

 

그곳은 오랜 기간 로마의 속국이었고, 로마가 쇠망하자 게르만족의 하나인 서고트족이 들어와 고트왕국을 세웠으며, 그 후 왕위쟁탈전에서 열세에 몰린 한 세력이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에 원병을 청했고 이를 빌미로 무슬림 군대가 건너와 눌러앉아 이슬람 왕국을 세워 오백여년을 통치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랬던 이베리아반도에 원주민들이 레콩키스타를 선포하며 국토회복과 통일왕국을 이루었고, 대항해시대를 열고 해양강국이 되어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이렇듯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원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그 비결을 다양성을 수용하는 개방성과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험정신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다른 민족 즉, 게르만인, 무슬림, 유태인을 배척하지 않았고 그들의 종교, 문화, 전통도 모두 수용하였다. 아울러 많은 나라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유럽대륙에서 눈을 돌려 미지의 세계 바다로 향하여 항로개척과 신대륙 발견으로 국부를 창출하였다. 그 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드레이크가 이끄는 잉글랜드 함대에 패배하는 것을 계기로 세계사의 주역 자리를 신흥 해양강국 영국에게 넘기고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배타성과 복고주의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도자들은 정략적으로 순혈과 민족주의를 내세워 공존했던 무슬림과 유태인들을 추방하여 역동성이 사라졌고, 변화를 싫어하고 모험과 개척에 대한 열정도 식어 급변하는 역사의 흐름에 대처하기는커녕 역행하였다. 개방과 융합으로 생명력을 키우고, 미지의 세계에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역동성이 국운융성의 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대항해시대의 탄생’이 증언하였다.

 

‘철학의 역사’
콤파스 방학기간에 읽은 또 하나의 책은 ‘철학의 역사(A Little History of Philosophy)’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로 시작하여 스토아학파, 교부철학을 거쳐 합리론, 경험론, 관념론을 지나 실용주의, 분석철학, 실존주의와 과학철학에 이르기까지 20여명의 철학자들의 사상과 이론을 역사형식으로 담고 있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생각의 흐름을 맡긴 채 순서대로 읽다 보면,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든다. 각 챕터마다 중심인물이 등장하여 에피소드로 마무리되고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큰 이야기 서양철학사를 이룬다. 각 챕터의 마지막에는 다음 챕터에서 다룰 인물과 철학 사조를 소개하는데, 철학사를 꿰뚫어 보는 저자의 통찰력과 재치가 감지된다. 각각의 제목에 담긴 함의로 등장하는 철학자의 이름을 미리 맞추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이 책의 저자인 영국의 철학자 나이절 워버턴은 탁월한 이야기꾼답게 철학의 주요 문제에 대한 논쟁들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풀어나가 현세 최고의 철학자임을 증명하였다. 이 책은 인간 존재의 근원을 사유하는 능력을 찾으려는 거창한 의도는 아니더라도 인생의 의미에 대해 한번 골똘히 생각해보는 계기는 되었다.

 

질문하는 남자
2400여년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한 남자가 질문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지혜는 논쟁하고 추론하고 질문하는 데에 바탕을 둔다. 소크라테스가 그토록 지혜로운 인물이 된 이유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항상 자신의 생각을 반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이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독배를 들었고 이내 숨을 거두었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여름이 온 것은 아니다.” 이것은 ‘진정한 행복’을 논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이다. 그가 지적한 것은 여름이 왔음을 증명하기 위해 제비 한 마리가 왔다거나 단 하루 따뜻한 게 전부가 아닌 것처럼, 몇 안 되는 쾌락의 순간이 모여서 진정한 행복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객관적 이성적인 기쁨 에우다이모니아를 주장했다. 극단적인 회의론자 그리스인 피론은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물어야 할 세 가지 질문을 자신의 철학으로 깔끔하게 요약했다. 첫째, 사물은 실제로 어떠한가? 우리는 세계가 실제로 어떠한 것인지 결코 알 수 없다.

 

둘째, 우리는 사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견해도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그러한 태도를 취한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결국 당신은 모든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피론의 접근방식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로 시작하여 ‘따라서 위험한 것에 대한 자신의 본능과 감정을 무시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냈다. ‘정원의 산책로’에서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나쁜 논리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음을 체험하지 않기 때문이며, 우리의 죽음은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걱정하지 않는 법 배우기’에서 스토아학파 학자들은 감정이 추론을 흐리고 판단을 저해하므로 감정을 통제할 뿐 아니라 가능한 한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사상이 스토아철학의 핵심이었다.
 

 
누가 우리를 조종하는가
‘누가 우리를 조종하는가?’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는 신의 존재를 믿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많은 질문에 답을 주지 못했다. 신은 내가 무엇을 하길 원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그는 살면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며 보냈다. 신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견해도 아우구스티누스는 납득할 수 없었고 오직 답을 원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하여 자유의지의 존재라는 해결책으로 의문을 풀었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만약 신이 우리를 악이 아니라 항상 선을 선택하도록 설계했다면 우리는 자유롭지 않을 것이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신은 그렇게 만들 수 있었으나 신이 우리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만약 당신이 교도소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처지라면 인생의 마지막 나날을 철학책을 쓰면서 보내겠는가?

 

로마 최후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그렇게 했다. 그 책이 바로 중세시대의 베스트셀러 ‘철학의 위안’이다. 철학의 여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한다. 비록 신이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지 안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는 다음에 무엇을 할지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철학을 일종의 자기계발, 즉 추상적 사고를 훈련하는 동시에 삶을 개선하는 실천적 방법으로 보았다. ‘완전한 섬’에서 안셀무스는 존재론적 증명을 통해 우리가 신에 대한 관념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논리적으로 신이 실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는 시간 속에서 원인과 결과가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후퇴는 있을 수 없다며, 그 첫 번째 원인이 신이라고 단언했다.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 없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여우와 사자’에서 마키아벨리는 유능한 군주는 선하지 않은 방법을 배워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어떤 방법도 용인될 수 있다고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 주장하였다. 지도자로서 사랑의 대상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다고 강조하였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홉스도 인간을 낮게 평가했다. 우리 모두가 내심 이기적이고, 법의 지배와 처벌의 위협 때문에 자제할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사회가 무너져 자연상태가 되면 무법천지가 되어 만인의 만인에 대한 끝없는 투쟁이 벌어진다고 믿었다. 그 해결책은 자연상태의 개인들은 사회계약 즉 안전을 위해 그들이 가진 위험한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꿈을 꾸고 있었을까
‘우리는 꿈을 꾸고 있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거짓 깨어남’ 현상을 경험한 뒤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리고 데카르트적 회의방법, 즉 인생에서 한번쯤은 자신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일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존재까지 의심했고, 결국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해답을 얻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철학적 성찰로 만들어낸 의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이상의 확실성이 필요했다. ‘내기를 걸어라’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신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신을 믿어야 한다고 설득하기 위해 파스칼의 내기라고 알려진 기발한 논증을 제시했다. 이 논증은 확률에 관한 그의 수학적 관심에서 기인한다. ‘신이 있다와 없다’의 확률이 반반이라면 있다는 쪽에 거는 것이 현명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파스칼의 내기에는 심각한 문제 즉, 잘못된 종교와 잘못된 신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렌즈 가는 사람’ 스피노자는 신이 곧 세계라고 생각한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었다. 신은 자연이고 자연은 신이라는 범신론, 신이 곧 모든 것이라는 믿음의 형식이다.

 

그는 세계와 그 세계 속의 우리 위치에는 근본적인 구조적 논리가 존재하며, 그것은 이성으로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것에는 목적과 원리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유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실험이나 관찰보다 이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접근법인 합리론을 과학 특히 기하학에 심취했던 스피노자가 주장한 것은 의외였다. 우주 밖의 하늘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신을 찾기 위해 렌즈를 갈았던 그의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스위스의 위대한 사상가 루소는 그의 저서 사회계약론의 첫머리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매여 있다’고 단언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국가의 법을 지키면서 사회 밖에 있을 때만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자유로운 동시에 법을 준수하여 공동체의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용적 행복
철학의 역사를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분기점이 된 형이상학자 칸트는 사유의 한계를 탐구하며 이해할 수 있는 것의 경계까지 밀고 나갔다. 칸트는 우리가 결코 사물의 존재방식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면서도 경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선험적 지식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고, 모든 변화에는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칸트의 위대한 통찰력은 이성의 힘에 의해 모든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의 특징을 알아낸다고 본 것이다. ‘실용행복’을 측정하는 방법, 쾌락이 얼마나 오래 강렬하게 지속될지, 그 이상의 쾌락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지를 고려한 후에 그 행동으로 일어날 수 있는 고통을 빼서 남은 것이 그 행동의 행복가치이다. 벤담은 이것을 유용성을 의미하는 공리라고 불렀다. 하나의 행동이 더 많은 쾌락을 가져올수록 사회에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아오른다.’ 이는 사람들이 밤이 되어서야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보는 것처럼 이미 일어난 일들을 되돌아보는 뒤늦은 단계에서야 인류역사 과정의 지혜와 이해가 온전히 나타날 것이라는 헤겔식 어법이다. 헤겔이 생각하기에 우리의 사유가 진보하는 방법은 하나의 관념과 그 반대 관념이 충돌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변증법적 방법으로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역사를 이끄는 중요한 추진력은 자신의 자유를 이해하는 정신으로 판명된다고도 말했다. ‘지적이지 않은 설계자’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인간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일 뿐이었다.’고 주장하여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은 생존경쟁으로 설명된다. 그것은 단지 다른 종과의 경쟁이 아니다. 같은 종 안에서도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특성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경쟁하며 진화한다”고 설명했다.
 

덴마크어로 묘지를 뜻하는 키르케고르는 이름처럼 침울한 삶을 살았다. 그는 그의 저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인간은 쾌락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과 전통적인 도덕규칙을 바탕으로 하는 삶 사이의 선택권, 즉 미학과 윤리학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선택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평생 고민하며 살았다. 삶의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지 선택해야 하는 고뇌에 관한 키르케고르의 사상이 실존주의를 잉태하고 있었다. 독일 철학자 마르크스는 평등주의자로 모든 인간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에 관한 그의 사상은 헤겔의 영향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에서 인간은 인간성을 회복하고, 노동의 의미를 가지며, 사람들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협동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사상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러시아 등지에서 실제 혁명을 일으켰으나 국가 차원에서 생산공정을 조직하기 어려웠고 비효율과 부패는 심했으며,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고 경쟁적이기에 완전한 협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명났다.

 

실용주의는 19세기 미국에서 유행한 철학 사상으로 미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퍼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철학을 이전보다 더 과학적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어떤 진술이 참이라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험이나 관찰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리란 실제로 유용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실용주의의 요체이다. 니체는 스스로 비도덕주의자 즉 의도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도덕을 뛰어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의 저서 제목처럼 ‘선악의 저편에 도달해야 한다’고 믿은 사람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는 초인에 대해 언급하며, 관습적인 도덕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상상 속의 미래 인물이라고 말했다. ‘변장한 생각들’에서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는 인간 사고의 일대 혁명은 자신의 발견, 즉 무의식의 발견으로 일어나며, 우리 행동의 대부분은 숨겨진 소망과 욕망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 즉 숨겨진 생각을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도 말했다. 평화주의자 러셀은 핵무장반대운동을 전개하며 ‘인류가 전쟁을 없애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없앨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종교에 대해서도 거침없고 도발적이었다. ‘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개입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유일한 기회는 우리가 가진 이성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이라고 말하는 완전한 모순인 역설을 펴며 언어적 전회를 즐겼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실존주의는 자기 자신이 세계에 실존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런 다음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사르트르는 ‘우리의 실존은 본질에 앞서는데 반해 설계된 사물은 실존보다 본질이 우선한다’고 말했다. 실존주의의 중요한 주제는 우리 존재의 부조리였다. 삶은 우리가 선택함으로써 그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실존주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결정을 내리는데 적용할 수 있는 철학이었다. 유태인 철학자 아렌트는 ‘질문하지 않는 남자’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취재하며, 자신이 받은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그 명령을 수행함으로써 대량살상에 가담한 그의 범죄행위를 고발했다.

 

그녀는 전체주의 국가의 악과 그 악이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분석하며, 아이히만은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사악한 행위에 동참하였으나 만일 그가 나치독일에 살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유형의 남자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주하는 열차와 원치 않는 바이올리니스트’에는 이중 효과의 법칙과 상황윤리에 관한 주제를 다루었다. 예를 들어 폭주하는 열차가 철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급정거하여 탈선사고를 낼 것이지 아니면 그냥 치고 달릴지 등. 그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의 예측 가능한 부작용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고의적인 해악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철학자 롤스는 사고실험을 통해 정의의 본질과 사회 구성을 위한 최선의 원칙을 찾았다. 그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 두 가지 원리인 자유의 원리와 평등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다. 모든 사람은 결코 박탈해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져야 하며, 차등의 원리 즉 평등으로 사회는 가장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동등한 부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은 단지 삶의 방식을 논의하는 방법을 변화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가 사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는가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는가?’ 철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이 컴퓨터 프로그램과 같아 컴퓨터도 생각한다고 믿었다. 인간의 정신을 뇌에서 컴퓨터로 옮길 수 있으므로 육체가 매화장된 뒤에도 계속 작동할 수 있도록 컴퓨터에 업로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950년대에 이미 튜링은 철학자들이 수천년 고심해온 삶과 실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컴퓨터가 흥미로운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 싱어는 인간 생명이 절대 신성하지만, 의식이 있는 의미 있는 상태나 언젠가 회복될 거라는 희망이 없이 단지 육체만 살아 있는 상태라면 안락사 또는 자비로운 살인이 적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물들도 고통을 겪으므로 실험과 사육 및 도축 과정에서의 잔인한 방식을 방치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동물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기에 채식주의자가 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만일 동물에게 해를 주는 것이 인간에게 해를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고통을 유발한다면 인간에게 해를 주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여 살해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철학은 곤란한 질문과 어려운 도전으로 시작되었다. 싱어 같은 철학자들이 건재함으로써 소크라테스의 정신이 계속해서 철학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고 이 책은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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