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재판관할합의와 준거법

- 대법원 2019. 4. 23. 선고 2015다60689 판결 -

 

 
 

1. 서론
해상기업의 생활관계는 바다를 통해 외국에까지 미친다는 점에서 국제성을 가진다. 해상기업 생활관계의 국제성으로 인해 해상법도 국제적 성질을 가진다(해상법의 국제성).1) 그리고 해상법은 그와 같은 국제성으로 말미암아 국제사법國際私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즉 국제적인 해상기업 활동은 필연적으로, 그 기업활동으로부터 발생한 분쟁을 어디에서 심판받아야 할 것인가라는 국제재판관할의 문제와 어떤 법을 적용하여 그 분쟁을 해결해야 할 것인가라는 준거법의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국제적인 해상기업 활동으로부터 비롯된 해사사건海事事件을 해결하고자 할 때에는 사건의 실질적 내용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반드시 국제재판관할과 준거법의 문제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2)


한편 국제적인 해상운송계약에 관하여 규율하는 국제조약의 체제는 크게 ① 국제해법회(CMI) 주도로 성립된 1924년 선하증권통일조약(이른바 ‘헤이그규칙’)과 이에 대한 개정의정서(이른바 ‘헤이그-비스비규칙’), 그리고 ② UN국제거래법위원회(UNICITRAL) 주도로 성립된 1978년 UN해상물건운송조약(이른바 ‘함부르크규칙’)으로 나뉜다. 함부르크규칙은 헤이그-비스비 규칙을 대체하겠다는 의도로 성립된 것이나 선주와 화주의 이익 중 화주의 이익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고, 그 결과 아프리카 국가를 비롯한 일부 국가만 회원국으로 가입하였을 뿐 대다수 해운국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3) UN국제거래법위원회(UNCITRAL)은 이러한 실패를 거울삼아 2008년 해상운송인의 국제물품운송계약에 관한 조약(이른바 ‘로테르담규칙’)을 새롭게 마련하였다.4) 전 세계 많은 국가는 위 조약들에 직접 가입하거나 위 조약들의 내용 중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내용을 받아들여 입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위 국제조약들에는 가입하지 않고 1991년 상법 개정 당시 헤이그규칙과 헤이그-비스비규칙의 중요규정을 수용하였고, 함부르크규칙의 내용도 부분적으로 참작하였다. 그리고 2007년 상법 개정 당시에는 헤이그-비스비규칙과 함부르크규칙에 한층 접근하는 내용으로 개정하였다.5) 중국은 1992년 헤이그-비스비규칙을 주로 하여 국내법에 수용하되,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함부르크규칙의 내용도 부분적으로 흡수하여 해상법을 제정·공포하였다.6)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상법 해상편과 중국 해상법은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지만, 실제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규율 등 일부 사항에서는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최근 선고된 대법원 2019. 4. 23. 선고 2015다60689 판결(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은 대한민국과 중국 중 어느 국가의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는가, 대한민국법과 중국법 중 어느 법이 해당 사건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준거법이 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 되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국제적인 해사사건에서 국제사법이 작동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2. 사실관계
가. 국내 보험회사인 원고는 국내 운송회사인 A 회사와 사이에 ① 피보험자: A 회사, ② 보험기간: 2010. 6. 9.부터 2012. 6. 8.까지, ③ 담보위험: 화물의 운송, 보관, 하역 등의 피보험자의 고유 업무 수행 중 발생한 화물의 멸실, 손괴 등 화물 손해에 기한 법률상 배상책임 손해, ④ 보상한도 : T1 화물배상책임 사고당 150만 달러(USD), 공제금액 1,500달러(USD) 등으로 정한 보험계약(이하 ‘이 사건 보험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나. 국내의 B 회사는 네덜란드의 C 회사로부터 네덜란드산 냉동 돈육(고추장 불고기) 640박스(이하 ‘이 사건 냉동 돈육’이라고 한다)를 43,127.55유로에 구입한 후 이를 한국으로 수입하기 위해 A 회사와 운송계약을 체결하였다.
다. A 회사는 이 사건 냉동 돈육의 수입운송업무를 인수한 후 그 실제 운송을 위하여 현지 대리인인 D 회사를 통하여 중국 해운회사인 피고와 ‘CY/CY 조건’7)으로 해상화물운송계약(이하 ‘이 사건 운송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라. C 회사는 네덜란드 당국으로부터 수출 검역을 받은 다음, 2010. 10. 11. 네덜란드 렐리스타트에 있는 자신의 공장에서 피고가 제공한 냉동 컨테이너(컨테이너 번호 CBUH 2654321, 이하 ‘이 사건 컨테이너’라 한다) 안에 이 사건 냉동 돈육을 9개의 팔레트에 적재하고 ‘Seal Number VWA-NL 017700’(이하 ‘이 사건 봉인번호’라 한다)으로 봉인하였다. 네덜란드 당국은 이 사건 냉동 돈육에 대하여 이 사건 컨테이너 번호와 이 사건 봉인번호가 명기된 수출위생(검역)증명서를 발행하였다.
 

마. 위와 같이 봉인된 이 사건 컨테이너는 2010. 10. 11. 당일 네덜란드국 로테르담에 있는 피고의 컨테이너 야드에 이동된 후 2010. 10. 14. 피고가 운행하는 컨테이너 선박인 ‘한진 셴젠(HANJIN SHENZHEN)호’에 선적되었다.
바. 피고는「송하인: 위 A 회사의 대리인, 수하인: A 회사, 해상운송 선박명: 한진 셴젠, 선적항: 로테르담, 양하항: 부산항, 인도장소: 부산 컨테이너 야드, 운송종류 : FCL/FCL, CY/CY, 해상운임: 선납, 송하인이 직접 컨테이너에 물품을 적재, 수량확인 및 봉인을 함, 선적일 및 해상화물운송장 발행일 각 2010. 10. 14.」로 기재한 해상화물운송장(이하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이라고 한다)을 발행하였다.
사. A 회사는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 발행일인 2010. 10. 14. 현지 대리인인 D 회사 명의로「송하인: C 회사, 수하인: B 회사 구매부, 수탁지: 렐리스타트, 선박명: 한진 셴젠, 선적항: 로테르담, 양하항: 부산, 인도장소: 컨테이너 야드」로 기재된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다.
 

아. 이 사건 컨테이너를 실은 피고의 선박 한진 셴젠호는 2010. 11. 13. 부산항에 도착하였는데, 하역과정에서 컨테이너의 봉인이 탈락된 사실이 확인되어 이 사건 컨테이너는 곧바로 화물집하장으로 이동되었다. A 회사는 2010. 12. 3. 검역담당관에게 내용물 확인을 위한 이 사건 컨테이너의 개봉과 검역 통과를 요청하였으나, 검역담당관은 봉인 탈락은 그 내용물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검역통과 불가 사유에 해당된다는 등의 이유로 위 요청을 거부하였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2010. 12. 9. B 회사에 이 사건 냉동 돈육은 수입축산물 검역에 불합격되었다고 고지하고 이를 반송 또는 소각·매몰의 방법으로 처리할 것을 통보하였으며, 이에 따라 이 사건 냉동 돈육은 2011. 1. 5.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담당자 등이 입회한 가운데 전량 소각 처분되었다.
자. 원고는 2011. 3. 17. B 회사에 이 사건 보험계약에 따른 보험금으로 이 사건 냉동 돈육의 구입가격 43,127.55유로를 지급하였고, A 회사는 2011. 5. 24.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정한 공제금 1,716,000원을 원고에게 지급하였다.
 

3. 사건의 경과
가. 원고는 2012. 2. 13. 피고를 상대로, 피고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이 사건 컨테이너에 설치된 이 사건 봉인번호가 탈락됨으로써 이 사건 운송계약의 송하인인 A 회사는 이 사건 냉동 돈육을 B 회사에 인도하지 못하여 이를 배상하는 손해를 입었고, 수하인인 B 회사는 이 사건 냉동 돈육이 멸실되어 그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는 손해를 입었는바, 원고가 이 사건 보험계약에 따라 B 회사에 손해보험금을 지급함으로써 A 회사 및 B 회사가 피고에 대하여 보유하는 계약상 채무불이행 및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구상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피고는 이에 대하여,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 이면약관 제26조(준거법 및 관할)가 “이 선하증권(Bill of Landing)과 관련된 모든 분쟁은 중국법에 따라 판단되고, 운송인을 상대로 한 모든 분쟁은 상하이 해사법원 또는 중국 내의 다른 해사법원의 관할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이면약관 제5조(청구의 고지 및 제척기간)가 “화물이 화주에게 인도된 날 또는 인도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소가 제기되지 않는 경우, 운송인, 그 이행보조자, 대리인과 수급인은 모든 책임으로부터 면책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① 이 사건 소는 관할합의를 위반하여 부적법하고, ② 이 사건 냉동 돈육이 인도되었거나 인도될 날에 해당하는 한진 셴젠호의 부산항 입항일인 2010. 11. 13.로부터 1년이 경과한 이후에 제기되었기 때문에 위 이면약관 제5조 또는 운송인의 책임소멸에 관한 상법 제814조 제1항이 정한 제척기간을 경과하여 부적법하므로 각하되어야 한다는 본안 전 항변을 하였다.
 

나. 제1심법원은 피고의 위 본안 전 항변을 배척하고 본안 판단에 나아가 원고의 피고에 대한 구상금 청구를 받아들였다.8) 즉 피고가 주장하는 이면약관의 존재에 관하여,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에는 별도로 기재된 이면약관이 있음을 표시하는 아무런 기재가 없고, 피고가 제출한 이면약관(을 제1호증)은 출력된 사본으로서 이 사건 운송장과 일체임을 알 수 있을 만한 아무런 흔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이면약관에는 제26조를 비롯하여 거의 대부분의 조항에 ‘해상화물운송장(Sea Way Bill)’의 표시는 없고 오직 ‘선하증권(Bill of Landing)’에 대한 기재만 있는 점에 비추어 위 증거만으로는 피고가 주장하는 이면약관 및 그에 포함된 국제재판관할 및 제소기간에 관한 합의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상법 제814조 제1항의 제척기간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하여는, ‘해상물건운송계약에 있어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과의 관계와 같이 복수의 주체가 운송물의 멸실·훼손으로 인하여 선하증권소지인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경우, 어느 일방이 선하증권소지인에 대하여 먼저 손해액을 배상한 후 다른 일방에 대하여 그 배상금액을 구상하는 경우에는, 운송인의 채권·채무의 소멸을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814조 제1항 소정의 단기제척기간에 관한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법리(대법원 2001. 10. 30. 선고 2000다62490 판결 등 참조)를 근거로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구상금의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에는 상법 제814조 제1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9)
 

다. 피고는 제1심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우선, 피고가 발행하는 모든 해상화물운송장은 전면에 일련번호를 적고 이면에 약관이 기재된 해상화물운송장 양식지에 출력되는데, 원고가 제출한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 사본에도 위와 같은 일련번호가 인쇄되어 있고, 그 사본 전면에는 이면약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기술이 다수 있다는 사실, 피고의 독일지사 사무소 전산내역에 2010. 10. 14.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 원본 1부가 발행된 것으로 조회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울러 원고가 A 회사의 현지대리인인 D 회사가 피고로부터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을 어떠한 방식으로 수령하였는지 전혀 밝히지 못하고,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 사본의 원본을 제출하지 못하는 사정을 더하여, 피고가 A 회사에 발행한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에는 피고 주장과 같은 이면약관이 인쇄되어 이 사건 운송계약의 내용에 편입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위 이면약관 제26조의 합의는 법정관할에 부가하여 당사자가 합의한 곳의 관할권을 창설하는 부가적 합의라고 전제한 뒤, 대한민국 법원에 의무이행지 또는 불법행위지로서 이 사건에 대한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다고 판단하여 피고의 국제재판관할 합의를 이유로 한 본안 전 항변을 배척하였다. 또한 이면약관 제5조의 제소기간 합의에 관하여는, 재운송계약이 체결된 이 사건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제소기간 주장에 관하여는, 이면약관 제26조에서 정한 준거법 합의에 따라 대한민국 상법이 아닌 중국 해상법 제257조10)를 적용하여, 원고가 B 회사에 보험금을 지급한 2011. 3. 17.에는 A 회사 또는 원고와 B 회사 사이에 손해배상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할 것인데 이 사건 소가 그로부터 90일이 지난 2012. 2. 13. 제기되었으므로 제척기간을 경과한 것이어서 부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요컨대 항소심 법원은 피고가 주장하는 이면약관의 존재를 긍정하면서도 피고의 국제재판관할합의 주장은 배척하였으나, 중국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하여 중국 해상법상의 제척기간 경과를 이유로 이 사건 소를 각하하였다.11) 
라.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아래 4항과 같은 이유로 항소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4. 대법원의 판시사항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이 ‘이면약관’의 이 사건 운송계약 편입요건에 관한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였고, 원고의 B 회사의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한 구상금청구 부분에 관한 판단을 누락하였다는 것을 주된 파기사유로 삼았다.

 

[판시사항]
가. 민사소송에서 증명책임의 분배에 관한 일반원칙에 따르면 권리관계의 요건사실을 주장하는 자에게 증명책임이 있다. 피고는 A 회사와 이 사건 운송계약을 체결한 자로서 이 사건 운송계약을 증명하는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의 원본이 발행되고 그 이면약관에 중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조항이 기재되어 위 운송계약에 편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한다.
원심이 설시하고 있는 사유만으로는 피고가 주장하는 준거법조항이 기재된 이면약관과 일체화된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 원본이 발행되어 그 이면약관의 내용이 이 사건 운송계약에 편입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나. 원심은 원고의 청구원인 중 원고가 B회사의 피고에 대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 행사하여 청구하는 부분에 관하여는 아무런 심리와 판단을 하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판단을 누락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다. 소송사건에 적용할 법률은 법원이 직권으로 조사할 사항이고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관한 것은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정하여야 한다.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에서는 불법행위는 그 행위가 행하여진 곳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곳에는 손해의 결과발생지로서 법익침해 당시 법익의 소재지도 포함된다(대법원 1983. 3. 22. 선고 82다카1533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5다75071 판결 등 참조).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이 사건 봉인번호의 탈락이 최종 확인된 장소가 대한민국이고 이로 인해 침해된 A회사의 법익 소재지도 대한민국이다. 따라서 원고가 대위하는 B회사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준거법은 대한민국 법이 된다.
 

라. 상법 제814조 제1항은 운송인의 송하인 또는 수하인에 대한 채권 및 채무는 그 청구원인의 여하에 불구하고 운송인이 수하인에게 운송물을 인도한 날 또는 인도할 날부터 1년 이내에 재판상 청구가 없으면 소멸하되, 당사자의 합의에 의하여 위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해상물건 운송인의 송하인이나 수하인에 대한 책임에 관한 소멸기간은 제척기간이고(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다28490 판결 등 참조), 제척기간을 도과하였는지 여부는 법원의 직권조사사항이므로 당사자의 주장이 없더라도 법원이 이를 직권으로 조사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또한 당사자가 제척기간의 도과 여부를 사실심 변론종결 시까지 주장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상고심에서 이를 새로이 주장·증명할 수 있고(대법원 2000. 10. 13. 선고 99다18725 판결 등 참조), 이는 제척기간이 연장되었음이 밝혀진 경우에도 같다.

 

5. 검토
가. 전제가 되는 개념과 법적 배경들

이 사건에서 국내의 B 회사는 국내의 A 회사에 네덜란드에서부터 이 사건 냉동 돈육을 운송할 것을 의뢰하였고, A 회사는 다시 중국의 피고와 이 사건 운송계약을 체결하여 재차 운송을 의뢰하였다. B 회사의 관점에서 보면, A 회사는 계약운송인, 피고는 실제운송인에 해당한다. 한편 피고는 이 사건 냉동 돈육을 한진 셴젠호에 선적한 뒤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을 발행하였는데, 위 해상화물운송장의 이면약관으로 관할 및 준거법조항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에 따른 절차법적·실체법적 취급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다. 구체적인 검토에 앞서 전제가 되는 개념과 법적 배경(실제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대한민국과 중국의 실질법상 차이)에 관하여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해상화물운송장(海上貨物運送狀, sea way bill)
해상화물운송장은 선하증권을 대체하는 운송증서(transport document)로서 오늘날 그 이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해상화물운송장은 선하증권에서 상환증권성, 지시증권성, 그리고 처분증권성을 배제한 것으로서 운송계약의 증거, 화물 수령증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선하증권과 동일하지만, 운송물의 인도청구권을 체화하는 유가증권이 아니고 유통성이 없다는 점에서 선하증권과 다르다.12) 컨테이너선에 의한 운송이 일반화되고 선박의 운항 속력 및 항만의 하역속도가 빨라짐으로 인해 해상운송에 걸리는 시일이 현저히 단축되어 선하증권보다 운송물이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우에 선하증권의 상환증권성으로 인해 수하인이 운송물을 적법하게 인도받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그런데 예컨대 오랜 거래관계에 있는 수출자와 수입업자 사이의 무역거래, 물건을 수령한 다음 대금을 지급하는 현금거래, 그리고 다국적기업에서 본사와 지사 사이의 거래 등에서는, 신용장 거래에서 필수적인 은행의 개입이 필요 없으므로, 굳이 유통성이 있는 선하증권이 발행될 이유가 없다.13) 이에 상환증권성을 가지는 유가증권이 아니면서 선하증권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운송증서로서 고안된 것이 해상화물운송장이다.14) 우리 상법 해상편이 2007년 개정되면서 제863조, 제864조에 해상화물운송장의 발행과 효력에 관한 규정이 신설되었다. 우리 상법상 해상화물운송장이 발행된 경우 운송인이 그 운송장에 기재된 대로 운송물을 수령 또는 선적한 것으로 추정된다(제864조 제1항).

 

2)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
운송인은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으로 나뉜다. 계약운송인(contractual carrier)은 송하인과 운송계약을 체결한 운송인을 말한다. 실제운송인(actual carrier)이란 계약운송인의 위임을 받아 운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행하는 자로서 계약운송인의 사용인이나 대리인이 아닌 자를 말한다. 이러한 실제운송인은 독립적 계약자(indep
endent contractor)로서 그 법적 성질은 하수급인이다.15) 함부르크 규칙은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을 분명히 구별하고, 실제운송인으로 하여금 이행한 운송에 대하여 계약운송인과 법정의 연대책임을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다.16) 이와 달리 헤이그규칙과 헤이그-비스비규칙은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을 분명히 구별하지 않는다.17) 기본적으로 헤이그규칙에 기초하고 있는 우리 상법 역시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을 명확하게 구별하여 정의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았으나, 실무상, 강학상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 개념은 널리 통용되어 왔다. 우리 상법 제798조 제4항은 운송인의 책임제한등의 규정이 불법행위의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규정(제1항), 운송인의 사용인 또는 대리인이 운송인의 책임제한규정과 항변을 원용할 수 있다는 규정(제2항)은 운송물에 관한 손해배상청구가 운송인 이외의 실제운송인 또는 그 사용인이나 대리인에 대하여 제기된 경우에도 이를 적용한다고 규정하여, ‘실제운송인’ 개념을 법에 도입하였다. 이는 함부르크규칙(제10조 제2항 제5호)을 따른 것이며, 제774조 제1항 제3호18)와 같은 취지라고 설명된다.19)


    
3) 실제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대한민국과 중국의 실질법상 차이

중국 해상법은 해상운송의 책임주체에 관하여 함부르크규칙을 채택하여,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을 명확하게 구별하고 있다. 즉 중국 해상법상 운송인이란 ‘본인 또는 타인에게 위탁하여 본인의 명의로 탁송인과 해상화물운수계약을 체결한 사람’을 말하고(계약운송인, 제42조 제1호), 실제운송인은 ‘운송인의 위탁을 수용하여 화물운수 도는 부분운수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하며, 재위탁을 수용하여 이러한 운수에 종사하는 기타인을 포함한다’(실제운송인, 제42조 제2호). 계약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규정은 실제운송인에게 적용하고(제61조), 계약운송인과 실제운송인이 화물의 멸실·훼손 또는 인도지연에 대하여 모두 배상책임이 있을 때에는 책임의 범위 내에서 연대책임을 지는데(제63조), 이때 실제운송인의 책임은 법정책임이라고 할 것이다.20)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비록 책임제한에 관한 상법 제798조 제4항에서 ‘실제운송인’ 개념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중국 해상법 제61조, 제63조와 같이 실제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근거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 실제운송인은 운송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송하인 또는 수하인에 대하여 계약상의 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자기 또는 선박사용인의 고의·과실로 인한 화물의 멸실·훼손 또는 인도지연에 대하여 민법상의 불법행위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21)

 

나.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의 이면약관 존재 여부
피고가 주장하는 이면약관이 존재하는지는 사실인정의 문제이고, 그 입증책임은 그 이면약관의 존재를 주장하는 피고에게 있다. 이 사건에서 핵심 쟁점은, 과연 피고가 주장하는 ‘이면약관’이 정말로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 원본의 이면에 인쇄되어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이 든 사실과 사정만으로는 피고가 주장하는 관할 및 준거법조항이 기재된 이면약관과 일체화된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 원본이 발행되어 그 이면약관의 내용이 이 사건 운송계약에 편입되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였다.


만약 대법원의 판단과 달리 ‘이면약관’과 일체화된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 원본이 발행되었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어떠한가. 우선 위 ‘이면약관’이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의 내용으로 편입되는지는 위 해상화물운송장의 준거법에 의한다고 할 것이다.22) 약관을 어떤 계약에 편입하는 경우 편입은 당해 계약의 준거법에 따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23) 피고가 주장하는 ‘이면약관’ 제26조와 같이 준거법을 지정하는 조항이 있으면 해상화물운송장의 준거법은 그 지정된 준거법에 의할 것이나, 만약 준거법 지정조항이 없는 경우에는 우리 국제사법 제26조 제1항에 의하여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그 객관적 준거법이 될 것이다.24) 다만 해상화물운송장은 기본적으로 증거증권으로서의 법적 성질을 가진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므로,25) 원칙적으로 해상화물운송장 이면약관의 내용이 그 발행의 원인이 된 운송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준거법에 따따른 차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26) 예외적으로 각국의 국내법이 정하고 있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약관 내용에 대한 편입통제가 이루어질 여지는 있다.27)

 

다. 선하증권 또는 해상화물운송장을 통한 국제재판관할합의28) 
선하증권을 통한 국제재판관할합의는 독특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즉, 선하증권을 이용한 개품운송계약은 대표적인 부합계약(附合契約, adhesion contract)의 일종이고 이러한 선하증권은 전전양도되어 선의의 제3자가 소지하게 되므로 선하증권의 약관에 포함된 전속적 합의관할의 내용이 송하인 및 선하증권의 소지자를 구속하게 되는지가 논란이 된다. 운송인은 대개 자신의 주사무소가 있는 국가에 전속적 국제재판관할을 부여하는 약관 조항을 두는데, 이로써 운송인은 한 곳으로 확정된 재판관할을 두게 됨으로써 안정된 법적 리스크 운용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송하인이나 선하증권의 소지자는 그러한 관할합의에 대한 의사도 없이 어쩔 수 없이 운송인에게 유리한 관할을 강요당하는 면이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선하증권에 의한 국제재판관할합의의 효력을 제한하는 입법례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① 오스트레일리아는 자국에서 출항하는 운송물에 대해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강행적인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하여 합의관할의 효력을 부정하고(오스트레일리아 1991년 COGSA 제11조 제2항),

 

② 캐나다는 선적항 또는 양륙항이 캐나다에 있는 경우 등에서는 당사자가 합의관할을 무시하고 캐나다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며(캐나다 Marine Liability Act 제46조 제1항), ③ 함부르크 규칙은 ‘운송계약에서 약정한 곳’을 원고가 선택 가능한 여러 관할원인 중의 하나로 삼아 해상운송계약과 관련한 국제재판관할합의의 전속성을 배제하였고(제21조 제1항, 제3항), ④ 로테르담 규칙은 위 함부르크 규칙을 좀 더 정밀하게 다듬어서, ‘송하인의 운송인 및 이행당사자에 대한 소송’에 한하여 국제재한관할합의의 전속성을 배제하였다(제66조 b호).29) 비록 우리나라가 함부르크규칙이나 로테르담규칙에 가입하지는 않았으나, 해상화물운송계약에서의 국제재판관할합의에 관한 규율의 국제적 대세는 위와 같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해상화물운송장을 통한 국제재판관할합의의 경우에는, 해상화물운송장의 유통성이 없다는 점에서 그 내용을 규제할 필요성이 선하증권의 경우에 비해 조금 낮아진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부합계약이라는 성격은 마찬가지이므로 기본적인 접근 방식은 선하증권을 통한 국제재판관할합의와 동일하게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의 항소심 법원은 이 사건 해상화물운송장의 ‘이면약관’의 존재를 긍정하면서도 그 이면약관에 포함된 국제재판관할합의의 전속성을 부정하였다. 항소심 법원이 앞서 본 바와 같이 선하증권(해상화물운송장)을 통한 국제재판관할합의의 내용을 적절히 규제할 이익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항소심 법원은 이 사건 심리에 필요한 중요한 증거방법이 대부분 대한민국 내에 있는 점(증거의 소재지), 피고는 해상 운송업체로서 전 세계에 걸쳐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이므로 대한민국에서 소송을 수행하게 된다 해도 응소의 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점(피고의 응소부담)을 들어 ‘이면약관’의 관할합의 규정이 부가적 관할합의 규정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사정들은 국내법원에서의 재판관할권 행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실적 요소들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항소심 법원이 국제재판관할합의의 성격 (전속적 합의 / 부가적 합의)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 내지 규범적 요소를 제시하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대법원에서는 어차피 ‘이면약관’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으므로 위 관할합의 규정의 법적 성격에 관해서는 판단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라. B 회사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준거법
대법원은 제1심판결과 항소심 판결이 원고가 B 회사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하여 행사하는 부분에 관한 판단 누락을 하였다는 점을 항소심 판결의 파기 사유로 삼았다. 대법원은 나아가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에서는 불법행위는 그 행위가 행하여진 곳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곳에는 손해의 결과발생지로서 법익침해 당시 법익의 소재지도 포함된다”는 법리를 전제로, 이 사건 봉인번호의 탈락이 최종 확인된 장소가 대한민국이고 이로 인해 침해된 A 회사의 법익 소재지도 대한민국이라는 점을 들어 B 회사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준거법은 대한민국 법이라고 판단하였다.
우선 대법원이 ‘불법행위가 행하여진 곳에는 손해의 결과발생지도 포함된다’고 하여 국제사법 제32조 제1항의 행위지 개념에 관한 종래의 판례법리를 따랐다.30) 다만 ‘결과발생지’가 ‘법익침해 당시 법익의 소재지’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판시가 포함된 것은 종전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제사법 제32조 제3항은 “가해자와 피해자간에 존재하는 법률관계가 불법행위에 의하여 침해되는 경우에는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그 법률관계의 준거법에 의한다.”고 규정하여 이른바 ‘종속적 연결’을 규정하고 있는바, 이 사건에서 제32조 제2항에 우선하여 종속적 연결을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31) 즉 피고와 B 회사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적 법률관계가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실질은 B 회사와 A회사, 그리고 A 회사와 피고 사이에 체결된 각 해상운송계약에 의하여 결합된 관계이다. B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피고는 B 회사와 A 회사 사이에 체결된 해상운송계약의 ‘실제운송인’으로서 가해자인 피고와 피해자인 B 회사 사이에 존재하는 법률관계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만약 B 회사와 A 회사 사이에 체결된 해상운송계약의 준거법이 중국법이었다면 그렇게 접근할 여지가 더 컸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법에서는 실제운송인에 대하여 계약운송인과 더불어 법정의 손해배상책임(연대책임)을 부과하기 때문이다.32) 앞서 본 것처럼 우리나라는 실제운송인의 법적 책임을 계약관계에 기초하여 파악하지 않고 순수한 불법행위로 이론구성을 하는데, 대법원은 이러한 논리를 관철한 것으로 보인다.

 

6. 결론
이상과 같이 대상판결 중 국제사법적 쟁점에 관련하여 중요한 대목들을 짚어보았다. 대상판결은 기존의 판례법리들을 적용하여 사건을 해결한 것으로, 새롭거나 획기적인 이론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상운송계약과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국제사법적 쟁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한민국과 중국의 해상운송에 관한 법적 규율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재판관할이나 준거법으로 인하여 당사자에게 뜻밖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국제사법이 다소 전문적이고 낯선 법이기는 하지만, 해상운송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국제적인 해상운송과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국제사법적 쟁점을 늘 인식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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