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용선계약 상 선적지 도착 지연에 따른 선주의 책임 및 대응방안”  

운임을 받는 조건으로 선적지에서 양하지까지 특정 선박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항해용선계약의 경우, 선주는 수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하나의 항해용선계약이 종료되는 즉시 선박이 다음 항해용선계약에 투입될 수 있도록 사전에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선주는 빠듯한 일정의 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하거나 직전 항차의 종료시점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새로운 계약을 인수하기도 하는데 만일 직전 항차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후속 항해용선계약의 선적지에 도착이 지연되는 경우 선주는 항해용선계약의 위반으로 용선자에게 손해배상을 부담할 위험이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최근 이와 관련한 영국 항소법원의 판결 (Pacific Voyager 2018)이 있었고, 계약취소가능조항 (Cancelling Clause)에 근거 용선자가 계약취소와 더불어 선주에게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선사들의 문의가 빈번하여 이번 호를 통해 선적지 도착 지연에 대한 선주의 책임관계 및 대응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항해용선계약 상 선적지로 항해할 선주의 의무>
(1) 일반 

항해용선계약을 체결할 때 선주에게 선박이 선적지에 도착하여 화물을 선적할 수 있는 특정 날짜를 보증할 것을 요구한다면 선주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선박의 일정은 날씨 등의 사정으로 변경될 여지가 많고 계약법상 선적가능일을 보증하는 경우 위반 시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통상적 항해용선계약의 양식들은 특정 선적일을 보증하지 않고 선박의 현재 위치를 명시하며 선박이 즉시 또는 현재 항차가 종료되는 대로 선적지로 신속히 이동하겠다는 수준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비록 선박이 계약취소가능일(Cancelling Date)보다 선적지에 늦게 도착하더라도 그러한 지연사실 자체만으로 선주가 항해용선계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한편, 화물의 해상운송을 의뢰하는 용선자/화주의 입장에서도 선박일정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험을 인수하기 꺼릴 것이고 협상을 통해 최대한 선박의 일정에 확실성을 부여하고 계획된 일정의 지연에 대해서 선주에게 책임을 부담시키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다. 

 

(2) 예상선적가능일(ERL)/예상도착일(ETA)을 명시한 항해용선계약의 경우 
항해용선계약서에 선박의 예상선적가능일 (Expected Ready to Load: ERL) 또는 예상도착일 (Expe
cted Time of Arrival: ETA)을 기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선주의 의무는 반드시 해당일자에 선박을 선적지에서 선적준비 상태로 만들거나 선적지에 도착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선주의 명확한 의무는 해당 예상선적가능일(ERL) 또는 예상도착일(ETA) 기준에 맞추어 합리적으로 충분한 시점에 선박을 선적항으로 항진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일자에 맞추어 충분한 시점에 선박을 선적지로 항진시키지 않는 경우 선주는 용선계약을 위반한 것이 되고 그에 따른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 반면, 예상선적가능일(ERL) 또는 예상도착일(ETA) 기준 충분한 시점에 선박을 선적지로 항진시킨 경우 비록 이후 날씨 등 사정으로 선박이 지연되더라도 지연 자체만으로는 선주의 계약위반이 있다고 볼 수 없다. 

 

(3) 선적지로의 항해 (approach voyage) 중  선박의 지연 및 면책
더욱이 항해용선계약 상 선주의 의무는 헤이그 규칙(Hague Rule)의 내용이 포함되었거나 용선계약 자체의 문구에 따라서 선박의 감항성에 대한 절대적 의무를 부담하지 않고 감항성을 갖추기 위한 위한 충분한 노력을 다하는 (exercising due diligence) 수준일 수 있다. 또한, 헤이그 규칙 또는 별도 면책조항을 통해서 선박의 충돌, 좌초, 해상 고유의 사고에서 선주가 면책될 수 있고 그러한 경우 선박의 선적지 도착 지연에 대해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만한 판례로 항해용선계약에 헤이그 규칙이 포함되어 선주의 선박에 대한 관리의무 수준이 낮아져 선주의 계약위반이 없다고 판결한 판례가 있다 (Adamastos Shipping v Anglo-Saxon Petroleium 1959). 해당 사건에서 선주는 18개월의 탱커 장기운송계약(consecutive voyages)을 체결하고 미국에서 남미의 선적지로 공선항해를 시작하였는데 기관사의 능력부족으로 엔진고장이 발생하였고 지연에 따른 용선자의 손해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용선자는 선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나 해당 항해용선계약서에 포함된 헤이그 규칙의 내용을 근거로 선주의 책임이 없음이 판결되었다. 법원은 비록 기관사의 능력부족으로 엔진고장이 발생한 것은 인정하였으나 여전히 선주는 기관사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하였으며 공선항해의 발항 전 선박의 감항성 유지를 위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하였다고 판단하여 선주의 계약위반이 없음을 판결하였다. 따라서, 헤이그 규칙이 포함되거나 별도 면책조항이 있는 경우 면책사항에 해당하는 사고로 선적지 도착이 지연되는 경우에는 선주가 책임을 부담하지 않을 수 있다.  

 

(4) 이전 항차에서의 사유로 발생하는 지연  
하지만, 중요한 사항으로 별도 명시조항이 없다면 항해용선계약에서의 면책조항은 해당 항해용선계약 상의 항해가 개시된 이후에 적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박이 여전히 이전 항차를 수행하는 중에 충돌 또는 좌초와 같이 면책의 여지가 있는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선주는 후속 계약의 당사자를 상대로 헤이그 규칙의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 (이전 계약의 용선자를 상대로는 면책 주장이 가능). 선주는 후속계약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선박을 예상선적준비일(ERL) 또는 예상도착일 (ETA)기준 합리적으로 충분한 시점에 선적지로 항진시킬 의무를 부담한다. 이와 관련한 최근 영국 항소법원의 판례가 Pacific Voyager (CSSA Chartering v Mitsui O.S.K. Lines 2018.10) 이다. 해당 사건에서 선주는 네덜란드에서 아시아로 원유를 운송하기로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해당 계약에서 선박이 선적지에 준비되지 않을 경우 용선자가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계약취소일자(Cancelling Date)는 2015년 2월 4일이었다. 2015년 1월 5일 계약체결 당시 해당 선박은 이집트에서 일부 화물을 양하할 예정이었으며 이후 이집트에서 화물을 추가 선적하여 1월 25일경 프랑스에서 모든 화물을 양하하며 이전 항차를 종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5년 1월 12일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중 바닥에 침몰되어있던 준설장비와 접촉하여 선체가 손상되며 침수되었고 긴급히 스페인으로 이동하여 수개월간의 입거수리를 진행하였다. 따라서, 선박은 2월 5일의 계약취소가능일 (Cancelling Date)기준 충분한 시점에 선적지로 항해를 개시하지 못하였고 용선자는 2월 6일 해당 항해용선계약을 공식 취소하며 계약위반을 근거로 미화 120만불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해당 사건에서 법원은 계약취소가능일(Cancelling Date) 기준 선주가 합리적인 시점에 선적지로 항해를 개시해야 할 절대적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하였다. 해당 사건은 수에즈 운하에 침몰되어 있던 준설장비와의 충돌로 선주의 과실이 없이 발생한 사고로 헤이그 규칙이 적용된다면 면책의 가능성이 높은 사고이다. 하지만, 해당 사고가 해당 항해용선계약의 항차에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이전 항차에서 발생한 사고인 관계로 이와 같이 선주에게 억울해 보일 수 있는 판결이 나오게 되었다. 해당 판결은 추가적으로 대법원 항소가 진행중인 것으로 보이나 계약 상의 면책은 이전 항차가 종료되고 새로 해당 계약상의 운송계약을 위한 항해가 개시된 시점부터 적용된다는 점은 항소의 내용이 아니다. 항소의 핵심사항이나 현재로써 명확한 영국법의 법리는 비록 항해용선계약에 예상선적준비일(ERL) 또는 예상도착일(ETA)가 명시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계약취소가능일 (Cancelling Date) 를 기준으로 선주가 합리적인 시점에 선적지로 선박을 출항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주는 별도 조항이 있지 않은 한 계약취소가능일(Cancelling Date) 를 기준으로 합리적인 시점에 선적지로 선박을 항진시켜야 할 절대적 의무를 부담함을 주의하여야 한다.

 

(5) 선박이 지연되는 경우 용선자의 계약취소권리 (Cancelling Clause)
항해용선계약 상 lay/can 조항은 선박이 선적지에 도착하여 용선자에게 화물의 선적을 요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와 선박이 선적지에 도착 지연되는 경우 용선자가 계약을 취소(해지)할 수 있는 권리가 발생하는 날짜를 의미한다. 한편, 계약취소조항은 선주의 계약위반 여부와 무관하게 어떠한 사유에서든 선박이 계약취소가능일(Cancelling Date) 까지 선적지에 도착하여 선적준비가 되지 않는 경우 용선자가 계약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계약취소가능일(Cancelling Date)까지 선박이 준비되지 않아서 용선자가 계약을 취소하더라도 그것 자체로 용선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으며 별도 독립적인 계약의 위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선주의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한다. 또한, 다수의 항해용선계약 상 계약취소조항은 선박이 지연될 것이 예상되는 경우 선주가 용선자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고 계약취소가능일(Cancelling Date) 의 변경을 제안할 수 있다. 해당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 선주는 여전히 기존의 계약취소가능일(Cancelling Date) 기준 충분히 사전에 발항할 의무가 있다. 

 

(6) 선주의 의무/책임사항 요약  
상기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선주는 항해용선계약과 관련하여 계약취소가능일(Cancelling Date) 를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충분한 시점에 선적지로 항해를 시작해야 할 절대적 의무가 있고, 그러한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 선주는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의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한편, 합리적으로 충분한 시점에서 선적지로의 항해를 개시하였다면 선주의 계약상 의무는 통상 충분한 주의/관리의무(exercising due diligence)를 다하는 수준일 것이며 헤이그 규칙이 반영된 계약의 경우 선적지로의 항해 중 해상 고유의 사고로 선박이 선적지 도착이 지연된다면 면책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용선자는 계약취소가능조항(Cancelling Clause)에 따라서 이유를 불문하고 선박이 해당 일자까지 선적지에 도착하여 선적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해당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선주의 대응방안> 
상기와 같은 손해배상 책임의 위험 고려 시 선주의 입장에서는 아래의 사항을 고려할 수 있다. 

 

(1) 합리적이고 충분한 스케쥴의 용선계약 체결 
상기와 같이 항해용선계약 상 예상선적일 (Expected Ready to Load) 또는 계약취소가능일 (Cancell
ing Date) 기준 충분한 시점에 선적지로 항해를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 선주는 계약 위반에 해당함을 이해하고 충분한 스케쥴의 용선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클레임을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이 방법이다. 어려운 용선시장 이지만 무리한 스케쥴에 따른 클레임 발생 시 손해배상 위험 및 클레임 진행에 따른 선박가압류 및 보증장 제공 위험, 법률비용 발생 등의 불필요한 위험이 존재한다.

 

(2) 대체선 조항의 삽입 
목적한 선박이 이전 항차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예상선적일 (ERL) 또는 계약취소가능일 (Cancelling Date)까지 선적지에 준비가 되지 않을 것이 예상되는 경우 대체선을 투입할 수 있는 선주의 권리를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 안전하다. 실제로 대체선 투입가능 조항이 없는 경우에도 실무적으로 선주는 선박이 지연되는 경우 협상을 통해 용선자에게 대체선을 제공하여 목적한 용선자의 화물운송을 수행하기도 한다. 다만, 이후 용선마켓이 상승한 경우 대체선 투입에 보다 높은 비용이 발생하는 점이 있다. 

 

(3) 계약 상 면책조항이 이전 항차에도  적용된다는 조항의 삽입
상기와 같이 영국법원의 판례들에서 선주는 항해용선계약 상의 예상선적일 또는 계약취소가능일을 기준으로 합리적인 시점에 이전 항차를 종료하고 선적지로 항해를 시작할 절대적 의무가 있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전 항차와 관려해서는 계약상의 면책조항이 적용되지 않음을 판결하였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별도 문구가 없는 경우 계약 상 면책조항은 이전 항차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계약의 대상이 되는 항해에서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계약서에 모든 면책조항들이 계약을 체결한 순간부터 모든 항해에 적용된다고 하는 경우 그러한 의도가 인정될 것이며 상기 Pacific Voyager 판례 고려 시 그러한 위험 회피가 보다 안전하다. 특히, 별도 공선항해 없이 양하지에서 이전 항차를 종료하고 곧이어 인근에서 새로운 항해용선계약상의 화물을 선적하는 경우 선적지 도착지연의 위험이 대부분 이전 항차에서의 사고에 기인할 수 있으므로 그러한 위험을 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4) 손해배상금의 예정 
선박이 예상선적가능일까지 도착하지 않는 경우 손해배상의 범위는 용선자가 다른 선박을 수배하여 원래 계획한 해상운송을 수행하며 발생한 추가적인 비용일 것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새로운 선박을 수배하며 지연되는 경우 추가적인 창고보관료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과도하게 화물가격의 변동에 따른 결과적 손해에 대한 클레임을 받는 경우도 있다. 법적으로 손해배상의 범위는 계약 당시 당사자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로 계약위반으로 발생하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손해이다. 따라서, 계약체결 당시 해당 화물의 특수한 목적 및 상황이 언급되고 그에 따른 충분한 운임협상이 진행된 경우가 아니라면 결과적 손해까지 선주가 부담할 것은 아니나 막상 클레임이 진행되는 경우 그러한 결과적 손해금액까지 언급하며 선박을 가압류하고 보증장을 요구하기도 한다. 따라서,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손해배상은 계약 위반 시 동일 조건의 시장가격 차이만 배상한다고 정하는 것이 과도한 손해배상 위험을 대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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