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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항 친수공간 탐방기
[544호] 2018년 12월 28일 (금) 14:13:35 이정희 zip0080@gmail.com
   

갑작스런 짧은 일정으로 일본 칸사이關西 지방을 다녀 올 일이 있었다. 그러던 중 하루 일정을 빼서 고베항으로 향했다.

그 유명하다는 고베항 친수공간을 보고 싶었다. 다녀온 사람들이 모두 침을 튀기며 꼭 한번 가봐야 한다고 말했던 고베항 친수공간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고 싶었다. 

항만 담당 기자라서 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꼭 근처에 항만을 찾아다니곤 했었다. 항만은 그 나라의 관문이고, 물류와 무역은 물론 지역색을 담고 있는 랜드마크이다. 인천의 월미도가 가지고 있는 특색을 어디 가서 볼 것인가? 시하누크빌 항만의 그 우울함을 어디에서 볼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사람들이 모두 대단하다고 말하는 고베항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고 싶었다.

고베항 가는 길.
하루를 신세졌던 히메지姬路시에서 JR니시니혼西日本의 산요본선을 타고 고베로 향했다. JR신칸선을 타면 20분 남짓한 시간에 도달 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재래선인 산요본선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아사기리朝霧역에서 스마須磨역까지 이어지는 해안길을 전차를 타고 달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올 겨울 들어 첫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지만, 고베로 향하는 세토내해의 해안은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정상을 향해 떠오르는 태양이 세토내해와, 해안가와, 해안철도를 달리는 전차와, 그 안에 타고 있는 승객들을 따스한 햇볕으로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여지지만, 지루했다는 이야기다. 그냥 신칸센을 탈 것을 그랬다.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전차를 타고 고베역에 내린 시간이 오전 11시가 조금 안되었다.

고베시의 중심 역은 ‘고베’라는 지역명을 차지한 고베역이 아니라, 두 정거장 떨어진 고베산노미야神戶三宮역이다. 일본이 대형 사철인 한큐전철阪急電鐵과의 환승역이기도 한 고베산노미야 역에서 내리는 것이 더 가깝기는 했지만, 항만친수구역을 천천히 돌아보려는 마음에, 일부러 고베역에서 내렸다.

고베역과 연결된 하버랜드에서 한국어로 된 관광가이드 맵을 하나 얻은 다음 자판기에서 뜨거운 캔 커피도 하나 뽑아서 항만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업무, 여행, 환승 등등 다양한 이유로 일본을 여러 번 방문하긴 했지만 항만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항만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고베항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일본 기상청 공식 명칭 ‘헤이세이 7년 효고현 남부 지진(平成7年兵庫縣南部地震), 또는 한신-아외지 대진재,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명칭 고베 대지진. 6,300여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진도 7의 대 지진은 인명 피해 이외에도 경제적 피해를 야기했다. 지진 발생 직후 닛케이225 지수는 하루만에 7.5% 급락했다. 이 여파로 200년 역사를 가진 베어링스 은행이 파산하고, 단돈 1파운드에 팔려나갔다. 장기적인 엔화 약세의 시작도 고베 대지진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버블이 꺼져 가던 일본 경제에 치명타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는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환적 물동량이 부산으로 대거 이동했고, 부산항이 그 물동량을 기반으로 세계 3위의 항만으로 올라섰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항만기자 일을 시작했을 당시, 부산항의 항만 물동량 처리 순위는 홍콩과 싱가포르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만 물동량 기사를 작성할 때마다 고베항을 떠올리곤 했었다. 아마 나는 그래서 더욱 고베항을 가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항만기자라고 해도, 따로 약속을 잡거나, 컨테이너 부두를 찾아가 관계자를 만나 물동량 추이를 묻고, 물동량 유치 전략, 항만 발전 전략 등을 물을 계획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저 지진 당시의 피해 상태를 그대로 보존해 놓은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를 눈으로 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 또 그 유명하다는 친수공간을 보고싶다는 마음에 고베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관람차, 탑승료는 800엔.
도로를 따라 한적한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아이들이 많은가 했더니 구 고베항 신호소(Former Kobe port signal station)로 가는 길에 ‘호빵맨 박물관’이 위치해 있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박물관 앞에는 거대한 대관람차, 모자이크 빅 페리스 휠(MOSAIC BIG FERRIS WHEEL, モザイク大觀覽車)가 바다를 배경으로 천천히 돌고 있었다.

고베 모자이크는 한큐상업개발阪急商業開發이 1992년 고베항 워터프론트 안에 개장한 복합 상업시설로, 내부에는 레스토랑과 극장, 수 많은 상점들로 구성되어 있는 고베항 명물 중 하나이다. 특히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대관람차 모자이크 빅 페리스 휠은 고베항 친수구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조형물이자 놀이기구이다.

난간에 기대 천천히 돌아가는 대관람차를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아름답기는 아름다운데, 뭔가 좀 알수 없는 그런 기분이 얼핏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봤는데 한번 타볼까 싶어 얼마인지 가격을 물어보니 직원이 800엔이라고 말해주었다. 어쩔까 하고 잠시 생각하는데, 낮 보다는 밤에 오면 고베항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는 말에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800엔이라는 가격보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10분동안 홀로 대관람차를 혼자서 타고 있으면 얼마나 우울하겠는가.

대관람차를 뒤로 하고 사람들 틈에 섞여 고베포트타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凹자 모양으로 만들어진 고베친수공간에는 4~5척의 유람선들이 운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중 한 척의 유람선에 눈길이 갔다. 해상에서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 유람선은 출항을 위해 승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살짝 차갑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햇빛이 따사로운 그날, 그 유람선을 타고 해상에서 점심식사를 즐길 예정인 사람들이 유람선 주위에서 들뜬 얼굴로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그날 아마 꽤나 괜찮은 추억을 만들었을 것이다.

유람선과 크루즈. 솔직히 부럽다.

고베포트타워를 걸어가면서 참 여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수공간만으로 계획된 공간. 그래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만들고, 그 시설을 이용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여유가, 웃음이 항만이라는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항만에 친수공간도 나름의 운치가 있지만, 조금은 다른, 이질적인 여유가 느껴졌고,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취향으로 치자면 월미도가 더 취향에 맞기는 하다.

부럽다는 생각을 떨쳐버리려 씩씩한 걸음으로 고베포트타워를 향해 걸어갔다. 최대 높이 108m의 고베포트타워도 고베항 인근을 조망할 수 있는 대표적인 관광 랜드마크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옆, 凹자의 다른 한 쪽, 대관람차 맞은 편에는 고베 메리켄파크 오리엔탈 호텔이 자리하고 있었다. 

호텔 4면 모두에서 고베항을 조망할 수 있는 입지 덕분에, 오래된 시설에도 불구하고 1박에 200달러가 넘어가는 높은 숙박비를 자랑하고 있는 메리켄파크 오리엔탈 호텔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관심가는 곳은 호텔을 둘러싼 크루즈선 전용 부두였으니. 

2월 Amadea호를 시작으로 2018년 한해동안 약 40척의 크루즈가 고베항에 기항했다. 고베항에 입항한 초대형 크루즈 선박은 메리켄파크 오리엔탈 호텔 바로 옆 부두에 정박해 승객들을 태우고 내린다. 크루즈에서 내린 승객들은 고베항 친수공간을 돌아보며 고베소고기를 먹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대관람차를 탄 다음 메리켄파크를 산책하고 다시 배로 돌아오면서 고베항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고베항 친수공간에 놀러온 지역민들은 메리켄파크 오리엔탈호텔에 입항하는 초대항 크루즈선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 크루즈선을 타고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친수공간이 크루즈를 부르고, 크루즈가 지역에 대한 관광수요를 높여간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부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방문한 날은 크루즈가 정박해 있지 않아 배아픈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오리엔트호텔과 깔끔하고 넓은 크루즈 전용 부두를 거닐면서 알 수 없는, 아니 사실 왜 그런지 아는 씁쓸함을 느꼈다.

‘고베에서 세계로’
크루즈 부두를 지나 고베항의 또 다른 명물인 메리켄파크로 향했다. 1987년 메리켄부두와 중돌제中突堤부두 사이를 매립해 만든 메리켄파크는 여행객들에게는 고베항 친수공간의 매력을 느낄수 있게 해주는 필수방문구간으로, 지역민들에게는 산책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생활공간으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친수공간을 한바퀴 다 돌고 나니 별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조용하고, 깔끔한 공원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진 찍는 포인트로 유명한 ‘BE KOBE’표식에서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앞에 두고 올라가 사진 찍는 일본사람들을 보면서,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다 비슷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BE KOBE’ 표식 옆에 위치한 ‘고베항 이민선 승선 기념동상’에는 ‘고베에서 세계로(神戶から世界へ)’라고 쓰여 있었다.

에도 막부 말기, 하코다테, 요코하마, 나가사키와 함께 개항한 고베는 외국인 거류지가 설치될 정도로 무역항으로써 번영을 누렸다. 그런 고베에서 이민선이 출항한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1908년 고베항에서 출항한 카사토마루笠戶丸가 165개 가족, 781명의 일본인을 태우고 52일간의 항해를 거쳐 브라질 산토스항에 닿았다. 그들은 다른 문화와 풍토, 그리고 인종차별과 싸워가며 살아야했고, 결국 ‘일본계 브라질인’이라는 하나의 계급을 만들어냈다.

재미있는 사실은 브라질 이민선단에 탑승한 인원 중 대부분이 가난을 피해 새 기회를 찾아 떠난 농민들이었고, 그 중 절반은 오키나와 출신이었다는 사실이다. 동상에서처럼 양복을 빼입은 상류층 가족들이 아니라.

지진이 남긴 상처
감흥 없이 이민기념동상을 대충 살펴본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겨 이 날의 최종 목적지인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로 향했다.

고베 대지진 당시 무너진 항만시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파크는 여느 메모리얼파크처럼 작고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아마 내가 항만기자가 아니었다면 “뭐야 이게. 실망이네”하고 그냥 사진이나 찍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항만기자인 나는 조금 오랜 시간 그 공간에 머물렀다.

에도막부시기 말에 개항한 고베항의 영광은 1990년대 초반가지 이어졌다. 아시아-태평양 항로의 관문항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품질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본의 수출품을 전 세계로 전달하는 게이트웨이로써 고베항은 홍콩항과 더불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항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런 고베항이 1995년 대지진으로 인해 한 순간에 영광을 잃어 버렸다. 1980년 컨테이너 물동량 4위의 항만이었던 고베항이 2015년에 50위권으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그 반사이익은 부산이 차지했다. 1980년 16위였던 부산은 고베항의 몰락 이후 세계 3위까지 그 위상을 끌어올렸다.

무너진 부두의 흔적을 보면서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어렵지만, 그 자리를 지켜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말이 떠올랐다. 고베항은 예전에 영광을 다시 차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10위권 항만들을 따라잡기에 그 격차가 너무나도 크다. 고베항의 연간 물동량은 300만teu에 불과하다.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를 끝으로 계획했던 고베항 방문을 마무리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별것 없었다. 그래도 크루즈 터미널은 조금 부러웠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날 때 까지 친수구역을 돌았더니 배가 고팠다. 유명하다는 고베규(고베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을까 하다가, 고베항 인근에 있다던 차이나타운이 떠올랐다. 지도 어플을 켜서 얼마나 먼가 하고 보니 바로 코 앞이었다. 그래서 점심이나 먹을 겸 차이나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베 차이나타운은 일요일 점심의 호황을 만끽하고 있었다. 현지인, 관광객, 호객꾼들이 서로 뒤엉커 춤을 추는 듯 혼잡스러웠다. 잘못온게 아닐까 하는 후회를 억지로 찍어누르며 인터넷에서 추천한 맛집을 찾아가 중국 정통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탄탄멘을 시켰다.

메뉴판에 가격이 없는 것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식당 입구에서 700엔이라고 쓰여있는 숫자를 봤기 때문에 큰 고민 안하고 바로 주문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후 탄탄멘이 나왔다. 색깔만으로도 매콤할 것 같은 국물이 식욕을 자극했다. 중식당에서 제공하는 스푼으로 국물을 떠서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면을 집에 후루룩 하고 입에 넣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하면서 많이 배운 것이 있다면 현지에서 식당을 찾을 때는 주택가로 들어가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을 믿지 말라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현지에서 현지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다.

나는 번화가로 찾아가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맛집을 선택했고, 일본에서 중국요리를 먹었다. 탄탄면을 먹는 내내 고베규나 먹을 것을 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적당히 먹고 계산을 하는데, 1500엔이라는 가격표를 보고, 그 마음은 더욱 진해졌다.

아직도 모르겠다. 왜 1500엔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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