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통폐합법의 국회통과를 위하여 여야가 대치하고 있을 때 해수부의 존치카드를 들고 있던 야당의 손학규 대표가 가장 고민했던 가치가 무엇일까? 아마도 국민과의 관계가치에 대한 나름대로의 계산방식이었을 것이다. 해수부 존치주장으로 인한 야당의 실리, 명분, 대 국민에 대한 신뢰의 가치…. 


그러면 관계에 대한 가치는 어디서 비롯될까? 혹자는 우리 사회에서 구성원들 간의 환경, 구성원 상호관계 본질, 정보기술의 혁신 등이 상호불신과 배타적 적대감, 단기적인 욕구충족 등과의 상충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이유는 역시 명분과 실리의 대치 와 신뢰의 득과 실에 있다고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명분(名分)에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명분에서 밀리면 치욕으로 생각하고 사생결단식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실리가 있더라도 좀처럼 자기 논리를 양보하려 들지 않으며 상대논리를 수긍하면 그것은 승부에 있어서의 패배로 인식한다.

 

그래서 타협은 곧 줏대 없는 태도나 배신으로 여겨지고 기회주의 행위로 매도된다. ‘자기논리가 강하다’는 게 그 사람에 대한 좋은 평가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가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경우에는 단명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속에서 명분 없는 대인관계는 곧 수치스러운 행위가 되어 자율보다는 타율을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했다. 당연히 타인의 신뢰를 더 의식하게 되었고 타인의 평가가 곧 가치척도의 기준으로 작용했음을 말한다. 특히 윤리나 도덕면에서 신뢰에 금이 가면 대인관계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되었다.


이런 현상들은 오늘날에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갈등의 원인이 되어있다. 예를 들면 죽을병에 걸려 임종을 앞둔 먼 친척에 대한 병문안, 조상에 대한 제사, 민속명절에 지켜야 할 도리, 가까운 친인척에 대한 의례적 인사 등에 있어서 젊은 세대들은 실용적이 아니라고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기성세대는 꼭 지켜야 할 도리라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다. 행동주체에 대한 실용과 명분의 대치인 것이다.


우리의 작은 정치에서도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참여정부의 ‘과거사 정리’를 둘러 싼 여야의 다툼을 들 수 있다. ‘민족정신 바로세우기’라는 명분을 빼고 보면 실익을 찾기 어려운 국력낭비의 측면이 강해 보인다. 더군다나 그 명분 뒤에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면 영특한 국민들에게 곧 발각될 것이고 국민은 그러한 정책에 신뢰를 보내지 않게 되어 그로인한 우리의 손실은 클 수밖에 없다.


소수의 실용적인 의견에도 신뢰를 보내어 명분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양보와 타협을 위한 이성(理性)이 발을 붙일 데가 있어야 한다. 회색인과 박쥐가 더 이상 기회주의자로 묘사되지 않고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인 중간자로 인식되는 관계, 사고의 유연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그런 단계는 아직 우리 정치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큰 정치에서 한 번 보자.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는 하드웨어의 측면보다는 소프트웨어의 측면에서 좋은 점이 많다고 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서양 중세의 성당,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방콕의 에메랄드 사원과 같은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문화는 우리에겐 없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이 경주에 거대한 도성을 쌓으려고 할 때 당시의 고승인 의상 대사는 이를 적극 만류하면서 민심의 성을 쌓는 것이 국가를 보전하는데 더 중요한 일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의 왕실은 사치스런 금은그릇을 궁중에서 추방하고 그 대신 소박한 도자기를 썼다. 다른 나라처럼 거창하고 화려한 문화를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백성을 괴롭히는 거창한 일은 가급적 피하고 민심의 지지를 통해서 국가를 장수시키려 했다. 그래서 왕조의 수명이 다른 나라보다 길었던 것이다.

 

삼국시대에 신라는 약 천년, 고려조의 오백년에 가까운 세월, 조선왕조는 519년이나 유지되었다. 이는 세계 역사상 드문 예라고 한다. 이 사실을 가지고 사회발전이 늦은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으나, 이는 정반대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보는 이도 있다. 국가는 생명체요 유기체로서 국가의 수명이 길다는 것은 국가 관리를 건강하게 잘 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통치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의 가치는 백성의 신뢰이다. 논어에도 보면, 공자는 그의 제자 자공이 “정치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한다. “정치란 족식(足食)-경제, 족병(足兵)-군사력, 그리고 민신지(民信之)-국민의 신뢰의 도리를 얻는 것 이니라.” 자공이 또 이 중에서 버려야 할 것의 순서를 물으매 “가장 먼저 버릴 것은 군사력이요, 그 다음은 경제력이되, 마지막까지 버려서는 안 될 것이 백성의 믿음”이라 하였다.

 
앞서 언급한 내용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활과 작은 정치에서 관계의 가치는 명분과 실리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고 그 결과에 대한 득실 또한 우리가 감당할만한 수준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큰 정치에서의 관계의 가치는 국민의 신뢰이며 그 결과에 대한 득(得)은 우리를 크게 흥하게 하며, 실(失)은 국가의 존폐를 좌우하거나 대란에 빠지게 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명분과 실리가 좋다하더라도 신뢰에 바탕을 두지 아니하는 관계의 가치는 수명이 길지 못하여 정치적 또는 상업적 쇼맨쉽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해수부의 존치를 주장하던 야당대표는 폐지의 카드를 선택했다. 실용을 위한 명분이었던 명분을 위한 실용이었던 존치관철을 기대했던 민초들의 신뢰를 져버렸다.

 

그렇다고 그의 선택이 아주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그의 선택이 옳은 것이 되어 민초들의 신뢰를 회복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과 환경이 당분간은 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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