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머 교수의 지식경제학

 
 

지난 10월,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노드하우스(Nordhaus) 교수와 로머(Romer) 교수가 선정되었다. 노드하우스 교수는 기후변화를, 로머 교수는 지식의 문제를 경제학에 접목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사실 로머 교수가 경제에서의 지식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새롭지만은 않다. 1950년대에 이미 솔로우(Solow) 교수가 경제성장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기술변화, 즉 지식이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이런 공로를 이어 받아 1987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드러커(Drucker), 토플러(Tofler) 등이 이미 현대사회가 지식사회에 접어들었음을 많은 근거와 이론으로 논증한 바 있다. 여기서는 로머 교수가 지식과 경제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설명했으며, 그의 주장의 의미와 한계, 그리고 해운산업에 대한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많은 학자들이 중국, 인도 등의 거대 인구의 국가가 미국처럼 소비를 하게 되면, 우리가 사는 지구가 이를 수용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한다. 만약 이 질문을 글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이에 대한 대답은 현재로는 “아니다(No)”, 즉 지구가 이러한 중국, 인도의 경제발전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 EU는 물론이고, 중국, 인도 등의 거대 경제권이 문명화에 따른 혜택도 보지만, 지구의 수용가능성에도 문제가 없도록 하는 어떤 방법(지식, 과학기술 등으로 불러도 좋다)을 찾아낸다면, 이러한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Yes)”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로머 교수가 경제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같은 논점을 명확히 하고, 시장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 메커니즘을 규명한데 있다.

로머 교수의 연구가 수행되기 이전에 솔로우 교수 등의 연구를 통해 이미 경제학계에서는 경제발전이 가능한 것은 크게 물적 투입(노동 투입 또는 자본재 투입 등)의 증가와 지식(과학기술)의 발전에 있다는 점이 충분히 밝혀졌다. 그러나 문제는 물적 투입의 증가는 자연자원의 희소성과 한계생산 체감의 법칙 때문에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동인動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경제학계에서는 지속가능한 성장동인인 지식의 발전이 경제주체(특히 기업)의 의도적인 투자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경제모형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다만 어떤 블랙박스(black box)를 통해 경제에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머 교수의 연구가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공하게 된다. 즉 거의 제약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식의 발전을 통해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이 가능할 뿐 아니라, 시장경제에서 제공하는 유인(incentive)을 통해 이러한 지식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음을 수학적 경제모형을 통해 학계에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로머 교수의 이론이 제시될 수 있었던 근거는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설득력이 큰 다음과 같은 차트(chart)의 개발에 있었다.1) 먼저, 횡축으로 경제적 재화를 물건과 비트 조각들로 구분할 수 있다. 즉 물건들은 내가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는 특징, 즉 경합성(rivalry)을 지닌다. 그리고 종축으로는 배제가 가능한 정도를 나타낸다. 기초 R&D의 결과는 공개되어 배제를 하지 않지만, 월마트의 경영 매뉴얼은 다른 경쟁자들이 알 수 없도록 부분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 로머 교수는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 도식을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즉 기업은 고정비용(fixed cost)을 들여 R&D를 수행하여 새로운 생산기법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새로운 생산기법은 물리적 성격상 비경합성(non-rivalry)을 가지기 때문에 다른 경제주체가 이를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비경합적 지식을 활용하여 다른 경제주체들이 보다 가치있는 생산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전체적으로 성장(발전)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러한 새로운 생산기법에는 특허 등을 통해 부분적 배제성을 부여하여 일시적으로 독점적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즉 특허 제도는 시장경제의 기업들이 R&D 투자를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즉 경제적 유인기제(incentive mechanism)가 된다.

이러한 로머 교수의 기본적 생각은 경제학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적어도 경제성장과 발전을 고민하는 경제학에 있어, 기존의 인간이나 물건의 경제학과는 매우 다른 비경합 제품, 즉 지식의 경제학이 필요해진다. 즉 경제원론에서 언급되는 생산의 3대 요소가 “토지, 노동, 자본”에서 “사람(people), 아이디어(idea), 재료(things)”로 바뀌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의미에서 로머 교수가 드러커와 토플러가 예견한 “지식사회의 경제학”의 초석(礎石)을 다진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로머 교수의 경제학 논의가 완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로머 교수는 지식사회에서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고 전파되는 것을 활성화하기 위한 새로운 메타 아이디어(meta idea)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즉 우리사회의 지식경제학이 더욱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로머 교수가 지식의 비경합성과 부분적 배제성이 거시적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했지만, 여전히 과학기술적 또는 제도적 지식의 창출 및 활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렇게 남아 있는 블랙박스에 대해서는 여전히 현실의 경제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아직 답을 찾아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로머 교수의 논의에서 해운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로머 교수는 기업의 R&D 투자가 시장경제 내에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일시적 독점을 허용하는 특허 제도 등의 지적재산권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재산권 보호의 논리의 핵심에는 R&D를 통해 창출되는 지식을 전통적 자유시장경제에 방치하게 되면, 비경합성의 특성으로 인해 기업들이 R&D 등의 고정비용을 회수하지 못해 지식이 과소공급된다는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해운산업, 특히 컨테이너 정기선 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는 논리이다. 컨테이너 해운산업도 선사들의 서비스 공급자 간의 자율적 조정행위, 즉 과거의 해운동맹과 현재의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 등이 없이는 고정비용의 회수가 불가능한 운임덤핑 경쟁이 만연할 수 밖에 없다. 자유경쟁의 원리가 안겨주는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혜택을 누리면서 동시에 현실의 시장 불완전성이 야기하는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지혜로운 해법의 모색이 긴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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