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끌린 경제 주체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회 이익을 증진시킴을 설파했다. 이후의 경제학은 이 같은 시장의 기능을 둘러싼 지적 논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삼스럽게 ‘질서 자유주의’(Ordo Liberalism)1)라는 다소 철학적 주제와 해운항만 산업정책이라는 화두를 꺼낸 것은 다시금 시장 본연의 기능이 우리 해운시장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되짚어 보자는 의도에서이다.

독일의 경제시스템은 흔히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로 평가된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자유 시장을 기초로 하여 공정경쟁, 복지국가 등의 정책을 병행하는 경제·사회 시스템으로 이해된다.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는 민간 경제주체에게 최대의 자유경쟁을 보장하지만, 사회적 형평과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필요한 만큼 정부의 시장개입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헌법 전문에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개인의 자유에 기초함과 동시에 사회적 조화를 추구하는 측면에서 사회적 시장경제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질서 자유주의는 이 같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질서 자유주의가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한 신자유주의와 대비되는 것은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있다. 신자유주의는 하이예크Hayek의 주장과 같이 시장을 인간의 언어와 같은 ‘자생적 질서’로 이해했다. 따라서 섣부른 시장개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뿐이다. 이에 비해 질서 자유주의는 시장에서의 질서를 경제에서 현실적으로 유효한 형태로 나타나야 하는 소위 규칙 카테고리로서 ‘설정적 질서’로서 간주한다. 이 같은 시장 기능에 대한 이해의 근본적 차이로 인해 신자유주의는 정부 역할을 최소화하는데 비해, 질서 자유주의는 정부를 ‘책임 있는 손’으로 간주하고 시장에 대한 정부의 배려와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자유로운 시장이 자원배분 메카니즘으로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정부가 경쟁질서를 창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얘기하면,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경제를 자생식물로 보았다면, 질서 자유주의는 재배식물로 간주한다.

1946년에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뮐러-아르막에 의하면 사회적 시장경제의 경제질서는 윤리적 이상에 의해서만 정당성을 얻는다. 이 윤리적 이상은 자유와 사회적 정의를 의미하는데, 자유에 기초한 개별 경제주체들의 경제행위가 사회적 목적과 타인들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아야 함을 요구한다. 따라서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기심을 가진 인간의 경제행위가 사회전체의 이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경제질서가 형성될 필요가 있고, 이 책임을 정부가 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는 정부의 독점규제 정책과 밀접히 연관된다. 아울러 다양한 시장에서의 공정경쟁 여건을 조성하는 정부의 역할로 이어진다. 끝으로 이 같은 경쟁에 대한 논의와 함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사회간접자본의 정비 등에 대해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개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질서 자유주의에서 우리 대한민국의 해운항만 산업계는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을까? 먼저 한진해운사태에서 국적선사 육성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컨테이너선 시장은 산업의 특성상 과점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고, 대형 얼라이언스들이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선사들의 시장행위가 글로벌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정부는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독과점 글로벌 선사들의 영업전략이 글로벌 경제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단할 수도 없다. 그리고 경쟁력 있는 자국 선사가 없는 무역국가는 독과점 선사의 가격차별화 전략에 의해 경쟁국에 비해 수출입 물류경쟁력이 저하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수출입 물류서비스를 경쟁국 수준으로 제공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힘으로 경쟁력 있는 선사를 육성해야 한다. 왜냐하면, 글로벌 시장이 자연적으로 경쟁국 수준의 물류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유로운 시장에서의 기업행동이 소비자에게 불편부당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다. 시장의 실패가 인지되면 그에 대한 책임있는 정부의 배려와 손질이 필요하다. 즉 국가 산업정책 차원에서 효율적 국제물류 서비스의 확보를 위해 해운 산업정책이 요구된다.

다음으로 항만산업에 만연된 과당경쟁에 대한 적합한 정책이 요구된다. 항만산업은 서비스의 차별화가 곤란한 대규모 장치 산업 중 하나이다. 이 같은 산업 특성 아래에서 신규 진입 하역사들은 자신의 이익 극대화만을 고려하여 시장에 진출하지만,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기존 하역사의 시장 잠식은 의사결정에 반영하지 않는다. 따라서 항만 하역시장에서는 과당경쟁이 발생할 개연성이 크고, 그로 인해 항만하역 부문의 시장질서가 문란해 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항만하역시장에 대한 정책개입을 통해 이 같은 과당경쟁을 예방하고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2015년 7월에 시행된 부산항의 컨테이너 하역요금 인가제는 이러한 방향에서 바람직한 항만 산업정책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마지막으로 해운항만 산업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연관 시장과 산업에 적극적 산업정책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이들 시장에는 인적자원 육성, 갑을 관계로 대변되는 공정거래의 훼손, 4차 산업에 대한 대응 등의 부문에서 많은 시장실패, 나아가 시스템 실패가 나타날 개연성이 있다. 따라서 정부의 책임있는 배려와 손질이 필요하다. 과거 개발국가 시기에는 정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하는 제1세대 산업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사회가 민주화되고 IMF 구제금융 시기를 거치면서 규제완화를 통해 민간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는 제2세대 산업정책이 시행되었다. 이제는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는 스마트한 제3세대 산업정책으로 이러한 다양한 시장실패에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2) 이러한 산업정책은 시장 기능이 작동하여 시장참여자의 이기적 행동이 사회적 이익으로 이어지는데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질서 자유주의와 산업정책론의 담론을 이해하고 이를 해운항만 산업생태계에 접목하는 역할은 정부, 연구소 등의 공공 부문뿐 아니라 민간 참여자에게도 요구됨을 강조하고자 한다. 공공 부문이 시장실패와 시스템 실패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공 부문이 민간 부문만큼 정보를 갖지 못하는 것은 자명하다. 민간 부문은 이러한 공공 부문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시장의 결함을 보완하고, 자신의 이익 추구가 사회적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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