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민 현 (경영학 박사, Penb46@naver.com)
윤 민 현 (경영학 박사, Penb46@naver.com)

선령 5년의 8,100teu급 MOL 소속의 ‘MOL Comfort’호가 싱가포르를 떠나 유럽으로 항해중 2013년 6월 17일 예멘 근처 200마일 떨어진 인도양에서 선체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침수와 함께 선체가 두 동강으로(clean break) 부러졌다가 며칠후 컨테이너 4,382개, 연료 1,500톤과 함께 인도양 심해로 침몰하였고 선원 26명은 인도 해안경비대에 의해 전원 구조되었다. 문제의 선박은 일본 미츠비시조선(MHI)이 MHI 8,000으로 칭하는 동일 설계로 건조된 11척중 하나이자 종강력 보강차원에서 High tensile strength steel(HTSS)을 사용 건조한 제 1호선으로 사고 당시 이미 9척이 운항중이었고 모두 NK에 입급되어 있었다.

동일 설계로 건조된 선박 11척 가운데 선령이 5년에 불과한 거대 선박이 풍력 7정도의 해상상태(파도와 바람이 약간 거친정도)하에서 항해중 선체가 케이크 자르듯 두 동강으로 부러진 사고에 피해규모와 별개로 해당선사와 조선소는 물론 전 해운계가 쇼킹한 사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고였다. 사고 직후 유사 사고의 재발을 우려한 일부 국제환경단체에서는 자국의 EEZ(배타적경제수역)내로 자매선들이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주요 기항지 국가에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와같은 국내외 해운업계의 반응에 접한 일본에서는 본 사고에 대해 단순한 해난사고 차원을 넘어 일본 해사산업계 모두에게 보내는 경고신호로 인식하고 관련당사자들을 포함, 일본관련업계와 정부는 최우선적으로 원인조사와 재발방지에 주력하는 모습(다음)을 보였다.

-선사의 자발적인 신속한 조치 : 당시 본선은 Hapag Lloyds, NYK, OOCL을 포함 6개 선사로 구성된 G-6 얼라이언스 하에서 공동운항 중이었으나 해당선사는 타이트한 스케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G-6에 투입 운항중인 자매선 6척을 항로에서 즉각 철수, 입거시킨 후 문자 그대로 매의 눈으로 자매선의 선체구조상 하자 유무를 철저하게 체크한 후 2개월에 걸쳐 선급규정이 요구하는 수준을 50% 이상 초과하는 대규모 보강공사를 필한 후 항로에 복귀시켰다.

-정석에 입각한 원인조사 : 사고직후 선사, 조선소 및 선급으로 구성된 전문가팀으로 하여금 자매선 6척을 대상으로 사고의 1차 원인을 조사토록 하였는가 하면 정부(MLIT)에서는 본사고가 ‘일본 해사산업의 명성’에 미칠 영향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조선계(MHI와 KHI), 일본 컨테이너 3사, NK, 국립대학, 연구기관이외에 MOL의 요청으로 영국의 LR이 기술고문 자격으로 참여한 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동 조사위로 하여금 대형선의 안전과 관련된 폭 넓은 대책을 수립하여 줄 것을 요청한다. 전문가팀과 조사위원회는 설계상의 하자, 건조상의 문제, 운항상의 문제 혹은 이들의 복합적 요인이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화물의 성격과 중량, 기상, 선체의 피로도, 설계, High tensile 재질 및 정비상태 등에 대해 광범위한 심층 조사를 시행하였다.

-절제된 책임공방 : 사고의 성격상 사고직후부터 선사와 조선소간에 책임소재를 놓고 공방이 있을법 함에도 불구하고 본선의 사고원인, 피해에 대한 책임관계, $100m에 달하는 6척의 보강공사 비용 부담 등에 관해서는 당사자들은 물론 외부에서도 전혀 거론함이 없이 오직 리스크 관리측면에서 선사, 조선소, 당국 모두가 안전조치에 최우선을 두고 합심하여 이에 매진하였다는 점은 모든 해운인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모습이다. 혹시라고 당사자들이 네 책임 내 책임을 가리기에 급급했다거나 설마 또? 하는 안이한 생각과 함께 운항차질을 우려하였더라면 이와 같은 차분하고 신속한 후속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조사결과의 보안조치 : 6개월 여에 걸쳐 심층조사가 행하여 졌으나 그 결과는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이어진 화주, 선사, 조선소간 책임소재와 관련된 법적 공방에 말려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공개할 경우 일본 해사산업의 명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도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강공사와 원인 조사에 앞서 선주, 조선소, 선급 간에 공동양해사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당사자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당국, 언론 등 어느곳에서도 그 공개를 요구하지 않았다.

일본의 대응을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보면 전문가팀은 사고의 근인(近因-proximate cause)을, 정부주도하에 설치된 조사위원회는 해상안전 전반에 걸쳐 해기외적인 원인(遠因-remote cause)을 조사하도록 하여 사고의 예방적 관리를 위한 리스크매니지먼트 차원에서 사고의 근본원인(Root cause)을 찾아내겠다는 민관의 자발적이고 선행적 조치라 할 수 있다.

3월 31일 우리 해운업계에 남대서양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더구나 그 항해가 비운에 몰락한 한진해운의 전직선원 수 명이 승선한 첫 항해였다니 안타까움을 더한다. 문제의 선박사고는 전기한 ‘MOL Comfort’호 사고와 몇 가지 유사한 점이 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①두 선박 공히 일본 MHI에서 건조된 선박으로 ②공해상에서 균열 등 선체 이상으로 화물과 함께 침몰하였으며 ③침몰선박과 동종의 선박이 다수 현역으로 취항 중이라는 사실이다. 주지하듯이 문제의 선박은 퇴출위기에 처해 있던 노후된 탱커를 광석운반선으로 개조한 선박으로 상당수가 아직도 운항 중에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개조가 활발했던 2009년 전후의 시장상황을 살펴본다.

-Tanker 시장 : 2008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석유수요는 감소한 반면 금융위기전 발주해둔 선복들이 인도되면서 공급은 7% 수준으로 수급균형이 악화됐다. 대형 VLCC의 경우 손실규모가 $7,000/day에 이를만큼 탱커시장은 어려운 시기였다. 탱커선의 과잉으로 오일 메이져들은 15년 이상된 선박은 철저히 외면했으며 운항중인 선박들도 선복과잉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감속운항을 유지했다. 침체일로의 시황 하에서 당시 전세계 VLCC 선단 540척 중 규제의 영향으로 퇴출대상에 지정돼있던 단일선체선(single hull)이 무려 90여척에 달했다. 때문에 선령 15년 전후의 다수선박이 계선 혹은 해체장으로 밀려나갔다. 선가는 고철가 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15년 이상된 단일선체선의 경우 누가 사준다고만 해도 감지덕지할 처지였다.

- 중국의 철광석 : 당시 세계 최대 철광석 수입국인 중국은 금융위기로 철광석의 국제시세가 급락하자 철분함유도면에서 국내산(27.5%)보다 훨씬 우수한 수입산(60%)을 브라질과 호주에서 저가에 대량 수입함에 따라 케이프사이즈 시장은 활황을 보였고 이에 더해 금융위기까지 매년 두자리 숫자의 성장률을 보였던 중국경제가 급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부양패키지를 동원함에 따라 2009년 1/4분기 기준 철광석 수입량이 전년대비 27% 급증할 정도로 벌크선사의 모든 관심은 중국의 수입철광석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VLCC 저가매수 VLOC로 개조: 이러한 시장환경하에서 부상한 전략이 15년 전후의 VLCC를 저가에 매수하여 단기간내에 광석전용선(VLOC)으로 개조(Crude Carrier Conversion- 이하 ‘CCC’), 시장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외신에 의하면 현재 운항 중인 글로벌 CCC 선단이 47척(LL Intelligence)에 이르며 그중 절반가량을 한국이 운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세계 최대광산업체인 브라질의 Vale가 운항 중이던 1993~1994년생 290k~306k급 CCC선을 2012년 하반기에 국내선사가 매입한 10척이 포함돼 있다. 대개 이러한 배들은 침체기에 주인이 여러차례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보수 정비에 큰 비용을 요하는 Special survey 직전에 매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기본적인 정비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력을 지니고 있다.

-개조된 VLOC(CCC)의 배경 : CCC는 태생적으로 몇 가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①개조공사가 행해진 시기는 금융위기 이전에 대량발주해 두었던 선박 건조로 1급조선소들의 도크가 꽉 차있었던 관계로 개조공사는 주로 2급 조선소에서 이루어졌다. ②공사는 비용이 저렴한 중국의 신생조선소에서 이루어졌고 ③당시 시장이 호황기였기에 공사기간을 최대한 단축시켜야 할 상황(공사 졸속가능성)이었으며 ④선급의 입장에서도 수명이 제한돼있는 CCC 보다는 장기간 검사료가 보장되는 신조선에 더 주력하였으며 ⑤CCC의 경우 해운원가가 낮기 때문에 신조선 대비 채산성이 양호할 뿐 아니라 ⑥대부분이 장기 용선에 묶여있어 선주의 뜻만으로 철수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은 처지에 놓여 있다.

구조된 선원 2명의 증언이 있겠지만, 금번 사고의 경우 원인을 규명하는데 필요한 선체, VDR 등 항해관련자료가 없어졌고 당시 주요 당직자들도 실종상태이기 때문에 원인조사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다만 급격히 진행된 침몰상황과 24명의 인명중 22명이 탈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사고의 급박한 상황을 짐작케 한다. 일각에서는 화물의 액상화(liquefaction)나 선체의 구조상 문제(structural failure) 또는 양자의 복합적 작용을 그 원인으로 들고 있지만 그 역시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사고 직후 선박의 구조에 대한 이론 또는 승선경험만을 토대로 2,000마일 떨어진 원양 상에서 짧은 시간에 진행된 사고의 원인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 파장과 사안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성급한 행동이다.

사고직후 Intercargo와 IMO 등에서 신속한 원인조사와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데 비해 국내에서는 벌써 탓하기와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과거 우리는 주변에서 발생한 인명사고와 관련하여 진실공방으로 분열과 갈등을 초래한 경험에 비추어볼 때 학계나 관련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더 더욱 섣부른 추정을 자제하고 조용히 전문기관의 객관적인 조사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민-관이 ‘MOL Comfort’호 사고에서 보여준 성숙한 대응자세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고이후 세계는 개조된 노후 VLOC를, 글로벌 CCC선단의 절반가량을 운항 중인 한국해운계를 주시하고 있다. 더욱이 본 사고이후 동종선박들에서 우려스러운 조짐과 함께 보수와 정비 상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과거 PSC 검사기록들이 공개되고 있는 상황하에서 문제의 VLOC를 운항하고 있는 선주라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며 당국 입장에서도 무언가 선행적이고 예방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본다.

MOL Comfort호 사고로 일본정부가 가장 심각하게 우려한 것은 일본 해사산업의 대외신뢰도였다. 신중하고 사려깊은 해운인이라면 이런 경우 어떤 사태를 우려하고, 어떤 시나리오에 대비하여야 할 것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여러 가지 정황을 정합해볼 때 그렇게 시간이 많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리더의 결단이란 항상 엄청난 중압감과 함께 고뇌를 동반하기 마련이고 그 선택은 고독하기 십상이다.

선박이나 실려있는 화물의 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바로 인명의 안전이다. 조금만 더 운항하다가, 대체선이 나올 때까지, 설마 또? 등등의 자기합리화 유혹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무엇이 합리적이고 사회적 책임에 부합하는 조치인지를 판단하는 외부의 시각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이번 사고를 통해 세계는 이미 유사 VLOC 선주에게 경고(wake-up call)를 발했다고 보아야 하며 차후 동종 사고가 재발할 경우 해당 선주에게는 경고를 외면한 준엄한 책임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법조문에 명시되어있는 선주의 의무는 최소의 요건일 뿐 그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오너나 리더의 사회적 책임, 합리적인 판단, 그리고 그 실행이다.

‘한진해운사태’를 밖에서 Political Blunder(실수)라고 폄하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또 다시 세계 해운계의 이목을 한국으로 집중시키는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차제에 정부는 정부차원의 ‘합당한’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를, 업계에서도 상응하는 ‘합리적인’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를 통해 실추되고 있는 한국해운산업의 대외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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