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412개 업체·640척 운항, 부산에 116개사 밀집

 
 

작년 동맹파업 몸살, 정유사 운송료 인상협상 ‘난항’

국내 급유선 업계가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컨테이너선 등 각종 선박의 운항에 필요한 연료유를 공급하는 선박급유업은 항만의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꼽힌다. 그러나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 400여개 업체들이 등록돼 있는 급유선 시장은 복잡하고 낙후된 유통구조와 낮은 운송료 등으로 인해 경영의 한계를 드러내며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선박급유업은 정유사 혹은 급유대리점으로부터 유류를 공급받아 이를 해상에 정박 중인 국내외 선박에 공급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급유선업체들은 일반적으로 바지선을 통해 본선까지 연료유를 운송하며 정유사로부터 받는 운임료를 수익으로 삼는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2016년 12월 기준 전국 412개의 선박급유업체가 640여척의 선박을 운항하고 있다. 이중 부산지역이 116개사로 가장 많은 업체들이 밀집해 있으며, 이어 경남 55개사, 여수 42개사, 울산 29개사, 인천 22개사 순이다. 부산발전연구원에 따르면, 부산지역의 선박급유 업체는 2014년 기준 총 125개로 자본금 1억 미만이 전체의 77.6%, 선박보유에서 200톤 이하 선박이 전체의 90%를 차지해 영세성을 보이고 있다.

선박급유업은 자본금 1억원 이상, 100톤 이상의 급유선이 있으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올해부터는 항만운송사업법 시행령 개정으로 급유선 없이 유조차량만으로도 선박급유업의 등록이 가능해졌다. 국내 급유선업체들은 일반적으로 100톤에서 1,000톤 이하의 급유선을 1-2척씩 보유하고 있으며 업체 대부분이 영세하여 운송료 할인 등 과당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최근 부산항 등 국내 항만에 입항하는 국내외 선사들의 선박급유 비중은 점점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싱가포르 등 여타 세계적인 항만과 비교해 국내 선박급유업의 가격경쟁력과 서비스 등이 뒤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발전연구원에 따르면, 부산항에 급유를 목적으로 입항하는 선박은 2010년 4,271척에서 2014년 3,171척으로 매년 줄고 있다. 부산항의 유류가격이 경쟁항만에 비해 비싸고 급유량도 부정확하다는 이유에서다. 2012년 기준 부산항에서 거래된 선박 급유량은 2012년 총 937만 165톤으로 같은 기간 싱가포르항(4,085만 2,700톤)에 비해 4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최대 현안은 ‘운송료 현실화’ 문제

무엇보다 급유선업계의 최대 현안은 ‘운송료 현실화’ 문제이다. 업계에 따르면, 선박급유의 운송원가는 계속 상승해 업체들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급유선 운송료는 리터당 2-3원대 수준으로 낮아 경영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한 급유선업계 관계자는 “매년 선원 인건비 및 보험료 등 고정비와 운항원가는 인상되고 있으나 운송료는 20년간 거의 인상되지 않았다”면서 “예를 들어 울산-부산에 기름을 싣고 오면 200-300만원에 달하는 연료비도 못 미치는 운임으로 결국 배를 운항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특히 운송물량 경쟁에 따른 저가계약이 만연하면서 일부 업체들은 부족한 운영비를 충당하려고 불법으로 잔존유를 빼돌려 판매하다가 관세청과 해경에 적발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6일에도 해상유를 빼돌려 아파트와 공장에 불법 유통한 일당이 무더기로 검거돼 2명이 구속됐다.

이에 급유선업계는 정유사를 상대로 운송료 현실화를 요구하며 지난 2015년부터 집회와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파업 분위기가 확산 중이다. 부산의 한국급유선선주협회는 2014년 해운조합이 한국해양대에 의뢰한 ‘급유선 적정운송료 산정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350%의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2015년 10월 동맹파업을 결의했다. 당시 부산지방해양수산청에 등록된 급유선은 180여척이며 이중 협회 소속 급유선은 전체의 67%인 120여척에 이르러 파업이 장기화될 시 선박연료류 공급 차질에 따른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부산지역 급유선들은 한 달에 600여회 부산 인근을 지나는 외항선과 부산항에 정박한 선박에 급유하고 있다. 그러나 파업 하루 전 정유사와의 운송료 협상이 타결되면서 휴업은 철회됐다. 급유선선주협회는 정유 4사와 2016년 상반기까지 운송료를 단계적으로 40-60%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급유선업계는 운임인상폭이 제한적이라며 1년 후인 지난해 10월 10일 결국 파업에 들어갔으며, 전국 급유선 680척 중 부산, 울산, 여수항에서 약 200척이 동맹휴업에 참여했다. 해수부 중재에 따라 양측이 협상안에 서명하면서 5일 후 급유서비스는 재개됐다. 양측은 ‘선박 급유업 선진화 방안 연구용역’에 공동 참여하고 이를 반영하여 합리적인 운송료를 조정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한국해양대에 발주한 연구용역은 올 1월말 완료됐으나 양측의 의견이 엇갈려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해수부 항만운영과 담당자는 “연구용역에 대한 최종보고회를 가진 후 급유선선주협회 측과 정유사 측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면서 “오래 끌 사안이 아니므로 최종결과는 마무리작업을 거쳐 2월 안으로는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급유선업계-정유사간 ‘줄다리기’ 싸움

현재 급유선선주협회와 4대 정유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간의 운송료 협상은 난항이 계속되고 있다. 양측은 해수부의 중재에 따라 연구용역 결과를 가지고 올해 1-2월까지 테이블에 앉아 수차례 협의를 진행해왔으나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최종협상기일을 계속 넘기고 있다.

협회 측은 동 연구용역을 기반으로 당초 운송원가에 맞게 운송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0년간 운송료가 동결됐기 때문에 300% 이상 올려야 하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에 걸쳐 40-60% 인상하는 데 그쳐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유업계는 지난해 이미 운송료를 한 차례 인상하여 단시일 내에 추가 인상은 어렵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협회는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시금 파업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협회는 2월 17일 최종협상이 결렬된 후 긴급이사회를 갖고 파업협상 결과에 아무런 소득이 없다면 운송료 현실화를 위한 집회와 투쟁을 계속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협회에 현재 가입된 선주들은 140여개사(180여척)이다.

협회 관계자는 “정유업계가 연구용역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경쟁력을 잃는다며 1원도 못 올리겠다고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면서 “정유업계는 2015년부터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에 1차로 운임을 40% 올렸다고 하지만 우리 운임은 리터당 몇 원, 몇 전 수준이다. 1원에서 40%면 40전이 오른 셈”이라고 설명했다.

최신 용역보고서 “구간별 최소 88%-198% 인상 필요”

최근 일부 공개된 ‘선박급유업 선진화 연구용역(2017)’의 결과에 의하면, 국내 정유사들이 해상대리점을 거쳐 급유선업체에 지급하는 운송료는 원가에 훨씬 못 미쳐 구간별로 최소 88%, 최대 198% 인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동 보고서에는 급유선이 월 13회 운항하는 것을 기준으로 여수 정유공장-부산 등 16개 항로의 운송료는 평균 88%, 부산저유소-거제 등 20개 항로는 평균 102%, 울산 정유공장-부산 등 항로는 평균 103%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또 정유사의 부담을 고려해 운송료를 3단계씩 나눠 인상하는 안도 제시됐다. 1-2단계는 각각 42-49%씩 올리고 3단계로 5%씩 올리자는 것이다. 또 운송료 인상과 더불어 급유선 업계의 자체 구조조정 노력, 급유선 과잉을 막기 위한 허가제 도입, 면세유 빼돌리기 등 불법행위에 대한 강력한 행정 제재 등도 선진화 방안으로 담겨 있다.

한편 지난 2014년 해운조합이 한국해양대에 의뢰한 ‘급유선 적정운송료 산정을 위한 연구 용역’ 보고서는 선박급유선업의 제도 개선방안으로 △관련 법령 개정 등을 통한 수송선과 급유선의 업역 구분 명확화 △소통창구 마련 및 선박급유 유통구조 개선 △대리점과 급유업체 난립 방지를 위한 실적신고 의무화 △급유선 현대화 및 적정 규모화 △급유량 개선 및 품질 검사제도 강화 △선박급유 관련 금융제도 마련 등을 제시했다.

정유사-대리점-급유업체 다단계 유통구조

그러나 급유선 시장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운송료 인상협상의 고비를 넘겨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유사-급유대리점-급유선 선주로 이어지는 복잡한 유통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급유선 유통구조의 단순화를 통한 시장 정상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소통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와 부산발전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선박급유시장은 정유사-급유대리점-급유선업체의 3단계 구조로 형성돼 있다. 4대 정유사가 독과점 체제를 유지함에 따라 시장가격 조정기능이 소수의 거대 정유사에게 부여됐다. 일반적으로 정유사들은 해상급유대리점과 위탁계약을 체결해 용역비를 주고, 대리점들은 다시 급유선업체들에게 하청을 통해 선박의 운송료를 지급하는 다단계 구조이다.

이처럼 정유사에서 선박으로까지의 급유 유통과정이 몇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정유사에서 몇 차례 운송료를 인상한다 하더라도 중간에 있는 급유대리점을 거치게 되므로 최종 급유선 선주에게까지 인상폭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유사와 급유업체간 직거래 등으로 선박급유 유통구조가 개선되면, 유가 인하는 물론 급유업체의 적정한 운송료 책정으로 ‘해상유 빼돌리기’ 등의 고질적인 문제도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급유선업계의 자구적인 서비스 품질 개선 노력도 절실하다. 한국급유선선주협회 문현재 회장은 “우리 급유선 선주들도 선사 얼라이언스처럼 통폐합을 거쳐 공동주주 체제로 회사를 운영해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선박급유업, 금융지원으로 가격경쟁력 확보

선박급유업은 선용품업, 선박수리업 등과 함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항만부대산업 중 하나이다. 부산항을 부가가치가 높은 세계 2대 환적거점항만으로 육성하려면 단순 항만하역서비스 외에 선박급유업과 같은 항만부대업의 경쟁력이 높아야 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부산항이 선박급유 경쟁력을 확보하면, 미주노선 선박의 최종 기항지로서 환적화물 유치에 중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동북아지역은 원유유입의 다양화, 석유시장의 확대, 북극해 항로의 가시화 등으로 선박급유시장의 확대와 가격인하 요인 잠재력이 있다고 분석된다.

세계 최대 선박급유항만인 싱가포르항은 선박급유업을 연간 20조원의 시장으로 육성하고 있다. 싱가포르 선박급유업이 높은 경쟁력을 갖는 요인으로는 우선 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선박유 가격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 정유회사의 저유시설이 집적돼 있으며, 안정적인 금융제도 지원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높은 급유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선박급유 측정 시스템의 운영 및 개발을 통해 정밀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선박급유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2013년 기준 싱가포르는 68개사의 선박급유업체를 지정, 승인하고 있다.

부산항 선박급유 서비스 저하, 급유량 부정확

그러나 세계 2위 환적허브항이자 세계 6위 컨테이너항만인 부산항의 선박급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싱가포르항이 연 20조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부산항은 5조원 규모에 그친다. 국적선사 및 해외선사들은 부산항의 유류가격 및 시설,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지고 급유량도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선박들이 부산항에서 기름을 싣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100척이 들어가면 80척이 기름을 싣는 반면 우리나라는 100척 중 7-8척이 싣고 있다. 유가차이와 서비스품질이 그 원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산항의 선박급유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항 선박에 대한 선박급유 서비스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부산항의 유류공급시설의 확충과 유류가격 인하가 요구되며, 정확한 급유량을 위한 관리감독 개선과 장비 개선을 통한 급유시간 단축도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와 같이 선박급유사업에 금융당국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박급유업체 등이 저리로 사업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금융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밖의 제도적 개선점으로 안전검사 지원, 관련인력 양성지원 등이 제시되고 있다. 급유선선주협회 관계자는 “부산항의 선박급유 경쟁력은 싱가포르항, 로테르담항 보다 훨씬 뒤처지고 있다”면서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선박급유구조의 원시적인 틀을 고쳐야 한다. 업종 허가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법적·제도적 선진화 방안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노후선 문제, LNG 벙커링 시대 준비도

선박급유업의 노후선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선박연료유는 바다에 치명적인 대형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수송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일본의 경우 급유선 선령을 15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급유선의 선령제한은 하지 않고 있다.

국내 급유선업체들의 경우 수익마진을 위해 일본의 노후선을 수입해 30년 이상의 선령의 노후선을 운항하다보니 늘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영세한 업체들은 선박을 신조할 여건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정부 주도로 부족한 신조자금 및 운영비를 은행에서 차입해 신조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앞으로 5년 후에는 선주들이 채산성이 안 맞아 선박을 사우디나 중국으로 매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새 배를 살 형편이 되지 않는다.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미래 LNG연료선에 대비한 LNG벙커링(선박급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오는 2020년부터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전 세계 운항선박은 선박연료유의 황함유량(SOx)이 3.5%에서 1.0%로 강화된 친환경 연료의 사용이 요구된다. 이에 따른 LNG벙커링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며, 이미 국내 한진중공업에서 세계 최초 LNG 벙커링 선박을 건조한 바 있다.

해수부는 올 3월 LNG벙커링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항만운송사업법’ 개정에 들어가고 벙커링 인프라 확충에 나설 계획이다. 이에 급유선업계에서도 LNG선박 운항증대에 대비한 급유시설을 확충하고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급유선 업계가 존폐 위기와 정책적 지원의 부재로 해상유 불법유통의 잠재적인 범법자로 내몰리면서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세계 3위 환적항, 세계 6위 컨테이너항의 위상에 걸 맞는 대대적인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운송료 현실화 문제와 전근대적인 유통구조의 개선이라는 쉽지 않은 숙제를 안고 있는 선박급유시장은 점점 쇠퇴해갈 것이냐 전략적 활성화로 나아갈 것이냐 하는 어려운 기로에 놓여 있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