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30일 경제수장(부총리)이 재정난을 겪고 있는 조선, 해운산업의 지원을 위해 12억 달러 상당의 기금을 조성하여 선박 건조자금으로 배정하고 건조된 선박은 BBC 형태로 선사에 빌려준다고 발표했다. 업계는 당연히 환영했지만 단서가 있었다. 즉 부채비율 400% 조건과 함께 공적기금 사용의 기본원칙은 이른바 Market based solution임을 강조하고 개별회사가 상응하는 책임의 몫을 수행하지 않는 한 그런 회사를 구제하기 위해 공적기금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당시 907%와 1,113%였던(2015년 9월말 기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그렇다 치고 한국의 경제사령탑이 해운시장을 향하여 시장논리를 내세운 최초의 발언이었다. 그 이후 8월 31일 한진해운사태가 발생한 직후 윗선(?)에서 나온 메시지는 상사베이스에서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어 9월에 개최된 국회 청문회에서도 오너가 있는 기업의 구조조정은 오너의 책임하에 하여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원칙이라고 주무장관이 답변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한국의 해운정책은 철저하게 민간베이스, 상사베이스임을 공식 천명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다음 이어진 정부의 해운ㆍ조선산업 지원책의 내용을 보면 혼란스럽다. 재경부에 의하면, 11조원을 조성하여 2020까지 250척의 선박을 건조하고 해운산업을 위해 6조 5,000억원을 조성, 선박을 매입하여 리스백해준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본금 1조 규모의 가칭 한국선박회사를 설립하되, 80%는 국책은행이 참여할 것이며 이에 더하여 Kamco가 추가로 1조 9,000억 기금을 조성한다는 것. 말대로 실천된다면 19조 4,000억이라는 사상초유의 거대 자금을 동원하여 조선과 해운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의 국정혼란 사태에 비추어 볼 때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질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기조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위기에 처한 해운산업을 두고 시장논리를, 오너의 전적인 책임을 거론하며 한마디로 민간분야의 ‘일’로 선을 그었던 것이 불과 한달여 전이었는데 사상초유의 거대자금을 동원하여 위기의 해운을 지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한국은 현재 선복량 기준 7,900만dwt로 제 7위(UNCTAD 2016년)의 해운국이라 한다. 50년전인 1960년대초 불과 17만gt(약 26만dwt)이었던 선복량과 비교하면 약 300배 성장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성장 배경에는 정부의 역할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교통부 해운국에서 해운항만청이 발족하고 1997년 해양수산부로 바뀌는 과정에서 계획조선, 시설자금, 산업정책자금 등 정책지원을 바탕으로 선복을 확충해왔고 이 과정에서 주무관청과 해운업계는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갈등할 때도 있었지만 이러한 애증의 관계 이면에는 상호 소통하고 힘을 모으는 지혜가 있었다. 그러나 금세기에 들어와 해운산업에 대한 독금법 적용 유예가 점차 약화되고 2008년 해운동맹제도가 법에 의거해 해체되면서 글로벌 해운시장은 철저하게 경쟁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유럽의 선두주자들은 해운자유주의 원칙을 강조하며 국가의 정책지원에 대해 부정적이며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이른바 EU Maritime Guideline에 의거(1997년 EU의회 채택, 2004년 개정) EU 회원국들의 동의 없이는 어느 나라도 자국 해운에 대한 정책지원것을 금기시하고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공급과잉 시장하에서 하주들이 골라잡아야 할 정도로 선사와 서비스가 넘쳐나고 있는데 당연히 퇴출되어야 할 선사를 정책지원으로 연명시키는 것은 결국 시장의 회복을 더디게 할뿐 만 아니라 건전한 해운질서의 회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고 인식이다. 어떤 면에서는 해운산업에 관한 한 철저하게 민간섹터의 영역으로 선을 긋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정책이 유럽해운계로 하여금 세계 해운의 선두주자가 되도록 자생력과 경쟁력을 키우게 했는지도 모른다. 세계 제 1의 해운국 그리스, 컨테이너부문의 선두주자 Top 3의 공통점은 모두가 유럽선사로 철저한 해운의 전통을 지닌 가족경영이자 정부와 거리를 둔 독립경영체제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해운이 왜 국민경제에 중요한가 하고 물으면 대답은 거의 천편일률적이었다. 무역발달의 촉진과 원료취득의 수단등 무역활동과 관련된 역할, 비상시 수송수단의 확보, 국제수지 개선, 조선업등 부대사업의 육성, 그리고 고용촉진 등이었다. 그러나 적자생존의 원칙하에 날로 경쟁이 심화되어가고 있는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본 해운의 역할도 3면이 바다라거나 조선산업의 육성, 무역의 촉진등을 거론하는 것도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구시대의 논리들 일뿐이며 해운의 국가 전략적 가치를 찾는다면 국가비상시 필수자재의 수송수단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강의 조선대국이자 최약체 원양 컨테이너선사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보듯이 지금은 조선산업이 오히려 해운시장의 회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통적인 해운대국이자 생필품의 75%를 수입에 의존해야하는 섬나라 영국, 대서양과 태평양을 끼고 있는 세계최대 경제대국이자 대양을 무대로 국제경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이 자국의 정기해운을 축소하고 전략적 차원에서 재정 지원하에 이른바 Jones Act fleet 만을 운영하고 있다.

해운산업을 육성하는 목적에는 국제무역시장에서 차별대우를 받지 않은 이른바 공정경쟁을 하는데 일조하기 위함도 있지만 국가 전략적 측면에서 필요한 최소선단의 유지는 어떤 것과도 타협 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명확히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마지노선까지는 정책적으로, 이를 초과하는 해운영역은 상사베이스의 민간영역에 맡겨두되 정부의 역할은 개별기업 단위로 할 수 없는 R&D, IT,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그리고 한국해운이 해외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공정경쟁을 위한 토대 마련등이 주를 이루어야 하며 이것이 곧 선진해운국들이 취하고 있는 해운정책의 기조다. 정부의 정책 가운데 시장저변 확대, 경쟁력제고, 시장점유율(M/S) 확대 등이 자주 포함되고 있지만 상사(commercial activity)에 속하는 이런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정부가 어떻게 실천하겠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정부 정책안에 민간영역과 정책영역이 혼재되어있다 보면 결국 선언적, 수사적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정작 정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영역을 소홀히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번 한진해운 사태를 통해 확인된 것 중 하나는 정부의 해운정책 기조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정부가 처리한 한진해운사태는 전세계의 Customer들과 협력업체들의 실망, 공분과 함께 한국해운의 신뢰도를 훼손하였을 뿐 아니라 정책부재와 준비 안된 구조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한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실패한 정책이었다. 이에반해 국영정기선사를 단일화시킨 중국, 일정표에 의거해 시간을 두고 Japanese trio를 하나로 묶기로 한 일본의 민간베이스 결정은 글로벌 공급체인이 환영하는 가운데 정기선해운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보여준 모범사례였다.     

이번 한진해운사태는 정부-학계-연구기관-해운계간의 소통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 값비싼 교훈이었으며 바로 그러한 소통부재의 중심에는 한국해운계, 특히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시인하여야 한다. 한국의 지정학적 여건등을 종합할 때 해운산업을 전적으로 민간영역의 몫으로 제쳐두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가 해운기업의 경영활동분야에까지 개입하는 것도 시대의 흐름에 걸맞지 않는다. 장기침체가 8년째 지속되고 있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그 원인에 대한 처방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정책지원이 없어 해운이 위기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는 해외에서는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다. 한국해운업계가 정부의 지속적이고 직·간접적인 경영개입을 진정 원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민간영역과 정책의 구분이 애매한 것도 문제이지만 해운산업의 국제성과 Fewer & Stronger를 향해 치닫고 있는 국제해운시장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종합해볼 때 한국해운도 이제는 홀로서기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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