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동맹 시절, 어느 날 국내에 상주해 있는 운임동맹의 Neutral Body(N/B)가 예고없이 사무실에 나타나서 직원들을 뒤로 물린 다음 서랍 등을 뒤져간다. 동맹의 운임 태리프(Tariff)를 지키지 않고 운임을 깎아주었다거나 리베이트를 지급하였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함이며 위반이 확인될 경우 해당운임의 몇백배에 상당하는 벌과금을 부과한다. N/B는 동맹회원들이 태리프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회원사들의 부담으로 운영되는 동맹의 내부조직이지만 동맹이 설정한 공동운임을 차별없이 모든 하주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도록 감시를 통해 선사들이 주도하에 운임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해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일이지만 문자 그대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유럽항로에서 정기선사들의 어금니라고 할 수 있는 해운동맹이 하주들의 강력한 로비로 2008년에 폐기되었다. 2011년초 선사들이 시차를 두고 GRI(General Rate Increase) 시행을 발표하자 5월 어느 날 새벽 Brussel(EC)의 경쟁당국 관리들이 유럽지역에 있는 14개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들의 사무실을 급습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선사별로 GRI시행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를 운임인상을 위한 선사간의 암묵적인 신호(price signalling)이자 공동행위(Concerted practices)가 아닌지 의심하고 관련 증거를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두 사건에서 보듯이 불과 몇 년사이에 운임의 주도권이 선사의 손을 떠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EC의 조사에 이어 러시아, 미국, 일본도 선사들의 가격담합 여부를 조사할 만큼 선사들의 운임인상 시도를 보는 당국의 시선은 항상 곱지 않다. EC의 경우 관련법(Art 101 TFEU & Art 53 EEA)을 위반 시 최고 회사 매출총액의 10%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주들이 집단소송을 통해 보상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담합으로 보일만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선사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GRI와 하주의 대응 : 해운동맹이 사라진 이후 유럽노선 선사들은 현재까지 거의 50회에 가까운 GRI를 시행하였지만 예외없이 초기 잠시 반짝하였다가 이내 다시 GRI 시행 이전수준으로 하락할 만큼 선사들의 운임인상 시도는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굳이 GRI의 효과를 든다면 운임이 하락하는 속도를 일시 지체시키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하주들이 선사들의 대폭적인 GRI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은 운임이 일시 올라가더라도 개별 협상을 통해 운임인하는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설사 현 운임수준이 선사들의 운항비도 보전할 수 없는 바닥이라고 해도 그것은 선사들의 사정일 뿐이라는 것이 하주들의 인식이다.

계약은 지키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미주나 유럽항로에는 기간별로 운임수준과 Space를 보장하는 Service contract(SC)가 있지만 하주들은 S/C상의 운임을 의무사항이 아닌 단지 참고용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며, 연간운임협상의 시기를 운임수준이 바닥일 때를 택해서 선사를 압박하고 있다. 년간 5,000~30만teu 물량을 갖고 있는 대형하주들의 경우 계약시기를 일정시기로 집중시켜 하주 상호간에 운임정보를 교환해가며 선사들의 출혈경쟁을 유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주들이 요구하는 운임수준에 하한선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 프레이트 포워더인 Kuehne & Nagel이 실례로 들었듯이 현재 아시아발 남미향(Santos 와 Buenos Aires) 40ft 컨테이너의 운임이 Port to port 기준으로 $25(운항비 제외)수준이라고 하면 과연 믿겠는가? 그야말로 택시비 수준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얼마전 국내 하주들이 국내 양대 컨테이너선사의 통합을 반대하였듯이 하주들은 해운계의 소수 대형화와 대형 얼라이언스로 재편되는 현상을 경계하고 있다. 시장을 소수의 대형선사 혹은 동맹이 지배할 경우 서비스 질의 하락가능성과 그들의 선택의 폭이 축소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대형 선두주자들의 대응책을 경계해야 ! : 지난 수년 동안 대형 선두주자들은 대형화, 메가-얼라이언스, 시장점유율 싸움, 가격전쟁을 벌이며 체력전을 통해 약자를 압박해왔지만 서비스 빈도와 소석률을 해결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대형선 발주가 불가능한 소형선사들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2011년 머스크 라인이 아시아-유럽항로에서의 가격전쟁을 주도하였지만 결국 체력전을 통한 하위선사 축출 시도는 사실상 실패하였고 2016년부터는 머스크를 포함한 모두가 적자를 보고 있는 가운데 공급과잉과 운임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작년까지 실적을 보면 머스크등 유럽선사들은 승자였고 아시아권 선사들은 대부분이 패자였다. 승자인 머스크등은 사내에 거액의 유보금을 확보하고 있어 한동안 침체가 더 지속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을 갖고 있지만 근래 우리 주변에서 보듯이 아시아권에 집중되어있는 패자들 대부분은 심각한 재정란에 직면해 있다. 현시장의 동향을 볼 때 공급과잉은 2~3년안에 해소되기 어렵다. 운임의 결정권은 사실상 하주의 손에 있다. 규제당국의 감시 때문에 운임회복을 위한 선사들의 공동행위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어느 특정선사를 드러내놓고 왕따시킬 수도 없다. 현 상태가 지속될 경우 모두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상황하에서 선두주자들은 어떤 전략을 구사 할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10년 사이에 선박은 3배로 대형화되었고 누가 요청한 것도 아닌데 강자와 약자가 공생해왔던 지난 10년 세월을 마감하고 이제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합종연횡을 통한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2016년 초 4개로 시작된 얼라이언스가 내년 4월이면 3개로 재편되어 지금보다  소수 대형화된다. 시장은 이미 체력전에 돌입했으며 체력전이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하여 일시적으로는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어차피 공급과잉 상황하에서 모두가 항로를 지키려할 경우 업계 모두가 불황의 심연에 빠질 수도 있다. 체력전을 통해 약자를 그의 선단과 함께 시장에서 퇴출시킬 수 있다면 시황의 회복을 좀 더 앞 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강자들의 판단이고 전략일지도 모른다 .
 

선사들의 가격정책은 존재하는가 ? : 교과서적인 가격정책은 생산자가 생산원가와 판매원가에 약간의 이윤을 가산하여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다. 해운에서는 생산원가라 할 수 있는 고정비(혹은 Hire base)와 판매원가인 운항비를 기준으로 운임을 설정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생산자에게 가격 결정권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현재 컨테이너정기선사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중 하나는 선사들은 넘어서는 안될 선(critical red line)을 넘은지 오래이며 가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하주와 경쟁당국은 합작으로 선사들의 운임인상 행위에는 사실상 재갈을 물렸지만 하주들의 밑도 끝도 없는 운임덤핑 유도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동장치도 두지 못하고 있다. 치열한 국제경쟁시장 하에서 자비란 기대할 수 없다. 만일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이용자가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
연초 기준 16개 글로벌 선사가 3개사는 철수, 1개사는 사실상 도산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현시장의 상황은 해운원가를 기준으로 운임이 책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운임을 기준으로 해운원가를 조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며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승자는 하주요 패자는 선사 특히 재무구조가 취약한 선사들이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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