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운송인의 면책 및 책임제한 규정의 법적 성질

-대법원 2015. 11. 17. 선고 2013다61343 판결-

 
 
Ⅰ. 사안의 개요
(1) 원고는 신조 차량 탁송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서, HG와 사이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가 생산하여 판매한 신조 차량, 전시 차량 등을 원고가 위 제조사들의 출고센터부터 지점(대리점) 또는 매수인이 지정한 장소까지 운송해 주기로 하는 배달·탁송 위탁계약을 체결하였다.
(2) 피고는 부산-제주 항로에서 해상 운송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로서, 2009. 9. 1. D와 사이에 현대설봉호(이하 ‘이 사건 선박’)에 관하여 화물영업운영계약을 체결하였다.
(3) 원고는 HG와의 배달탁송 위탁계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2009. 9. 23. 해상 운송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피고와 운송계약(이하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고, 그 중 제3조는 아래와 같으며, 이 사건 계약은 자동연장되었다.
 

제3조(사고책임 및 손해배상)
① 사고책임 한계는 부산항에 도착한 운송차량으로부터 지상에 하차 검수 직후부터 제주항 원고의 야적장에 도착 검수 전까지 외적 요인에 의해 발생된 제반 사고에 대하여 피고가 책임진다.② 피고의 사고책임 한계 내에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 실제 고객 및 화주가 인수 거부 시 신조 차량인 경우 피고가 사고차량을 즉시 인수하고 새로운 차량으로 대체해야 하며 수리 후 인도 가능할 시 수리비와 감가비용을 고객에게 차량 인도와 동시 지급해야 한다. 부품인 경우 (주)모비스로부터 차후 결정된 감가비를 지급한다.③ 신조 차량에 지급된 품목(매트, 쟈키, 타이어 공구 등)이 분실된 경우 피고가 실비 보상한다.

(4) HG는 원고에게 현대자동차가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한 액센트 승용차 외 15대(이하 ‘이 사건 차량들’)의 배달·탁송을 위탁하였고, 원고는 2011. 9. 5. 이 사건 계약에 따라 피고에게 이 사건 차량들의 부산항부터 제주항까지의 운송을 맡겼으며, 피고는 같은 날 원고로부터 이 사건 차량들을 인도받아 이 사건 선박에 선적하였다.

(5) 이 사건 선박이 2011. 9. 5. 19:00경 부산항을 출발하여 같은 달 6. 00:40경 여수시 삼산면 백도 북동쪽 7마일 해상을 항행하던 중, 위 선박에 선적된 활어 운반트럭 내 전원 배선의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하였고(이하 ‘이 사건 화재사고’), 이로 인하여 위 선박에 선적된 이 사건 차량들은 모두 전소하였다.
(6) 원고는 2011. 11. 22. HG에 이 사건 화재사고로 인한 손해배상금으로 이 사건 차량들의 가격 합계 323,790,000원에서 제세금의 합계 46,089,516원을 공제한 판매원가 합계 277,700,484원을 지급하였다.

(7) 피고는 화물의 운송 중 위험을 담보하기 위하여 S와 사이에, 피고가 운송하는 화물의 화주를 위하여 보험금액은 화물 가액의 110%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준으로 선적 또는 사건별 보상한도액 미화 3,000,000달러의 범위 내에서 산정된 금액으로 정한 적하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S는 2012. 6. 20. 원고 등 이 사건 선박에 화물을 선적한 화주들의 소송대리인에게 이 사건 화재사고로 인한 보험금을 지급하였고, 원고는 2012. 7. 26. 이 사건 제4차 변론기일에서, 위 보험금 중 이 사건 차량들에 관한 보상액이 157,780,000원임을 자인하였다.

(8) D는 이 사건 화재사고로 인한 물적 손해의 총 채권액이 이 사건 선박톤수에 상응하는 책임한도액을 초과한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제한절차의 개시를 신청하였고, 서울중앙지법은 2012. 6. 11. 이를 받아들여 D에게 공탁금을 공탁하도록 결정하였고, 같은 해 7. 11. 책임제한절차 개시결정을 하였다. 피고는 상법 제774조 제1항 제1호 및 제3호에 따라 책임제한의 이익을 원용할 수 있는 수익채무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위 책임제한절차에 대한 수익채무자로 신고하였다.
 

Ⅱ. 당사자의 주장
원고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피고는 다음과 같이 면책 또는 책임제한 항변을 하였고, 원고는 이에 대하여 책임제한이 배제된다는 취지로 재항변하였다.
 

1. 피고의 항변요지
(1) 피고는 상법 제795조 제2항에 따라 화재로 인하여 생긴, 운송물에 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
(2)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은 상법 제797조 제1항 본문에 따라 중량당 책임제한액인 44,216SDR의 범위 내로 제한되고, 원고는 이미 S부터 위 책임제한액을 초과하는 보험금을 수령하였으므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은 소멸하였다.
(3) 이 사건 선박 소유자인 D에 대한 책임제한절차가 개시되었으므로, 이 사건 선박의 용선자인 피고도 위 책임제한절차에 따른 책임한도액의 범위 내에서만 배상할 책임이 있다.
 

2. 원고의 재항변요지
이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가 주장하는 화재면책 또는 책임제한규정에 대한 공통적인 재항변 사유로서 이 사건 계약 제3조 제2항(이하 '이 사건 조항'이라고 한다)에 따라 위 규정들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주장하였다.
 

Ⅲ. 법원의 판단
가. 재판의 경과

제1심2)은 이 사건 차량들이 이 사건 선박에 선적되어 운송되는 도중 전소됨으로써 이 사건 계약 제3조 제1항이 규정하는 손해배상책임 발생의 요건을 충족하였으므로, 피고는 제3조 제2항, 제3항에 따른 손해배상의무의 이행으로 원고에게, 선박책임제한절차의 폐지 또는 그 개시결정의 취소를 정지조건으로 이 사건 화재사고로 인한 잔여 손해배상금 119,920,484원(= 원고가 HG에 지급한 손해배상금 277,700,484원 - 원고가 지급받은 보험금 157,780,0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원고와 피고가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고, 항소심3)은 원고의 항소를 인용하여 정지조건을 삭제하였고,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가 상고를 제기하였으나,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였다.
 

나. 대법원 판결의 요지
(1) 상법 제769조 본문은 그 규정 형식과 내용 및 입법 취지 등에 비추어 임의규정으로 보아야 하므로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 그리고 상법 제799조 제1항에 의하면 해상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당사자 사이의 특약은 상법 제794조부터 제798조까지의 규정에 반하여 운송인의 의무 또는 책임을 경감 또는 면제하는 경우가 아닌 한 유효하다.
(2) 원고와 피고는 이 사건 조항을 통하여 화재면책이나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 또는 해상운송인의 책임제한에 관한 상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기로 합의하였으므로, 이러한 합의가 유효하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Ⅳ. 화재면책 규정의 성질
1. 선박화재와 운송인의 면책

운송인은 화재로 인하여 생긴 운송물에 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한다(상법 제795조 본문 후단). 이 화재면책규정(fire clause)은 선박에서의 화재는 거액의 손해를 발생시킨다는 점, 과실의 판정이 곤란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한다.4) 여기서 '화재'란, 운송물의 운송에 사용된 선박 안에 발화원인이 있는 화재 또는 직접 그 선박 안에서 발생한 화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육상이나 인접한 다른 선박 등 외부에서 발화하여 당해 선박으로 옮겨 붙은 화재도 포함된다.5)
 

2. 임의규정
판례6)는, “구 상법 제789조 제2항 제1호 소정의 사고에 의한 손해라도 운송계약 당사자 간의 운송도중의 사고 발생으로 인한 화물의 피해변상책임에 관한 특약에 의하여 구 상법 제788조 제2항 소정 선박소유자의 면책규정의 적용이 배제되고, 약 2개월의 경험밖에 없는 항해사는 안전항해 능력이 부족하므로 그의 항해상 과실로 인한 사고에 대하여 선박소유자는 구 상법 제787조 소정의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항해과실에 의한 면책규정을 임의규정으로 보아 당사자 합의로 위 규정을 배제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판시하였다.
 

3. 대상사안의 경우
이 사건 조항에는 상법상 화재면책규정을 배제한다는 명시적인 표현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위 조항에 의하면 운송 과정에서 발생한 외적 요인에 의하여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피고가 책임을 부담한다고 규정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조항에 따라 상법 제795조 제2항의 규정(화재면책조항)을 배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위 규정이 임의규정에 해당하는 이상, 당사자 사이에 면책조항을 배제한 것은 유효하다.
 

Ⅴ. 선박소유자와 해상운송인의 책임제한 규정
1. 임의규정

선박소유자와 해상운송인의 책임을 제한하는 규정은 아래와 같은 점에 비추어 보면, 임의규정이므로 당사자의 합의로 이를 배제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1) 상법 제769조 본문은 그 규정 형식과 내용 및 입법 취지 등에 비추어 임의규정으로 보아야 하므로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임의규정성). 운송인의 책임제한이나 선주유한책임의 책임배제에 관한 해석은 동일한 원리에 의하여 규율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양자 모두 당사자의 약정으로써 책임제한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 상법 제799조는 상법 제794조부터 제798조까지의 규정에 반하여 운송인의 의무 또는 책임을 경감·면제하는 당사자 사이의 특약만 무효로 하고 있으므로(편면적 강행규정성), 그 반대해석상 운송인의 책임제한을 배제하거나 책임제한액을 가중하는 당사자 사이의 특약은 유효하다.7)

(2) 상법상 선박소유자와 운송인 등에 대한 책임제한의 목적은, 해상운송 과정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과 그 손해발생에 대하여 선박소유자 등에게 무한책임을 지우는 대신 그 책임을 제한함으로써 해상운송업을 보호하려는 정책적·연혁적인 이유 이외에,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을 제한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둠으로써 화주에게 배상액의 최저한을 보장하는 것에도 있다.8)

(3) 선박소유자 유한책임에 관하여는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절차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집단적 채무청산절차에 들어가게 되지만, 위 법률에 따른 책임제한절차가 개시되고 나아가 조사절차에서 제한채권으로 확정되더라도 제한채권 확정의 효력은 책임제한절차 내에서만 미칠 뿐이므로, 채권자는 책임제한절차와 상관없이 채무자를 상대로 한도액의 제한 없이 책임을 추급하는 개별적인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또한 별도의 소를 제기한 채권자는 책임제한절차에서 배당표에 대한 이의신청기간이 지나기 전에 자기의 신고채권에 관하여 절차 외 소송이 계속 중인 사실을 증명하여 배당 유보의 신청을 할 수 있고(위 법률 제70조, 제71조 제1호), 그 후 절차 외 소송에서 책임제한 배제사유의 존재를 주장·증명함으로써 당해 채권이 비제한채권이라는 판결 등이 확정되면 선박소유자 책임제한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채무자의 일반재산에서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9)
 

2. 이 사건 조항이 책임제한 규정을 배제하였는지 여부
(1) 처분문서의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법원은 그 기재 내용을 부인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 한 그 처분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고,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그와 같은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10)

(2) 원고는 차량 탁송업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이고, 피고는 해상 운송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로서 자본금의 규모가 서로 동일하다. 또한 이 사건 계약은 약관에 의하여 체결된 것이 아니라 법인인 원·피고 사이의 개별적인 약정에 터잡아 체결된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계약은 원고와 피고가 서로 대등한 지위에서 체결된 것이다. 이 사건 조항을 통하여 피고는 이 사건 선박으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약정하였고,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특정하였다. 따라서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 조항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목적은, 피고가 원고로부터 운송을 의뢰받은 자동차에 대하여 이 사건 선박의 운송 중 발생한 일체의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는 것에 있다.

(3) 따라서 원고와 피고는 이 사건 조항을 통하여 상법상 책임제한규정의 적용을 배제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피고의 책임제한 주장을 배척한 대상판결의 결론은 타당하다.
 

Ⅵ.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i) 상법 제769조 본문은 그 규정 형식과 내용 및 입법 취지 등에 비추어 임의규정으로 보고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선박소유자 등의 책임제한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고, (ii) 상법 제799조 제1항에 의하면 해상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당사자 사이의 특약은 상법 제794조부터 제798조까지의 규정에 반하여 운송인의 의무 또는 책임을 경감 또는 면제하는 경우가 아닌 한 유효하다고 판시하여 편면적 강행규정으로 보았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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