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 그는 과연 선원 출신 인가

-차례-
[1] The Tempest(폭풍)
[2] 셰익스피어의 생애生涯
[3] 로마국이 무대인 희곡들
-해양 강국 베네치아가 무대인 「베니스의 상인商人」 
-줄리어스 시저 쪾로미오와 줄리엣

[4] 바이킹 강대국, 덴마크가 무대인 「햄릿」
[5] 셰익스피어의 바다
[6] 영원히 살아 있는 My Gentle Shakespeare


[그림2] A호의 선수 손상부 모습
[그림2] A호의 선수 손상부 모습
[4] 바이킹 강대국, 덴마크가 무대인 「햄릿」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은 희극, 역사극, 비극 등의 희곡과 시작품詩作品으로 나눈다. 「햄릿(Hamlet)」은 4대 비극(가정비극 오셀로 Othello, 정치비극 맥베스 Macbeth, 모든 모순을 집대성한 비극 리어왕 King Lear 등) 중에서 첫째로 손꼽히는 성격비극으로 주인공 햄릿은 <과도하게 내성적內省的이므로 행동이 따르지 않는 성격-행동 못하는 의지> 때문에 「햄릿型」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사색思索이나 회의懷疑의 경향이 세고, 결단이나 실행력이 약한 성격 유형의 사람을 일컫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돈키호테型(Don Quixote型)」은 현실을 무시한 독선적인 정의감에 이끌려 이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성격의 인물형을 말하는데,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Cervantes 1547~1616)의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인 돈키호테에서 유래한다. 사고형思考型, 행동형行動型이라고도 한다. 세르반테스도 2016년 올해에 서거 400주년을 맞았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선왕先王의 망령이 나타나 「나의 아우 클로디우스(Claudius)에게 살해되어 왕위와 왕비를 빼앗겼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복수를 맹서하고 피를 부르는 복수비극(revenge tragedy)이 벌어지는데, 주인공 햄릿도 결투장에서 마지막 복수를 끝내지만 독검毒劍에 찔려 죽는다. 친우인 호래이쇼(Horatio)와 고별하면서 이 사건을 세상에 알려주기를 부탁한다. 그래서(등장인물이 차례차례 죽어가지만) 호래이쇼만 살아남게 된 것이다. 마지막 대사는 「죽은 자는 말이 없다(The rest is silence)」. 호래이쇼를 통해서 이 비극의 전말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끝을 맺는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번역된 잘 알려진 유명한 대사다. 영어의 어법語法에서 부정사不定詞(Infinitive)는 <절박감切迫感>을 나타냄으로, 절박감에 사로잡혀 있는 햄릿의 성격을 잘 나타낸 이 짤막한 대사는 알맞은 표현법 때문에 높이 평가를 받고 있는 명문장이며, 고민, 미래, 신세계에 대한 질문 등으로 시대를 초월한 영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말이다. 1960년대에 미극에서는 「TV or not TV, that is the question.」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일방통행적인 텔레비전 시청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교육적인 경고 문구일 것이다.

상인商人의 항구 도시 코펜하겐에서 30분가량 기차로 달리면 바이킹 전성시대의 덴마크 수도, 로스킬래(Roskilde)에 당도한다. 이곳에는 바이킹선 박물관이 있고, 인양한 침몰 바이킹선의 복원과정도 견학할 수 있다. 덴마크는 8세기~11세기까지 북구北歐 3개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바이킹의 국가였다. 「햄릿」의 무대가 덴마크였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8세기~11세기경 영국에 침입한 덴마크 사람, 데인(Dane)은 잉글랜드의 동·남 해안을 자주 내습했다. 앵글로색슨(Anglo-Saxon) 7국 연합(The Heptarchy)은 북·동부 지역에 Danelaw(데인인의 법)가 지배하는 지역을 인정했다. 영국과 덴마크는 언어학言語學적으로 사촌간이며 영문법英文法의 대학자 Otto Jespersen은 영국인이 아니라 바이킹의 후예 덴마크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바이킹 강대국의 왕실을 무대로 「햄릿」 극본을 썼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과연 덴마크에 가본 일이 있었을까? 「햄릿」의 무대인 엘시노어城에 대하여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나 알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선원 출신설船員出身說을 주장하는 연구가들은 덴마크, 이탈리아 등, 유럽의 여러 곳이 연극의 무대가 되어 있고 그 배경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들을 고려하여 그의 해상 경험, 그것도 당시로서는 원양 항해의 경험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5] 셰익스피어의 바다
셰익스피어의 바다 인유引喩(allusion)는 매우 생생하고, 힘이 넘쳐 흐르고, (「템페스트」의 첫 장면에 나오는 돛 다루기-sail handling-에서처럼) 해상 항해 전문지식은 매우 완벽하므로 해상 직업 경험(그것도 아마 장기 외양外洋 항해에서의 경험)을 했음에 틀림없다고 평하는 측도 있다. 그 점을 너무 역설하다 보면 그의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과소 평가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해양 문화(maritime culture)의 마음 가짐으로 글을 썼다는 점이다. 전쟁, 상업, 탐험, 식민지 확장 등의 주 무대主舞臺가 바다인 민족의 선박, 선원의 도시, 그리고 간만이 큰 강어귀의 뚝에서 살면서, 당시의 위대한 항해가들, 롤리(W. Raleigh)와 드래이크(Drake)와 같은 항해가, 탐험가들을 만나 말을 걸 수 있는 처지에 있었다.
바다의 아이디어는 그가 살던 시대의 문화를 통해서 발산했듯이 셰익스피어의 바다는 희곡을 통해서 발산한다. 그런데도 정면으로 직면하는 바다는 그의 작품 세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16세기의 영국인의 생활 특징은 바다와 선박 운용船舶運用의 언어 생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에서 유래由來하는 일상 어구語句 사전(Ship to Shore: A Dictionary of Everyday Words and Phrases Derived from the Sea)」의 저자 Peter D. Jeans는 사전 편찬의 취지에서 「우리들이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 중에는 과거의 해사용어海事用語나 그것에서 유래한 말과 표현이 놀라울만큼 많이 들어 있다. 영어는 특히 비유比喩가 풍부하고, 그러한 것들은 해사용어나 해상의 관습, 전통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이 많다」고 기술하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그때그때 사용한 인유적引喩的 표현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대 영어에는 바다에서 나온 말들이 포함되어 있고, 무의식적으로 일상 영어(Colloquial English)에서 사용하고 있다.

선원들에 의해서 선적船積되어 전세계의 낯선 항구를 돌면서 파도와 바람으로 다져진 어구語句라는 화물을 싣고 돌아와 육상에 내려놓고 사람들의 일상 언어에 소금기와 물보라를 뿌린 짠 바람이 스며들은 일상 영어 속의 바다의 말들!
설사 셰익스피어가 선원 출신이었던 아니었던 간에, 혹은 바다에 나간 일이 있었던 없었던 간에, 그가 사용한 용어(terms)는 해상용어(Sea Language)를 사용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해상용어를 창시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바다는 「the silver sea, the triumphant sea, the hungry sea, the sea of glory, the boundless sea, 맥베스의 두 손을 피투성이로 물들인 the multitudi
nous seas」라고 한마디로 요약된다. 찬란하게 빛나는 비현실주의적 성질을 지닌 바다라고나 할까.
 

[6] 영원히 살아 있는 My Gentle Shakespeare
영국의 국왕과 귀족, 그리고 영국 사회가 셰익스피어라는 천재를 탄생시켰다. 그가 활약했던 시대적 배경은 어떠했는가. 영국을 대제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의 군주 헨리 8세와 아들을 낳지 못해 참수斬首된 Anne Boleyn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즈 1세 여왕(1533~1603)이 즉위한 1558년부터 서거할 때까지, 여왕의 치세治世 중에 문학은 발전하여 황금시대를 열었는데 「Elizabethan Literature」라고 불렀다. 엄밀히 말한다면 1580년경부터 1620년경까지의 문학을 말하고, 영국의 르네상스라고 일컫는데 셰익스피어의 생애生涯에 해당한다. 여왕 즉위 후 종교, 경제, 외교 등 치정治政의 눈부신 발전을 하면서 1588년에 당시의 최강국 스페인의 무적함대無敵艦隊(The Invincible Armada)를 격파하고 국력을 크게 발전시켜 부왕의 뜻을 이루어 근대 국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한다.

여왕은 연극, 음악을 즐겨서 문예의 후원자(patron)였다. 엘리자베즈 왕조 시대에 영국문학의 황금시대를 맞게 되었으나 왕성한 번역 문학이 그 기초가 되었는데, 셰익스피어 연극의 재원材源으로 중요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비롯하여 엘리자베즈 왕조 연극이 성립되면서 영국 연극사상英國演劇史上 뿐만 아니라 세계 연극사상에서도 보기 드믄 풍성한 시대였다. 여왕시대는 영국의 르네상스가 찬란한 꽃을 피웠을 뿐만 아니라, 바다로 진출한 시대로 해외무역, 식민지 개척 등, 국력을 크게 신장시켜 해외로 확장하게 되고, 이 나라의 정신적 시야가 확대된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으며 해양문학海洋文學의 종주국宗主國의 기틀이 잡혀갔던 시대적 배경이 셰익스피어라는 천재적인 대문호大文豪를 탄생케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셰익스피어의 활동기 이전에는 왕족과 귀족은 래틴어로 글을 쓰고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영어를 재탄생시켰고, 그가 활약한 튜더왕조(Tudor王朝, 1485~1603)시대에 화려하고 유려流麗하며 강력한 영어 표현의 시대를 맞으면서 영문학의 꽃을 피우게 하는 데 그는 크게 기여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많은 명언, 명구, 명문장을 남기고 있어 오늘날 일상 영어생활에서 살아 있다. 영국인들의 가정에서는 성서와 셰익스피어의 작품, 두 가지 책을 상비常備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최후에 4편의 로맨스 희곡을 썼다. 페리클레스(Pericles), 심버린(Cymberline), 겨울밤의 이야기(The Winter's Tale), 그리고 폭풍(The Tempest). 이들 Last Plays의 배경에는 언제나 죽음에서 재생再生으로 이르게 하는 「바다」의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해양국가 영국민들의 사랑을 크게 받고 있는 것이리라.

튜더왕조(Tudor王朝) 시대, 왕족, 귀족, 그리고 영국사회가 개화開花시킨 천재 셰익스피어는 언어가 있는 한 그의 말은 살아 있고, 무대가 있는 한 연극은 상연되는 영원한 대문호. 벤 존슨(Ben Jonson)은 그의 추도시에 「한 시대가 아니라 만대萬代의 사람」이라고 적고 있다. My Gentle Shakespeare! 셰익스피어에게는 Gentle(古語로 기분좋은 상류계급의 사람)이라는 단어가 정착되어 있다. 400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그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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