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민중가수’ 정태춘 작사·작곡, 취입해 히트
 노무현 전 대통령, 신영복 교수 등 추모곡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
강남 길로 해남 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너를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 없이 꾸밈 없이 홀로 떠나가는 배
바람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바람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민중가수’ 정태춘(62)이 작사·작곡·취입한 ‘떠나가는 배’는 한편의 시이다. 노래가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된 경지의 가요다. 음유적 창법,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부른 이 노래는 감흥 이상의 뭉클한 느낌과 떨림을 준다. 이정선 편곡(슬로우락, 4분의 4박자)으로 4분23초 동안 흘러나오는 ‘떠나가는 배’를 듣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음이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만 느리고 서정적인 곡이어서 듣는 이에 따라선 가슴이 시려온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3년에 만들어져 1984년 선보인 정태춘-박은옥 4집 음반 머릿곡으로 실린 이 노래는 민주화를 위해 앞장선 운동권사람들 애창곡으로도 유명하다.

 

서귀포 앞바다 범섬을 향해 가고 있는 배
서귀포 앞바다 범섬을 향해 가고 있는 배

‘떠나가는 배’ 노래 부제목 ‘이어도’
‘떠나가는 배’의 부제목은 ‘이어도’다. 노랫말 속의 떠나는 배는 이어도를 향해 가고 있는 희망선希望船이다. 거친 바다에 홀로 겨울비에 젖고 찬바람까지 안고 기어이 그 섬을 찾아간다. 그곳은 꿈같은 평화의 땅이자 남기고 가져갈 그 무엇도 없는 ‘무욕의 땅’이기 때문이다. ‘파랑도’로도 불리는 이어도는 제주 마라도에서 서남쪽 149km에 있는 큰 수중바위로 제주사람들이 이상향(유토피아)으로 생각하는 섬이다. 정부는 2003년 그곳에 해양과학전진기지를 세웠다. ‘이어도사나’가 제주해녀들이 배를 타고 바다일 나갈 때 부르던 노래로 이별 없는 이상향의 섬이 있다는 믿음의 설화가 전해져온다.

배는 항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뱃고동 힘차게 울리며 부두를 떠나는 배가 피안의 땅에 닿을 때까지 순풍에 돛단 듯 미끄러져간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노래에 스며있다. 그러나 뱃길이 그리 순탄치만 않다. 우리 삶이 그렇듯 칠흑 같은 어둠, 거친 풍랑, 수많은 바다 속의 바위(암초), 얼음 산(빙산), 눈·비를 헤치고 가야하는 등 고난과 위기 없이 가는 배는 없다고 에둘러 노래했다.
그래서인지 ‘떠나가는 배’는 추모곡으로 자주 불린다. 2016년 1월 18일 오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대학성당에서 열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영결식 때 불렸다. 정태춘은 유족,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행사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명복을 빌었다. 노래가 나가는 동안 고인의 생전 영상이 영결식장 벽을 채우자 조문객들 흐느낌이 깊어졌다.

이 노래는 신 교수가 생전에 가끔 불렀다. 2009년 10월 23일 이화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김제동, 신영복 교수에게 길을 묻다’ 강연 때 강연 끝 순서로 ‘떠나가는 배’를 부른 신 교수는 노래사연을 들려줬다. 감옥출소 한 달 전 이 노래 악보를 구해 동료재소자 몇 명과 배워 출소 이틀 전에 불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겸 안장식이 있었던 2009년 7월 10일 김해 봉하마을에서도 이 노래는 흘러나왔다. 정태춘은 그날 주차장 가설무대에서의 추모문화제 때 ‘떠나가는 배’를 불렀다. 행사연출을 맡은 그는 출연진의 한 명으로 무대에 섰다. 가수 조용필도 2003년 1월 부인(안진현) 별세 후 그해 4월 12일 의정부공연을 시작으로 8월 30일 서울 잠실주경기장콘서트까지 이어진 전국투어 때 아내가 좋아했던 ‘떠나가는 배’를 불렀다.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이끈 ‘박종철 사망사건’의 박종철 아버지(박정기)도 가끔 이 노래를 부른다. 막내아들 박종철이 부산에 오면 혼자 익힌 기타를 치며 누나와 함께 ‘떠나가는 배’를 불렀던 게 생각 나 아들이 그리우면 부른다.
 

노래가 실린 정태춘, 박은옥 음반
노래가 실린 정태춘, 박은옥 음반
평택출신 정태춘은 ‘음유시인’, ‘노래투사’
‘떠나가는 배’ 주인공 정태춘은 1954년 10월 10일 평택군 팽성면 도두리에서 농촌가정의 5남3녀 중 7번째로 나고 자랐다. 그는 여백과 울림이 깊은 서정성의 싱어송라이터가수로 ‘음유시인’, ‘노래투사’로 불린다.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로 힘없고 어려운 사람 쪽에 서며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이 여전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거리의 가수’로 노동현장을 누비고 음반 사전검열철폐에 앞장섰다. 결과 1996년 헌법재판소의 ‘가요 사전심의 위헌결정’ 성과를 얻어냈다. 그해 정태춘-박은옥 부부는 민족예술상을 받았다.
2006년 3월 15일 평택시 팽성읍 황새울들에서 있은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땅 수용 반대시위 땐 목을 다치고 2박3일간 유치장신세까지 졌다. 잘못된 사회에 직설적·서정적 가사, 사회참여에 방점을 두고 활동해온 그는 광주를 위한 노래 ‘아! 5·18’도 만들어 불렀다.

19살 때부터 서울 청량리, 돈암동, 미아리 등지에서 2년여 음악다방DJ로 일한 그는 MBC 신인가수상, TBC 가요대상 작가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다. 사라져가는 농촌의 정한(‘에고, 도솔천아’), 도시로 가서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애틋한 마음(‘촛불’, ‘시인의 마을’), 사람의 존재론적 번민(‘북한강에서’)을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그는 음악생활초기부터 ‘북한강에서’, ‘서해에서’, ‘떠나가는 배’, ‘강이 그리워’,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섬진강 박 시인’, ‘수진리의 강’ 등 물과 관련된 노래들을 많이 만들어 불러왔다.

‘정태춘’ 하면 아내 박은옥(59)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부창부수夫唱婦隨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 부부가수다. 남편이 투쟁하면 아내는 현장에서 힘을 보태고, 남편이 세상과의 소통을 끊자 아내도 칩거했다. 평택초등학교, 평택중·고를 나와 1978년 1집 ‘시인의 마을’로 가요계에 데뷔한 정태춘은 1980년 5월 신인가수 박은옥과 결혼해 노래를 함께 불렀다. 둘은 ‘사랑하는 이에게’, ‘북한강에서’, ‘봉숭아’ 등 주옥같은 곡들을 발표하며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전율을 느낄만한 박은옥의 애절한 목소리가 대중들을 잡아끈다. 가수데뷔 37주년을 맞은 이들에게 음악은 뭔가를 나타내는 수단이자 창작욕을 풀어내는 그릇이다. 그 안에 메시지나 독백이 담겼다. 둘은 음악이 연결고리가 돼 만났고 부부를 지켜주는 가장 큰 힘이다. 노래에 ‘서사성’이 담겼다. 환경, 분단, 미군, 5월 광주, 도시빈민 등 시대상황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자주 나온다. 공연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인 곳이나 이슈가 꿈틀대는 현장에 가면 이들 부부를 볼 수 있다.
 

정태춘, 사진과 문학도 전문가
정태춘은 음악 외에도 다른 재주가 많다. 사진가로 데뷔, 2012년 11월 8일~28일 서울 논현동 갤러리 ‘구하’에서 ‘정태춘 사진전?비상구’를 선보였다. 2002년 10집 음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이후 10년 만인 그해 1월 아내를 위한 헌정앨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내기까지 몰두한 것 중 하나가 사진이다. 인터넷에 비실명으로 사진블로그를 만들어 여러 주제의 작품을 올렸다. 2004년엔 ‘노독일처’(실천문학사)란 제목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정태춘-박은옥 사이엔 딸 둘이 있다. 맏딸 정새난슬(36)은 일러스트레이터로 2013년 4월 20일 인디 펑크록밴드 ‘럭스’의 리더보컬(원종희)과 결혼했으나 갈라섰다. 그녀는 2015년 가을 디지털음반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을 발표하며 아버지 대를 이어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