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재단이 주최하고 해양수산부와 한국선주협회가 후원하는 ‘해양문학상’이 지난해 9회를 맞았다. 제9회 해양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작 가운데 대상 ‘쇄빙선’과 은상 ‘Standby All Stations!’를 주최측과의 협의하에 1월부터 3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본호에서는 대상 수상작 ‘쇄빙선’을 실었다. 중편소설인 쇄빙선은 2-3월호에 2회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진영 작가
양진영 작가
70시간이 지났다. 소나(Sonar)는 여전히 잠수정의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다. 백여 미터의 심해에서 사흘을 지새웠으니…… 겨우 석사과정을 마친 여자애가……. 하 대원은 남극 기지에서 자매처럼 지냈던 후배가 걱정돼 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종일 연구용 수중청음기에 귀 기울이고 있지만 구형 기기는 찌찍, 소리만 연발할 뿐. 탐사대장은 정 대원이 피오르 같은 U 자형의 해저 구덩이에 빠졌을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그런 곳은 해조류나 크릴새우의 사체가 퇴적돼 반사파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좀 전에 얼음 두께가 70센티미터였고 내일이면 한계치를 넘을 것 같다는데. 그때는 자력으로 항해할 수 없대요.”

몇몇 동료가 연구실의 귀퉁이에 모여 소곤거렸다. 오전에 대장과 선장이 언쟁했다고 들었다. 이 쇄빙선은 최대 1미터의 평탄빙을 깨며 나아가는 수준이었다. 기온은 영하 20도 내외지만 초속 30미터의 폭풍설이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사오십 도를 넘나들었다. 며칠 더 지체하면 유빙의 두께가 3미터에 이를 것이고 그때는 미국의 대형 쇄빙선이 와야 했다.
“시드니에 정박 중인 그 배가 온다 해도 여기까지 일주일은 걸린대요. 눈발로 시계가 나빠서 비행기도 못 뜨고.”

누군가 걱정스러운 말투였다. 선미에 헬기가 실려 있지만 천지가 하얗게 보이는 화이트아웃 현상으로 운항할 엄두를 못 냈다. 가장 큰 문제는 현 위치인 남위 77도의, 예측 불가능한 기상이었다. 폭풍설이 열흘이나 계속돼 얼음이 6미터를 넘어선 기록도 있었다. 그 경우 가까운 기지에서 구조기가 못 오면 수십 일을 해상에서 지내야 했다. 그것은 상상만 해도 오싹했다. 선실 밖을 쳐다보면 누구나 섬뜩하니까. 
눈보라가 모지락스럽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남극의 초겨울인 5월인 탓에 오후 세 시인데 몇 발자국 앞이 캄캄했다. 기실 바닷물은 조금 얼었다. 그 위에 차곡차곡 눈이 쌓여 빙해가 두꺼워지고 있었다. 깨진 틈새로 물이라도 솟으면 금세 얼어붙어 창검을 꽂아 놓은 듯 서슬이 퍼랬다. 하 대원은 유리창에 핀 성에꽃을 손톱으로 긁어 밖을 내다보았다. 칼바람이 끝났나 싶으면 총탄 같은 싸라기눈이 갈마들며 달려들었다. 극지를 지킨다는 요정이 더 이상 머물지 말라고, 그만 돌아가라고 눈싸움을 거는 것 같았다.

해저는 이보다 덜할 테니까…… 견디기만 해라.
하 대원은 긴장하면 그렇듯 손톱을 깨물었다. 심해잠수정에는 두 명이 하루 정도 사용할 비상식량과 산소통이 구비돼 있었다. 비상시 지침에 따라 내압실에서 움직임과 호흡을 최소화하면 여자 혼자서 사오 일은 버틸 듯싶었다. 한데 하나둘 고개를 젓는 대원이 늘어 갔다. 이미 사망했을지 모른다고 예단하는 승무원도 있을 것 같았다. 3년 전, 침몰하는 배에 부하가 갇혔을 때 남편도 저렇게 고개를 저었을까. 하 대원은 계기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딴생각에 잠겼다. 고속정장이었던 남편은 사건 이후 극심한 우울장애와 사회 공포증을 보였고 지난해 종적을 감췄다.
 

여성치고는 당찬 정 대원이 잠수정을 타려 했을 때 말렸어야 했다. 둘은 1년간 남극의 W기지에서 남방큰돌고래를 연구해 왔다. 해양생물학을 전공한 하 대원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그 물고기에 주목했다. 그것들은 해면동물의 천연 스펀지를 뭉쳐 주둥이를 감싸고 다녔다. 다른 생물의 공격으로부터 입 주변을 지키려는 지혜였다. 유인원이었던 인류가 옷을 고안해 몸을 보호한 것과 같은 원리이다. 도구를 쓸 줄 아는 생명체는 역사상 몇 종 안 된다. 큰돌고래는 석기 같은 기물을 통해 획기적으로 진화한 초기 단계의 인간과 비슷한 양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 포유류를 연구하려 월동 연구대에 자원했고 이삼십 마리의 무리를 꾸준히 관찰해 왔다.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그것들의 본거지에 들어가 행태를 직접 보고 싶다는 정 대원의 청을 들어준 것이 화근이었다. 잠수정이 내려가자마자 폭풍설이 일더니 예정된 시간이 넘도록 떠오르지 않았다. 구형 잠수정은 부력의 원리를 이용한다. 추 같은 부력재를 가득 실어 그 무게로 하강하고 추를 버려 몸체를 가볍게 해 부상한다. 그렇다면 부력재를 버리는 기능에 문제가 있을 법했다. 가라앉은 곳이 초음파 통신을 방해하는지 그녀와 교신하는 수중음향 단말기도 이틀 내내 잠잠했다.   

하 대원은 선교로 올라가 볼까 하고 창 너머를 힐끔댔다. 그곳에서 몇 시간째 탐사대장과 승무원들이 회의 중이었다. 이대로 떠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성이 오갔다는데……. 어제부터 갑판 출입이 금지되었다. 풍속이 초속 30미터를 넘어서면 똑바로 걷지 못하고 바람에 쓸려 간다. 뛰려고 했다가는 되레 돌풍에 휩쓸려 네댓 발짝쯤 나가떨어진다. 기지에서는 폭풍설이 심하면 몇 미터 앞이 흐릿해 대원끼리 로프로 몸을 묶고 다녔다. 더군다나 선상의 체감온도가 영하 40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 온도에서는 쇠막대기를 맨손으로 잡거나 피부가 노출되면 수 분 내에 동상에 걸린다. 영하 50도 이하에서는 목화나 털 같은 자연섬유만 견디고 방한복 같은 인조섬유는 부스러진다. 어쩌다 해치를 열고 내다보면 보온용으로 파이프에 덧씌운 알루미늄 포일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날아다녔다.

휘잉. 검센 바람이 쇄빙선을 통째 삼키려 들었다. 창밖에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발적으로 눈보라가 달려들었다. 영하 70도까지 내려가는, 남극점에 세워진 미국 기지는 십 년이면 눈에 파묻혀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데……. 이 배도 내일 새벽쯤이면 눈에 묻혀 화석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커다란 유빙이 돼 찬 바다를 떠다니거나. 문득, 남극의 어느 해안가에서 보았던, 탐험대가 버리고 간 난파선에 승선한 듯 무서워졌다. 가무잡잡한 통나무 선체와 심하게 부식된 닻. 비운의 범선에 잠들어 있던 유령이 깨어나 구둣발을 쿵쿵대며 다가온다면……. 하 대원은 뜬금없는 상상에 겁먹어 얼른 책상의 도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거기에 오전에 대원들에게 설명한 구조 계획이 그려져 있었다. 돌고래를 이용하자고 했을 때 죄다 얼얼한 얼굴이었다.
 

“탐사 로봇도 못하는 일을 물고기 따위가 한다고?”
대장은 자기도 모르게 거칠게 내뱉으며 하 대원을 응시했다. 돌고래의 지능은 사람 다음으로 높다. 아이큐로 따지면 70에서 80정도로 5세 유아와 비슷하다. 꾸준히 발달하면 인간의 평균 지능지수인 100에 육박할지 모른다. 인류도 아이큐가 60인 유인원에서 진화해 왔다. 그 물고기는 수압과 지느러미를 이용해 휘파람, 비명 등 서른 가지 이상의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다. 끼끼, 하고 우는 것 같은 초음파로 수백 미터 거리의 동료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어느 학자는 그 휘파람은 초기 유인원이 의사소통하기 위해 불렀던 노래 같은 언어라고 본다. 그처럼 탁월한 음파탐지와 의사 전달 능력 덕분에 군사적으로 이용돼 왔다. 미 해군은 범고래를 훈련시켜 기뢰를 찾기도 하고 러시아는 카메라를 장착해 해저 무기를 탐지하는 돌고래 부대를 운용하고 있다. 그럴 때 물고기와 인간의 초보적인 교감이 가능해야 하는데 하 대원은 그 분야에 관심이 높았다.

그래서 주목한 것이 순돌이였다. 다른 돌고래의 평균 주파수가 20헤르츠인 반면 순돌이는 51.2헤르츠만 인식한 탓에 동료와 소통이 불가능했다. 무리를 떠나 홀로 떠도는 것이 가엽기도 했다. 하 대원은 주파수변조기와 청음기를 통해 접촉을 시도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순돌이의 휘파람 소리를 잡아 녹음했다가 수중 스피커를 통해 고유의 주파수로 재생했는데 어김없이 반응했다. 그렇게 아홉 달 동안 정 대원이 훈련시킨 순돌이가 쇄빙선 근처에서 유영하고 있을 것이다. 기지를 떠난 뒤부터 사오 일간 이따금 순돌이의 주파수를 내보냈었는데 그 수컷은 그때마다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주파수변조기를 크레인에 매달아 해저로 내려 보낸다…….”

대장은 될까? 회의적인 눈빛이었다. 하 대원의 계획은 이론상으로는 그럴싸했다. 잠수정은 선수의 25톤 기중기에 의해 입수됐으므로 그 아래쯤 어딘가에 빠져 있을 법했다. 고유의 주파수를 송신하는 변조기를 방수 기기에 넣어 와이어로프로 내리면 순돌이도 따라갈 것이다. 기지에서도 정 대원은 가끔 돌고래의 주둥이 부위에 수중카메라를 부착해 바다 밑으로 보내곤 했었다. 로프를 여기저기 이동시키면 순돌이도 그것을 따라 심해를 떠돌아다닐 터이고 운이 좋으면 카메라에 잠수정이 포착될 수 있었다. 혹여 순돌이가 유리창 너머의 정 대원을 알아보고 바싹 접근해 그녀의 정확한 좌표가 나온다면 구조가 가능할 듯싶었다. 잠수정에는 주변을 비추는 투광기와 로봇팔이 탑재돼 있었다. 또 전지와 모터를 이용해 전후좌우로 회전도 가능했다. 정 대원은 전에도 두어 차례 선임자와 함께 잠수해 기기를 다루어 보았다. 로프가 바짝 다가가기만 하면 로봇팔을 이용해 매달릴 것이다. 잠수정은 2톤 남짓이므로 크레인이 충분히 끌어올릴 법했다. 거기까지 듣고 있던 어느 대원이 무의식중에 웅얼거렸다.

“그건 바다에서 바늘 찾기인데…….”
“동료를 버린 뒤의 나날을 생각해 보셨나요, 악몽에 시달릴 밤들을.”
하 대원은 오전 회의에서 동료에게 쏘아붙였던 말을 되새기며 창가로 다가갔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먹장 같은 어둠과 부옇게 흩날리는 눈가루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비현실적인 세계에 들어선 듯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하 대원은 핏발이 서도록 눈을 비벼대며 얼음에 파묻힌 대양의 흔적을 찾았다.
저 바다를 얼어붙게 만든 빙점. 인간은 누구에게나 빙점이 존재한다.
그녀는 묵시룩에 나올 법한 구절을 암송하며 유리창을 도배한 성에에 커다란 글씨를 써 내려갔다.
『쇄빙.』
분명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내리그었는데 글씨가 비뚤배뚤했다. 똑바르다는 것, 정의롭다는 것, 올곧다는 것은 얼마나 불가해하고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인가. 그것이 빙점이 돼 얼붙은 영혼을 쇄빙하기는 또 얼마나 지난한 일이고…….

유리에 두렷이 각인된 글자에서 살얼음처럼 바삭거렸던 몇 년의 나날과 한순간에 말없이 떠나간 남편이 어른거렸다. 하 대원은 눈의 물결로 달려드는, 폭풍설의 거대한 아가리를 무방비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취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는 것도 모른 채.
 

정 대원과 함께 썼던 선실에는 그녀의 향기가 남아 있었다. 나이는 일곱 살 차이지만 성격이 비슷해 둘은 적적한 W기지에서 자매같이 붙어 다녔다. 스물여덟 살의 뽀얀 피부, 스튜어디스처럼 입꼬리로 짓는 미소, 새하얗고 고른 치아. 정 선아는 질투가 날 만큼 곱살스러운 여자였다. 이대로 죽기에는 아까운.
하 대원은 냉장고를 열고 냉동실에서 아이스박스를 꺼냈다. 그 속에는 선아가 심심풀이로 가르쳐 준 얼음조각이 들어 있었다. 남극에서 풍요로운 것은 얼음뿐이라서 기지에 오기 전에 취미 삼아 배웠다니……. 아직 젊은 후배의 여유가 부러웠다.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채운 하 대원은 책상 서랍에서 소칼, 삼각칼을 꺼냈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조각상을 다듬을 요량이었다. 특별히 마음에 둔 형상이 없는데도 그림책을 따라 조각하다 보면 카이사르의 두상에 이끌렸다. 로마의 지배자였던 그는 친구의 칼에 찔려 죽어 가면서 ‘브루투스, 너도냐?“ 라는 회한을 남겼다. 그 말에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버림 받은 허무감이 짙게 풍겼다. 그것은 남편의 후배가 침몰하는 배에서 느꼈던 감정일까? 하 대원은 조각을 하면서 또 그 상념에 잠겼다. 삼각칼을 움켜쥔 손에 힘이 담뿍 들어간 탓에 퍽퍽 얼음을 파헤칠 때마다 부스러기가 사위로 튀었다.
스스로 쇄빙해야 하는 게야…… 고뇌의 빙점을 벗어날 때까지.

하 대원은 녹아내리는 얼음조각을 가만 품에 안았다, 남편의 얼굴상이라도 되듯이. 차가운 냉기가 스웨터를 파고들어 머리끝이 쭈뼛거렸다. 그래도 조각상을 밀치지 않고 더 힘껏 끌어당겼다. 빙점이 허물어진 얼음은 물기가 보일 만큼 녹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물방울이 가슴을 타고 내리는 동안 다스해졌다. 하 대원은 그 해빙에서 어떤 쾌감을 느꼈다. 미지근한 물이 복부를 거쳐, 사타구니를 지나, 양말까지 적시고 있었다. 그 느낌을 고대로 간직하고 싶어 후배가 잠자던, 2층 침대의 1층 침상에 오롯이 누웠다. 베개에서 그녀가 썼던 화장품 향기가 여태 맴돌았다. 선교에서는 인천의 본부와 교신 중인지 이따금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자국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내일 아침에 출발 명령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남편처럼 절친했던 동료를 남기고 떠나야 하나.
하 대원은 후배의 그림자인 양 누워 잠을 청했다. 창문으로 스며든 탐조등 불빛이 선아의 실루엣을 그리는 것 같았다.
그날 남편의 고속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간간이 보도된 단편적인 사실은, 모두 잠든 새벽에 기관 고장으로 가라앉았다, 아래층 선실에 있던 두 명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 해역의 수심이 깊어 시신 인양이 어렵다 등등.

익사한 수병 중 하나는 남편과 친형제 같은 사이였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외할머니 손에 맡겨진 남편은 조모마저 병들자 자녀가 하나뿐인, 먼 친척 집에 보내졌다. 남편은 중학생 때부터 그 집 아이를 돌보며 학교에 다녔는데 그 애가 사고로 죽은 수병이었다. 그 젊은이가 해군에 자원해 남들이 꺼리는 고속정을 탄 것도 남편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이가 어머니라고 불렀던 수병의 모친은 사고 이후 일체 연락을 끊었다. 그것은 남편을 한없이 아프게 했고 오래도록 괴롭혔다. 어딘가에 숨어 지내면서 그것 때문에 아직껏 아파할지 모르고.

사고 이후 남편은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라는, 그럴듯한 병명의 진단서를 제출하고 장기 휴가를 신청해 집에 틀어박혔다. 누구의 전화도 안 받고 연락하지도 않았다. 위로의 말도 싫고 어떠한 변명도 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아내의 사소한 말에도 버럭 화내곤 했다. 눈과 입을 닫은 남편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는 몸은 살아 있되 의식은 잠든, 곰의 동면을 꿈꾸는 사람 같았다. 간혹 불 꺼진 거실에서 맞닥뜨리면 사유에 초연한 초식동물의 눈동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어떤 날은 하 대원이 퇴근해 돌아올 때까지 잠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런 남편을 지켜보는 아내의 얼굴에는 부쩍 주름이 늘고 눈가가 거뭇해졌다.

남편에게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진실이 있는지 몰랐다. 그 사고의 전후에 어떤 내막이 있지 않을까, 동생 같은 수병을 살릴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막연히 추측할 뿐. 그런 일에서 숨겨진 속사정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남편의 얼굴에는 일종의 분노가,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의 징표가 존재했다. 그 무엇으로도 치환될 수 없는, 그 어느 말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상실감. 그것을 타인이 공감하기는 불가능하다. 이해한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인간의 내면은 너무나 개별적이어서 그런 고뇌는 온전히 개개인의 몫이다. 죄의식도, 자괴심도, 그것을 경험한 사람만 아는 법. 신혼 1년 차로, 꿈결 같은 나날을 기대했던 하 대원은 막막한 눈길로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한동안 남편은 수도하는 성직자같이 무념의 심연에 침잠하려 애썼지만 성자가 아니고서는 삶을 뒤흔든 응어리를 삭이기 어렵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증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부유하는 상념을 무시하려고 해도 깨어 있으면 습관처럼 어떤 기억이 맴돌고 헛소리가 들리는 듯해 두 귀를 막았다. 종내 안마시던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는데 단 몇 방울만으로도 횡설수설했다. 좀 취하면 그 수병과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 함께 자고, 먹고, 다투었던 추억에 대해,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에 대해 주절대며 불가능한 것을 갈구했다. 그런 식으로만 아픔을 치유하고 공허를 메울 수 있다는 듯 술에 집착했다. 허공이 새에게 자유를 준 것처럼 음주는 그에게 망각을 주었으리라. 어느 날 오후, 119의 연락을 받고 다급히 아파트에 들어섰는데 남편이 계단에 쓰러져 있었다. 물을 부어도 깨어나지 못할 만큼 만취한 상태였다. 수염이 뺨 언저리까지 거무스름히 번졌고 초점 없는 동공이 휑했다. 움푹 팬 눈가가 낯설어 저 사람이 과연 내 남자가 맞나? 의심될 정도였다. 형제 같았던 수병에 대한 남편의 고뇌는 이해됐지만 이유도 모르는 자학까지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머리를 식힐 겸 극지에서 두어 달 일하는 하계 연구원에 자원했는데 그 기간에 남편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잠을 설친 하 대원은 부스스 일어나 2층 침대에 붙여 놓은 사진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4년 전쯤 동남아의 신혼 여행지에서 남편과 찍은 사진이었다. 줄무늬 수영복을 입고 환히 미소 짓는 남자의 복근이 눈부시도록 황홀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천국 같은 시절이었다. 사고가 난 뒤부터 남편은 한 번도 자신의 몸을 파고들지 않았다. 남자의 뜨거운 숨결을 잊으려 하 대원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공예 가게에서 파는 장식용 은장도였다. 손바닥이 아프도록 쥐어도 베이지 않았다. 점점 힘을 가해 붉은 자국이 어릿거리면 통증이 느껴졌다. 칼날을 쥐고 있으면 알 수 없는 흥분이 일었다. 그것은 벌거벗은 자신을 격렬히 몰아붙이던 남편의 손길 같기도 했고 그의 품에서 몸부림칠 때의 희열 같기도 했다.

남극에 오기 전까지 하 대원은 남편이 그랬듯이 불면증에 시달렸다. 어떤 날은 아무리 잠을 청해도 눈이 말똥했다. 홀로 잠드는 침대는 사막처럼 황량했고 빈방이 뿜어내는 냉기에 질려 이불을 둘러쓰곤 했다. 그러다 보면 가사 상태에 빠진 듯 깜박 꿈을 꾸었다……. 여자는 후줄근히 젖은 남자와 맨바닥에 누워 있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면 남자의 몸이 얼음같이 차갑다. 얼굴을 보려고 끌어당겨도 바닥에 얼어붙은 양 움쩍도 안 한다. 무섭고 당황스러워 깨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용기를 내 남자의 어깨를 젖힌 순간 얼음장 같은 머리통이 툭,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악! 소리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그런 날은 도저히 방에 머무를 수 없어 아무 옷가지나 주워 입고 허겁지겁 뛰쳐나갔다. 가로등 불빛마저 희미한 주택가 골목은 오래된 고분처럼 적막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져 생매장된 느낌이었다. 그런 상념에 떨다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고꾸라져 잠들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으려 작심한 듯 미동도 없이.
 

얼마나 잠들었을까. 자그만 쪽창 너머로 햇살이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비몽사몽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역시 20대의 젊은 연구원인 혜수가 탐사대장의 지시 사항을 전했다. 하루 동안만 더 머물며 정 대원을 구출해 보겠다고 대장이 본부를 설득한 모양이었다. 자력으로 항해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해 대형 쇄빙선인 미국의 폴라스타나 중국의 쉐룽호를 섭외 중이라고 했다. 하 대원에게는 기기를 준비하고 그 돌고래가 배 인근에 있는지를 확인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두툼한 옷가지를 닥치는 대로 챙겨 입고 해치를 나서는데 밤새 폭풍설이 수그러들었는지 눈발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바로 앞의 물체도 흐릿했던 간밤과 달리 수백 미터 전방의 빙산까지 보일 정도로. 하지만 바람은 여전히 그악스러워 방한복에 떨어진 눈이 금방 얼어붙어 서걱거렸다. 아직껏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는 될 법했다.

아! 먼발치를 쳐다보던 하 대원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세 개의 태양이 하늘에서 빛나고 있었다. 환일幻日은 빙원에서 공기 중에 떠다니는 얼음의 결정에 햇빛이 굴절돼 나타난다. 밤새 영하 사오십 도를 넘나들었으니 눈이 땅에 닿기도 전에 얼음 알갱이가 돼 허공을 채웠을 것이다. 둥근 고리 같기도 하고 후광 같기도 한, 두 개의 가짜 태양이 이방인들을 놀리듯 떠 있었다. 극지에서만 볼 수 있는 천체의 경이는 누구 말마따나 넋을 빼앗을 만했다.

새하얗게 반짝이는 빙해는 얼음 갑옷을 걸친 전사들이 도열한 듯 위압적이었다. 바다는 어는 동안에 수시로 파도가 밀려와 출렁인다. 그러면 살얼음이 깨지고, 그 틈새로 물이 솟고, 순식간에 얼어붙은 물 위로 파도가 덮치고…… 하다 보면 은빛 창검이 횡대로 늘어선 모양새였다. 그런 열이 수십, 수백 개가 나열된 광경은, 남극의 신이 부리는 얼음 군단이 쇄빙선을 포위했다고나 할까.
시간이 소멸된 만년빙, 회한 같은 감정이 없는 바다.

하 대원은 죽음과 삶의 경계마저 사라진, 현세와 내세의 중간쯤을 떠도는 듯한 환각에 빠져 떠오르는 문장을 암송했다. 남극도 중생대까지는 곤드와나대륙이라고 불리는, 동식물이 무성하고 온난한 육지였다. 혹한기가 시작되면서 울창했던 활엽수는 지층에 묻혔고 땅은 만년설로 뒤덮였다.
수천만 년 전에 생명체가 겪었던 기억은 냉동돼 저 바닷속 어딘가에 묻혀 있을 터인데……. 그것처럼 남편을 괴롭히는 후회감도 얼붙어 깨어나지 않았으면.
얼토당토않은 상념에 젖어 머뭇대는 선임자를 후배가 다급히 불렀다. 퍼뜩 정신이 돌아온 하 대원은 연구실로 통하는 계단을 서둘러 올랐다. 

저 정도면 얼음의 두께가 이 쇄빙선의 한계인 1미터를 넘었을 텐데…….    
하 대원은 자신의 고집으로 동료들이 고립된 듯해 불안해졌다. 얼음이 15센티미터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고 50센티미터면 경비행기의 착륙이 가능하다. 그토록 두꺼운 빙해에 갇혀 스스로 항해할 수 없는 배에서 사고라도 일어나면 큰일이었다. 추위에 약한 체질은 영하 20도 이하에 장시간 노출되면 급성 맹장염에 걸릴 위험이 있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남극에서는 그 병이 많아서 다른 나라의 연구원이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추위를 타는 대원에게 의사는 남극에 가기 전에 맹장을 수술하도록 권하기도 한다. 누군가 그 병에 걸리면 헬기도 못 뜨는 상황에서 생명이 위독해진다.

그런 중병이 아니어도 혹한에 오래 머물면 위험해진다. 어젯밤부터 한두 대원이 몸을 떨고 말이 어눌해지는 저체온증을 보이고 있었다. 남극에서는 매일 3600칼로리를 섭취하는 스키 선수보다 더 많은 열량이 소모된다. 며칠 동안 극심한 추위와 스트레스에 시달린 대원들이 온전할 리 없었다. 폭풍설을 무릅쓰고 바깥에서 작업하던 어느 승무원은 방수복 안까지 파고든 얼음 조각이 녹는 바람에 사시나무 떨듯해 의무실에서 치료 중이라고 들었다. 혹여 병세가 악화되면 동료 구출을 명목으로 항해를 지연시킨 자신에게 비난이 집중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느긋할 수 없었다. 변조기로 다가간 하 대원은 서둘러 순돌이를 부르려 51.2헤르츠의 주파수를 내보냈다. 돌고래는 인간, 침팬지와 함께 타자와 감정을 공유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들은 다른 개체의 행동을 이해하는, 거울뉴런이라는 공감 세포를 지니고 태어난다. 즉, 원초적인 감정을 가진 셈이다. 그러다 보니 수족관에서 사육되는 돌고래는 조련사와 친해지면 한 몸같이 어울린다. 어느 여성은 오래 호흡을 맞춘 수컷이 자신의 손, 발, 목을 핥으며 스킨십을 나눈다고 고백했다. 또 관중이 성가시게 굴면 돌고래의 눈빛이 사나워지는데 그것은 명백한 짜증의 징표라고 말했다.

돌고래, 범고래 등은 주파수를 활용한, 그들만의 언어가 있고 인간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이 여러 실험으로 증명됐다. 대서양에 사는 알락돌고래는 새끼가 죽으면 가라앉지 않도록 등에 떠받들고 헤엄쳐 다닌다. 수족관에 사는 돌고래는 종종 자살과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포유류인 고래는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해야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끝끝내 물속에 머물다 죽곤 한다.
지난 아홉 달 동안 숱하게 마주친 순돌이도 지능적인 행태를 보였다. 열네 살의 수컷인 그것은 입이 비뚤어진 기형인 탓인지 무리와 어울리지도 않았고 누군가의 접근도 꺼렸다. 사람으로 따지면 청소년기인 순돌이는 일종의 자폐증을 앓고 있는 듯싶었다. 맛있는 생 오징어를 수십 마리씩 던져 주어도 상대방에 대한 경계가 지나쳐 먹다, 안 먹다를 되풀이했다. 본디 동물을 좋아하는 정 대원이 두어 달이나 극진히 보살핀 뒤에야 친근감을 보이더니 나중에는 거침없는 스킨십까지 요구했다.

순돌이가 따라다니는, 스무 마리 남짓의 남방큰돌고래는 놀라운 진화 능력을 보였다. 그들은 해면 스펀지로 주둥이를 보호하는 등 도구 사용법을 알았다. 호기심이 발동한 하 대원은 지방산 조직 샘플을 추출해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았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스펀지를 이용하는 순돌이 무리와 다른 돌고래의 생체 구조가 아주 달랐다. 순돌이의 후예는 수천, 수만 년이 지나면 인간같이 지혜를 가질지도 몰랐다. 아프리카에서 기원된 현생인류도 여러 유인원 중에서 유일하게 도구를 쓸 줄 아는 종이었다. 그동안의 행동 양상으로 보건대 잠수정의 창문 너머로 정 대원을 알아챈다면 순돌이는 그녀가 위험에 빠진 것을 감지하고 다가갈 듯싶었다.
 

크레인이 서서히 선수 쪽으로 회전해 줄을 늘어뜨렸다. 그 끝에, 방수 기기에 밀봉된 주파수변조기를 넣어 해저로 내릴 셈이었다. 그러면 그 소리에 이끌려 순돌이도 심해를 유영할 것이다. 하 대원은 선측에 설치된 트랩을 타고 내려가 조디악 보트에 올라섰다. 깨진 얼음 사이로 떠오를 순돌이의 머리에 수중 카메라를 장착해야 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유리 조각처럼 섬뜩한 유빙들로 뒤덮여 있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크기가 자그마한 것도 있지만 큰 것은 집채만 했다. 어떤 것은 거인의 얼굴 같았고 어떤 것은 난파한 범선의 형상이었다. 어느 전능한 존재가 자연의 순리를 거부하는 쇄빙선에게 경고하는 느낌이었다.
바다는 온통 얼음 천지였지만 헬기에서 보면 구멍이 많을 것이다. 유빙이 빙해 아래로 흐르는 해류에 흔들려 끊임없이 균열을 만들고 있었다. 해표가 얼음을 갉아 숨구멍을 내기도 하고 칠팔 미터에 달하는 범고래는 1미터 두께의 해빙을 단번에 깨뜨리고 수면으로 떠오른다. 그렇게 생긴 틈새로 순돌이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쇄빙선의 선수에 설치된 아이스 나이프가 둔탁한 프로펠러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자 해면을 덮은 얼음판이 쩍쩍 소리를 내면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고글과 방한 마스크를 썼지만 죽음의 고드름으로 불리는, 브리니클이 일으키는 냉기가 면도날처럼 얼굴을 할퀴었다. 겁먹은 하 대원은 비상 손잡이를 움켜쥐고 보트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남극의 바닷속은 염분 덕분에 밖의 온도와 무관하게 영하 2도쯤을 유지한다. 구멍이 뚫려 그 물이 영하 이삼십 도의 대기에 닿으면 드라이아이스만큼 차디찬 고드름이 순식간에 형성되고 해양 생물은 스치는 족족 즉사한다. 만에 하나 보트가 뒤집혀 브리니클 덩어리가 떠다니는 바다에 빠지면 그야말로 위험해진다. 맨몸을 빙수에 담근 셈이니 저체온증으로 몇 분만에 사망할 수 있었다.

눈꽃바람이 나선을 그리며 비상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퍼렇게 멍든 바다와 남극의 신이 찔러 놓은 듯한 은빛 창검뿐. 죽은 크릴새우 떼가 풍기는 비린내가 머리칼처럼 흩날리고 굶주린 도둑갈매기가 끼룩끼룩 먹잇감을 찾아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숨 막힌 파도가 얼음 파편 사이로 솟구칠 때마다 상처 입은 고무보트가 뿌드득뿌드득 이를 갈았다. 해류를 타고 오르내리는 하 대원은 꿈꾸는 것 같았다. 지난 몇 년간 자신이 맞닥뜨린 숙명이, 남편을 얼붙게 만든 빙점이 꿈속의 일인 양 가마득했다. 신혼이 끝나기 전에 몰려온, 운명의 장난질이 야속하다 못해 잔미웠다. 남빙해의 냉혹한 한기는 해수보다 짜다는 눈물까지 얼리는가. 성에꽃이 만발한 고글 안에서 하 대원은 차라리 눈을 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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