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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예/ 제 9회 해양문학상-은상(수필부문)
Standby All Stations!
[508호] 2015년 12월 29일 (화) 14:29:41 이재영 komares@chol.com

한국해양재단이 주최하고 해양수산부와 한국선주협회가 후원하는 ‘해양문학상’이 지난해 9회를 맞았다. 제9회 해양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작 가운데 대상 ‘쇄빙선’과 은상 ‘Standby All Stations!’를 주최측과의 협의하에 본호부터 3월호까지 3회에 걸쳐 연재한다.
3등 초임 기관사가 실감나게 기록한 이재영 선원의 승선담 ‘Standby All Stations!’를 연재의 첫 순서로 게재한다. 이 작품은 초임 선원이 가족과 떨어져 원양을 항해하는 큰 선박에 승선하기전 갖게되는 두려움과 설레임, 긴장감 등 복잡한 심경과 실 승선생활에서 겪게 되는 기관사로서 애환과 그를 기반으로 사회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단면이 잘 표현돼 있다. 젊은 선원이 부족한 해운계의 현실 속에서 우리나라 청년이 승선생활에 잘 적응해나가기를 응원하는 측면에서 우선 게재했다.                                                                     -  편집자 주-

   
이 재 영
3등 기관사
(한국해양대학교 4년 재학생)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날이 오고야 말았다. 내일이면 초임삼등기관사로 GLOVIS CHAMPION호에 승선하게 된다. 이맘쯤에 나갈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회사 측에서는 겨우 이틀을 남겨두고 승선일자를 알려줬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것들도 많은데, 조금만 더 일찍 알려줬을까 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내가 일할 자리가 있고, 어디에선가 나를 불러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우선 감사하기로 한다. 약 2년 전... 실습할 당시에, 첫 승선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2년이란 시간은 꽤나 긴 시간인데, 여전히 첫 승선 때 느꼈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군대에라도 끌려가는 마냥, 엄청난 긴장감의 압박... 그래도 그 때는 조금의 설렘이라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외국항에 정박하여, 상륙도 하고, 짧은 시간의 여행도 가질 수 있을까...하는.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다르다. 그런 설렘은 온데 간데 없고, 그냥 엄청난 긴장감, 압박감과 함께,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혹시 사고라도 치는 것은 아닌지 등등... 온갖 걱정만이 앞선다. 그렇게 나는 떠나고 싶지 않은 우리 집에서 마지막 잠자리에 들었다.

승선지는 광양, 터미널에 집합하라는 공지가 있었다. 혼자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부모님께서 계속 태워주시겠다는 말씀을 쉽사리 뿌리칠 수는 없었다. 앞으로 반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함께 하지 못 할 것이기에, 나는 그 애절함과 아쉬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광양에서 지내고 계시는 이모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잘 하고 오겠다고, 이미 해봤기에 그렇게 떨리지는 않는다고 태연한 표정으로 가족과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긴장감 속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은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터미널로 향했다. 이미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있다. 선장님과 3등항해사, 조리장, 그리고 실습기관사, 항해사들이었다. 우선 선장님께 먼저 찾아가, 간단히 소개를 하고, 3항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조리장님도 첫인상이 좋았고, 실항기사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씩씩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사람들은 다들 좋아보였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부모님은 선장님이라는 소리에, 먼저 악수를 청하며 우리 아들 잘 부탁드린다며 깍듯이 인사를 하셨다. 우리 부모님이 저렇게 까지 공손히 인사를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각종 수속절차를 마치고, 드디어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GLOVIS CHAMPION호와 마주했다.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설렘이나 자신감이 아니라 걱정만 태산이라 더욱 걱정이었다. 그래도 이왕 하는 것 씩씩하게 잘 해보자는 마음으로, 기관장님, 1기사님, 2기사님에게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드렸다. 하지만 각종 업무로 너무나 바쁜 한국이었기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나와 교대될 3기사를 따라다니며, 각종 기기들의 상태, 점검 방법, 또 서류들 관리하는 법 등을 인수인계 받았다. 인수인계는 3일에 걸쳐 이루어 졌으며, 내게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걱정이 태산인데,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지니 더 두려워졌다. 그렇게 칼같이 시간은 흘러갔으며, 나와 교대되는 3기사는, 정말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내 곁을 떠나갔다. 이제 아무도 없다. 나 혼자서, 스스로 내 일을 치고 나가야한다. 옆에서 조언을 해줄 사람도, 도움을 줄 사람도 없다. 실습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내게 책임이라는 무거운 돌덩이가 내 어깨를 누르고 있었고, 그 중압감은 상당했다. 승선한지 얼마나 됐다고, 하선하는 3기사가 너무 부러웠다. 과연 내게도 저런 날이 올까 하는 생각만 계속 들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항해는 시작되었다.

한국에서의 바쁜 일정이 마무리된지라, 다들 약간의 여유가 생겼는지, 다들 새로운 멤버인 내게 관심이 많다. 기관장, 1&2기사님이 집은 어딘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실습 때는 어땠는지, 그리고 요즘 육상에서는 어떤 일이 이슈인지, 뭐가 유행인지 등등... 끊임없이 물어봤다. 다 친절히 답변해주기는 했지만, 마음한편으로 뭔가... 편하지가 않다.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상사로서, 나의 인사고과점수를 매길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편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매순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 알아가다 보니, 1기사는 같은 학교에 같은 동아리 선배였고, 2기사도 같은 학교선배였다. 그렇기에 먼저 친절하게 다가왔었고, 실수해도 무작정 혼내기 보다는 제대로 교육시키는데 열정을 가지신 분들이었다. 그렇게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이 조금씩 풀려갔다. 물론 약 2년만의 승선이고, 까먹은 것들도 많지만, 그래도 다시 보니 어렴풋이 생각이 되돌아 왔고, 적응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할 만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항해를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 모든 것들이 마치 나의 집인 것 마냥 너무 익숙해졌고, 갖은 실수로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많이 배우고 경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곧 있으면, 유럽이다. 혹시 상륙이라도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설렘이 생겼었지만, 상륙은 무슨... 하루에 한 포트는 기본이고, 심지어 세 번까지 스텐바이를 해야 했다. 수면시간과 휴식시간이 너무나도 불규칙했기에, 모든 사람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또 날카로운 상태였다. 원래 오후 4시 45분 정도에 일과를 마치는 것이 보통의 경우이지만, 오늘 밤 8시, 영국 사우스햄튼 항구에 입항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전에만 과업을 실시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잠시 한숨을 붙인 후,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기관실으로 향했다. 내가 점검해야 할 각종 기기들을 점검한 후, 보일러를 점화하기 위해서 보일러 앞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관리도 잘 해왔고, 여태껏 말썽 한 번 일으키지 않았던 보일러가, 점화가 안 되는 것이었다. 곧 있으면, 엔진을 멈추면서 배기가스 보일러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데, 보조 보일러가 점화가 안 되면 선내에 필요한 스팀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게 되고, 이는 전체적인 문제로 커질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 내가 아는 한에서 모든 조치를 취해봤지만, 비상점화방법을 사용해도 점화가 안 됐다. 도대체 어느 계통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큰일 났다는 생각에, 긴장감만 커질 뿐, 해결방법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 때, 1기사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며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내려왔다. 이곳저곳 살펴보더니, 아마 불꽃감지기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새로운 것으로 하나 가져오라고 했다. 그런데, 스패어가 없다... 이렇게 시간을 끌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소각기에 있는 감지기를 대체로 사용하여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다시 생각하기 싫은 그런 급박하고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었었다.
 
컨트롤룸 안에서는, 내 기기에 관한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소리를 들었다. “야, 3기사야. 네가 실기사도 아니고, 배탄지 한 달도 넘은 놈이 자꾸 실수나 하고, 도대체 언제 혼자서 치고 나갈 거냐?” 1기사가 다소 격양된 어조로 나무랐다. 겉으로는 죄송하다고, 잘 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잘 모르겠다.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그렇게 입항은 무사히 진행되었고, 스텐바이 시간이 상당히 길었기에 접안하자마자 일과를 마무리 하였다. 방에 돌아오니 새벽 2시. 하...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는 구나 싶었다. 7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도 못 먹은 채로 기관실로 향했다. 밤늦게 작업이 끝났기 때문에, 오전에는 쉬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별다른 기관장의 지시가 없었다. 실습 때는, 오버타임 시에 확실하게 쉬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하역시간도 짧고, 엔진 정비 할 시기가 되었기에 어쩔 수 없나 보다 싶었다. 오늘은 1기사와 함께, 메인 엔진 실린더 라이너와 피스톤&피스톤링을 점검하는 작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1기사의 지시에 따라 피스톤을 위아래로 수동조작하면 되는,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둘의 호흡이 잘 맞아야 신속하게 작업을 종료 할 수 있었기에, 긴장하고 작업에 임했다.

1기사는, 나중에 너도 다 하게 될 일이라며, 점검 포인트를 알려주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감사할 무렵, 1기사가 내게 소리쳤다. “야! 삼기사! 삼! 야 이 새끼야 뭐 하는거야? 누가 피스톤 올리라했냐, 안 멈춰?”. 나도 모르게 피스톤을 올리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피곤하고, 잠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지만, 중요한 작업이라 긴장을 하고 임하려 노력했지만, 나도 모르게 졸아버렸다. 1기사의 꿀밤을 맞고야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말, “나가.” 내가 엉거주춤하고 있자,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나가라고 새끼야!, 정신 안차려?” 그렇게 나는 실기사와 교대되었다. 작업이 끝난 1기사가 온 작업복에 기름투성이가 된 채로 컨트롤룸으로 들어왔다. “야 인마, 너만 피곤한줄 알아? 너 혼자 새벽까지 일했어? 다 같이 했는데 왜 너만 피곤한척해? 난 어제 2기사랑 청정기 때문에 너 잘 때 기관실에 몇 번을 왔다갔다 한줄 아냐? 너 어제 상태 안 좋아 보여서 일부러 안 깨우고, 좀 재운거야. 근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난 뭔가 제대로 잘 못 되었음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저질러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그래도 처음이니까, 배려해주셨던 것이었는데, 혹시 내가 그런 것을 이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의를 권리로 착각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명백한 실수였다. 그렇게 다소 의기소침해진 채로, 방으로 올라왔다. 그 순간,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과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삶이 이어져야 하는 건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물론 나의 실수였지만, 속이 상했다. 나도 사람이기에, 슬프고 힘들면 위로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선... 내 편 따윈 없다. 그 심심한 위로 한 마디 툭 던져줄 사람 하나가 없다.

출항하기 전, 통화가 가능 할 때, 그냥 부모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국제전화비용이 워낙에 비싼지라, 웬만하면 통화를 잘 하려고 하지 않지만, 이 날은 그냥 나도 모르게 부모님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한국은 이미 깊은 밤 시간이었지만, 어머니는 방금 막 잠에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다. “엄마... 잘 있나?, 난 지금 영국이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그래 그럼 잘 있고 말고, 울 아들도 잘 있다고 하니까 엄마 맘이 좀 편해지네, 사람들은 다들 잘해주나? 일은 처음이라 좀 힘들 거다, 그래도 울 아들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엄마는 믿는데이~ 울 아들 사랑한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오래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너무나 짧았던 통화를 마치고, 엄마의 카톡 프로필을 봤다. 승선하기 전, 배 앞에서 같이 찍었던 아버지와 어머님과 함께한 사진... 그리고 프로필엔 “내 삶의 이유” 라는 글귀가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치질 않았다. 그렇게 한 바탕 눈물을 짜내고, 생각했다. 잊지 말자, 나는 부족하고 모자란 아들이 아니다. 나는 부모님의 자부심이다. 누군가에게 삶의 이유가, 원동력이 되는 존재라고. 그렇게 다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고향에서 나를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과 친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유럽에서의 바쁘고 피곤했던 시간을 마치고, 인도양을 항해하는 중이었다. 몬순기후 때문에 날씨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선체가 매우 많이 흔들렸기 때문에, 각종 탱크들의 레벨 알람 등의 수위와 관련된 알람들을 포함하여 각종 알람들이 쉬지 않고 울려댔다. 작업을 제대로 진행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어떻게 오전과업을 마무리하고 점심을 위해 잠깐 올라왔다. 숟가락을 딱 들었을 때, 또 다시 알람이 울렸다. 밥 한 숟가락 뜨지 못 하고 바로 작업복을 입고 기관실로 뛰어 내려갔다. 배전반의 접지상태 불량에 관한 것이었다. 확인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다시 한 번 알람이 울린다. 아...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하.. 나도 밥 좀 먹자 제발... 그렇게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니, 다른 사관들은 이미 거의 식사 마무리 단계였다. 나도 허겁지겁 식사를 한 후, 오후 일과에 임했다. 밥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지 더 힘든 것 같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잠깐의 휴식을 취하다가 10시에 당직순찰을 위해 잠깐 기관실을 돌고 있는 중이었다. 그 때, 벽면 한 쪽이 씨꺼먼 기름으로 덥혀있는 것을 봤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보니, 발전기 연료유 펌프 파이프에서 기름이 누유하고 있었다. 즉시 예비용 펌프를 가동시키고, 그 펌프를 정지시킨 후 1기사님께 보고했다. 기관장을 제외한 모든 사관 및 부원들이 내려와서 기름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꽤 많은 양이 누설되었기 때문에 다음날 새벽 1시 반까지 기름을 제거해야했다. 다들 기름에 쩔어 있었고, 피곤에 쩔어 있었다. 그렇다고 다음날 오전에 쉬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방에 올라오니 거의 새벽 2시, 방에 있던 물건들이 다들 엎질러져 있었고, 정리할 새도 없이, 깨끗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내 당직이었고, 예상대로 새벽에 알람이 두 차례 울렸으며, 깊은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냥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은 배 타러 간다고 하면, 너는 군대도 안 가고, 돈도 엄청 많이 벌고, 외국에도 많이 나가 보고, 경력도 쌓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부럽다고 이야기 하고, 또 대부분은 외국이나 놀러다니는 줄 아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부분들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물론 다 맞는 사실이지만, 가족과 함께 못 하고, 힘들 때 맥주 한 잔 같이할 친구조차 없으며, 전화나 인터넷의 사용도 자유롭지 않으며, 그렇기에 사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접하고 또 소통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리고 덥고, 더럽고, 시끄럽고, 위험한 기관실에서의 작업 또한 전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밥을 먹다가도, 알람이 울리면 바로 뛰어 내려 가야하며, 잠을 자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회식을 하다가도... 어떤 경우라도 예외는 없다. 그렇기에 언제 일이 터질지 항상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 도대체 언제 쯤 이면, 이 스텐바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느덧 승선한지 6개월이 흘렀다. 그 동안, 유럽도 한 번 더 다녀왔고, 한국에도 입항하여 부모님이 방선을 오기도 했었다. 정말 잠깐 동안 만나서, 식사도 같이 하고, 내가 사는 방도 보여주고, 일하는 곳도 보여 줄 수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짬이 찼다고 해야 하는 건지, 대부분의 작업들을 이미 한 번씩 경험 해봤고, 실수하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처음엔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매사에 임했었지만, 지금은 열정도 목표도 사라진지 오래다. 이미 바다 위에서만 반년이 흘렀다. 이제 집에 갈 때가 됐지 않나 싶었다. 이제는 정말... 아무걱정 없이 쉬고 싶다. 지긋지긋한 알람소리도 이제 좀 그만 듣고 싶고,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이 소원이다. 이제 10일 후면 한국에 다시 입항한다. 요즘은 매시간 메일을 확인하기에 바쁘다. 혹시 한국에 들어가면 교대될 수 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아니 생각이 아닌 거의 확신이 머릿속에 박혀있다. 나보다 일찍 승선했었던 1기사님은 당연히 휴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번 휴가는 어떻게 보낼지 계획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또한 거기에 동참해서, 유럽여행이야기를 하며, 어떤 나라가 좋더라, 거기가 그렇게 유명하다더라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휴가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다들 휴가의 꿈을 가지며,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한국입항 5일전, 꿀 맛 같은 잠을 즐기고 있는데, 또 요란한 알람이 나를 깨웠다. 뭔가 해서 보니, 메인엔진 슬로우 다운이었다. 큰일 났다는 생각에, 급하게 작업복을 입고 뛰어 내려갔다. 보통의 경우는 큰 일이 아닌 이상 나 혼자 가서 해결하고 오지만, 내가 문 밖을 나갈 때, 기관장, 1기사, 2기사 모두 급한 표정으로 기관실로 향했다. 1번 배기가스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있었고, 터보차저는 마치 터질 것 같이 윙윙 거리며 서징이 일어나고 있었다. 결국 엔진을 멈추고, 문제점을 찾기 시작하였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될 수 있는 배기밸브, 스핀들, FIVA 밸브, CCU MPC 등을 모두 다 교환해봤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시범운전 시에는 테스트 콕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이런 관경은 난생 처음이었다. 상태가 생각보다 매우 심각함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새벽 2시부터 시작해서, 동이 트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쉬지 않고 엔진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 됐다. 하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식사도 제대로 한 끼 못 했으며, 도대체 무슨 일인지 걱정이 된 조리장이 직접 식사를 기관실로 가져왔으며, 선장님도 무슨 일이냐며, 딜레이 되면 안 된다고 빨리 조치를 하라고 말했다. 위성전화로 걸려온 전화들은, 본사에서 사고보고를 하라고 난리다. 기관장과 1기사의 표정은 더더욱 굳어갔고, 결국 문제점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그에 해당하는 교체부품이 없어서, 그 기통을 죽인 체 감통운전으로, 가장 가까운 항인 상하이에 입항했다. 사고 이후부터, 유인당직을 실시했는데, 정말 이는 피곤함의 끝이었다. 그렇게 거의 기어가듯이 상하이에 도착한 후, 엔진을 정상상태로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한국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차를 더 실고 싱가포르에 하역을 한 후 다시 한국에 돌아온다는 일정이 나왔다. 5일 후면 집에 갈 수 있다는 꿈이 그렇게 사라졌다. 뱃머리는 한국과 완전 반대 방향으로 돌려졌고, 혹시나 또 문제가 생길까 신경이 곤두선 채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래도 이 악물고 버텼다. 못 해도 2주안에는 갈 수 있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 때 까지 잘 버텨왔잖아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말이다.

싱가포르에서 하역을 종료하고, 연료 수급 또한 사고 없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정말 한국에 돌아갈 날 만 남았다. 전화와 메시지를 통해,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아마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휴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벌써부터 여행계획을 짜고, 수많은 약속들을 잡기 시작했다. 벌써 오랫동안 못 봤던 사람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두근거리고 설렘이 앞선다. 그런 상상만 해도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도중, 한국 입항 4일 전, 드디어 교대자 명단이 메일로 왔다. 정말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내용을 확인해봤다. 기관장, 1기사, 실기사 그리고 삼항사의 이름만 있을 뿐, 내 이름은 없었다... 사유를 보니 아직 대기인원이 충분치 않은 상태이기에 조금 더 승선을 하는 것을 부탁한다는 말이 써져있었다. 순간 머리가 백지장으로 변하는 듯 했다. 내가 해왔던 수많은 계획들, 약속들 위에 하얀색페인트를 통째로 들이 부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애써 스스로를 위로 해보려 했지만 잘 안 된다.

육지를 떠나 6개월이 조금 지난 지금, 승선하기 전 너무나도 익숙했던 부모님과 함께 했었던 매 끼니들, 친구들과 옛 추억을 안주거리 삼아 마셨던 맥주 한 잔, 가고 싶은 공연이나 전시회 또는 여행지가 있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었던 자유로움, 그냥 손잡고 길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 인터넷을 통한 수많은 정보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할 수 없는 것들이 되었고, 너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혹시 이렇게 평생 낯설어지고,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마저 든다. 물론 그런 일이 있겠냐 싶겠냐만, 그냥 마음 한 구석에 걱정으로 남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출항 마지막 날, 너무나도 익숙했던 사람들과의 이별. 고된 여정을 마치고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보였다. 나도 저렇게 웃고 있어야 하는 건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렇게 헛된 꿈을 한국 땅에 모두 다 내버려 둔 채, 한국을 떠났다. 항.상 떠나는 것에 익숙한 나였지만, 이번 출항은 뭔가 마음이 씁쓸하다. 멀어지는 저 육지를, 한국 땅을 바라보니 뭔가 슬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배는 그렇게 잠깐 동안 내 감정에 충실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또 다시 알람이다.

하지만, 출항하기 전 어머니와 통화한 내용이 떠올랐다. “엄마, 나 가족들도, 친구들도, 고향도, 그냥 나한테 익숙했던 모든 것이 너무 보고 싶다. 그냥 도망쳐버리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엄마의 대답, “아들아, 엄마가 이 인생이라는 걸 살다보니까, 내가 계획하고 바라던 대로 이루어진 때 보다는, 그러지 않았을 때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아. 그리고 성취의 순간보다는, 실패하고 좌절했었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고. 그런데 그렇게 힘든 과정 또한 네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돼. 힘들고, 슬프고, 포기하고 싶은 그런 너의 모습까지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정말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울 아들 먼 바다에서, 외국에서 참 고생 많은 것 다 알고 있어. 그래도 나는 울 아들이 긍정적으로, 멋있게 살아갈 거라고 믿고 있다. 사랑한다. 이번에는 방선 못 가서 너무 미안해~” 도대체 엄마가 나한테 미안할 것이 뭐가 있나 싶었다. 미안하면 내가 더 미안했지,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부모님을 걱정시켜 드리기나 한 아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대화를 통해서 마음가짐을 바꾸기로 했다.

또래들보다 이른 나이에 회사에 취업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내 돈 주고는 다 못 가볼 전 세계를 경험하기도 했고, 기관이라는 분야에 전문성을 키우기도 했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세계 속에서 벗어나 스스로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또 한 한 조직에 속해 일하면서 책임정신에 대해서 제대로 배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아침에 저 바다 끝에 펼쳐지는 멋진 일출의 모습, 또 멋진 석양이 하늘을 수놓는 아름다운 일몰의 모습 그리고 밤마다 볼 수 있는 은하수, 이런 멋진 풍경들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한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져, 소중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생각 또한 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도 계속 항해할 것이고, 세계를 누빌 것이다. 바다는 나에게 있어서, 땅이자 곧 꿈을 실현할 멋진 무대이다. 물론 그 바다가 항상 고요하고, 순탄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파도가 높은 날도 있을 것이고, 비가 심하게 많이 오는 날도, 천둥번개가 치는 날도, 심지어는 태풍이 몰아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 속에서 항해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상황이 나쁠지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는 날씨가 안 좋은 날이 많아서 앞으로 많이 나아가지 못했었던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조금 더 쉽게, 빠르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배는 쉬는 날이 거의 없다. 나도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로, 바다라는 멋진 무대 위에서 내 꿈을 한 번 펼쳐봐야겠다. 이제 다시 또 출항이다. Standby All Stations!
 

당선소감
고된 환경에서 일하는 선박 기관사들의 모습을 글로써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사실이 항상 아쉽고,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 입고 다니는 옷, 편하게 쉴 수 있는 집, 쉽게 말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선박 기관사 및 해기사들의 노력으로 수송되어 이후에 제조된 후 우리들 앞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인지를 못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일까요.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항만에 대해서 잘 모르며, 또한 접근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출항한 선박은 저 멀리 수평선 끝으로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은 사라질 뿐입니다. 그렇게 대다수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무관심 속에 우리들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박 기관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좀 더 많은 사람이 이 분야를 접하고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줬으면 했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작은 관심 하나가, 메세지 혹은 이메일 한 통이 별거 아닌 듯해도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우리들은 항상 떠나가는 것에 익숙하고, 멀어지는 것에 익숙하지만, 절대로 마음만큼은 항상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제 글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응원해줬으면 하는 바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두의 편안을 위해, 안녕을 위해 소리 없이 항해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학생신분으로서, 승선경험 또한 다른 분들에 비해 매우 짧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값진 기회를 주신 부분에 대해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경험이 좀 더 넓은 대양을 위한 첫 걸음이 된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이후에 좀 더 성숙하고 멋진 작품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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