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과실 관리-안전의 기본’ 주제로 해양사고와 인적 요인 논의

11월 19일 서울 중소기업DMC센터서 개최, 200여명 참석
진보하는 기술과 노령화되는 선원의 ‘괴리감’ 지적, “기술-인간 상호작용 필요”

 
 
해양사고의 주요 원인인 인적과실을 줄이기 위한 전문가들의 논의가 11월 19일 서울에서 열렸다. ‘인적과실 관리: 안전의 기본’을 주제로 올해로 5번째를 맞은 ‘휴마린 포럼 세미나’가 11월 19일 서울 중소기업DMC타워에서 정부, 학계, 업계, 해양수산 종사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는 휴마린 포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한국항공인적요인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했고 해양수산부,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가 후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광호 서울대학교 교수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한국항공인적요인학회 송창선 박사,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황진회 실장, 조광해운 정우천 대표이사가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또한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제6회 해양안전 우수사례 공모전’의 시상식도 함께 열려 해양안전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휴마린 포럼은 해양사고의 약 90%를 차지하는 인적과실에 의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 2013년 5월, 관련 산·학·연·관이 참여해 창립된 정책연구 포럼으로, 2009년 ‘제1차 해양안전과학 인적 안전요인 세미나’를 효시로 한 ‘휴마린포럼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제6회 해양안전 우수사례 공모전’ 대상-코리아쉽매니져스, 최우수상-현대글로비스, SM대한해운
이날 세미나에서는 해사산업 뿐 아니라 행정, 항공 등 다른 분야의 안전정책·사례와 함께 해양사고의 인적과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집중적으로 발표됐다.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해양안전 기술은 날로 진보하는데, 해양사고는 늘어나고 있다’는데 문제의식을 갖고, ‘기술과 사람(선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조승환 해양수산부 해사안전국장은 축사를 통해 “해양사고의 90%가 인적요인이 원인으로 지목되며, 정부는 선박 안전관리 혁신대책을 마련하고, 해양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환영사를 맡은 서병규 해양수산연수원 원장은 “장비는 최신화되고 있는데, 선원은 고령화되고 있어 기술과 인간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면서, “사고 발생원인이 단순한 인적요인인지, 아니면 기술과 사람의 상호작용 문제인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본격적인 주제발표에 앞서 ‘제6회 해양안전 우수사례 공모전’ 수상자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됐다. 대상인 해양수산부장관상에는 코리아쉽매니져스(주)가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으며, 최우수상인 중앙해양심판원장상에는 현대글로비스와 SM대한해운이 각각 수상했다.
 

“스마트 안전정책- 자발적 위기관리 거버넌스, 책임공유 시스템”
정광호 서울대학교 교수

기조연설에 나선 정광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스마트안전정책’에 대해 소개했다. 정 교수는 예일대 사회학자 찰스 페로의 연구를 인용하며, 위험관리체계의 복잡성과 긴밀한 연계성을 소개했는데, 동 연구에 따르면 사고의 원인은 개별적인 장애가 아니라 세상의 상호작용성과 긴밀한 연계성을 지닌다. 큰 사고는 상호작용성을 지닌 각각의 시스템이 연결될때 드물기는 하지만 ‘정상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듯 복잡한 시스템에서 ‘정상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부분의 운영자들은 사건과 사건사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호작용이 이뤄지고 설령 보인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정 교수가 소개한 스마트 안전정책은 예방전략을 핵심으로 한 안전체계로, 객관적, 주관적, 구성적 접근을 상황에 맞게 종합적으로 사용하는 안전정책이다. 규제강화와 처벌위주의 정책은 높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면서 효과는 낮으나, 스마트 안전정책은 적은 비용으로도 그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서울시가 채택한 스마트 안전정책인 셉티드(CPTED, 범죄예방환경설계)를 예로 들었다. 셉티드는 환경설계를 통해 범죄를 예방하자는 것으로 범죄가 자주 발생하던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모 지역에 산책로(소금길)와 운동기구를 설치해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하고 CCTV보다 저렴한 IP카메라를 신설했으며, 전봇대에 비상벨을 설치했다. 또한 골목 외벽을 깔끔하게 단장한 골목아뜰리에를 조성해 커뮤니티 활성화와 자연적 감시 증진, 범죄 두려움 감소라는 효과를 거뒀다. 이를 통해 동 지역에서 절도사건은 12% 감소했고, 강간사건은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해양사고에 스마트 안전정책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해상사고는 피해가 광범위하고 사고원인이 다양하며, 사고자체의 심각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사고발생이 복잡한 매커니즘을 지니게 돼, 하나의 문제를 바로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검사·훈련·설비·감독 등 일반적인 해결책이 큰 효과가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위기관리 거버넌스를 개발해야 하고, 위험의 공유 시스템을 통해 책임을 공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나아가 명령, 지시, 통제, 감독 방식에서 탈피해 지원, 협력, 연계, 조정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공안전자율보고제도- 경미한 사건 비밀 보고, 보고자 처벌 금지... 예방문화 확산”
송창선 한국항공인적요인학회 박사
다음 발표자로 나선 송창선 한국항공인적요인학회 박사는 항공분야를 중심으로 한 ‘인적오류 방지를 위한 안전문화 정착방안’을 발표했다. 송 박사는 인적요인을 선행적으로 고려할 경우, 초기 비용이 많이 들지만 운영주기가 늘어날 수록 비용이 적게 들며, 인적요인을 미고려하거나 반응적으로 고려했을 경우보다 총 운영비가 낮아진다고 밝혔다.
안전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기계의 상호역할을 고려하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스템이 복잡화될 수록 인간과 시스템의 부조화가 커진다. 또한 2000년 발표된 윌퍼트 박사 논문에 따르면, 지금 시대는 조직문화의 시대로, 인간이 조직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운영자의 불완전한 행동이 사고나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관리 방식의 변화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전통적 방식은 처벌 위주로 사고 발생시, 사고를 유발하는 사건의 행위자에 주목해 행위자를 책망하거나 처벌했는데 반해, 지금은 사고가 다양한 유발요소가 통합적으로 연계돼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사전적 예방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송 박사는 ‘경미한 안전저해 사건이 300번 일어날 때 중대한 사건은 29번 발생하고, 대형 사형 사고가 1번 발생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인용해 경미한 사건이 발생했을때 보고제도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공분야의 경우, 항공안전자율보고제도를 실시해 경미한 사건이 발생했을시 비밀보고 제도를 통해 투명하게 보고가 이뤄지고, 보고자 정보 보호를 통해 처벌이 금지된다. 철저한 보고와 이에 대한 수정을 통해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송 박사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며, “실수에 대한 처벌보다 실수하는 환경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발표의 끝을 맺었다.

“내항선원 처우 심각, 선원 수급위주 정책서 선원 안전·복지 정책으로 전환돼야”
황진회 KMI 실장

해사분야에서는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실장과 산업분야에서 정우천 조광해운(주) 사장이 발표자로 나섰다. 우선 황진회 KMI 실장은 ‘우리나라 선원의 근무여건과 정책과제’를 주제로 내항선원 실태를 소개하고 ‘내항여객선 인력풀 제도’를 제안했다.
황 실장은 외항선원과 내항선원간 처우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내국인 선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선원양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14년 기준 선원 직책별 현황을 살펴보면, 선원의 상위직이 많고 하위직이 적은 역피라미드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직책높은 선원은 많은 반면 1, 2급 상급면허는 부족해 고급해기사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승무경력의 차이도 큰데, 15년 이상 선원이 52.3%에 달하는 반면 5년 미만 초급 선원은 16.1%에 불과하며, 연령별로도 50세 이상 선원이 전체 59.5%를 차지하고 있으나 30대 미만 선원은 11.1%에 그치고 있다. 내항선의 경우 더욱 상황이 심각해 승무경력 5년미만 초급선원은 17.4%(외항 30.9%), 30세 미만 선원은 4.6%(외항 27.8%)밖에 되지 않는다.
내항선원의 임금상승률은 매년 3.3% 수준으로 가장 낮아 내항선원이 직업의식을 갖기가 힘들다. 여기에 선장, 기관장들은 매월 휴가를 실시하는 반면, 3급이하 중 60%가 매월 정기휴가를 실시하지 못하는 등 처우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에 대해 황 실장은 “내항선원의 경우 월 평균 임금이 높을 수록 매월 정기휴가를 시행하는 비중이 높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내항여객선사의 영세성과 경쟁력 약화로 이러한 문제가 쉽게 개선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에 황 실장은 선원 유급휴가의 시행, 선원 과로로 인한 후진국형 사고 방지, 선원 고용안정 등을 위해 ‘내항 여객선 인력풀제’ 도입을 제안했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공공기관이 인력풀제를 운영하는 방안을 추천하며, 선원 직무교육과 서비스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황 실장은 그간 선원정책이 수급위주의 정책으로 시행됐다면, 이제는 선원의 안전·복지를 위한 정책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환경... 선원피로도↑, 직업의식↓”
정우천 조광해운 사장

내항여객 선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우천 조광해운(주) 사장은 마지막 발표자로 나와 내항선사 입장에서 바라본 ‘선원의 인적과실 예방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발표했다. 정 사장은 가장 먼저 인적과실에 대한 역설적 해석을 통해 “콜럼버스는 역사적인 개척자이자 탐험가이지만, 그의 신대륙 발견은 신대륙 아메리카를 중국으로 착각한 ‘인적과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콜럼버스 시대의 선원들은 부와 지위, 명예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있었으나 현재 선원들은 큰 동기부여 없이 업무과중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사장은 “과거 선원에 비해 현재 선원들은 최신 전자장비, 항해장비, 연료효율적 운항, 표준규격의 안전관리, PSC검사, 환경관리 등 신경써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면서, 업무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이 안전 저해요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례로 그는 “선원들이 수행해야 할 프로그램과 테스트가 십수개에 이르는데 과연 이러한 교육들을 현장에서 다 소화할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면서, ‘너무 많은’ 교육프로그램의 허구성을 주장했다.

이어서 조 사장은 선원은 ‘지식근로자’라며, 지식근로자의 경우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낮고, 같은분야의 외부전문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높은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적 선원으로서의 직업적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승선생활을 오래할 수 없고 선원수급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항선의 인적과실 예방을 위해서는 선원들의 불만을 해결하고 선원의 직업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정리했다. 낮은 급여와 근무 환경은 직무만족도를 감소시키고 이는 곧 선박안전과 직결된다. 또한 젊은 선원과 예비원의 부족 상황은 선원 고령화를 심화시키고 선원 피로도를 높이고 있다. 선원수급 문제가 해결돼야 선원의 인적과실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지적이다.

“09년 국제해양사고조사코드 발효로 준해양사고 보고 의무화... 데이터 관리는?”

주제발표 이후 진행된 종합토론에는 김영모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를 좌장으로 강승필 서울대학교 교수, 박상익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 해운정책본부장, 김홍태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국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강승필 교수는 “내항여객선 인력풀제가 과연 실질적인 인력관리 시장 속에서 적절하게 역할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내항여객선에 대한 정부지원이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내항선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박상익 본부장은 “해양분야의 경우, 정부와 선사, 선원들의 생각과 안전 개념이 모두 다른데, 이를 유기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스마트 안전관리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연안선사의 경우 많은 여객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인력풀제와 같은 공영제가 가능할지 의문이 들며, 현 상황에서 선주가 안전에 투자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김홍태 국장은 “사고발생의 원인이 사소한 오류가 연결돼서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해석도 일부 공감하지만, 해양사고는 관리 소홀, 부적절한 대응, 미비한 제도 등이 겹쳐서 나타난다”며 해양사고가 일반 ‘정상사고’의 범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한 그는 “해양분야에서도 2009년 국제해양사고조사 코드가 발효되며 특별조사부가 생겼다. 이로 인해 준해양사고에 대한 보고가 의무화되고 시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데이터들이 과연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정부의 데이터 관리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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