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항만위험물 안전점검 지적사항 총 174건
제도개선, 안전관리·교육 강화, 인력·예산 지원 시급

모든 산업계에서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의 해사산업은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사산업의 안전사고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최근 중국 텐진항에서 대규모 폭발물 사고가 발생해 엄청난 피해가 속출했다. 텐진항 창고에 적재돼 있던 위험물 보관 컨테이너가 폭발사고를 일으켜 9월 12일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171명 사망, 12명 실종, 700여명 부상, 6,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우리 항만도 위험물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7월 울산항에서는 울산항 4부두에 정박 중이던 1,500톤급 케미컬운반선의 공기흡입밸브가 폭발하면서 34명의 사상자를 냈다. 텐진항 폭발사고가 발생한지 5일째 되는 8월 17일에는 부산 사상구의 화학물질 보관창고에서 불이 났다. 당시 공장안에는 텐진항 폭발사고에서 유출됐던 화학물질인 시안화나트륨이 저장돼 있었다. 9월 인천신항에서 위험물 컨테이너가 폭발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 및 위험물을 취급하는 각 항만공사들은 서둘러 위험물 안전점검과 위험물 안전대책을 내놓았다. 국민안전처는 8월 18일~26일까지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이 직접 11개 항만과 6개 사업장을 돌며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했고, 8월 20일에는 각 기관별 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대책을 점검했다.
 

국민안전처와 해양수산부, 환경부, 산업자원부 합동점검을 통해 나타난 바에 따르면 총 174건의 지적사항이 발견됐다. 주요 지적사항을 살펴보면, 위험물을 혼합저장하거나 무허가로 고압가스를 저장하는 불법행위, 저장탱크에 위험물 누출 방지벽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소방시설의 부식으로 사고 대응이 어려운 사항, 액체물질의 높이 표시장치 불량으로 이송·하역시 유해화학물질이 넘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의 사례가 나타났다.
 

제도개선이 필요한 사항도 있었다. 국내법 기준으로 석유, 휘발유 등은 위험물로 분류되나 황산, 질산 등은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되는데, 유해화학물질은 하역·운반시 위험물과는 달리 일반화물과 같은 안전기준이 적용된다. 이에 유해화학물질도 위험물과 같은 수준의 안전기준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위험물의 해상운송시 ‘국제 해상위험물 운송규칙’에 따라 안전관리를 실시하나, 하역 후에는 ‘위험물 안전관리법’에 따라 화약류, 부식성 물질 등이 일반화물과 같이 보관되고 있다. 이에 국제기준과 같은 수준의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김승남 의원 “5년간 항만 유해화학물 사고 총 14건 발생... 규제 사각지대 선결해야”
국회 김승남(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1~2015) 유해화학물질 사고는 총 14건으로 울산, 여수가 5건, 완도, 평택, 통영, 대산이 각 1건씩 발생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우리나라는 2015년 시행된 ‘화학물질관리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등을 통해 화학물 안전을 강화하고 있으나, 선박이나 항공기, 철도이용 등의 관리는 미흡한 상황”이라며, “특히 항구에 임시보관되고 있는 유해화학물질이 얼마나 되는지 또 법적으로 적정하게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위험물 종류별로 화물간 이격기준, 화물별 적재방향, 적재 높이 등의 규정이 별도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위험물 규제의 사각지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컨테이너의 경우 보관으로 보지 않고 운반으로 보기 때문에 ‘화학물질관리법’ 등 영업 허가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으며, ‘관세법’상 보세구역 안에서의 관리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병석(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박 의원은 유해화학물질 표준·실무·행동매뉴얼의 경보단계와 사업장 사고관리 대응관계가 불일치해 위기 대응단계의 혼선이 우려된다는 지적과 함께 위험물 관리 기준의 강화를 요구했다.

 

국제사회 IMDG 코드로 위험물 해상운송 관리
컨 화물, 수출컨은 위험물검사원, 수입컨은 CIP로 점검
국제사회는 위험물의 안전한 해상운송을 위해 IMDG(International Maritime Dangerous Goods) 코드를 1965년부터 제정하고 2004년 31차 개정판에서 강제화했다. 올해 37차 개정된 IMDG 코드는 2년마다 한번씩 개정되고 있다. HNS(Hazardous and Noxious Substances) 협약도 조만간 발효될 예정이다. HNS 협약은 선박의 유해, 위험물질 유출사고 시 손해 배상을 목적으로 하며 IMO가 1996년부터 논의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IMDG 코드에 근거해 위험물 운송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10월 21일 제37차 IMDG 코드 개정 홍보를 위해 ‘국제해상위험물규칙 소개 책자’를 발간해 관련 기관 및 업체에 배포했으며, 온라인에서 볼 수 있도록 전자북 형태로도 제공했다. 또한 컨테이너 화물의 경우, 수입 컨테이너화물은 항만 CIP(Container Inspection Program)를 통해 점검되고 있으며, 수출 컨테이너는 한국해사위험물검사원이 국제규정에 근거한 안전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각 항만공사 및 해양항만청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점검과 교육에 나서고 있다. 부산, 인천, 울산, 광양 등 주요 항만공사는 텐진항 사고 이후 배후부지내 위험물 취급업체와 보관 화물을 집중 점검했다. 또한 항만공사내 위험물을 관리하는 안전관리자를 선임했으며 관련 교육도 확대하기로 했다. 국내 최대 원유 및 석유(제품) 처리항만인 울산항은 ‘해양안전벨트’ 활동을 진행하며 위험물 부두 사고 발생시 대처를 위한 민관 합동훈련을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전문기관의 항만순회 교육을 통해 인적요인에 대한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9월 인천신항서 보관된 위험물 컨 입구 폭발사고
CIP 점검 문제발생, “수입컨은 수출국 서류에만 의존, 개방검사율 0.1% 불과”
그러나 정부와 항만공사의 위험물 관리 노력에도 안전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으며, 안전점검이나 교육 등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 9월 인천신항에서는 위험물 장치장에 보관돼 있던 위험물 탱크 컨테이너 입구가 폭발, 컨박스 안에 보관돼 있던 독성물질인 퍼푸릴(Furfuryl) 알코올 약 18톤이 누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천진항 사고와 같이 보관돼 있던 컨테이너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관 컨테이너에 대한 안전관리 중요성을 재차 인식하게 하는 사고였다.


폭발한 동 컨테이너는 중국 칭다오에서 선적된 위험물로 파악된다. 항만 CIP를 통해 점검이 완료된 화물이었으나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항만 관계자들은 수출 컨테이너와 수입 컨테이너 안전점검의 차이가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출 컨의 경우, 위험물관리원 검사를 통해 강화된 국제규정에 맞춰 조치하고 있으나, 수입화물은 대부분 수출국의 검사 결과를 토대로 단순한 서류확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수출지역에서 제대로 된 안전관리가 되지 않으면 속수무책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수입 위험물 컨테이너의 경우 국내 반입시 별도 안전검사 등의 절차가 없다”면서, “용량이 작은 위험물의 경우 가끔 샘플을 뽑아 개방검사를 하고 있으나, 용량이 큰 탱크 컨테이너 등은 내부 검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소용량 화물의 경우에도 고작 1%정도만 샘플 검사 대상에 해당되며 실제로 개방해 검사하는 경우는 0.1%에 불과한 실정이다.

 

위험물 업체 신고에 의존하는 위험물 통계, 컨화물은 더 심각
안전인력 부족, 항만공사 안전관리자 ‘비상연락망이 주요 업무’?
위험물 통계도 정확하지 않다. 국내 항만 중 위험물 처리 비중이 높은 항만은 대규모 석유 정제시설을 갖추고 있는 울산항과 여수광양항으로 꼽힌다. 울산항의 경우 2014년 기준 1억 3,460만톤의 원유, 석유, 화학제품이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광양항은 1억 1,316만톤의 원유, 석유정제품, 가스, 화학공업생산품 등이 처리됐다. 문제는 항만공사나 지방 항만청 조차도 품목별 화물통계로 위험물을 추정할 뿐 구체적인 위험물 분류 통계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위험물 컨테이너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위험물 컨테이너 화물코드가 전산화되지 않고 코드의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확한 통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수출입업체 신고로 통계가 집계되지만 정확하지 않다. 위험물 컨테이너는 대부분 부산과 인천을 통해 처리되는데, 각 항만공사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부산항은 지난해 48만teu, 인천항은 2만 3,000teu가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전문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텐진항 사고 이후 각 항만공사는 위험물 관리업체 및 화물을 관리하는 안전관리자를 선임했다. 위험물 처리 업체는 각 회사별로 안전관리자 선임이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으나 항만공사들의 안전관리자는 법적으로 의무사항이 아니다. 자체적으로 안전관리자를 선임했으나 이들의 역할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취재 결과 각 항만공사의 위험관리자는 위험물 업체를 관리하던 기존 팀장급 직원이 겸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일반 직원을 안전관리자로 선임한 것이다. 한 항만공사의 안전관리자는 “안전관리자로서의 주요 업무는 비상연락망 가동과 전문기관의 교육을 받아 일반 직원들에게 위험물 관리 교육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항만 CIP 검사에 있어서도 인력 부족으로 치밀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천항의 경우, 연간 1만여개가 넘는 위험물 화물이 들어오는데 담당 검사인력은 단 한명 뿐이다. 인천항 관계자는 “수입 위험물에 대한 안전강화를 외치고 있으나, 인력과 예산 등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UPA, 해양안전벨트 실시.. 기관장·실무진 협의, 점검 강화
BPA, 부산신항 고압가스용 위험물 컨 장치장 내년 설립
한중일 3국 위험물 화물 정보공유 확대 합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진항 대형사고 이후로 정부와 항만공사의 위험물·위험물 컨테이너에 대한 관리대책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항만공사들은 최근 위험물 보관 및 처리관련 연구용역을 시행하거나 준비 중이다.


울산항만공사UPA는 ‘해양안전벨트’를 실시해 정례적으로 기관장 협의회와 실무진 협의회를 개최하기로 했고, 안전사고 대비를 위해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등 안전점검을 점차 강화하고 있다. 또한 울산항에서 발생 가능한 위험물 사고유형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사전 점검과 비상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을 집중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부산항만공사BPA는 ‘고압가스용 위험물 컨테이너 장치장’을 내년까지 부산신항에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BPA에 따르면 부산신항 경남 창원시 진해구 일원에 고압가스용 위험물 장치장 설치를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며, 내년 2월까지 실시설계안이 마련되면 공사에 들어가 내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부산 신항에는 고압가스 장치장이 없어 선사들이 고압가스를 포함한 환적화물을 보관하려면 위험물 장치장이 있는 경남 양산까지 고압가스를 반출했다가 다시 선적하고 있다. BPA는 이번 용역에서 위험물 저장에 따른 안전문제를 고려해 관련 법령을 자세히 검토해 설계에 반영하고 위험화물 수요 추정을 통해 적정 개발규모를 산정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일본, 중국과 협력해 위험물 물류정보를 공유할 계획이다. 현재 한중일 3국은 한국 3개항(부산, 인천, 광양), 중국 5개항(닝보, 저우산, 옌타이, 원저우, 웨이하이), 일본 5개항(도쿄, 요코하마, 고베, 오사카, 가와사키) 등 총 13개 항만에서의 선박 입출항, 컨테이너 이동 등 관련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를 확대하기 위해 지난 9월 10일 한중일 3국은 ‘제16차 동북아시아 물류정보서비스 네트워크 전문가회의’를 개최하고 공유대상 항만을 현재 13개에서 19개로 늘리고 대상정보에 위험화물을 포함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항만은 한국의 울산항, 평택항, 일본 욧카이치항, 니카타항, 중국 사오싱항, 지싱항 등이다. 해수부는 “삼국간 위험화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위험물 이동·보관 경로와 신고 누락 위험물에 대한 관리 등이 가능해질 것”이라면서, “해상운송과 항만내 하역·보관 등 과정에서 위험물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국내외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항만내 안전사고 중에서도 위험물 폭발사고는 그 여파와 피해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 텐진항의 경우, 1차 폭발에서 3톤 규모의 TNT 폭탄, 2차 폭발에서는 21톤 규모의 TNT 폭탄 폭발규모와 맞먹는 폭발이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반경 2km내 도로는 전명 통제되고 사고현장 인근의 많은 건물이 파괴됐으며, 수십 km의 아파트 유리가 깨졌다. 한달 넘게 위험물질 수출입 관련업무가 전면 정지됐으며 다른 항만 업무들도 오랜기간 동안 차질을 빚었다. 폭발 사고로 인한 해수오염 등 2차 피해 위험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소홀한 위험물 관리는 우리나라의 항만물류 기능을 한 순간에 마비시킬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늦은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와 항만공사, 위험물 관리업체가 보다 철저한 예방과 대응에 나서야 한다. 큰 사고 이후 반짝하고 마는 대응에 그치지 말고 확실한 제도개선과 철저한 관리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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