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용어 등 해운분야 전문용어 정리할 때-

학술 연구의 성과를 발표할 때에는 일반 용어 외에도 그 연구와 관련되는 학문 분야에서 사용되는 학술어學術語를 보통 사용한다. 특정 분야에서 흔히 사용하는 개념槪念은 일반 용어로 표현하려고 한다면 많은 어구가 필요하다. 이에 반反하여 학술어를 사용하게 되면 그 분야에서 흔히 사용하는 개념을 아주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문장을 작성할 수 있다.

각 학회學會에서는 개념에 대응하는 학술어를 정하고, 그 내용을 공통 재산으로 하기 위하여 정의定議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고, 그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일본항해학회(日本航海學會, JIN)의 경우를 한 사례로 살펴본다.
일본항해학회에서는 위와 같은 과정을 1962년에 선박운용학船舶運用學의 명저로 잘 알려진 故 이다게이지依田啓二교수의 발의로 개시하여 무려 30년간에 걸쳐 기초적인 학술어로 항해용어航海用語를 선정해서 그 정의를 내리는 작업을 계속하여 진행해 왔다.

그 진행 과정은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제1단계는 처음 14년간인데, 발의자인 故 이다依田啓二교수를 위원장으로 삼고 항해용어를 포함한 관련 용어를 약 4,500개를 <해사용어(海事用語)>로 선정했다. 제2단계는 1076년~78년의  故 지바千葉宗雄교수를 위원장으로 <航海用語)>를 해사용어에서 정선해서 1,486개의 학술어를 정리하였다.

제3단계는 1978년~91년까지 13년간 故 지바千葉宗雄교수가 10년간 위원장직을 맡고, 나머지 3년간은 스기사끼杉崎昭生교수가 위원장직을 이어 받아 앞에 선정된 항해용어를 재검토하여 각 항해용어의 정의를 내리는 작업을 완료하였다.
항해용어에 관한 위원회를 30년간 개최하여 오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 었던 점은 항해용어에는 ‘역사가 있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개념’에 대응하는 어려운 작업이었음을 작어 과정에서 배웠다고 관계자들은 술회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별반 의심 없이 사용해 왔던 [운용술運用術=seamanship]이 문제가 되어 용어가 삭제되었고, bitts와 bollard의 구별 때문에 무척 애를 썼고, 한편 일본의 항해에 관한 문화와 영국의 경우가 다르기 때문에, 위원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했다고 회고 하고 있다.
1993년 3월에 드디어 (社)日本航海學會編으로 <基本航海用語集>이 출간되었다. 관계자는 이 용어집 발간은 한 획을 그은 데 불과하며 항해학에 흥미가 있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보다 세련된 항해용어가 또한 그 정의가 내려질 것을 기대하면서 이 용어집에 수록된 용어와 정의가 유포流布되기를 기대한다고 부언하고 있다.

1978년~1991년까지 항해용어의 정의를 내리는 작업에 참여한 위원은 40명, 규격위원회(規格委員會, 실무위원) 위원은 10명. 261면의 이 기본항해용어집은 항해에 관한 선정 용어의 정의를 내린 것인데, <항해용어의 정의집>, <항해용어의 분류 (用語階層表)>, <영문 색인索引>, 삼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계층표>는 정의를 내린 용어를 18분야로 나우어 각 분야별로 작성하고 있다. 용어는 50音順(あリうを順)으로 배열하고, 用語, 발음, 英文譯語, 定義의 순으로 항해용어와 그 정의를 정리하였다. 영어용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많다.

나는 <해사항해영어>를 오랜 세월 대학에서 강의했었기 때문에 日本航海學會의 연구 성과의 결정체인 이 용어집을 통독했는데, 나의 관견管見으로는 17개의 용어가 잘못 기술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weather routing의 철자인데 route에 ~ing을 붙이는 경우 routeing이 옳은 철자이다. 보통 영어의 철자 규칙은 [e]로 끝나는 동사에 ~ing를 붙이는 경우에는 [e]를 생략하기 때문에 routing이 된 것 같다. IMO에서 발간한 ship’s routeing에서 보는 봐와 같이 routeing이 바른 표기인데, 용어집에 실린 경우는 모두 routing으로 되어 있는데 이유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adjust를 ajust로, controlled route를 controled route로 적은 것은 誤譯인지, ratline(사닥다리 밧줄)의 발음은 [rætlin]인데 [래트라인, ラットライン]으로 발음 표기를 하고 있는점 등,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인가 모르겠다.

나는 올해 광복 70년 광복 특집으로 발간한 국제PEN한국본부 대전지역의 「大田PEN문학」지에 「진정한 光復-일본을 알고, 일본을 배우고, 일본을 이긴다.」의 글을 발표했다. 광복후 중·고시절에 우리나라에서는 학습 자료가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어, 국사, 음악, 교련 교과목 이외에는 모두 일본어로 된 참고서로 공부했었다. 나의 연배年輩는 모두 그랬다. 海洋大學校에 입학해서는 우리말로 된 교재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商船大學(東京, 神戶)과 商船高等專門學校 교수들의 저서로 공부했다. 대학에서 강의하게 되면서도 주로 일본어版 전문서적에 의존했다. 일본 유학파들이 교단에서 강의하게 되니까 일본의 해운 학술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지면 관계로 예시는 못하지만, 해운산업분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문 용어는 일본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해 온 것이 현실이며 지금도 답습하고 있는 점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을 포함해서) 선진국의 학술어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러한 학술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통일된 의견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해운 분야에서 학술어의 사용과 관련해서 의견 통일을 위한 작업을 해 본 일은 아직 없었고, 이 분야의 기본용어집도 나온 일이 없다고 생각된다. (寡聞(과문)이면 용서를 빈다.)
각 교과서 또는 전문서적에서 사용된 학술어가 다르거나 일본식 그대로 사용하는 문제는 광복 70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크게 반성하고,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이 5대 해운강국이 된 이 위치에서 <해운 학문 분야의 광복>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해운물류, 항해, 조선, 항만, 등의 학회에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이러한 문제를 고려의 대상으로 해서 연구해야할 것이고, 30년간 연구 노력해 온 일본항해학회의 경우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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