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대 적자... 수주잔량, 고부가가치선 기술은 여전히 최고
해양 손실 원인-출혈경쟁 지양, 설계인력 육성, 업체별 차별화 관건

 

 
 

상반기 우리나라 대형 조선사들의 대규모 영업손실은 조선업계는 물론 국내 경제계에 큰 이슈였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연이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다른 산업계가 휘청거리는 동안에도 굳건히 버텨왔던 조선산업이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뉴스에서는 워크아웃설, 부도설이 터져 나왔고, 대규모 구조조정과 조선노조 파업 등으로 ‘조선업 위기론’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올 상반기 국내 주요 조선업체들의 경영실적을 살펴보면, 조선업 위기론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현대중공업이 올 상반기 3,63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분기도 영업적자를 보이며 7분기 연속 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 가장 큰 충격을 던졌던 대우조선해양은 상반기 영업손실이 3조 832억원에 이른다. 삼성중공업도 1조 5,218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이른바 조선 BIG3의 영업적자가 무려 5조원을 육박하는 수준이다.
 

세계 조선시장 불황으로 수주환경 악화... 상선발주↓, 신조선가↓, 中·日 추격 거세
글로벌 조선시장도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영국 Clarksons Recearch 2015 9월호에 따르면, 글로벌 조선시장의 수주잔량은 최고 활황기였던 2008년 3억 9,330만gt 치솟았으나, 이후 내리막을 타며 2012년 1억 8,390만gt까지 급락했다. 2013년 2억 1,760만gt를 기록해 반등했던 글로벌 수주잔량은 2014년 2억 2,070만gt를 기록해 제자리걸음 중이다. 올해는 8월까지 2억 150만gt를 기록하며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2013년의 경우 선가가 낮은 상황에서. Eco선 수요가 급등했고, 몇몇 선사들의 투기적 수요가 나타나며 상선 발주가 증가했으나, 지난해 초 선가상승과 투기수요 감소로 상선 발주가 다시 축소되고 있는 상황으로 설명한다. 신조선가도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기준으로 2012년 126.3이었던 선가가 2013년 133.2로, 2014년 137.7로 각각 5.5%, 3.4% 상승했으나, 올 8월기준 다시 133.3으로 전년 8월대비 3.4% 하락한 상황이다.


신규수주 환경이 악화된 반면 우리나라와 경쟁을 펼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조선산업은 약진을 거듭하고 있어 우리 기업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자국 조선업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거듭하고 있고, 일본업체들도 엔저에 힘입어 수주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벌크선, 중대형 컨테이너선, 탱커선 등 중대형 상선의 경우 중국 조선소의 저렴한 가격과 자국 수요에 기반한 일본 조선소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애물단지’ 해양플랜트 인도지연... 빚 더 불어나
글로벌 조선시장의 수주환경 악화도 걱정이지만, 더 걱정인 것은 우리 조선사들이 독식하다시피한 해양플랜트 물량이다. 해양플랜트 저가수주로 인한 조선사들의 어려움은 이미 수차례 지적돼왔다. 문제는 앞으로 남아있는 물량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조선사들에게 대규모 손실을 안긴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는 2013년 전후로 계약이 성사된 건들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12~2013년에 대거 수주한 해양플랜트 프로젝트의 손실이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으며, 2014년부터는 해양플랜트 수주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2013년까지 계약된 해양플랜트 물량은 2015~2016년에 대부분 인도돼야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대규모 인도지연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낮은 유가가 계속되고 있고, 대체 자원 개발도 이어지고 있어 오일메이저들이 당장 해양플랜트를 인도하기 보다는 상황을 관망하기 위해 인도일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예측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조선사들의 경영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인도시점의 선박대금의 50% 이상을 받는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건조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매출채권이 늘어나 조선사들의 유동성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일메이저의 입김에 좌우되는 해양플랜트 계약건의 경우, 선수금을 5~10%만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시 말해 빨리 만들어서 팔아도 손해인 해양플랜트 물량을 더 오래 떠안고 있게돼 손해가 더욱 커지게 된다.

 

 
 

수주금액 잔량 1위 유지, 초대형컨선·LNG선 등
고부가가치선 압도적, 전년대비 수주실적 中 62%, 日 26% 하락속, 한국은 11% 증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우리 조선업계이지만 그래도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금액별 수주잔량에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고, 초대형선과 고부가가치선 등 ‘값비싼’ 선박 수주에 있어서는 경쟁국들과 압도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닥친 유동성 문제를 잘 버텨낸다면 다시금 예전과 같은 활황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Clarksons Report 9월호에 따르면, 중국이 7,880만gt의 수주잔량을 남겨놓고 있어 1위를, 우리나라는 6,280만gt의 수주잔량을 확보해 2위를 달리고 있다. 3위는 일본으로 3,860만gt를 남겨놓고 있다.


수주잔량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우리나라가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만큼 값비싼 선박들을 더 많이 수주했다는 결론이다. 우리나라는 올 8월까지 948억달러의 수주잔량을 기록해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중국은 812억달러, 일본은 370억달러의 수주잔량을 기록하고 있다.


선종별로 살펴보면 초대형선과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LNG운반선의 경우 우리나라는 239억불의 수주잔량을 남겨놓은데 반해 중국은 34억불, 일본은 46억불에 그치고 있고, 8,000teu이상 컨선 수주잔량도 우리나라는 123억불, 중국은 62억불, 일본은 41억불에 그치고 있다. 탱커의 경우, 우리나라는 VLCC 59억불, 수에즈막스 38억불, 아프라막스 30억불, 파나막스 16억불, 핸디사이즈 56억불을 남겨놓았고, 중국은 VLCC 39억불, 수에즈막스 15억불, 아프라막스 17억불, 파나막스 4억불, 핸디사이즈 34억불을 남겨놔 탱커선 전부문에서 우리나라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톤수(gt)기준에서도 초대형선과 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주잔량은 우리나라가 중국을 앞서고 있다. 8,000teu
 이상 초대형 컨선은 우리나라가 1,580만gt를 남겨놓은데 반해 중국은 절반수준인 770만gt에 그치고 있고, LNG운반선은 우리나라가 1,180만gt, 중국은 1/10인 180만gt에 불과하다. 톤수기준 중국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유는 역시 벌크선 분야로 중국은 총 7,880만gt의 수주잔량 중 벌크선의 비중이 58%에 달한다.


현재 수주잔량의 인도일을 확인해보면, 중국은 올해와 내년까지 인도가 몰려있는 반면 2017년 이후에는 인도분이 크게 떨어진다. 한마디로 저가수주가 몰렸던 시기에 수주가 늘어났고, 에코십, 초대형컨선 등 고부가선박 수주가 나타났던 2014년 이후부터는 수주가 줄어들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내년도에 가장 많은 인도물량이 남아있고, 2017년 이후에도 경쟁국 중 가장 많은 수주잔량을 확보하고 있다. 에코선형이 대거 인도될 것으로 보이는 2017년도의 경우 톤수(gt)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1,820만gt, 중국은 1,820만gt가 인도되며, 2만teu이상 컨선이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2018년 이후에는 우리나라가 620만gt, 중국은 320만gt가 인도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은 지난해 엔저열풍을 타고 2018년 이후 인도물량을 790만gt 확보해 우리나라를 앞서 있다.


올해 계약된 수주물량을 살펴보면 한·중·일 3국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이 전년대비 수주량이 늘어났다. gt기준 중국은 올해 850만gt를 수주해 전년대비 62% 수주량이 감소했고, 일본도 850만gt를 수주해 26% 감소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179만gt를 수주하며 11% 늘어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선종별로 우리나라는 전체 수주량 중에 탱커선 46%, 컨테이너선 42%, 가스선이 10%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은 컨테이너선과 탱커선 각각 35%, 가스선 9%를 수주해 우리나라와 비슷한 형국이다. 중국은 주력선종인 벌크선 수주 급락이 악영향을 주고 있다.

 

실패 반성, 강점 극대화, 장기플랜 필요
“집안 싸움 출형 경쟁 지양하고, 업계간 소통과 협력이 최우선”
이와 같이 지표상으로 반전의 기회가 있는 우리 조선업계가 위기를 벗어나 세계 최고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현 위기 상황에서 과거의 실책을 돌아보고 강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최우선적으로 국내 업체간 출혈경쟁이 지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재무상황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주범은 우리 업체간 가격경쟁으로 저가에 수주한 해양플랜트이다. 향후 다시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해양플랜트는 물론, 최근들어 발주가 살아나고 있는 초대형컨선, LNG운반선 등은 국내에서 대부분 수주되는 만큼 우리 업체간 ‘집안싸움’이 더이상 나타나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해양플랜트와 초대형컨선의 경우, 현대·대우·삼성이 모두 수주하고 있어 현 체제에서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를 이유로 건설회사들의 공동수주를 조선업에 접목시키자는 의견도 일각에서 제기된 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건물을 짓는 부지에 인력을 투입해 건설하는 건설과 달리, 선박은 각 회사의 야드에서 건조돼야 하기 때문에 공동수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다 현실적인 방안은 국내 업체끼리 특화선종을 정해 주력하는 것이다. 특히 대형 3사의 사업영역을 조금씩 차별화해 국내 업체간 과당경쟁을 줄이고, 시리즈선 수주를 이끌어 건조비용을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과거 실패에 대한 업계의 반성과 고민, 그리고 정부의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다. 한 연구자는 “과당경쟁 방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업계간 소통과 협력이다. 지금까진 그게 전혀되지 않았다. 정부의 중간역할과 지원도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해양플랜트 설계능력, 고급기술인력 육성·확보 급선무
“지금부터는 ‘어떻게’(일어서는가)가 더욱 중요”
해양플랜트 발주가 주춤한 현 상황에서 장기적인 인력양성과 설계능력 강화도 진행돼야 한다. 해양플랜트 손실의 이유는 업체간 경쟁에 따른 저가수주와 함께 숙련인력 부족에 따른 건조비 증가도 한 몫했다.

 

특히 기본설계, FEED설계 전문인력이 전무한 상황에서 적정 금액조차 책정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향후 해양플랜트 수요가 살아날 시기를 대비해 설계인력과 숙련된 기술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전문가는 “영업성과에 민감한 글로벌 석유업체들이 저유가에 의한 수익성 악화로 프로젝트 일정을 대거 연기했으나, 오일메이저의 프로젝트 점검이 끝나는 내년(2016년) 이후에는 추진 중인 프로젝트의 후속 발주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망했다. 이 시기에 대한 적절한 대비가 우리 조선업계 회생의 발판이 될 수가 있다는 의견이다.


2000년대 이후, 세계 최고의 조선국가로 발돋움하며 승승장구를 달렸던 국내 조선업계에 지금은 분명 가장 큰 시련의 시기이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물량들과 세계 최고의 기술력, 세계 시장에서의 높은 신뢰도 등은 우리 조선산업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발판이다. 한 연구자는 “지금부터는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치열한 반성과 고민을 통해 또 다른 위기를 맞지 않도록 준비해야 하고, 출혈없이 우리 조선업체들이 공생·발전할 수 있는 방법론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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