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1942년 5월 일제강점기 때 목포항 소재로 만들어져
목포출신 이난영, 오빠 이봉룡 작곡한 노래 취입 히트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똑딱선 운다

유달산 잔디위에 놀던 옛날도
 동백꽃 쓸어안고 울던 옛날도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

여수로 떠나갈까 제주로 갈까
 비 젖은 선창머리 돛대를 달고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이별의 부두

 

 
 
전남 목포시엔 유달산, 삼학도, 영산강 등 명소들이 많다. 목포소재 노래엔 이들 명소들이 곧잘 나온다. 이난영이 부른 ‘목포는 항구다’도 그렇다. 조명암이 작사(박남포 개사)하고 이난영의 친오빠 이봉룡이 작곡한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 때 목포항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목포는 한반도의 서남단에 자리 잡은 항구도시로 다도해의 절경과 풍광이 아름답다.
노래가 만들어진 건 7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2년 어느 봄날 작사가 조명암은 이철 OK레코드사 사장으로부터 “목포노래시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목포의 눈물’이 민족가요로 떠오르자 목포출신 이난영으로 하여금 또 한 번 목포의 노래를 부르게 할 생각이었다.
 

조명암, 목포항 찾아 노래 감흥 일어 작사
목포에 온 조명암은 선걸음으로 유달산을 찾았다. 산에 오르자 목포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듣던 대로 무척 아름다웠다. 그는 산을 내려와 시가지를 둘러본 다음 부두로 갔다. 서해안바다엔 봄 안개가 자욱했다. 비 오는 선창, 출렁이는 파도, 똑딱선 기적소리가 들렸다. 조명암의 수첩엔 ‘여수로 떠나갈까 제주로 갈까, 비오는 선창머리 돛대를 잡고, 이별 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다 추억의 고향~’로 나가는 노래시가 담겼다. 목포를 또 한 차례 가요도시로 빛나게 하는 노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3절의 바탕가사가 되지만 조명함은 이 노래시를 맨 먼저 썼다. 봄비가 내리는 선창엔 뱃고동소리와 함께 그의 가슴을 적셨다. 그렇게 해서 노랫말이 만들어지고 곡이 붙여져 그해 5월 이난영이 취입했다. ‘목포는 항구다’는 ‘목포의 눈물’과 함께 또 한 번 목포를 노래의 고향으로 떠오르게 하는데 한 몫 했다.

‘목포는 항구다’ 노랫말을 쓴 조명암(1913년 1월 10일~1993년 5월 8일)은 그 무렵 최고의 작사가로 시, 희곡도 썼지만 명가요 노래시도 많이 지었다. ‘낙화유수’ ‘꼬집힌 풋사랑’ ‘울며 헤진 부산항’ ‘잘 있거라 단발령’ ‘화류춘몽’ ‘총각 진정서’ ‘역마차’ ‘눈 오는 네온가’ ‘서귀포 칠십리’ 등 꼽아보면 수두룩하다. 보성고등보통학교, 일본 와세다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그는 월북해 북한에서 시인, 대중가요 작사가,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작곡가 이봉룡도 ‘낙화유수’ ‘고향설’ ‘정든 땅 포구의 인사’ ‘아주까리 등불’ ‘선창’ 등 많은 노래에 곡을 붙였다. 1914년 8월 3일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음악광이었다. 기타를 잘 쳤던 그는 보통학교 졸업 후 악기점을 하며 작곡공부를 해 40여년간 200곡을 작곡했다. 이봉룡의 딸(이민자)도 가수가 돼 김시스터즈 멤버로 활동했다. 작곡가 겸 가수였던 김해송과 이난영 부부의 두 딸(김숙자, 김애자)과 함께 여성트리오를 만들어 1953년 미8군에서 데뷔, 국내활동을 이어가다 1959년 미국인 흥행사에 의해 미국으로 진출했다. 외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그룹가수로선 1호다. 이들은 김해송·이난영 아들로 이뤄진 김브라더스와 함께 미국에서 상당한 활동을 했다.

‘목포는 항구다’는 작사, 작곡 기법 못잖게 가수 이난영의 구슬프면서도 낭랑한 목소리가 압권이다. 그는 ‘목포의 눈물’ ‘울어라 문풍지’ ‘해조곡’ ‘다방의 푸른 꿈’ 등 주옥같은 가요들을 불렀다. 그래서 ‘목포의 딸’로 불린다.
1916년 6월 6일 목포시 양동에서 태어난 이난영은 호적엔 옥순, 본명은 옥례다. 그는 토월회 단장 박승희에게 픽업돼 연예인 길을 걷게 됐다. 토월회의 목포공연 때 가수가 되기 위해 찾은 이난영은 노래를 아주 잘 불러 박 단장이 평소 친했던 이철 OK레코드사 사장에게 소개한 것이다.
 

 
 
삼학도 이난영공원에 노래비
목포시 산정동 삼학도 이난영공원(약 3300㎡, 1000여평)엔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가 서있다. 비 옆에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음향장치도 있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노래가사는 비에 새겨진 것과 약간 다르다. 첫 발표된 1942년의 음반 질이 나빠 음악인 박남포(반야월)가 노랫말을 다시 써 1961년 이난영이 재취입한 곡이 나온다. 세로로 된 스테인리스 ‘이난영 노래버튼’을 누르면 공원에 울려 퍼지는 ‘목포는 항구다’를 들을 수 있다.
노래비 아래엔 “경기도 파주에서 41년 만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와 노랫말 속 ‘삼학도’에 영면함을 기념해 목포시민의 뜻과 정성을 모아 세운다”는 정종득 목포시장 이름의 글귀가 2006년 4월 11일자로 새겨져있다.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노래비 사이엔 ‘이난영 나무’와 포지석도 있다. 이장을 해 배롱나무 밑에 묻은(국내 수목장 1호) 고인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눈길을 끈다. 백일홍인 배롱나무는 봄이 되면 붉은 꽃을 피운다. 공원엔 쉼터, 등산로, 돌탑, 정자 등도 있다. 목포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이난영공원 가까이엔 김대중기념관도 있어 목포시민과 외지길손들의 발걸음이 잦다. 이난영공원은 양동의 생가 터, 유달산 중턱의 노래비와 함께 목포에서 이난영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노래비가 있는 삼학도는 대삼학도, 중삼학도, 소삼학도 등 3개 섬으로 이뤄졌다. 뭍에서 1km쯤 떨어져있는 이 섬의 사연이 유별나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으로 가난했던 시절 배를 타고 들어가 헤엄치고, 씨름하고, 사랑을 속삭이던 민초들의 친근한 섬이었다. 1960~70년대 들어 간척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지며 육지가 됐다. 목포는 이난영과 삼학도, 목포5味(홍어삼합, 민어회, 갈치찜, 세발낙지, 꽃게무침)가 외지의 길손들을 이끈다.
호남선 종착인 목포역에 가도 ‘목포는 항구다’와 ‘목포의 눈물’이 가끔 흘러나온다. 역 구내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서정적인 그리움의 애틋한 목포연가로 승객들에게 인기다.
 

노래와 같은 제목 영화도 나와
2004년 2월엔 노래와 같은 제목의 영화 ‘목포는 항구다’(감독 김지훈)도 나왔다. 114분짜리 코미디물로 조재현, 차인표, 송선미, 손병호 등이 출연했다. 아마추어 서울형사(이수철)가 성기파의 마약루트를 알아내기 위해 목포조직에 몰래 들어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체험을 한다는 내용이다. 맨땅에 생매장 당하기, 인간 타종식, 권투시합 출전 등 힘든 관문을 거치면서 마약밀매증거를 잡고 서울로 돌아가려는 장면들이 웃음을 준다.

 
 

저작권자 © 해양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